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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UAE 정부가 유독 이스라엘과 더 가까와지고 국가정체성을 강조하게 된 배경!

둘라 2026. 1. 22.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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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역내 문제에서 흔들리는 UAE의 입지

2010년대 중후반 사우디와 함께 예멘 침공, 카타르와의 외교분쟁에 함께하고 2020년대 초반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역내 외교전에서 돋보였던 UAE의 입지는 2025년 연말을 기점으로 한때 동지였던 사우디에 밀려 좁아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다른 나라들과 달리 역내 문제에서 정면 대립 대신 조정기를 거치고 있기에 크게 드러나고 있진 않지만, 이례적으로 UAE의 입지가 좁아지는 일들이 몇 주 사이에 잇달아 일어났습니다.

  • 수단 문제에선 악명높은 신속지원군 (RSF) 지원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쌓고 있고.
  • 예멘 문제에선 무장세력인 남부과도위원회(STC)를 지원했다가 사우디의 공습으로 궤멸된 후 주둔군을 철수시키기까지 했으며,
  • 소말리아는 UAE와 체결했던 모든 계약을 철회하고
  • 격동하는 정세 변화 속에 한때 대립했던 사우디와 카타르가 가까워진 사이에 오히려 UAE는 고립되는 처지에 놓이는 등

이러한 변화는 아브라함 협정으로 이스라엘과 수교한 UAE가 다른 나라들보다 유독 이스라엘과 가까운 관계에서 비롯된 면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눈엣가시인 예멘 반군을 공격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삼기 위해 전세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권을 인정한 소말리랜드를 UAE가 은근슬쩍 인정한 사실이 대표적인 반증이죠. 그 댓가로 소말리아에 쌓았던 관계를 모두 부정당하고, 인근 국가들에게도 따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지만요.

 

이러한 와중에 얼마전 뜬금없이 UAE정부는 영국에 유학 중인 자국민에 대한 정부 장학금을 중단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유학생들이 영국에서의 유학 도중 원리주의자들을 통한 급단적인 이슬람에 경도될 우려가 있다면서 말이죠.

 

여기서 UAE와 이스라엘의 이해 관계가 만나는 교집합이 있습니다. 바로 급진적인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위협.

 

 

급진적인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위협

네타냐후가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현대사 최악의 인종학살의 면죄부로 삼기 위해 "이슬람 원리주의자들과의 전쟁"을 내세우곤 합니다. 자신들이 이들과 싸우지 않으면 다음은 유럽과 미국이 위험해질 거라는 과대망상에 빠진 궤변으로 전세계를 가스라이팅해왔죠.

 

무슬림 형제단으로 대표되는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들은 사우디와 UAE, 그리고 이스라엘이 비공식적으로 가까워지는 계기를 제공해 온 공공의 적이지만, 지난 2023년 네타냐후가 제작하고 연출한 10.7 테러사건을 핑계로 저지르기 시작한 대대적인 인종학살을 계기로 사우디와 UAE는 이스라엘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하게 됩니다.

 

사실상 실패로 끝난 예멘 침공과 카타르 외교 분쟁 이후 역내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던 사우디가 사태 초반 침묵을 지키다 이스라엘의 선을 넘은 악마적인 만행이 이어지자 팔레스타인 국가가 인정되어야 이스라엘과의 외교 수립을 검토해 보겠다며 이스라엘과 수교하라는 미국의 압박을 뿌리치며 이스라엘과 거리를 두고 역내 문제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반면, UAE는 오히려 알게 모르게 이스라엘과 더욱 가까워졌으니까요.

 

사우디와 UAE 모두 무슬림 형제단의 영향력 확대는 싫어하지만, 서로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는 이유는 두 나라의 역사적인 상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우디는 알사우드 씨족과 원리주의 세력인 와하비파가 결탁되어 세를 확장했던 나라였던만큼 3세기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사회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두 세력의 헤게모니 쟁탈전이 치열하게 벌여온 역사가 있는 반면, UAE는 이러한 대립의 역사가 없이 영국의 철수로 갑자기 형성된 나라였기에 종교세력과의 헤게모니 쟁탈전을 벌인 역사가 거의 없기 때문에 더더욱 민감해 할 수 밖에 없거든요.

 

사우디는 무슬림형제단이나 하마스는 싫지만,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권력투쟁 과정에서 숙청의 밤을 통해 주요 왕족들과 기득권층을 제거하고, 무따와로 불리던 종교경찰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리면서 자국민의 지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 속에 이스라엘의 학살에 반대하는 국민 여론이 90%가 넘는다는 상황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미국에 예기했다고 하죠.

 

이와는 반대로 UAE가 민감해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사우디와 같은 헤게모니 쟁탈전이 없다시피한 상황 속에 한때 UAE 내에 있었다가 자신들이 영향력 확대르 두려워 해 해산시킨 무슬림 형제단 계열의 원리주의 조직인 알이슬라흐 ( الاصلاح )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는데 가장 위협적인 잠재요소니까요.

 

 

우호적인 관계로 시작되었던 알이슬라흐의 성장

아랍어로 개혁을 뜻하는 알이슬라흐 (Al Islah)는 1960년대 후반 이집트 무슬림 형제단 소속 인사들이 나세르 정권을 피해 아라비아 반도 이주한 것에 뿌리를 두고 있고, 1974 두바이의 통치자 셰이크 라시드 사이드 막툼의 승인 아래 공식적으로 조직이 설립되었습니다. 당시 새로 생긴 나라인 UAE 정부로서도 이들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정부 조직이나 국가운영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아랍어"를 구사하면서 경험까지 갖춘 고급 전문 인력들을 자국민 중에 찾기는 쉽지 않았을테니까요. 

 

이슬라흐는 이집트 무슬림 형제단과 유사한 이슬람주의 이념을 공유한다고 밝혔고, 때로는 UAE 종교적 관용과 교회 허용 정책 등을 비판했고, 과거에는 여성 권리 제한, 엄격한 사회적 규율 촉구 보수적 사회 정책을 지지했으며, 조직 일부 그룹은 UAE 공화국으로 전환하고 전통적인 통치 구조를 폐지하는 정치적 개혁을 지지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사상을 가진 이집트 출신 교사들이 UAE 이주해 이마라티 청년들을 포섭하고 이 조직 출신 인사들이 주택, 교육, 사법, 종교  노동 부처  정부 요직을 차지하면서 북부 에미리트 (라스 카이마, 두바이, 푸자이라 등)에서 특히 영향력이 커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엔 우호적인 관계였지만이들의 영향력 확대가 정권에 위험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UAE 정부가 심각하게 인지하게 되는 사태가 주위에서 잇달아 발생하게 됩니다.

 

 

이란의 이슬람 혁명 (1979년 1~2월), 그리고 사우디의 그랜드 모스크 점거 사건 (1979년 11~12월)

이란의 이슬람 혁명은 세속적인 집권세력인 팔레비 왕조가 이슬람을 앞세운 정치세력에 의해 전복될 수도 있다는 실증사례가 되었고, 그랜드 모스크 점거 사건은 가짜 마흐디의 재림을 모토로 대부분의 사람들을 선동할 수 있으며, 그 댓가로 사우디 정부가 2018년까지 거의 38년 동안 사우디 사회의 주도권을 원리주의 세력에게 내주는 모습을 지켜봤으니까요.

 

이러한 사건들은 대다수의 민중들에게 종교세력들이 중앙 정부보다 더 가깝고 밀접한 곳에서 모스크를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 속에서 다양한 관계를 맺어왔기에 민중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UAE 정부와 갈등의 시작과 확대 (1990년대~2010년대)

UAE 정부는 위에서 언급한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경각심을 갖고 있던 데다가 알이슬라흐가 의회 권한 및 선거 확대를 바탕으로 한 정치개혁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자국민들에게 끼칠 영향을 우려해 1990년대부터 이들의 활동을 제한하기 시작합니다. 1994년 이집트 무장단체  지원 의혹으로 알이슬라흐가 처음 승인을 받았던 두바이 지부를 법적으로 해산시키면서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성향의 라스 알카이마에서는 한동안 계속 운영되었으며, 그 세력은 여전히 강력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2003년 라스 알카이마 통치자 셰이크 사끄르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가 모종의 이유로 1958년 이후 수십년 동안 왕세자였고 라스 알카이마 주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던 자신의 아들 셰이크 칼리드 빈 사끄르 알까시미를 왕세자 자리에서 강제 퇴위시키고, 왕위 계승 서열에서 밀려 사업가로 활동 중이던 또다른 아들 셰이크 사우드 빈 사끄르 알까시미 (현 통치자)를 새 왕세자로 교체하면서 통치자의 결정에 반발한 라스 알카이마 주민들이 일으킨 대규모의 시위 및 동요 사태는 군을 파견해 이를 진압한 아부다비 정부의 경각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셰이크 칼리드와 알이슬라흐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가 입증된 것은 없지만, 정황상 개입했을지도 모른다는, 이들이 정부에 대한 잠재적인 위험요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심증을 주기엔 충분했죠.

 

다른 한편으로는, 전세계에서 듣보잡이었던 UAE가 두바이를 중심으로 전세계의 이목을 끌기 시작해던 2000년대 중후반들어 극단주의자들이 UAE를 겨냥하기 시작했다는 징후들이 드러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에게 외국인들의 주목을 받기 위해 어그로도 끌면서 개방을 택한 두바이의 행보는 원리주의 세력들에겐 부패, 이자경제, 도덕적 타락, 프리메이슨적 요소들이 존재하는 곳이자, 외국인의 이익이 무슬림보다 우선한다고 보여졌으니까요.

 

 

알이슬라흐의 처벌과 해산 (2011년~)

아랍 세계의 정치적인 지형도를 뒤흔든 아랍의 봄 당시 알이슬라흐가 UAE 내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면서 UAE 정부는 알이슬라흐 활동 금지와 테러 단체로 지정하는 등 본격적인 조직 해산 작업에 들어가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이 무렵에 2009년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났던 셰이크 함단 빈 자이드 알나흐얀 (현 셰이크 무함마드 대통령의 친동생)이 입헌군주제 및 보통선거제로의 전환을 주장하며 주도했던 무혈 궁정 쿠데타 미수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죠. 이러한 과정 속에 정치적으로 중요하지만, 외부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속칭 UAE94 재판이 열리게 됩니다. 

 

UAE94 재판 (2012~2013년)

UAE94 재판은 UAE 정부가 "알이슬라흐가 무슬림형제단과 연계되어 UAE 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비밀 조직을 운영해왔다는 사실을 적발했다"며 이 조직에 참여하거나 동조했다는 이유로 94명의 UAE 국민 및 거주자를 국가전복음모혐의로 기소하면서 벌어진 재판이었습니다.

 

공정한 재판 절차가 미흡하고, 양심수가 포함되었을 가능성도 있으며 당국에 의한 자백 강요 및 고립 수감을 우려하는 국제 인권단체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UAE 정부는 중동에서 테러와 정치 불안을 유발한 조직인 무슬림형제단과 연계해 국가 전복을 노린 조직적 위협에 대한 정당한 법 집행이라며 기소된 94명 중 변호사, 전직 판사, 지식인 다수를 포함한 주요 인물 69명에게 징역 7~15년형을 선고하고, 나머지 25명을 무죄로 석방하게 됩니다.

 

그리고.. 선고 다음해인 2014년 국가안보법을 강화 (Federal Law No. 7 of 2014 Counter-Terrorism Law)하면서 이를 근거로 무슬림 형제단과 알이슬라흐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하게 됩니다. 

  개정 전 개정 후
범죄 구성 요건 조직 결성, 전복 음모, 외국 조직과의 연계 등 "행위" 중심 여기에 이념, 조직, 위험성 등 "잠재요인"도 요건에 추가
출소 후 석방 출소 후에도 위험하다 판단되면 재수감 가능
금지 사항 조직 결성만 금지 사상 동조 및 조직 재건 의도도 금지

 

이러한 과정에서 UAE 정부는 국가 안보 상 잠재적 위험분자들과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투 트랙 정책을 추진하게 됩니다. 

 

재활센터 (Munassaha)의 도입

2014년 개정된 국가안보법에 따라 "테러, 전복 사상에 오염된 자는 형기를 마쳐도 재활이 끝날 때까지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명분을 앞세워 사상범이나 테러 위험성이 있다고 간주되는 사람을 상담 및 재활하는 재활센터를 도입하게 되고, 2019년에는 연방법 (Federal Decree-Law No. 28 of 2019 established the National Counselling Centre (NCC))에 따라 설립을 합법화 했으며, 이 재활센터는 사상범, 혹은 잠재적 위험분자를 상담해 그 결과에 따라 석방하거나 재수감하는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UAE87 재판 (2023년)

UAE94 재판의 결과로 수감된 자들이 출소할 시기가 다가옴에 따라 UAE 정부는 선제적 예방차원에서 범죄구성요건을 과거의 행위가 아니라 현재의 위험성 (사상, 네트워크 유지 등)으로 삼는 개정된 국가보안법과 재활센터 평가 결과 등을 바탕으로 94재판에 연루되어 출소했거나 출소가 즈음한 인물 87명을 다시 국가 안보 혐의로 기소하면서 지속적으로 관리하게 됩니다.

 

UAE 정부의 강경하고 선제적인 안보법 체계는 군에서 경력을 쌓은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흐얀 대통령과 그의 친동생이자 국가안보보좌역 셰이크 타흐눈 빈 자이드 알나흐얀이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국가 정체성 확립과 사회 전반에 걸친 이슬람의 영향력 약화 (2011년~)

아랍의 봄을 기화로 시작된 알이슬라흐 해산 작업을 준비하던 UAE 정부로서는 무함마드 무르시가 당선되었던 2012년 이집트 대선 결과 역시 정책 전환의 계기 중 하나가 되었을 것입니다. 민주적으로 치뤄진 선거에서 서구의 바램에도 불구하고 무슬림 형제단의 지지를 받는 그가 대통령이 되었으니까요. 결국 쿠데타로 다시 군부독재 시즌이 돌아오긴 했지만요.

 

이런 상황 속에서 에미라티 국민들에 대한 무슬림형제단, 혹은 알이슬라흐의 영향력을 낮추고 격리시킨 그들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UAE 정부는 다양한 방식으로 국가 정체성 확립 및 애국심 고취에도 앞장서는 한편,

 

2019년을 관용의 해 (Year of Tolerance)로 지정하면서 본격적인 종교 다변화와 함께 보다 많은 외국인 거주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UAE 사회를 지배해온 이슬람적인 색채를 약화시키는 잇단 법 개정을 통해 종교세력들이 힘을 얻을 자리를 줄여나가고 있습니다.

 

종교세력들의 반발이 클 수 밖에 없는 이슬람 세계에선 상상하기 힘든 카지노 리조트 건립을 통한 사행성 게임의 합법화와 무슬림들에게 가장 중요한 금요일 오후 예배를 강제적으로 지정하는 변태적인 방식으로 주4.5일제를 도입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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