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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CC&GU/UAE

[사회] UAE는 왜 내셔널 데이 휴일을 이드 알잇티하드 (이드 알에티하드)로 바꾸었을까?

둘라 2025. 11. 28.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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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AE에서 이슬람 전통 명절인 이드 알아드하와 이드 알피뜨르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공휴일이자 연휴는 바로 매년 12월 2~3일에 찾아오는 내셔널 데이 (National Day)입니다. (올해 2025년에는 대체휴일제를 적용해 주말부터 시작되는 연휴를 만들기 위해 처음으로 12월 2~3일이 아닌 12월 1~2일을 휴일로 지정함.) 
 

내셔널 데이 (National Day)

내셔널 데이는 영국이 19세기 호르무즈 해협 일대에서 동인도 회사의 무역 항로에서 해적질로 자신들을 빡치게 만든 라스 알카이마 일대의 군사력을 궤멸시켜 버린 후 (빼먹을 게 없는 땅이었으니 ) 그 일대의 소규모 토후국들에게 자치권을 보장하는 대신 딴짓하지 못하게 군사력만 주둔시켰던 영국이 150여 년 만에 철수한다고 통보하자 이대로는 살아남지 못할 것 같다는 위기감에 의기투합한 아부다비 통치자 셰이크 자이드와 두바이 통치자 셰이크 라쉬드를 중심으로 주변의 총 9개 토후국과 3년에 걸친 논의 끝에 이에 합의한 6개 토후국 (아부다비, 두바이, 샤르자, 아즈만, 움 알꽈인, 푸자이라)이 1971년 12월 2일 두바이에서 연합국 구성을 선포해 오늘날의 UAE을 세상에 알린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UAE 초대 외무장관인 아흐메드 칼리파 알수와이디가 알디아파 팰리스에 모인 기자들 앞에서 UAE 연합 창설에 대한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영국이 자신들의 군사력을 거세해 놓은 상황에서 주둔하고 있는 영국군이 철수한다면, 아라비아 반도 본토를 장악하고 있는 사우디와 호르무즈 해협 너머 이란이란 양대 강국 사이에 낀 이들로써는 뭉쳐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낄 수 밖에 없었겠죠. 실제로 이란은 영국군이 철수하자 UAE 건국 선포 이틀 전에 그동안 라스 알카이마가 점유하고 있던 호르무즈 해협의 두 섬 (대 툰브, 소 툰브)을 실제로 강탈해가기도 했었으니까요. 그리고 아부다비 앞바다에 있는 섬 아부 무사도...

 

1971년 12월 2일 두바이에서 연합국 수립을 선포한 그 장소는 그 기록들을 모은 에티하드 뮤지엄으로 개관을 했고, 연합국 수립 선포 당시에 합류하지 않았던 라스 알카이마는 다음해인 1972년 2월 연합국에 가입하면서 UAE는 현재 잘 알려진 대로 7개 수장국의 연합국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UAE 건국을 선포한 두바이 알디아파 팰리스에 세운 국기 게양대 앞에 선 여섯 토후국 통치자들.


그런데 말입니다...
UAE 정부는 제53주년 내셔널 데이를 앞둔 2024년 11월 12일, 내셔널 데이 휴일 및 축하행사의 공식 명칭을 내셔널 데이에서 이드 알에티하드 (Eid Al Etihad)로 변경한다고 전격 발표했습니다. 

 

 

UAE 정부는 왜 내셔널 데이란 이름을 이드 알에티하드 (영어 표기로는 이드 알에티하드 Eid Al Etihad지만, 아랍어 표기로는 عيد الاتحاد 이드 알잇티하드라고 발음한다. 이는 UAE인들을 부를 때 영어로는 에미라티라고 발음하지만, 아랍어로는 이마라티라고 발음하는 것과 마찬가지다)로 바꾸었을까요?

 

이드 알잇티하드 (عيد الاتحاد) 

첫째, 아랍어를 모국어로 삼고 있는 나라의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UAE 정부는 내셔널 데이 (National Day)가 어떤 나라에서든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영어식 표현이라 UAE 고유의 정신을 담아 전통적인 아랍어 이름으로 돌아가고자 했다고 설명합니다.
 
UAE는 외국인 거주자가 전체 인구의 90%에 육박할 정도로 전세계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이기에 아랍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나라가 맞나 싶을 정도로 최소 영어만 사용할 줄 알아도 일생생활하는데 전혀 어려움을 못 느끼는 나라입니다만 (덕분에 아랍어를 잘 써먹었던 사우디 생활에 비해 UAE에선 아랍어를 쓸 일이 별로 없어 많이 까먹;;;), 어린아이들을 중심으로 자국민들의 아랍어 사용 빈도가 현격히 줄어드는 추세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UAE 정부는 아랍어 사용을 권장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한편으로 자신들이 전 세계에 내세울만한 랜드마크의 공식 이름을 일부러 아랍어로 명명해 왔습니다. 
 
시카고 비치 타워 호텔로 불렸던 (개장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텔이자 현존하는 자칭 7성급 호텔의 이름을 부르즈 알아랍 (برج العرب / 아랍의 타워)으로 짓는다던가, 두바이 아이 (Dubai Eye)로 알려졌던 세계에서 가장 높은 대관람차의 이름을 아인 두바이 (عين دبي / 두바이의 눈)으로 공식 명칭으로 확정했듯이 말이죠.
 
아랍어로 "축제"란 의미를 지닌 단어 이드 (عيد)와 "연합"이란 의미를 지닌 단어 알잇티하드 (الاتحاد)를 결합해서 변경한 내셔널 데이의 새 이름 이드 알잇티하드 (عيد الاتحاد)는 단순한 "국가의 날 (National Days)"이 아니라, "연합이 결성된 것을 함께 기념하는 축제"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아랍국가들의 공휴일 이름 중 "이드"란 표현이 무슬림들의 양대 축제인 이드 알아드하 (성지순례 후 축제), 이드 알피뜨르 (라마단 후 축제)에만 쓰인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UAE 정부가 이 날을 종교적인 축제인 양대 이드에 걸맞은 중요한 날로 여기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이틀이지만 양대 이드를 제외한 공휴일 중 유일한 연휴이기도 하구요.
 

둘째, UAE를 탄생시킨 핵심 가치 "연합"을 강조하기 위해

UAE를 모르는 많은 이들에게 아부다비, 두바이, 샤르자 등은 단순히 UAE라는 나라에 있는 도시 정도로 여겨지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영어로는 셰이크돔 (Sheikhdom), 한자로는 토후국 (吐侯國)이라 불리는 씨족의 세습 군주 (에미레이트/이마라트라는 이름 때문에 아미르가 통치하는 나라라고 알려져 있지만, 현재 이들 토후국의 공식적인 통치자 칭호는 아미르가 아닌 하킴이라는 것이 함정!)가 통치하는 지방의 작은 군주국들입니다. 그래서 UAE는 외부적으로 사용하는 UAE 국기 외에도 토후국마다 고유의 국기를 갖고 있고, 특히 산동네가 많은 동부 지역의 경우에는 지역 씨족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월경지와 위요지가 뒤섞인 난잡한 국경으로도 유명하죠. 

UAE가 유독 "연합"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 토후국들 중에 가장 큰 영토를 갖고 있고, 자신들을 레알 갑부로 만든 오일머니 대다수를 보유해 압도적인 체급을 가진 아부다비가 영국군의 철수로 인해 생길 역내 권력의 공백을 이용해 올망졸망한 이웃 토후국들을 자신들의 밑으로 흡수통합하는 방법 대신 두바이 통치자 셰이크 라쉬드와의 협상을 발판 삼아 외교, 군사 등 대외적으로는 하나의 국가로 뭉치지만 개별적으로는 각 토후국들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연합국 구상이라는 비전을 3년이 넘는 긴 협상을 통해 (비록 바레인과 카타르는 협상 도중에 하차해 독자적인 길을 택하긴 했지만...) 결국 UAE 건국 선포라는 현실로 실현해 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정부 구조로 인해 - 이슬람적인 관점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금요일 오후 예배시간을 강제로 고정한 변태적인 꼼수를 쓴- 주 4.5일제를 시행하는 UAE 정부 및 여섯 토후국 정부와 달리 이에 발끈한 샤르자 정부만 자신들의 권한으로 혼자 주 4일제를 시행한다던가, 애당초 "카지노" "복권"이란 단어 자체를 공식적으로 쓸 수 없었던 사행성 게임이 금지였던 나라에서 라스 알카이마 정부가 뜬금없이 자신들의 권한으로 카지노 복합 리조트 건설을 합법화해 발표한 다음, UAE 정부가 이를 규제하는 기관을 신설하면서 "카지노"와 "복권"이라 공식적으로 부를 수 있는 합법화의 길을 타게 된 것이 가능했던 것이죠.)

 

그렇다 보니 이드 알잇티하드의 이름 변경과 함께 연합국 구성의 양대 주역이었던 자이드와 라쉬드라는 로고도 등장하게 됩니다. 물론 아부다비가 아무리 9개 토후국들 중에서는 압도적인 체급을 갖고 있다고 해도 옆나라 사우디와 호르무즈 해협 너머 이란에 비빌 바는 못 되는 현실적인 한계도 있었겠지만요. (만약, 이웃 토후국들이 혹시나 아부다비에 빡쳐서 옆나라 사우디, 혹은 오만에 붙었다면....?) 

오른쪽이 전 아부다비 통치자 셰이크 자이드, 왼쪽이 전 두바이 통치자셰이크 라쉬드

 

이는 UAE가 아랍의 봄 광풍이 몰아쳤던 2010년대 초반 이후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고 내부적인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채택한 일련의 정책 속에 "우리는 일곱 토후국이 뭉친 하나의 연합국"을 강조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조치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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