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에 보이는 산을 넘어가면 예멘)


지금으로부터 딱 20년 전인 2000년 9월 1일 둘라는 마닐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대학생이었던 2년 전 어학연수로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고 다녀왔던 요르단에 이어 이번에는 직장인으로 두번째 출국지인 사우디로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중간 기착지였던 마닐라에선 기체고장으로 인해 리야드행 비행기가 결항되어 계획에도 없었던 마닐라에서 1박을 한 후, 다음날 체크인 카운터에서 진상짓을 벌인 한 일행 덕분에 15명이나 되었던 일행이 전부 퍼스트/비즈니스 클래스로 업글되는 행운을 얻었다고 생각했었지만........ 사우디야 비행기 퍼스트 클래스는 정말 넓은 것 빼고는 하나도 없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심지어 개인용 모니터도 없;;;;;;; (요즘 사우디야는 그때에 비하면 퍼스트와 비즈니스에 나름 힘을 싣고 있습니다만...)



리야드에 도착해서 또 국내선으로 환승하여 남서부에 있는 지잔까지 간 후 거기에서 차를 타고 한 시간쯤 더 달려 도착한 곳이 걸프지역과 첫 인연을 맺게 된 아르다라는 지역이었습니다. 사우디하면 흔히 연상되는 사막....따위는 가까운 곳에 없고, 숙소에서 바로 눈 앞엔 산맥이 가로막고 있고 (넘어가면 예멘), 주위엔 우기로 인해 녹색이 많이 보였던 도로변의 현장 캠프. 1년 10개월 살았던 그 곳이 지금까지 20년 동안 이어져 온 걸프지역과 인연을 맺게 된 시작점이었습니다. ([지잔] 추억여행 (2) 내가 살았던 곳을 들르다. 참조)


(인터내셔널 나이로) 24살이었던 당시 그 곳에 갔었던 이유는 딱 하나였습니다. 얘기로만 듣던 사우디를 가보고 싶어서.


지금이야 UAE에도 한국어 과정이 개설되는 등 교류할 기회가 생겼지만, 대학생 시절이던 지난 세기말까지는 아랍어를 전공한다고 해도 걸프지역에 대해서 접할 기회는 거의 없었습니다. 학생으로서는 교육 프로그램이 그나마 괜찮은 요르단이나 시리아, 혹은 이집트나 튀니지에 관심이 있지, 상대적으로 사우디, UAE, 카타르 등은 그다지 어필할 때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리고 저도 요르단으로 어학연수를 간 김에 인접한 시리아, 레바논, 이집트, 이스라엘을 여행했었습니다만...


4학년 당시 과 취업대표를 얼결에 맡게 되었지만, 학과장실에 취업의뢰라고 들어온 곳은 아직도 기억나는 기아자동차와 대한통운, 그리고 장안평 중고차 업체였을 정도로 전공을 살려서 취업하기 힘들었던 당시, 가능하면 전공을 살려서 취업하고 싶어 알아보던 차에 졸업 후 곧 세팅되는 사우디 건설현장에 아랍어 통역이 필요하다는 조그만 단종업체를 소개받게 되어 가보기 힘들다는 사우디에 갈 수 있다는 이유하나만으로 덥썩 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월 200 (그 중 180은 한국에서 지급, 사우디 현지에선 할 일이 없을 거라며 용돈으로 쓰라고 20만원에 해당하는 600리얄 정도만 받음)에 1년에 한 달 휴가라는 그야말로 어처구니 없는 조건이었지만, 당시에는 전공을 살려 사우디를 갈 수 있다는 점에 혹해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 급여가 지급되는 바람에 납부된 세금 덕분에 회사가 십수년 전에 폐업해 만들 수도 없는 경력 증명서를 갈음할 서류가 남게 되어 현 직장에 올 때 큰 도움을 받았었죠.) 


그렇게 졸업 후 사우디 촌구석에서 시작된 걸프 지역과의 인연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쳤었습니다. 당초 아랍어 통역 겸 현장 사무소 본부장 지원 업무 정도로 알고 시작했던 일이었는데, 불과 몇 달만에 행정을 맡으셨던 본부장님이 비자 문제로 사우디를 떠나 복귀하지 못하고 대체 인력도 구하는데 실패하면서 사람이 없고 유일한 행정직원이라는 이유로 실무 경험이 전혀 없는 제가 퇴사할 때까지 현장 사무소 행정업무를 총괄하게 되었으니 말이죠. 그야말로 멘붕.


사수도 없이 사수가 되면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해내야 했던 상황도 황당한데, 경험치나 연륜 따위가 없는 20대 중반의 사회생활 초보가 외부에서 영입한 현장소장과 회사 부사장쪽 사람들인 현장 사람들로 양분된 50대 아저씨들의 파벌 싸움의 중간에 끼어 난처한 상황에 처할수 밖에 없는 황당한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숙소에서 같이 생활했던 현장 사람들과 있다보면 싸데기를 마시면서 현장 소장에 대한 불평불만을 듣게 되고, 보고하러 현장 소장실에 가게 되면 현장 사람들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현장 소장의 하소연을 들어줘야만 하고... 그런 대립을 중재하라는 역할도 주어졌을 60대의 본부장님은 일찌감치 사라져서 자취를 감춰버렸으니, 사회경험이 전무한 20대 중반의 새내기가 모든걸 감당하기엔 벅찬 1년 10개월이었습니다. 


남들 아플땐 밤새 병원도 따라가 통역도 해주고, 별 황당한 이유로 다른 사람 성기 주변의 털까지도 면도질 해봤지만 정작 내가 아플 땐 데려다 줄 사람이 없어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까지 직접 운전해서 갔을 때의 서러움만큼이나 의지할 곳 하나없이 혼자 레벨업하고 견뎌내야만 했습니다. 배째라고 나자빠져봤자 그 뒷감당도 결국은 제가 해야 될 상황이었으니까요. 


(산동네인 만큼 하늘도 그만큼 가깝게 느껴졌던 카미스 무샤이트)


나이만 먹었다고 어른은 아니니 나잇값을 하는 사람이 되자라는 마음가짐을 갖게 했던 첫 번째 사우디 생활을 마무리한 후, 한국에 돌아와 몇몇 업체를 다니며 중동관련 업무를 맡다가 6년 만에 다시 사우디로 돌아오게 됩니다. 첫번째 생활지가 주변에 산이 보이는 동네였다면, 두번째 생활을 시작한 곳은 이번에도 사막과는 거리가 먼 산동네 카미스 무샤이뜨. 카미스 무샤이뜨의 높이는 한라산보다 약간 높은 해발 1,998미터로. 카미스 무샤이뜨가 있는 산동네 아시르 지역은 해발 3천미터 대의 수다 지역에 이르기까지 사우디의 대표적인 고산지대입니다.


첫번째 사우디 생활을 했던 아르다 지역은 근무 당시에 인터넷이 안되어 400kb짜리 엑셀 파일을 메일에 첨부해서 본사에 보내기 위해 왕복 두 시간 거리인 지잔 시내에 있는 인터넷 카페를 다녀와야 했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기에 개설해 두었던 다음 카페도 후배에게 맡겼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카미스 무샤이뜨의 인터넷 상황은 스트리밍을 보기는 불가능했지만 (70분짜리 드라마 한 편 보는데 잦은 버퍼링으로 인해 두 시간...ㅎㄷㄷ) 블로그 활동을 하는덴 큰 무리가 없었습니다. 단순한 뉴스가 아닌 본격적인 사우디 생활기를 포함한 정보를 공유하고 무려 1년짜리 사보 연재까지 맡기에 충분한 환경이었죠.


그리고 카미스 무샤이뜨에서 근무를 시작한지 1년 6개월 만인 2010년 4월, 회사 본사가 있는 젯다로 이사하면서 사우디 생활 3년 4개월만에, 사우디에 첫 발을 내딛은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대도시 생활을 하게 됩니다. 가장 보수적이고 아무것도 없던 깡촌에서 소도시를 거쳐 사우디 내에서 가장 개방적이었던 도시 젯다에서의 생활 (보수성을 탈피한 요즘의 사우디는 젯다보다 리야드가 많이 발전하고 있습니다만...)  


이즈음해서 블로그에 생긴 가장 큰 변화는 2009년 이천수의 알나스르 입단을 계기로 블로그의 주요 컨텐츠 중 하나가 된 사우디 축구 소식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사우디 리그 소식을 시작으로 한국 선수들이 뛰는 카타르 리그와 UAE 리그까지 10년 넘게 걸프지역 주요 리그 소식을 꾸준하게 전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매체로 축구가 전문분야가 아님에도 누군가에게는 걸프축구 전문 블로거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우디를 떠날 당시 둘라님이 사우디를 떠나면 누가 제 소식을 전해주겠냐는 선수의 걱정이 무색하게 오히려 무대를 카타르와 UAE 리그 소식까지 커버하는 매체가 되었네요.


걸프지역 소식을 전하게 되다 보니 남들이 잘 모를거라 생각한듯 정확한 팩트 전달보다는 클릭질 유도에 혈안된 저질 정보와 기자의 사심을 대놓고 드러내는 소설을 쓰는 국내 매체들의 수준을 새삼 깨닫게 되는 계기도, 살면서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았던 축구 선수들을 실제로 만나는 경험도 하게 되었죠.


젯다에서 2년을 더 근무한 뒤 5년 넘는 사우디 생활에서 처음으로 방문한 2박 3일 동안의 리야드 여행을 끝으로 사우디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와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뒤 대학교 졸업 당시 관심이 있었으나 여건상 선뜻 할 수 없었던 대학원 공부를 하게 됩니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보니 매체를 뒤지고 경험담을 정리하는 것 외에 좀더 시야를 넓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대학원 동기들과의 나이차가 교수님들과의 나이차보다 더 나는 늦깎이 석사 과정.


시야를 넓혔으되 박사까지 이어서 공부할 체질은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된 석사 과정에선 사우디 근무 중 관심을 가지고 직접 경험했던 사우디제이션에 대한 논문을 쓰게 되었고, 방학기간을 이용해 처음 방문한 UAE, 카타르, 바레인 여행을 통해 사우디는 나름 오랫동안 경험해봤으니 만약 다시 나갈 기회가 생긴다면 UAE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다행히 기회가 되어 직장 생활과 논문을 통해 15년 동안 인연을 이어왔던 사우디를 떠나 UAE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하루 밖에 쉬지 못했던데다 워낙 이동거리가 넘사벽으로 멀어 주말 여행이 힘들었던 사우디 건설회사의 생활과 달리 이동거리가 상대적으로 훠~~~~~~얼씬 짧고 주말이 보장되는 공공부문에서 근무하다보니, 사우디 시절의 블로그와 달리 UAE에서는 기존에 다뤄오던 주제에 더해 여행과 FLEX한 컨텐츠를 추가하여 블로그의 세계관을 더욱 넓혀나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국내 어디에서 볼 수 없는 독점 컨텐츠를 다뤄도 주목받을 일이 없던 블로그가 FLEX한 컨텐츠를 다루게 되면서 종종 다음 메인에 걸리는 일이 생기게 된 것과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의 SNS를 추가적으로 활용하게 된 것음 덤.


UAE 내에서 어딘가를 많이 다니고 경험하는 것은 이런 것조차 할 수 없었던 사우디 생활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합니다. 적당히 해소했다고 생각했었지만, 실제로는 주말에도 제대로 쉬거나 분위기 전환을 못해 몇 년동안 누적되어 온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 참지 못하고 대폭발하면서 두번째 사우디 생활을 접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었기에 그런 경험을 또 하고 싶진 않았으니까요. 


대학교 새내기 때 국회 도서관을 뒤져도 제대로 된 한국어 자료가 많지 않음에 아쉬워하고 나름대로 자료를 모아 자료집을 만들어 보았던 경험, 그렇게 만든 자료를 공유해봤더니 피드백은 없고 자기가 작업한 자료인양 올리던 홈페이지를 봤던 기억, 그리고 나름의 이색적인 외노자 생활과 누군가는 사심이 들어간 선입견이나 MSG가 가미되지 않은 이 지역에 대한 정보와 경험을 제대로 공유하고 싶은 바램은 블로그 (둘라뱅크 아카이브와 둘라의 아랍 이야기)-페이스북 페이지-트위터-인스타그램 등이 엮인 현재의 둘라뱅크 세계관을 구축해 나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걸프지역과 인연을 맺게 된지 10주년이 되는 날은 사우디 젯다에서, 20주년이 되는 날은 UAE 라스 알카이마에서 맞이하게 되었네요. 사우디에선 아르다, 카미스 무샤이트, 젯다 순으로 상경했던 것처럼 UAE에서도 라스 알카이마에서 두바이나 아부다비로 상경하는 날이 오게 될까요? 10년 뒤에는 어디에서 맞이하고 있을까....

Posted by 아랍지역 전문 블로거 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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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우디근로자

    축하드립니다. 2010년부터 사우디 건설 회사근무를 시작하면서 아랍 지역에서 7년정도 있었을때 둘라뱅크님의 블로그 보면서 궁금한점 많이 해결했었습니다. 제가 갈때만해도 참고서적도 별로 없었고 인터넷정보는 더욱 없었던 상황에서 참 많은 도움이 됬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코로나로 인해 이동이 어려워져서 언제 다시 중동지역에 갈지는 모르겠네요. 건강하시고 하는 일 잘되시기를 바래봅니다

    2020.09.03 19:56 [ ADDR : EDIT/ DEL : REPLY ]


지난 1월 3일 미군에 의해 자행된 이란 혁명수비대 산하 최정예부대 예루살렘군의 사령관이자 이란의 서열 2위인 거셈 술레이마니 암살 사건으로 인해 새해 벽두부터 세계정세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유족인 그의 딸에게 "이란의 모든 국민이 복수할 것"이라고 얘기한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는 6일 참석한 추모식에서 이례적으로 눈물을 보이더니 국가안보위원회를 찾아가 "비례적, 직접적인 공격으로 보복하라"는 구체적인 수위를 지시하기에 나섰고, 여러 장소를 순회하며 그의 고향까지 길게 이어진 운구행렬은 경제위기로 비롯된 반정부 여론을 순식간에 반미 여론으로 치환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격한 감정은 그의 고향에서 결국 30명 이상 사망하고 200명 가까이 부상당해 일시 중단될 정도였으니 말이죠. 이슬람 초기 시아파의 출현으로 이어진 카르발라의 참극을 방치했다는 원죄의식에 의해 후세인 순교일에 맞춰 아슈라 참회의식을 매년 치르는 이란인들 중 일부는 그의 죽음에서 후세인의 순교를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사태의 추이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르기에 여기에서는 호르무즈 해협을 놓고 이란과 대립 중인 대표적인 두 나라, 사우디와 UAE 영어 신문의 1월 4일자 1면 헤드라인을 통해 이번 사태를 보는 미묘한 시선의 차이를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우선, 이란과 가장 적대적인 국가라고 볼 수 있는 사우디 영어신문의 1면.


사우디 영어신문은 아주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통해 그의 악행이 끝났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끌던 예루살렘군은 이란 밖에서 중동 각지의 사아파 민병대와 무장조직, 친이란 정치세력을 지원하며 이란 영토 밖에서 이란의 역내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각종 대리전의 배후세력이란 점에 포커스를 맞췄습니다. 오늘날 이란에 대한 사우디의  노골적인 적대감은 이란이 1979년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을 통해 신정일치제 국가가 된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세속주의 정치세력인 사우드 씨족과 극단주의 세력인 와하비스트들이 결탁하여 건국된 사우디의 역사는 종교세력의 지나친 정치세력화를 원치않는 사우드 씨족과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려는 종교세력간 대립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사우디 건국과정에서 큰 활약을 펼쳤던 이크완을 해체해 왕실 친위대로 흡수시키는 등 보수적인 종교색을 지우기에 바빴던 사우디로서는 민심을 등에 업고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이란의 이슬람 혁명이 탐탁치 않았을 상황에서 불과 몇달 뒤 이크완의 잔존세력이 이란의 성공에 영감을 받아 메흐디 재림을 앞세워 성지 그랜드 모스크를 2주간 점거한 사건은 그야말로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이란의 혁명이 여차하면 자신들에게 닥칠 수도 있다는 경고였으니까요. 이 사건의 여파로 국내적으로는 사회를 문화의 암흑기라 불리는 강경보수화시켜 버렸고, 대외적으로는 이란의 역내 영향력 강화 및 무슬림 형제단 활동 등에 대해 테러조직이라는 색채를 입히며 노골적인 거부반응을 보여왔습니다. 그런 상황이니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원치는 않지만, 이란의 대외작전을 이끄는 그의 죽음이 내심 반가울 수 밖에요. 미국은 직접 이해 당사자가 될 수 있는 사우디에게도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고 하죠. 

2019/09/24 - [GCC/GU/사우디] - [사회] 사우디 현대사의 볼드모트, 그리고 종교경찰의 흥망으로 본 사우디 사회의 격변사!!

더이상 그의 악행이 없을 것임을 강조한 사우디 언론과 달리, 사태 악화를 원치 않는다는 의미를 담은 "지혜의 목소리"라는 헤드라인에서 불 수 있듯 UAE 언론은 보다 건조한 반응을 보입니다. 물론, UAE 입장에선 부르즈 칼리파 개장 10주년이 더 큰 뉴스이기도 했습니다만...



호르무즈 해협 분쟁의 한 축이기도 한 그의 죽음에 사우디와 달리 건조한 보도가 나온 것은 왜일까요?


이란에 대해서는 적어도 적대적인 한 목소리를 내는 사우디와 달리 UAE는 사우디에 동참하는 한편으로는, 내부적으로는 이란에 대한 다른 목소리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UAE는 사우디와 달리 경제적으로 이란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까요. 아이러니하게도 UAE가 이란의 최대 교역국이라는 점.  


2017년 이란의 5대 수출입국

 

수출

수입

국가명

전체 수출규모 중

국가명

전체 수입규모 중

 1위

중국

27.5%

UAE

29.8%

 2위

인도

15.1%

중국

12.7%

 3위

대한민국

11.4%

터키

4.4% 

 4위

터키

11.1%

대한민국

4% 

 5위

이탈리아

5.7%

독일

4%

출처: 

1.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294379/iran-main-export-partners/ (수출)

2.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294389/iran-main-import-partners/ (수입)



아부 무사 영토 분쟁 등 외교적으로 사우디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아부다비와 달리 두바이는 오래전부터 페르시아 상인들이 거주하는 등 경제적으로는 이란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오늘날 두바이의 옛모습을 볼 수 있는 관광지로 남아있는 알파히디 역사지구 내 바스타키야가 석유 발견 이전 페르시아 상인들의 거주지란 점이  이를 상징하죠 ([두바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했다가 유적지로 남은 바스타키야의 한적한 주말 풍경 참조)



두바이와 이란을 잇는 교역의 중심은 바로 두바이 크릭에서 볼 수 있는 전통배 도우 (dhow)입니다. 스무시간 가까이 호르무즈 해협을 넘어 이란 남부의 항구도시에 물자를 공급해주던 도우 무역규모는 겉보기보다 생각 외로 커서 2017년 12월 25억달러에 이르렀던 월별 교역규모가 미국의 경제제재가 재개되면서 2018년 1월 줄어든 교역량이 15억달러였다니 말이죠.[각주:1] 두바이는 도우 무역과 은행을 통해 대외교역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던 이란에 물건과 외환을 공급해왔습니다. UAE의 교역규모가 상대적으로 크게 느껴지는건 정상적인 수입이 어려운 이란과 같은 국가에 물건을 대주는 중계무역의 허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 등으로 인한 변수가 생기면 교역규모가 요동치는 단점도 있습니다만...) 


두바이 크릭 한켠을 가득메운 도우와 크릭을 마주보고 자리한 이란 국영 멜리 은행 건물이 두바이와 이란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풍경입니다.



이란 국영 멜리 은행은 UAE가 건국되기도 전인 1969년 두바이에 지점을 개설하고 50년 넘게 운영해오고 있거든요.


역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이란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온 두바이로서는 아부다비를 따라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이란과의 대립과 분쟁이 길어지는 것이 내심 달갑지는 않습니다. 두바이 통치자 셰이크 무함마드의 이란 관련 인터뷰를 보면 관계 정상화의 바램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이란이 UAE의 태도에 아쉬움을 보이는 것도 이런 관계가 반영된 것이죠. 



위의 도표에서 이상한 점을 못 느끼셨나요? 네. 바로 우리나라 이야기입니다.


이란하면 과거 대장금의 선풍적인 인기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겠지만, 우리나라 역시 이란과 비정치적인 면에서 나름 깊은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우리나라는 많은 분들에게 알려져있지 않지만 중국에 비해 교역규모에서는 큰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5대 수출입국가 모두에 들어가는 유이한 나라 중 하나니까요. 1990년대 중반 이후 한때 이란의 국민차였던 프라이드 등 기아자동차 계열의 차량 생산 라이센스를 받아 이란에서 직접 생산하여 판매해왔고, 미국의 양해를 얻어 이란과의 교역은 계속되어 왔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란으로 직접 수출하지 않고 두바이를 경유해서 우회수출하는 제품도 많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실제 대이란 수출규모는 우리나라의 공식 수출실적으로 잡힌 것보다 더 많이 공금해오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정치적으론 딱히 각별하지 않더라도 그 외의 분야에선 몇 십년 동안 교류가 계속되어 왔던 입장이기에 최근 우리나라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이란이 섭섭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도 일견 이해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란에 양해를 구한 뒤 미국엔 동참하지 않겠지만 호르무즈 해협에 자위대를 보내겠다고 발표했던 일본이 거셈 술레이마니 암살 이후 사태 급변에 당황하고 있다고 하죠?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호르무즈 해협 분쟁 개입은 이란과의 교류가 크지 않았던 일본보다도 더 신중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1. https://www.thenational.ae/uae/government/dubai-s-historic-dhow-trade-to-iran-feels-pressure-from-us-sanctions-1.885424#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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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랍지역 전문 블로거 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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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를 둘러싼 여러 논란과 화제 속에 예정대로 지난 11일 리야드 킹 파흐드 스타디움에서 열렸던 BTS 월드투어 러브 유어셀프 스피크 유어셀프 콘서트가 3만여석의 객석을 가득 메운 아미들을 열광시키며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사우디 최초의 단독 아티스트 스타디움 콘서트이자 완판된 콘서트로 화제를 모았으며, 네이버 브이 라이브 플러스를 통해 유료 스트리밍으로 전세계에 생중계된 공연이기도 했습니다.



사우디 지역축제인 사우디 시즌 원년 최대의 축제인 리야드 시즌의 개막을 알리는 주인공이 되었던 BTS는 왕실급 경호를 받으며 리야드에 입성했었고, 리야드 시내의 주요 건물이 보랏빛이 물들었을 정돌로 리야드 시 차원의 대대적인 환영인사도 있었지만 ([문화] 리야드 시즌의 개막을 알릴 BTS를 환영하기 위해 보랏빛으로 물든 리야드 거리! 참조),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사우디에서의 단콘이 성사된 것에 감격할 수 밖에 없었던 사우디 아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꿈이 성사되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래 배너 속 문구는 그들의 벅차오르는 감격을 표현한 가장 적절한 문구가 아닐까 싶네요.



작년까지만 해도 팝 콘서트란 상상하기 힘들었던 사우디였으니, 이들은 UAE에서만 콘서트를 해도 가겠다는 염원을 표출해 왔으니까요. 스케일에 있어서만큼은 슈주 때처럼은 아니라지만, 옥외 광고를 싣는다던가...



공연장인 킹 파흐드 인터내셔널까지 쉽게 올 수 있도록 버스를 대절해서 아미들에게 제공하기도 했고, 



심지어 생일을 앞두고 공연하는 지민의 생일을 축하한다며 SOHO SHOT 카페와 콜라보하여 지민 생일 축하 특제 종이컵홀더를 만들고 생일 이벤트까지 열 정도로 애정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한국 아이돌 팬클럽이라고 나이표기는 한국 나이와 만 나이까지 함께 병기해주는 센스!



아랍 아미들의 열광적인 환호에 호응하듯 BTS 역시 현지 사정을 감안한 여러 가지 연출을 보여 많은 호응을 받았습니다. 현지 팬들과 언론들은 특히 그들에게 있어서는 생소할 수 밖에 없는 아랍어를 곳곳에서 적절하게 활용한 연출에 높은 점수를 주었습니다. 가령 RM의 트리비아 승 러브의 마무리를 장식한 "나는 리야드를 사랑합니다"라는 연출이라던가... (리야드 시즌 이벤트 아니랄까봐...^^)




멤버들이 아랍어로 부른 지민의 서프라이즈 생일축하송을 포함해 곳곳에서 구사한 짧은 아랍어들은 누군가에게는 아랍인인 자신의 발음보다 낫다는 평가를 하는 팬들이 나올 정도로 노력한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요즘 아랍애들은 아랍어보다 영어가 더 편;;;;;;;;;)



게다가 한창 질풍노도의 개방무드 속에 있지만 보수적일 수 밖에 없는 사우디의 정서를 감안하여 안무를 수정하고 스탭들에게도 사전교육을 실시했다는 점에서 전례없는 규모의 콘서트로 많은 우려 속에 진행되었던 콘서트는 BTS와 아미들의 멋진 교감 속에 리야드를 뒤흔들며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공연을 보도한 국내 매체 기사들을 둘러보면 서로를 이해하는 이들의 교감과 달리, 급변하는 사우디 사회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여전히 볼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사우디를 19년째 직접 체험하고 관찰하면서도 지난 2년간은 천지개벽할 수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매체들의 기사는 달라진 현지 사정을 모르거나, BTS 콘서트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인과관계를 뒤집는 기사들로 지면을 채우고 있었으니까요. 평소 팬들에겐 BTS 보도는 메이저 연예기획사에 밀린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이슬람 율법을 깼다"는 둥, "마흐람" 제도를 지켜야 하지만 외국인 여성 관객에겐 완화했다는 둥의 표현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우선 이슬람 율법을 깼다는 표현은 넓은 지역에 퍼져있어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이들의 특성을 무시한 표현입니다. 이 표현대로라면 모든 이슬람 국가에서 적용되어야 겠지만, 현실은 나라마다 다르니까요. 그나마 사우디가 심한 편이긴 했습니다만...


이슬람 율법을 언급하면서 나온 "마흐람"을 놓고 보자면, 계속되는 사우디 내 여성 권익 강화 분위기 속에 지난 8월 1일 살만 사우디 국왕이 직접 폐지하는 칙령을 내리면서 구시대의 유물이 된 사우디 사회의 악습입니다. ([사회] 살만 국왕, 사우디 여성들의 여행제한 족쇄였던 마흐람 제도를 폐지하는 칙령 발표! 참조) 사우디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비잔 2030 발표 이후, 이란 이슬람 혁명과 메카 그랜드 모스크 사건으로 인해 보수 강경화되었던 과거에서 벗어나 온건한 이슬람 국가로 자리매김하겠다며 그간 금지해왔던 여성운전 허용, 경기장 입장 허용, 여권 및 신분증 발급 허용, 남녀 섹션 구별 철폐 등을 단계적으로 시행해왔었습니다. 그 와중에 위상을 잃어가던 마흐람 제도가 지난 8월의 여권법 및 가족관계법 개정 발표, 그리고 관광비자 발급과 함께 지난 10월 5일 숙박업법 개정을 통해 사우디 여성도 신분증만 있으면 남성 보호자의 허가없이 자유롭게 호텔 예약을 가능할 수 있게 되면서 마흐람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습니다. ([호텔] 사우디, 관광비자 개방과 함께 투숙 규정을 개정하여 외국인 남녀 여행객의 한 방 투숙을 허용키로! 참조)


사우디 상황이 이렇게 급변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한국 매체들은 BTS 콘서트와 마흐람을 엮어 기사를 쓰더군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팩트 전달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데 애써 사족을 달아 무지함을 보여주고 있달까요.


사우디 여성들이 남성 보호자 없이 이동이 불가했다면, 위에서 보여드린 것과 같은 셔틀버스 이용, 그리고 여성들로 가득찬 대기열의 행진을 보기 힘들었겠죠.



아울러 리야드 시즌 개막에 맞춰 펼쳐진 BTS의 리야드 공연 소식을 1면 메인 기사로 소개한 12일자 사우디 가젯트지에 실린 큼지막한 사진은 보수적이기로 유명했던 사우디 내 여성복장 규정 완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공연하는 BTS나 무대 실황 사진이 아닌 히잡도, 아바야도 입지 않은 여성 아미의 모습에 포커스가 맞춰진 사진이 메인으로 실린 이유는 불과 2주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외국인 여성들에게도 히잡은 완화되었지만 공공장소에서의 아바야 착용만큼은 의무였던 사우디 내 복장 규정이 지난 9월 28일 관광비자 발급에 맞춰 발표된 "공공장소 예절 규정"에 따라 대폭 완화되었으니까요. ([비자] 사우디, 전자 관광비자를 공식 발급하며 걸어잠궜던 문호를 세계에 개방해! / [정보] 사우디, 관광비자 발급에 발맞춰 "공공장소 예절 규정" 시행 발표! 참조)



국제사회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고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는 사우디 사회의 관습은 이슬람 규정, 혹은 이슬람 관습이라는 순수한 종교적인 측면보다는 종주국을 자처하지만, 실제로는 세속국가인 사우디 왕가의 약점에서 나온 사회적 관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사우디 사회 내 논의를 거쳐 천천히 진행되었던 변화가 최근 몇 년간 종교세력을 억누르는데 성공하면서 그야말로 급변하는 것이구요. ([사회] 사우디 현대사의 볼드모트, 그리고 종교경찰의 흥망으로 본 사우디 사회의 격변사!! 참조)


우여곡절 끝에 예정대로 성사되어 성황리에 마무리된 이번 BTS 리야드 콘서트 이모저모를 지켜본 바 과거의 관습에서 벗어나 최근 2년간 급변하고 있는 사우디의 모습을 전세계에 과시하기 위해 첫 스타디움 단콘에 이어 스트리밍 생중계까지 허용한 사우디 정부의 의도가 담겨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 변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전세계적인 아이돌로 위상이 높아진 BTS가 적격이니까요. BTS 리야드 콘서트로 인해 사우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도 분명 있을테구요.


평소에 이러한 사우디 사화의 급변을 지켜보고 있지 않았으니 "BTS 콘서트를 위해 ~~을 철폐했다, 허용했다"는 표현을 쓴 국내 매체의 보도들은 그 인과관계를 거꾸로 설명하고 있는 셈입니다. 평소에는 주목하지 않다가 무슨 일이 생겼을 때만 반짝 관심을 갖고 기사를 쓰다보니 빈번하게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기사들의 문제랄까요? 아랍 관련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종종 비판해오는 포인트이기도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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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사우디_아라비아 | 리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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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랍지역 전문 블로거 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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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8월 영국인 남편-사우디인 부인의 부부를 이상한 관계로 오해하여 슈퍼에서 주차장까지 쫓아가 결국 사람들 앞에서 구타해버린 이 영상은 당시 종교를 등에 업고 엄청난 권력을 과시했던 사우디 종교경찰의 오만방자함을 여실히 드러내는 상징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자국민에 대한 각종 악행이 일상화되면서 엔간한 일에는 눈하나 꿈쩍않던 이들조차 영국인을 구타한 것이 세간에 알려지자 결국 피해자에게 공식 사과하고 가해자를 좌천시키며 수습에 나설 정도였습니다만... ([사회] 사우디 권선징악청, 영국인-사우디인 부부 폭행사건으로 파문을 일으킨 현장요원 징계 및 부부에게 공식 사과! 참조)



사우디를 경험해 보신 분들이라면 잊지 못할 단어 중 하나일 "무따와"가 바로 사우디 종교경찰를 일컫는 말입니다. 무따와는 특별한 제복 없이 일상복을 입고 사우디 사회 곳곳을 누비면서 사람들의 비종교적인 행위를 적발해왔었습니다. 예배시간에 가게 문을 닫지 않고 영업하는 매장을 적발해서 영업정지를 내리고, 외국인 여성들의 복장에 맘에 안들면 지적질하거나, 공공장소에서 연애행각을 벌이는 커플을 적발해 낸다던가 등등... 외국인들 뿐만 아니라 사우디인들 조차 상대하고 싶지 않은 이들이었습니다. 


이란 이슬람 혁명과 그랜드 모스크 점거 사건에 자극받은 사우디 내 강경 보수 성직자들이 목소리를 드높이게 되면서 지난 38년간 일선에서 사우디 사회의 앞뒤로 꽉막힌 강경 보수화를 이끌었던 선봉장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권선징악청 산하의 종교경찰은 종교세력의 입지 강화와 함께 자신들에게 부여된 무소불위의 권력에 취해 시간이 갈수록 인권을 고려하지 않은 각종 위법행위로 위에서 언급한 무고한 일반인 구타와 더불어 부적절한 구금, 무리한 추격전 등을 펼쳐 일반인 사상자가 발생시키는 등... 온갖 사건사고를 일으키는 집단이 되었습니다. 이는 종교가 정치세력의 약점을 잡고 모든 것의 위에 오른 사회에서 사우디 내에 이들을 견제할 세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청소년 세대가 늘어나면서 상대적으로 온건화의 길을 걷던 일반 사우디 시민들의 반발을 자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을 경계하기 위해 압둘라 전 사우디 국왕은 온건한 성향의 성직자를 청장으로 임명하고 새로운 임무를 부여하면서 그들의 태도를 개혁해 보려고 했지만, 이미 현장을 누비던 일선의 고참 경찰들이 이에 반발하면서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이를 계속 추진하기에 그는 너무나도 늙었고, 그의 건강이 허락하질 않았으니까요.


종교경찰을 약화시키려는 정부의 1차 시도가 무위로 끝나면서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들의 권력은 살만 국왕이 취임한 후 이들의 횡포를 더이상 간과할 수 없었던 정부가 내린 기습 칙령에 의해 결국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새로운 정부의 방침에 어깃장을 놓을 수 있는 강경 보수 종교 세력들을 차례로 무력화시킨 후 온건 이슬람 국가를 자처하기 시적한 사우디 정부의 태도는 지난주 건국 89주년 기념일 신문 한 면을 통째로 할애하여 종교경찰의 만행을 자성하는 이례적인 모습으로 이어진 바 있습니다. ([사회] 사우디 현대사의 볼드모트, 그리고 종교경찰의 흥망으로 본 사우디 사회의 격변사!! 참조) 이에 덧붙여 사우디 정부는 며칠 뒤 대대적인 문호개방과 함께 이들이 적임자일 것만 같은 규정을 발표했음에도, 이 규정의 담당자로 적임자라 할 수 있는 종교 경찰이 아닌 일반 경찰에게 부여하고 말았죠. ([정보] 사우디, 관광비자 발급에 발맞춰 "공공장소 예절 규정" 시행 발표! 참조)


최근 나라를 몇 주째 뒤흔들며 국민들의 시위를 자초한 우리나라 정치검찰을 보면서 여러가지 의미로 사우디 종교경찰이 오버랩되는 건 왜일까요???


Posted by 아랍지역 전문 블로거 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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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몰 내에는 두바이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큰 대형서점 키노쿠니야가 있습니다. 예전엔 두바이 분수쇼를 볼 수 있는 명당 중 하나였던 서점 내 카페까지 있을 정도로 초대형 서점이었지만, 지금은 원래 있던 장소에서 메트로 링크 앞으로 축소이전했기에 옛모습을 기억하는 저에겐 여전히 어색하긴 하지만요.


키노쿠니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1927년 동경 신주쿠에서 문을 열어 세계 여러 나라에도 체인점을 두고 있는 일본의 대형 서점 체인인 키노쿠니야쇼텐 (紀伊國屋書店)의 중동지역의 유일한 체인점입니다. 일본서점이다 보니 일본서적 원서코너가 따로 있고, 일본문화 관련 문방구나 심지어는 프라모델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두바이에 있어 더욱 그렇겠지만, 일본서적 원서코너 중 중동서 (中東書)라는 이름으로 중동서적 코너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비록 일부분이기는 해도 기본적인 아랍어책부터 시작해서 이슬람으로 한정해도 종교부터 도시설계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의 책들, 번역서부터 만화, 여행 가이드북 등 전문서적에서 오타쿠 취향의 책까지 다양한 주제와 방식의 책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다른 코너에서 예전에 본 책 중에는 두바이와 아부다비 곳곳에 있는 초고층 건물만 사진으로 담은 책도 있었죠.



키노쿠니야의 중동서 코너에 꽂혀있는 다양한 일본책들에 감탄하면서 대학 신입생이었던 24년 전 봄의 어느날 국회도서관에서 받았던 충격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됩니다. 중동지역에 대한 정보를 찾겠다며 학교 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을 거쳐 갔었던 국회도서관. 다른 곳에서 한국어로 검색했을 때는 한국어 책들만 조회가 되어 몰랐었는데, 국회도서관에서는 한국어로 키워드를 입력했는데도 한국어 책들과 같이 검색되다 보니 수적으로나 종류로나 비교가 않될 정도로 더욱 많게만 느껴졌던 일본어 원서는 일본어를 배운지 한두달 밖에 않된 초심자라 원서를 읽어볼 엄두를 내지는 못했음에도 꽤나 충격적이었거든요.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과 지역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애증을 맺고 있는 영어서적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건 당연했겠지만, 전혀 연결고리가 없어 보였던 일본어 원서가 그렇게 많았을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었으니까요.


그때 받았던 충격은 다른 경험이 겹쳐지며 중동지역과 관련된 잡다구리한 정보를 다루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블로거가 된 시작점 중 하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모 출판기획 에이전시에 블로그 내용을 소재로 출판기획이 가능한지 문의했다가 몇 주 뒤에서야 "관심을 갖고 문의해주셔서 감사하지만 한국 출판시장에서는 중동지역에 대한 이미지가 여전히 부정적이어서 어려울 것 같다"는 뻔한 회신을 받았던 나쁜 기억도 떠오르네요. 제 블로그를 꾸준히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지나치게 종교적이거나, 부정적인 내용을 다루지 않는 블로그인데도 말이죠. 국내에서는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특별한 화제성이나 출판하는 측의 의도가 없는 한 관련서적 출판이 쉽지 않은 것 또한 현실입니다. 모 출판기획 에이전시에서 말했던 것처럼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분야라면 더더욱 말이죠. 이는 여전히 한국어로 된 아랍관련 서적의 대부분이 수요가 보장된 각종 교재 등 아랍어 관련 책일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겠죠.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경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면서도 언론에서도 좋은 의미로든 안좋은한 의미로든 특별하게 화제가 되지 않는 이상 좀처럼 다루지 않을 정도로 (그나마 클릭질 유도를 위해 팩트확인조차 않한 자극적인 가짜뉴스가 나오지 않으면 다행이죠;;;;), 처음 충격을 받았던 24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현실 속에 온라인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왜곡된 중동관련 정보들이 유통되는 모습을 쉽게 보게 됩니다. SNS가 대중화되기 이전엔 그나마 없었는데, 누구나 정보를 가공해낼 수 있는 지금은 그럴싸한 레퍼런스까지 곁들이며 마치 사실인 것처럼 전파하지만, 실제로는 어처구니 없는 음모론을 설파하는 특정 종교세력과 예멘 난민 문제로 더욱 확산된 이슬람포비아를 확신시키려는 사람들의 구미에 맞게 악의적으로 가공된 가짜정보들이 범람하는 모습을 말이죠.


키노쿠니야 중동서 코너는 이런 현실 속에서 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것도, 개인적으로 이득을 않겨 주는 것도 아니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꾸준하게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지난한 길을 걷게 만든 이유이자 원동력이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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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랍지역 전문 블로거 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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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레드문

    두바이몰에 왔다가 서점위치 검색해보니
    님의 블로그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말씀에 저역시 많이 동감하고
    수긍합니다. 아직 우리 대한민국이 갈 길은
    멀지만 세계로 뻗어나가는 우리 후배들이
    지금의 우리보다는 더 성장한 한국을
    이끌어나기를 소망해봅니다

    2020.02.01 17:11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