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흐얀이 아버지 셰이크 자이드, 이복형 셰이크 칼리파에 이어 UAE의 세번째 대통령에 선출된지 어느덧 4주년이 되었습니다.
셰이크 무함마드의 대통령 취임 후 지금의 UAE는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미납 초등학교 학살사건으로 촉발된 이란 침공을 통해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눈에 띄는 행보로 전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UAE의 과감한 행보를 암시했던 것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이 시작된 지 일주일째 되던 날, 그는 병원을 찾아 이란의 미사일 공격으로 부상한 민간인들을 위문하는 장면에서부터였습니다.
그는 환자들의 손을 꼭 잡고, 한 환자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이란의 보복공격으로 갑작스레 전쟁의 최전선에 놓인 국민들과 외국인 거주자들을 안심시키려드는 동시에 그는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UAE의 적들에게 경고도 던지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UAE의 겉모습에 속지 마십시오. UAE는 두꺼운 피부와 쓴 살을 지닌 나라입니다. 우리는 결코 쉬운 먹잇감이 아닙니다. (The UAE has thick skin and bitter flesh - we are no easy prey)”

셰이크 무함마드는 수십 년 동안 UAE의 군사력과 방어 체계를 구축해 왔고, UAE 연합군 창군 (1976년 5월 6일) 50주년 즈음에 일어난 이번 전쟁은 국가 건국 이래 본토롤 침공당해 본 적 없는 UAE의 방어력에 대한 가장 혹독한 시험대이기도 했습니다. 휴전에 들어가기 전까지 5주 동안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너머에 마주하고 있는 UAE를 향해 다른 걸프 국가나 심지어 이스라엘을 향한 공격보다 훨씬 많은 규모인 약 2,800발의 미사일과 드론을 발사했고, 대부분은 이스라엘의 아이언돔까지 지원받으며 다중의 방어망을 구축해왔던 UAE의 방공망에 의해 요격하면서 그 능력을 입증하기도 했습니다. UAE가 잘 막아낸 덕분도 있지만, 이란이 맹폭하는 와중에도 미군과 관련된 시설, 혹은 석유 정제시설 등 나름 절제된 목표물을 노렸던 영향도 없잖아 있었다고 봅니다만... (안 그랬으면, 보복 공격의 목표물이 되기 좋은 곳에서 근무하는 나도...)

셰이크 무함마드에게 이번 전쟁은 자신의 의지를 대외적으로 표출하는 중대한 전환점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주변의 부정적인 여론도 아랑곳하지 않고 암암리에 걸어왔던 자신의 통치관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기회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 협정으로 시작되었던 이스라엘과의 돈독한 관계를 더욱 공고히하는 동시에 기습적으로 이틀 뒤인 5월 1일부로 석유수출국기구 OPEC에서 탈퇴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하면서 한때 카타르와 예멘 문제에 동참하면서 돈독했던 사우디를 겨냥한 노골적인 견제 메시지를 던졌으니까요.
다원화된 세계에서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냉전시대처럼 어느 한쪽에만 몰빵하지 않는 외교정책을 구사하겠다는 외교정책은 그의 취임 후 반년 뒤인 2022년 11월 안와르 가르가쉬 외교 보좌관의 연설을 통해 공식화된 바 있습니다. (링크) 최근 이란 전쟁을 통해 여론전에서 어그로를 끌듯 가장 많이 이란에 대해 입을 터는 양반이죠?

다원화된 외교정책...이라는 말의 이면에는 단순히 분쟁에서 어느 한쪽 편만 들겠다는 것만이 아니라...(서로 다른 전쟁을 진행 중인 미국과 소련 양쪽에 다 우호적인 관계죠?) 국가의 이익이 된다면 기존에 이들에게 익숙했던 가치관이나 유대감과도 거리를 두겠다는 의미도 담겨있었음을 이번 기회에 보여준 셈이었습니다.... 좋게 보면 실용적이요, 나쁘게 보면 (이득만 챙기겠다는...) 얍삽해 보이는 방식이기도 하죠.
이는 그의 비전이 새로운 경제, 지식 경제에 기반을 둔 미래에 있으며, 자신들의 정체성 문제에서도 ‘우리는 아랍인이다, 우리는 무슬림이다’라는 식의 이념적인 접근 방식을 피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전통적인 가치관을 벗어난 행보에 일견 위태로워 보이기도 하는 그의 외교 정책은 아부다비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아랍인의 탈을 쓴 이스라엘 2.0", "이스라엘이 아라비아 반도에 심어놓은 트로이 목마"라는 비난을 감수하고서도 아랍인들이 경멸하는 대상인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이번 사태에서 피해를 받고도 이란에 대해 적절한 거리를 두며 언급을 자제하고 있는 다른 이웃 국가들과 달리 대놓고 거침없이 상대를 자극하는 어그로와 직접 침공에도 참여할 정도로 적대적인 대응을 보이는 것으로 연결됩니다. 이는 자신의 평생을 통해 깊숙히 각인된 단 하나의 신념에 기반을 둔 계산된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이란과 이슬람주의 세력은 지역 안정에 중대한 위협이다"
1961년 알아인에서 태어난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흐얀은 어렸을 때 모로코의 로얄 아카데미에서 (셰이크 자이드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속이며) 나름 빡쎈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고 18세까지 아부다비와 알아인에서 교육을 받은 뒤 영국 장교 양성기관인 샌드허스트를 졸업했습니다 . 아버지 셰이크 자이드는 아들 셰이크 무함마드가 어렸을 때 무슬림 형제단과 관련이 있는 존경받는 이슬람 신학자 이젯딘 이브라힘에게 교육을 맡겼는데, 이슬람 신학에 대한 개인교습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무슬림 형제단에 대한 강한 혐오감이 일찌감치 형성되는 계기가 된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아랍어를 구사할 수 있는 지식인이 귀했던 UAE가 지금은 적대세력으로 규정한 무슬림 형제단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던 시기였죠.
무슬림 형제단에 대한 혐오감이 단순한 어린 시절의 치기가 아닌 언젠가 나라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실제적인 위협요인임을 인식하게 된 건 그가 샌드허스트를 졸업하고, UAE군에 임관한 첫 해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란 이슬람 혁명 (1978년 1월~1979년 2월)과 그랜드 모스크 점거 사건 (1979년 11월~12월).
바로... 이란의 석유로 꿀빨고자 미국과 영국이 쿠데타까지 일으키며 민주적인 정부를 무너뜨려가면서까지 지켜왔던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오늘날의 이란을 만든 이란 이슬람 혁명, 그리고 그 여파로 몇 달 뒤 사우디에서 일어난 그랜드 모스크 점거 사건.
이란 혁명을 통해선 이슬람주의 세력들이 민중을 선동해 세속주의 왕정을 전복시킬 수 있음을 보여줬고, 그랜드 모스크 점거 사건으로 인해 사우디 왕국이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가짜 메흐디의 재림이란 말에 낚여 되려 추종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사건 종료 후 사회의 주도권을 왕가가 아닌 와하비스트들이 장악해 우리에게 각인된 꼴통 보수국가가 되는 모습을 지켜 봤으니까요. 결국 사우디 왕가가 그 정점에 있던 종교경찰을 축출하고 주도권을 되찾아오는데 38년이나 걸렸....
코바르 타워 폭파 사건 (1996년)~9.11 (2001년)
반정부 성향의 이슬람주의 세력이 국가나 사회 자체를 전복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언제든지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테러리스트가 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들이 1990년대 후반부터 사우디와 미국 등지에서 잇달아 발생했던 것 역시 그의 혐오감을 키우는데 일조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라스 알카이마 왕세자 교체 시위 (2003년 6월)
셰이크 무함마드가 아버지의 사망으로 이복형 셰이크 칼리파의 즉위와 함께 왕세제가 되기 다섯달 전인 2003년 6월 14일, 당시 라스 알카이마 통치자였던 셰이크 사끄르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가 자신의 장남이자 1958년부터 40년 넘게 왕세자 겸 부통치자였던 셰이크 칼리드 빈 사끄르 알까시미를 내치고, 그의 이복동생인 셰이크 사우드 빈 사끄르 알까시미 (현 통치자)를 임명하자, 셰이크 칼리드를 지지해왔던 라스 알카이마 국민들이 통치자의 결정에 반발해 UAE 역사상 좀처럼 보기드문 대규모 반정부 가두시위를 벌이는 일이 발생해 UAE 연방군이 군병력과 장갑차를 라스 알카이마에 배치해 새 왕세자 셰이크 사우드의 궁전을 엄호하면서 시위를 진압해야만 할 정도의 큰 사건이었습니다.
왕세자의 전격 교체 이유로 UAE 정부와는 결이 다른 그의 정치적 노선이 갈등을 유발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정치적 갈등 요인으로는 2003년 미국의 전세계적 사기극이었던 미국의 이라크 침공 반대 및 반전 움직임이었지만, 왕세자에서 짤리기 3달 전 그는 라스 알카미마의 연방평의회 의원을 통치자가 임명하는 대신 선거로 뽑은 방안을 제안하는 등 당시로는 개혁적인 제안을 내놓았으니까요.
두바이가 무슬림 형제단 계열 조직 알이슬라흐를 1994년 해산시켰을 때, 통치자 셰이크 사끄르는 이 조직이 "청년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며 해산을 거부하면서 라스 알카이마는 보수적인 지역 네트워크와 알이슬라흐의 잔존 영향력이 겹친 특수한 상황에 놓여져 있었고, 이 시위를 진압했던 셰이크 무함마드는 무슬림 형제단 계열의 교육 분야 인사들을 만나, 이념을 포기하거나, 공적인 자리에서 이념 전파를 중단하거나, 교육 분야에서 물러나는 선택지를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을 정도로 알이슬라흐에 대한 경계와 압박을 강화하기 시작했던 시점이기도 합니다. 조건이 맞으면 UAE애서도 얼마든지 알어날 수 있는 일이 되었으니까요.
아랍의 봄 (2011년)과 아부다비 왕실 쿠데타 미수 사건 (2011년)
2011년 아랍 세계를 뒤흔든 아랍의 봄이 일어났을 때, 셰이크 무함마드는 민중 봉기를 일으켜 독재 정권을 전복시킨 이슬람주의 세력이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악용할 위험한 순간이라고 보았습니다. 공교롭게도 2011년 아부다비 왕실 내에서도 친동생 셰이크 함단이 "절대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 전환, 아랍 국적자에게 보통 선거권 부여, 연방평의회를 직접 선출 입법기관으로 전환" 등을 내건 쿠데타를 모의했다가 국가안보 조직의 감청을 통해 자신과 친동생인 내무부 장관 셰이크 사이프에게 사전에 발각된 사건은 그로 하여금 이슬람주의 세력에 대한 잠재적 위협을 상정하면서 국내에서 이슬람주의자들과 활동가들에 대한 단속 및 재교육 시스템을 구축하게 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셰이크 무함마드의 친형제 중 유일하게 셰이크 함단만 아부다비 통치자 대리인 자격으로 외딴 사막지역인 리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사실상 유배죠.)
셰이크 무함마드는 왜 민주적인 선거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가?
셰이크 무함마드는 입헌군주제 도입을 주장했던 친동생을 유배보낼 정도로 민주주의 선거에 대해서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만약, 민주주의 선거가 실시된다면 이슬람주의 세력들이 선거에서 승리해 지금까지 일궈온 국가의 기반을 흔들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한 우려가 아니라 역사에서 얻은 교훈이기도 합니다. 21세기 아랍에서 있었던 몇 번 안되는 민주적인 자유 선거에서 전부 이슬람주의 세력들이 승리했거든요. 2006년 1월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 압승, 그리고 군부독재 종식 후 있었던 2012년 이집트 대선에서 무스림 형제단 출신의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 당선. 그리고 그들이 승리한 결과는.... 결국 다시 뒤집히고 말았죠.
아랍권 자유선거에서 이러한 결과가 나오는 게 사실 의외도 아닌 것이 하마스, 무슬림 형제단 등은 모스크를 중심으로 구성된 무슬림 커뮤니티를 통해 정부보다 가까운 곳에서 교육 및 사회 복지를 풀뿌리 민심을 사로잡기 때문입니다. 이해하기 어렵다구요? 정부 시책에도 반발하고 저항하는 사랑제일교회나 명성교회, 통일교, 신천지 등 극우세력을 이끌고 있는 대형 교회 신자들이 (그럴 일은 없지만...) 유권자수의 다수를 차지하게 된 상황에서 선거를 치룰 경우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상상해 보신다면...........
이슬람주의 세력의 정치세력화에 민감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우디보다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건 1727년 사우드 왕가의 첫 국가가 디리야에서 개국한 이래 300주년이 되는 내년까지 흥망성쇠를 거쳐가며 사우드가와 와하비스트들이 서로 헤게모니 쟁탈전을 벌이면서 사회 주도권을 빼았았다가 뺐기는 경험이 있는 사우디와 달리 UAE는 그런 경험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우디는 사우드가가 와하비스트들과 혼인으로 결합하면서 힘을 키웠기에 예고된 파국을 경험해 왔다면, 아부다비를 위시한 UAE의 일곱 토후국은 세속적인 유력 씨족이 이끌어온 나라였으니까요.
이러한 상황에서 그가 택한 방법은?
공교롭게도 아랍의 봄과 쿠데타 미수사건이 발생한 즈음에는 유유부단한 걸로 알려졌던 이복형 셰이크 칼리파 대통령보다 막강한 권력을 갖기 시작할 때였고, 그가 2014년 뇌졸증으로 쓰러진 이후에는 실질적인 통치자로 자신의 비전을 정책에 반영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애국심 고취 및 국가 정체성 확립, 그리고 사회 전반에 걸쳐 지배적이었던 이슬람적인 색채를 뺀...
셰이크 무함마드는 샌드허스트 졸업 후 쭈욱 군에서만 경력을 쌓은 전형적인 무관 출신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강하게 교육시키고 사관학교를 다니며 몸에 익힌 애국심의 중요성과 규칙적인 생활은 전형적으로 움직이기 싫어하는 이마라티 국민들의 생활방식을 손보는 밑거름이 됩니다. 이러한 생활방식을 나태하다고 봤다고 하죠.
그는 자주국방의 기반을 닦기 위해 당시 파키스탄인과 이집트인에 의존하던 UAE 연합군을 개편합니다. UAE 건국 지도자인 셰이크 자이드 빈 술탄 알 나흐얀의 지원을 받아 전국을 돌며 유력 이마라티 가문들의 둘째 아들들을 모집해 군사학교로 보냈고, 훗날 여군사관학교도 만들게 됩니다. 모범을 보이기 위해 1기로 자신의 손녀를 입교시켰죠. 그는 또한 공군에서 복무해온 경험을 살려 전투기에서 방공 체계에 이르기까지 미국산 무기에 대한 UAE의 대규모 투자를 감독했고, 오늘날 널리 높이 평가받는 군대를 발전시키게 됩니다.

UAE의 실권자가 되기 전까지 군에서 북무하며 자국민을 중심으로 한 UAE군의 기반을 닦은 그는 2014년 1월 이마라티 국민을 대상으로 걸프지역 최초의 의무병역제 도입을 도입하게 됩니다. 이는 움직이기 싫어하고 안락한 생활에 익숙한 걸프지역 국민들에게는 전례 없는 조치였습니다. 그는 의무병역제를 통해 더 강한 국민적 정체성과 민족주의 의식을 형성하려 했다. 여기에 군생활을 통해 건강하고 규칙적인 생활은 덤.
여기에 자국민들에게 일을 시키기 위해 과거에는 정부에서 무상으로 베풀었던 주택 등의 혜택을 부분 유료화도 도입하게 됩니다. 일정 금액까지는 무상이지만 그 이상의 차액은 자금이 부족할 경우 은행 대출을 받게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이러한 변화는 슈퍼나 팝업매장 직원 등 예전엔 외노자들의 몫이었던 자리에 들어선 이마라티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전환점이 됩니다.
UAE 정부는 의무병역제 도입과 더불어 다양한 방식으로 국가 정체성 확립을 통한 애국심 고취에 본걱젹으로 나서게 됩니다. UAE에 사는 이마라티나 외국인 거주자 모두에게 UAE는 특정 가문이나 종교에 속하지 않은 UAE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플래그 데이를 만들면서 국가에 주요한 일들이 생길 때마다 국기를 강조한다던가, 순국국가 브랜드를 온라인 투표로 제정한다던가, 내셔널 데이의 이름을 이드 알잇티하드라는 이름으로 바꾼다던가 등의 방식으로 말이죠
- 2016.11.05 - [GCC&GU/UAE] - [역사] UAE 플래그 데이, UAE 국기의 의미와 일곱 토후국의 국기
- 2016.11.29 - [GCC&GU/UAE] - [역사] UAE의 새 공휴일 순국자의 날은 내셔널 데이 연휴로 인해 제 날짜에 쉬지도 못하는 11월 30일일까?
- 2020.01.09 - [GCC&GU/UAE] - [사회] UAE, 온라인 투표를 통해 선정된 국가 브랜드 로고 발표!
- 2025.11.27 - [GCC&GU/UAE] - [사회] UAE는 왜 내셔널 데이 휴일을 이드 알잇티하드 (이드 알에티하드)로 바꾸었을까?
2010년 중반 애국심 고취 및 국가정체성 확립에 촛점을 맞췄던 UAE 정부는 2016년 세계 최초로 관용부를 신설하고 국부 셰이크 자이드 탄신 100주년 다음해인 2019년을 "관용의 해"로 지정하면서 오랫동안 사회 전반에 지배적으로 걸쳐있던 이슬람적인 색채를 빼기 시작합니다. 교황이 UAE를 처음 방문한 것도,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과의 국교를 수립하게 된 것도... 마법의 "관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부터 말이죠.
- 2016.02.11 - [GCC&GU/UAE] - [정치] 늘어난 여성파워! 정부구조 개편안에 따른 22세 여성 장관 파격 발탁을 포함한 UAE 12차 내각 공식 발표!
- 2019.02.05 - [GCC&GU/UAE] - [사회] 프란치스코 교황의 역사적인 첫 UAE 방문 이모저모, 그리고 UAE를 비롯한 걸프 국가와 바티칸의 관계
이와 더불어, 샤리아적인 색채라 강한 사회기조를 바꾸기 위한 다양한 법들이 잇달아 개정되기 시작합니다. 샤리아적인 색채를 빼다못해 이슬람 국가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파격적인 법까지...
- 2020.11.10 - [GCC&GU/UAE] - [사회] UAE, 비무슬림에게도 적용되던 샤리아의 영향을 약화시킨 파격적인 개인 및 가족법 개정안 발표!
- 2023.02.02 - [GCC&GU/UAE] - [사회] 결혼부터 이혼까지 샤리아의 색채를 뺀 비무슬림 가족법 2월 1일부터 확대 시행 개시!
- 2023.11.01 - [GCC&GU/사우디] - [사회] 사우디, 모든 공식 거래의 기간 계산 기준을 현재의 히즈리력에서 양력으로 변경하기로 결정!
- 2023.11.02 - [GCC&GU/UAE] - [사회] 미혼 커플의 체외수정시술 및 불임 부부의 대리모 허용 등 파격적인 UAE 출산법 시행에 들어가!
- 2024.08.02 - [GCC&GU/UAE] - [사회] 아부다비 민사 가정법원, 외국인들을 위한 법률혼 서비스에 한국어 추가!
이러한 파격적인 변화의 정점에는 무슬림들에게 가장 중요한 "금요일 오후 주므아" 예배시간을 강제적으로 고정 (현재는 오후 12시 45분)해가면서까지 도입한 주4.5일제라던가, 카지노와 복권, 온라인 도박을 합법회하는 등의 보수적인 무슬림들에겐 경을 칠만한 정책을 도입할 정도였으니까요. 특히, 금요일 오후 주므아 예배시간을 강제로 고정하는 주4.5일제 도입에 반대한 샤르자의 경우엔 토후국 권한으로 주4일제를 도입할 정도로 내부적인 반발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 2021.12.08 - [GCC&GU/UAE] - [사회] 종교와 실리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은 UAE의 주4.5일제 도입으로 본 아랍국가에서의 주말 변경사
- 2023.09.04 - [GCC&GU/UAE] - [경제] UAE, 카지노, 복권 등의 합법화 및 규제를 위한 정부기관 신설 발표!
이러한 일련의 정책추진은 UAE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외국인 거주자와 방문객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포용하면서 받아들이기 위한 조치라고 밝히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쳐온 이슬람의 영향력을 낮추기 위한 포석도 담겨져 있습니다. UAE가 예멘, 수단, 소말리아 사태에 개입해 사우디가 지지하는 세력과 다른 세력을 지원해 욕을 먹는 것도 결국은 이슬람주의 세력를 상대하기 위할 정도니까요. 수단의 RSF를 원한다던가, 예맨의 알후씨 반군에 맞서기 위해 이스라엘이 내세운 소말리아랜드를 인정한다던가...
2010년대 중후반 카타르 단교사태를 야기했던 카타르의 행보와 지금의 UAE 행보는 사우디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점에선 같지만, 그 방향은 다른데, 미니 국가로서 모든 세력이 잠재적인 적대세력이 될 수 있는 카타르는 사우디와 UAE, 및 미국 등이 테러조직으로 인정하는 하마스, 알까에다, 무슬림 형제단들을 포용하면서도 이들을 이용해 사우디와 UAE의 부정적인 행보를 더욱 부각시키고 비난함으로써 이웃 국가들의 지지를 낮추려고 했던 점에서 괘씸죄가 걸렸다면, UAE는 그간 마련해 온 나름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전통적인 가치관도 던져버리고 누구와도 손잡는 마이웨이적인 행보를 걷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게 설령 위태위태한 도박처럼 보일지라도 말이죠...
이렇게까지 해서 UAE 사회 내에 이슬람주의 세력들의 영향력을 낮추기 위해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공을 들여왔는데, 그에게 미국 및 이스라엘과 맞다이까고 있는 이란의 움직임이 곱게 보일리가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 전까지만 해도 종종 영토 분쟁으로 문제를 삼는 등 데면데면한 태도를 유지해왔던 UAE가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이란에 대한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내면서 마이웨이 노선을 본격적으로 걷는 전환점이 된 셈입니다.
'GCC&GU > UAE'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경제] UAE, 5월 1일부터 가입 59년 만에 석유수출국기구 탈퇴 결정! 그 의미와 배경 (1) | 2026.04.29 |
|---|---|
| [정부] UAE, 2년 내 AI 기반의 새로운 정부 모델 도입… 정부 서비스 절반에 AI 적용! (0) | 2026.04.24 |
| [교통] 아부다비, 최근 설치한 2곳의 톨게이트 통행료 징수를 5월 4일부터 시작한다고 확정 발표! (0) | 2026.04.23 |
| [교통] 두바이 통치자 셰이크 무함마드, 두바이 메트로의 새로운 노선 골드라인 공식 발표! (0) | 2026.04.23 |
| [의료] 아부다비 부르질 병원, 한국형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국 의료원 공식 개원! (0) | 2026.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