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C/GU/UAE2019.08.25 23:24


샤르자, 아즈만, 움 알꽈인, 라스 알카이마, 푸자이라가 있는 UAE의 북부 지역과 오만 국경지역 일대를 자세히 보면 흥미롭다 못해 골때리는 지역들을 스치듯이 지나가게 됩니다.

1) UAE에서 육로로 비자런을 해야 하는데 오만 본토와는 동떨어진 아라비아 반도 북쪽 끝에 위치한 오만 땅 캇삽쪽 국경을 간다던가... ([비자] 길어지는 비자수속 과정에서 한번은 거쳐야 되는 UAE-오만 비자런 참조)

2) 심지어 캇삽에서 오만만을 따라 해안도로로만 내려오게 될 경우 넓지도 않은 지역이 세 곳으로 나뉘어진 딥바 알바야 (오만), 딥바 알히즌 (샤르자), 딥바 알푸자이라 (푸자이라)를 거쳐 푸자이라, 코르팟칸 (샤르자) ([사르자] 오만 만과 푸자이라에 둘러싸인 항구 도시 코르팟칸의 관광지, 코르팟칸 비치 참조), 푸자이라, 칼바 (샤르자), 푸자이라를 거쳐야만 오만으로 연결이 된다던가...

3) 코르팟칸에서 푸자이라로 내려가는 길에 길을 잘못 빠지면 잘 알려지지는 않은 UAE 내 또 하나의 오만 영토인 마드하로 연결되고, 그 길을 따라 쭈욱 가다보면 샤르자 땅인 나흐와를 지나 또다시 마드하를 거쳐 라스 알카이마와 푸자이라의 경계 지역으로 들어서게 된다던가...

4) 라스 알카이마와 오만의 국경 지역일 줄 알았던 곳 한 켠에 뜬금없이 두바이 땅 핫타가 있다던가...

UAE 북부와 오만 북부 지역은 경계가 엄청 모호해 굳이 오만으로 넘어가지 않는 한 여러 나라를 지나치면서도 국경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아 관심있게 보지 않으면 모를 경우가 많습니다. 뭐... 동네 분위기 자체가 다르긴 합니다만... 





그런데 말입니다...

왜 이 동네 국경은 경게도 모호하게 그야말로 난잡하게 뒤섞여 있을까요? 


이 모든 복잡한 국경의 시작은 아라비아 반도 내 식민제국이자 UAE 일대를 통치했던 오만해양제국 (1692년~1856년)의 흥망성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 모든 것의 시작, 오만해양제국의 흥망

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시발점이 된 사우드 씨족의 첫 국가 디리야 토후국이 아라비아 반도 복판에 건국을 선포했던 1744년 ([역사] 사우디는 어떻게 건국되었을까? 사우드 씨족의 오랜 투쟁기, 사우디아라비아왕국 건국사 참조)으로부터 50여년 전인 1692년 아라비아 반도 남동쪽 끝에서는 야루바 왕조의 네번째 이맘 (통치자) 사이프 빈 술탄이 관개수로를 도입해 내륙지역에 물을 공급하면서 발달시킨 농업으로 일군 경제를 바탕으로 힘을 키워 그동안 오만 일대를 점령해왔던 포르투갈군을 내쫓은 후 알바티나 지역의 마을 루스타끄를 도읍지로 하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이 나라가 북쪽으로는 호르무즈 해협을 너머 오늘날 이란과 파키스탄의 일부 지역, 아라비아 반도에서는 동쪽 해얀 일대와 예멘 일부, 그리고 남쪽으로는 아프리카 대륙으로로 확장하여 아프리카 대륙의 동해안을 타고 오늘날의 모잠비크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던 식민 제국 오만해양제국으로 발달하게 됩니다. 아라비아 반도 중심부에서 디리야 토후국이 선포되었던 1744년, 페르시아군의 2차 침공 중 최후의 격전지였던 소하르 주 포위 공격을 9개월 동안 버틴 끝에 결국 물러나게 만든 소하르 주의 주지사 아흐메드 빈 사이드 알부사이드가 그 기세를 이어 오만해양제국의 시작이었던 야루바 왕조를 몰락시키고 현재의 오만 통치자 술탄 까부스로 이어지는 알사이드 왕조를 건국하게 됩니다. 



오만해양제국은 1856년 통치자 사이드 빈 술탄이 사망한 후 가족간의 분열로 그의 세째 아들 쑤와이니 빈 사이드가 이끄는 무스카트 오만 술탄국 (1856~1970)과 여섯째 아들 마지드 빈 사이드가 술탄임을 참칭하며 분가한 잔지바르 술탄국 (1856~1964)으로 양분됩니다. 무스카트 오만 술탄국은 1970년 현 통치자인 술탄 까부스 빈 사이드가 영국과 이란의 지원을 받아 일으킨 쿠데타로 아버지 술탄 사이드를 폐위시킨 후 패망시키고 오늘날의 오만 술탄국을 세웠으며, 잔지바르 술탄국은 그보다 앞선 1964년 패망하여 오늘날의 탄자니아가 되었습니다.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관련 논문 오만해양제국의 융성과 추락 - 한국중동학회) 참조   


아라비아 반도 내 오만해양제국의 영역이 ㄱ자 형태를 띄게 되고, 사우드 왕가쪽과 큰 갈등이 없었던 것은 바로 사우디, 오만, UAE, 예멘 사이에 있는 세계 최대의 사막 루브으 알칼리, 즉 엠티 쿼터 때문입니다. ([룹알할리] 언차티드3의 배경이 된 세계 최대의 사막 루브으 알 칼리와 잃어버린 도시 (1) 참조)



사우드 왕조가 몇 차례 흥망성쇠를 거치며 아라비아 반도 중심부의 통일 전쟁을 치루느라 신경쓸 여력도 없었겠지만, 반도의 4분의 1을 차지한 어마무시한 사막의 존재는 사우디와 오만이 국경을 맞닿고 있으면서도 육로로는 연결될 수 없었던, 가까우면서도 먼 이웃인 것도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도로가 막혀 사우디와 오만을 육로로 오가려면 UAE로 우회하여 총 1,700여킬로미터의 거리를 17시간에 걸쳐 가는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나마 최근들어 개통된 사우디-오만 고속도로를 뚫기 위해 1억3천만 평방미터 이상의 모래를 퍼내야먄 했다니 얼마나 엄청난 일이었는지를 새삼 실감할 수 있겠죠.




2. 오만해양제국의 위기와 알까시미 씨족의 세력화 (1747~1820)- 오만 월경지의 탄생

오만해양제국의 전반기를 이끌었던 야루바 왕조가 기세좋게 세력을 확장해 나갈 때 아라비아 반도 내 북부 변두리 지역의 로컬 유목 씨족들은 오만에 있는 이맘에게 충성을 바쳐왔었습니다. 하지만, 오만해양제국이 1738~1744년 두 차례에 걸친 페르시아의 침공을 받고 소하르 주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을 점령당하자, 움추리고 있던 지방 씨족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의 라스 알카이마 시내 일대에 자리를 잡아 토후국을 세우고 해적질과 습격으로 세력을 키워나간 알까시미 해양연합의 씨족장 라쉬드 빈 마타르 알까시미가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알까시미 해양연합은 페르시아로부터 해방된 후 오만에 새로 들어선 알사이드 왕조와 전쟁을 벌여 승리를 거두고 주둔해 있던 오만 요새와 마을들을 몰아내고 지역의 새로운 세력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알까시미 씨족은 오만을 몰아내고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면서도 자신들의 영향력 하에 있는 일부 지역은 도저히 공략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무산담주의 주도인 카삽과 위요지 마드하가 대표적인 곳으로 오늘날까지 오만의 월경지로 남게 되었습니다. 왜 공략하지 못했냐구요?


포르투갈인들이 세우고 오만인들이 물려받은 카삽 요새는 견고하기도 했을 뿐더러 험준한 바위산에 둘러쌓여 있어 해전에 능했던 알까시미 씨족의 유목전사들이 공략하기엔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였기 때문입니다. 



UAE 속 또 하나의 오만 월경지로 남게 된 마드하 역시 살기에는 좋지 않는 척박한 산악환경이었기에 오만 땅으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만의 월경지 마드하의 일부 지역인 나흐와는 아이러니하게도 샤르자의 월경지로 남아 "UAE 영토 내 오만의 위요지 (마드하) 내에 있는 샤르자의 월경지 (나흐와)"라는 월경지와 위요지가 뒤섞인 오묘한 동네가 되었습니다. 



캇삽, 마드하와 함께 험준한 산악지형의 도움을 받아 알까시미 씨족의 침공을 막아내고 오만의 일부로 남을 수 있었던 푸자이라는 당초 오만에 충성을 맹세했지만, 19세기들어 태세를 전환하여 알까시미 씨족을 따르기로 하면서 오만의 입지가 다소 좁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캇삽, 딥바, 마드하는 현 오만의 월경지로 남을 수 있게 되었죠.



3. 영국의 침공 및 라스 알카이마 함락으로 야기된 알까시미 왕조의 분열 (1820~1869)

서 언급한 캇삽과 마드하를 제외한 북부 지역을 점령하며 영역을 확장해갔던 라스 알카이마의 알까시미 왕조는 오만의 영향력에 있던 일부 북부 지역을 완전히 병합하려던 야심을 접어야만 했습니다. 너무 대놓고 해적질을 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을 오가는 영국 동인도 회사의 교역을 깽판쳐놨던 것이 화근이 되어 이들을 상대로 영국군이 보복침공을 감행하기로 결심함에 따라 알까시미 씨족은 오만 월경지 병합보다 더 막강한 대영제국의 해군을 상대하기에 급급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1809년 영국군의 라스 알카이마 1차 침공)


영국군은 1809년과 1819년 두 차례에 걸쳐 라스 알카이마를 침공한 끝에 알까시미 씨족의 군사력을 완전히 궤멸시킨 후 딴 생각을 품지 못하도록 알까시미 씨족 외에도 일대 토후국 지도자들까지 패키지로 모아 1820년 일반해상조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라스 알카이마] 다야 포트, 1819년 영국군 보복침공 당시 최후까지 저항했던 토후국들의 마지막 보루 참조)


1820년 평화협정 이후 해적질을 위한 군사력을 영국군에 의해 거세당한 알까시미 씨족들은 본거지를 라스 알카이마에서 샤르자로 옮긴 후 내부 파벌간의 분열에 들어가 결국 1868년 라스 알카이마가 샤르자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후 자국 영토 안에 있던 오만의 월경지들을 빼앗아 올 기회를 영원히 놓치게 되었습니다.  



4. 라스 알카이마와 샤르자로 나뉘면서 더욱 복잡해진 월경지 (1869~현재): 라스 알카이마? 샤르자? 아니면 자력갱생?

1803년 셰이크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가 취임한 이후 사우디와의 분쟁 등이 겹치면서 통치권이 조금씩 나뉘기 시작하던 샤르자와 라스 알카이마는 1868년 셰이크 살림 빈 술탄 알까시미가 취임하면서 갈라지게 됩니다. 그의 즉위 1년 후인 1869년 조카 셰이크 후마이드 빈 압둘라 알까시미가 샤르자를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움 알꽈인의 지원을 받아 자지라 알하므라와 라스 알카이마에서 전투를 벌렸고, 이에 영국군이 해상조약 위반을 문제삼아 샤르자군을 철군시키면서 라스 알카이마 일대를 장악한 셰이크 후마이드는 독립 토후국 라스 알카이마를 선언하게 됩니다. 샤르자 통치자 셰이크 살림은 자신이 직접 라스 알카이마를 다시 복속시키려고 했지만 실패로 끝나면서 포기하게 되죠.


라스 알카이마는 독립을 선언했던 셰이크 후마이드가 사망한 후 권력의 공백이 생기면서 또다시 샤르자의 통치를 받게 되었지만, 1921년 세이크 술탄 빈 살림 알까시미가 1919년에 이은 두 차례의 청원 끝에 영국으로부터 라스 알카이마를 독립 토후국으로, 자신을 그 통치자로 인정받게 되면서 샤르자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알까시미 왕조 (1727~현재)

 1. 셰이크 라흐마 빈 마타르 알까시미 (1727~1760)

 2. 셰이크 라쉬드 빈 마타르 알까시미 (1760~1777)

 3. 셰이크 사끄르 빈 라쉬드 알까시미 (1777~1803)

라스 알카이마


샤르자

 1. 셰이크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 (1803~1808)- 1기

 1. 셰이크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 (1803~1840)- 1기

 2. 셰이크 핫산 빈 알리 (1808~1814)

 2. 셰이크 사끄르 빈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 (1840)

 3. 셰이크 핫산 빈 라흐마 (1814~1820)

 3. 셰이크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 (1840~1866)- 2기

 4. 셰이크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 (1820~1866)- 2기

 

 5. 셰이크 이브라힘 빈 술탄 알까시미 (1866~1867)

 4. 셰이크 칼리드 빈 술탄 알까시미 (1866~1868)

 6. 셰이크 칼리드 빈 술탄 알까시미 (1867~1868)

 5. 셰이크 살림 빈 술탄 알까시미 (1868~1883)

 7. 셰이크 살림 빈 술탄 알까시미 (1868~1869)

 6. 셰이크 사끄르 빈 칼리드 알까시미 (1883~1914)

 8. 셰이크 후마이드 빈 압둘라 알까시미 (1869~1900)

 7. 셰이크 칼리드 빈 아흐마드 알까시미 (1914~1924)

 

 8. 셰이크 술탄 (2세) 빈 사끄르 알까시미 (1924~1951)

 9. 셰이크 술탄 빈 살림 알까시미 (1921~1948)

 9. 셰이크 무함마드 빈 사끄르 알까시미 (1951)

 10. 셰이크 사끄르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 (1948~2010)

 10. 셰이크 사끄르 빈 술탄 알까시미 (1951~1965)- 1기

 11. 셰이크 사우드 빈 사끄르 알까시미 (2010~현재)

 11. 셰이크 칼리드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 (1965~1972)

 

 12. 셰이크 사끄르 빈 술탄 알까시미 (1972)- 2기

 

 13. 셰이크 술탄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 (1972~1987)- 1기

 

 14. 셰이크 압둘아지즈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 (1987)

 

 15. 셰이크 술탄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 (1987~현재)- 2기

 ** 이름이 볼드체로 적혀있는 통치자는 임기 전체, 혹은 일부 기간 동안 두 토후국을 동시에 통치.


북부 지역을 호령하던 알까시미 왕조가 샤르자와 라스 알카이마로 양분되면서 곳곳에 흩어져 있던 군소 씨족과 마을들은 어느 토후국을 선택해 자신들을 의탁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라스 알카이마는 샤르자와 푸자이라, 그리고 아즈만에 의해 허리가 잘라진 채 남북으로 갈라지게 되었고...



샤르자는 오만만에 있는 코르팟칸과 칼바를 자신의 월경지로 확정짓게 되었습니다.



당초 오만에서 샤르자에 붙기로 배를 한 번 갈아탔던 알샤르끼 씨족의 푸자이라는 또다시 태세를 전환하여 셰이크 하마드 빈 압둘라 알샤르끼가 1879년 샤르자를 상대로 폭동을 일으키면서 기나긴 독립의 길에 나서게 됩니다. 셰이크 하마드는 오랜 투쟁 끝에 1901년 영국을 제외한 모든 당사자들로부터 독립을 인정받게 되며, 토후국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했던 영국은 결국 1852년이 되어서야 푸자이라를 독립된 토후국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5. 알까시미 씨족 분열로 이합집산하는 어수선한 사이 농경지대와 본거지를 확보한 아즈만

UAE의 북부지역이 씨족과 마을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사이 UAE 토후국 중 가장 작은 토후국인 아즈만은 샤르자, 라스 알카이마와 푸자이라에 둘러쌓인 농경지대인 마나마, 그리고 아즈만을 통치하는 알누아이미 씨족의 본거지인 마스푸트를 월경지로 확정하게 됩니다. 특히 마나마의 경우 1920년대 후반 세계 대공황과 일본이 본격 수출에 들어간 양식 진주의 확산으로 인해 진주 산업이 타격을 입게 되자, 곡창지대로서의 잠재성을 인지한 통치자 셰이크 라쉬드 빈 후마이드 알누아이미 3세가 적극 투자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6. 오만과 아즈만간의 분쟁 사이에서 얼떨결에 월경지를 얻게 된 두바이

그리고 두바이는 하쉬르 빈 막툼이 통치하던 1870~80년대 이웃 지역인 마스푸트에 정착하고 있던 알누아이미 씨족으로부터의 위협을 지켜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오만의 술탄 투르키 빈 사이드로부터 하자라인이라 불리던 작은 산악 마을을 양도받게 됩니다. 그 작은 마을이 아즈만, 라스 알카이마, 오만에 둘러싸인 두바이의 유일한 월경지 핫타입니다.   




7. 결정적인 이유는 그 누구도 쉽게 오가기 힘들었던 산악지역이기 때문!

UAE 북부 지역의 국경이 그야말로 난잡한 이유는 거주가능한 일부 지역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기는 해도 UAE 내 대부분의 지역과 달리 하자르 산맥에서 비롯된 산악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유목생활이 중심이 이들에게 있어서 산악지역은 오가는 것은 물론, 그 지역에 살던 원주민이 저항할 경우 쉽게 영역을 확장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산악 지역 및 산악 지역에 인접한 농경 지역이라는 지리적 특성은 중심지인 도심과 달리 다양한 자연환경을 어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두바이와 아즈만은 자신들의 월경지인 핫타와 마나마/마스푸트에 대한 대대적인 걔발계획을 최근 몇 년 사이에 발표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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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 아랍_에미리트_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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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랍지역 전문 블로거 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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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중반 이후 관광산업 육성에 올인하기 시작하면서 2018년이 되어서야 건국 이래 처음으로 연간 10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하는데 성공하면서 그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다른 호텔 브랜드들이 시장 진입을 준비하고 있는 라스 알카이마 호텔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브랜드는 바로 힐튼입니다. 최고급 호텔 월도프 아스토리아 라스 알카이마부터 3성급 힐튼 가든 인까지 라스 알카이마에만 6개의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가운데, 힐튼의 일곱번째 호텔이자 더블트리 바이 힐튼의 세번째 호텔인 더블트리 바이 힐튼 라스 알카이마 코니쉬 호텔 레지던스가 개장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마르잔 알아일랜드에도 새로운 브랜드인 햄튼 바이 힐튼 리조트가 한창 건설 중에 있으니까요.


10여년 전 미나 알아랍에 호텔을 짓겠다고 공식 발표한 후 어영부영 파기되는 듯 했다가 라스 알카이마 시장의 확대와 더불어 부활한 인터컨티넨탈 미나 알아랍 리조트를 비롯하여 아난타라 미나 알아랍 리조트를 비롯해 두바이의 대표적인 디벨로퍼인 에마아르가 어드레스 알마르잔 아일랜드, 로브 마나르 몰을 지으면서 라스 알카이마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세게에서 가장 큰 호텔체인인 메리어트쪽은 2016년 가을 반얀트리가 운영하던 두 곳의 리조트 운영권을 받아 리츠칼튼 브랜드로 라스 알카이마 시장에 뛰어든 뒤로는 조용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호텔] 반얀 트리 라스 알카이마, 2017년 6월부터 리츠 칼튼 라스 알카이마로! 참조) 그렇게 해서 시차를 두고 재개장한 두 곳의 호텔


리츠칼튼 라스 알카이마 알와디 리조트 (메리어트 카테고리 7)

리츠칼튼 라스 알카이마 알하므라 비치 (메리어트 카테고리 8)


은 메리어트 호텔 내 최상위권의 등급만큼이나 비성수기인 한여름에도 1박 숙박비가 2,000디르함을 넘나들 정도로 라스 알카이마 호텔 중에서 숙박비 비싼 1, 2위 호텔이 되었습니다. 이 중 라스 알카이마 알하므라 비치는 집에서 10분이면 걸어갈 수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왜 그리 숙박비가 비싼지 늘 궁금해오던 터에 얼마전 그간 모아두었던 85,000포인트를 털어 하룻밤 묵어보기로 했습니다. 가장 싼 방이라고 해도 1박에 세금 포함해 2,500디르함을 넘나드는 무지막지한 숙박비를 내는 것보단 포인트를 쓰는게 그나마 부담이 덜하니 말이죠. 하지만 다른 호텔들과 달리 라운지도 없고, 아침식사도 할인가를 적용받긴 해도 유료이기 때문에 메리트가 크지는 않습니다. 좀더 여유가 있다면 같은 포인트에 풀보드가 제공되는 알마하 데저트 리조트를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


리츠칼튼 라스 알카이마 알하므라 비치의 입구는 힐튼 알하므라 비치&골프 리조트와 알하므라 골프 클럽 사이에 있는 주차장 안쪽에 있는 분수대 뒤에 있는 건물입니다.



이 건물은 체크인 카운터 및 컨시어지 데스크가 있는 건물로 투숙객 체크인아웃과 방문객 신분증을 카피해두는 곳이며, 이 건물 입구 앞 라운드 어바웃까지가 차로 들어갈 수 있는 마지막 장소이기도 합니다. 



체크인을 마치고 숙소로 가봅니다. 숙소로 가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체크인 카운터가 있는 건물에서 버기를 타고 들어가던가, 아니면 페리를 타고 들어가는 등 무언가를 타고 들어가는 방법과 날씨가 좋으면 버기가 다니는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는 방법. 물론 숙소에서 나올 때도 마찬가지겠지만요. 



섬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을 흠뻑 받을 수 있도록 알하므라 빌리지 일대의 풍경을 둘러보며 페리를 타고 들어가 봅니다.  



페리 탑승 시간은 선장 마음에 따라 짧을 수도, 아니면 길 수도 있습니다. 체크인 빌딩 앞 선착장에서 숙소가 있는 선착장까지 직진으로 가던가, 



아니면 왠지 이벤트용으로 사용될 것만 같은 그 사이에 있는 섬을 하나 끼고 우회해서 조금 더 길게 갈 수도 있죠.



숙소가 있는 선착장에 내리면 리조트 내 유일한 식당이자 풀바를 겸하는 쇼어 하우스가 있습니다.



텐트 지붕 건물이 바로 체크인했던 건물, 그리고 그 옆에는 힐튼 알하므라 비치&골프 리조트,



그리고 월도프 아스토리아 라스 알카이마가 보입니다. 다른 호텔 리조트와 바닷가 사이에 보이는 백사장 길이 버기카로 오가는 길.



식당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식당 내부 풍경.







야외석에 풀바가 있으니 그리 크지 않은 풀장도 당연히 있습니다.





숙소를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가 쇼어 하우를 통해 해변을 오가는 방법.





리츠칼튼 알하므라 비치에는 별도의 울타리가 없이 바로 해변과 연결되는 알바하르 텐트 빌라와...



울타리까지 쳐 있어 해변에 바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보다 조용한 알나심 텐트 빌라, 두 종류의 빌라가 있으며 빌라 수는 총 32개입니다. 네... 일단 숙소가 방이 아니라 풀빌라 한채가 숙소입니다. 



하지만, 쇼어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 해변을 가는 것보다는 쇼어 하우스 앞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숙소로 가는 것이 보다 편한 방법입니다.



프라이빗 비치라 조용하긴 해도 다소 황량해 보이는 해변가보다는 그래도 나름 녹색이 어우러진 길이 눈에도 시원할 뿐더러...









참고로 길따라 쭈욱 걷다보면 스파 및 헬스장이 있는 건물로 연결됩니다.








무엇보다 숙소를 찾기 쉽기 때문입니다. 29번 빌라가 제가 묵게 된 알나심 텐트 빌라입니다. 포인트로 알바하르 텐트 빌라를 예약했지만, 회원 등급 덕분에 알나심 텐트 빌라로 업그레이드가 되었죠.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야외 욕조와 선베드, 그리고 작지만 프라이빗 풀장이 눈에 띕니다.



야외 샤워실과 일반 객실에서는 볼 수없는 초대형 욕조가 덩그러니 자리잡고 있고...  



전용 선베드와 풀장이 나란히 있습니다.



투숙객만 사용하는만큼 물은 그야말로 깨끗 그 자체이고, 인피티니 풀 느낌도 받을 수 있습니다.



크지는 않지만, 수온조절 기능이 포함된 풀장이라 풀장 내 온도를 시원하거나 따뜻하게 조절하고 싶을 경우엔 테크니션을 부르면 된다고 하네요. 



풀장 옆에는 숙소인 텐트형 빌라가 있습니다.



텐트 빌라 앞에도 작은 테이블이 놓여져 있습니다.





빌라 앞마당에도 녹음이 우거진 곳에서 쉴 수 있는 선베드가 놓여져 있고... (선베드가 네 개뿐이다 보니 체크인 카운터에서는 방문객을 포함한 빌라 내 최다 수용인원을 네 명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안전상의 이유 등으로 방문객의 경우 밤 10시까지만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앞마당에서 본 텐틑 빌라와 전용 풀장 풍경.



선베드에 누워 누리끼리한 자연만 보다 녹색이 만연한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됩니다





앞마당을 통해 계속 앞으로 나가다보면...



어느덧 울타리가 보이고...



계속 나가다 보면 해변가와 연결됩니다. 바닷가로 가려면 조금 많이 걸어가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정숙한 곳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지평선을 따라 낮게 보이는 하얀색 지붕이 개별 숙소. 그리고 오른쪽 중앙에 보이는 고층 건물에 월도프 아스토리아 라스 알카이마 호텔.



이제 빌라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텐트 빌라라는 특이한 외관 만큼이나 내부 인테리어 역시 일반적인 UAE 호텔에서 보기힘든 독특한 디자인을 자랑합니다. 일단 응접실. 퉁유리창문은 얆은 커튼을 쳐 외부의 빛을 부분적으로 가리거나, 두꺼운 커튼 대신 블라인드를 내려 바깥의 빛을 완전히 차단시킬 수 있습니다.



가운데는 침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침대를 기준으로 건물 입구 반대편에는 한 면을 가득 메운 옷장 및 각종 수납공간이 있습니다.



침대를 등지고 자리잡은 책상.




그리고 그 뒤에는 화장실 겸 샤워실이 있습니다. 욕조를 이용하고 싶으면 밖으로...



세면대 어메니티









건물 밖에서도 보았듯 천막형 지붕의 내부 모습.



이런 내부구조를 보니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럼 일반적으로 지붕이나 높은 곳에 달려 있는 에어컨은 대체 어디에???? 에어컨은 특이하게 바닥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다시 거실 공간으로 가 보면 티비 밑에 냉장고가 들어가 있는 상자형 수납공간이 있고,



커피세트는 별도의 트롤리에 올려져 잇습니다.





원래 계획은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다 해지는 풍경이나 야경을 담고 싶었는데, 낮부터 지인과 함께 시원한 풀장 속에 몸을 담그고 낮술을 마시다보니 생각보다 많이 마시게 되어 야경 사진은 찍지 못하고 지인을 돌려보낸 후 그대로 뻗어버리고야 말았습니다.





이제 페리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



집에서 차타고 5분 밖에 안 걸리는 가깝지만 (너무나도 비싸서) 멀게만 느껴졌던 리츠칼튼 알하므라 비치에서의 첫 방문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돈내고 갈 엄두는 안나고 포인트나 모아서 또 가볼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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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 알카이마 관광청 공식 홈페이지를 보면 라스 알카이마를 대표하는 역사 유적지로 꼽는 것이 바로 라스 알카이마 북부 지역인 알람스 지역에 위치한 다야 포트 (Dhayah Fort)입니다. 같은 라스 알카이마 내에 있다지만, 집에서는 마땅히 볼 곳도 없는 그곳 한번 보자고 왕복 100km가 넘는 길을 다녀오긴 귀찮아서 그간 안 들렀다가 그래도 한 번 가봐야겠다며 뜬금없이 길을 나섰습니다.


라스 알카이마 시내를 가로질러 갈 수도 있지만,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로드 (E311)를 타고 가다 새로 열린 에미레이츠 로드 (E611)로 이어지는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오만 국경을 형해 달리다 보면 큰 교통체증 없이 다야 포트로 갈 수 있습니다. 길은 지루하기만 할 뿐 복잡하지는 않기에 드라이브하기에 좋고, 이 외곽순환도로를 타다 자발 자이스 쪽으로 빠질 수도 있습니다.




쭈욱 북쪽으로 올라가다 다야 마을 안으로 우회전해 들어가게 되는데 (계속 직진하면 무산담을 갈 수 있는 오만 국경으로...), 마을 안쪽으로 타고가다 보면 좌측에 깔라아 다야 게스트 하우스 건물이 나타나고 철조망으로 막힌 곳이 나타나는데, 그곳이 바로 오늘의 목적지입니다. 철조망을 쳐놓은 이유는 관광지 개발 및 연구용이라고 하네요. 철조망 너머 뭐가 있는지는 나중에 설명해드립니다.



한적한 다야 마을 안으로 들어가서 다니다 보면 무엇보다 주의해야 할 것은 마을 사람들보다 더 많이 활보하고 다니는 양, 혹은 염소들입니다. 마을 곳곳에서 뜬금없이 도로로 난입하기에 길 안막힌다고 맘놓고 운전하다 깜놀할 수 있습니다.



바로 작은 언덕배기 위해 보이는 것이 오늘의 목적지 다야 포트입니다. UAE 내 유일하게 남아있는 언덕 꼭대기 위에 자리잡은 요새이면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요새이기도 합니다. UAE에서 가장 오래된 모스크로 알려진 푸자이라의 알비드야 모스크 뒷편에도 요새 비스무레한게 있지만, 이보다는 낮은 곳에 자리잡고 있죠. ([푸자이라] UAE에서 가장 오래된 알비드야 모스크 참조) 



다야 포트는 입구에 안내판만 있고 별도의 직원이 없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무료로 아무 때나 올라갈 수 있습니다.



영어와 아랍어로 병기되어 있는 다야 포트 안내문.



18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다야 포트는 봄베이에서 호르무즈 해협 일대를 오가는 동인도 회사의 무역선들에 대한 라스 알카이마 일대 토후국들의 해적질과 노략질에 참다참다 열받아 이 일대의 해적세력을 초토화시키기로 작정한 영국군의 1819년 보복침공 당시 영국군에 저항했던 알까시미 씨족의 최후의 보루이자 격전지였습니다.


(1819년 12월 9일 라스 알카이마 함락. 출처는 이미지를 클릭!)

1819년 12월 9일 라스 알카이마를 함락시킨 영국군은 그 기세를 이어 세 척의 배를 북쪽으로 보내 람스 일대를 봉쇄한 후 12월 18일 대규모의 대추야자 농장을 가로 질러 내륙에 있는 다야 포트 함락에 나섭니다. 당시 다야 포트에는 총 798명 (남 398명, 여 400명)이 변변한 위생설비, 식수, 그리고 태양빛을 가릴 마땅한 그늘조차 없이 (그나마 겨울이라 다행이긴 했지만...) 요새 일대에 고립된 채 남아 있었으며, 영국군은 가파른 경사로 인해 지상군이 요새를 공략하지 못하자 박격포와 12파운드 캐논을 동원해 맹공을 퍼부었습니다. 그럼에도 별다른 성과가 없자 영국군은 라스 알카이마 함락에 사용했던 24파운드 캐논을 끌고 올라와 다야 포트 함락전에 투입하기에 이르렀으며, 진흙탕 맹그로브 사이로 힘겹게 끌고 온 24파운드 캐논에서 발사한 단 두 발의 포격으로 요새의 벽이 허물어지자 알까시미 씨족의 마지막 저항군이 12월 22일 아침 10시 30분에 영국군에 항복하면서 다야 포트 함락전은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당시 요새에 고립되어 있던 798명 중 순수 전투인력은 177명에 불과했으며, 나머지 621명은 이 일대에서 가축을 기르던 목동들과 대추야자 농장의 농부 등 비전투인력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800명의 인도 토민병과 화포로 무장한 주둔군을 배치한 영국군에 의해 마을과 요새, 그리고 바레인으로 피신시켰던 함선까지 모든 군사력이 풍지박살 난 이 일대의 토후국들은 결국 영국과 1820년 2월 5일 일반해상조약 (General Maritime Treaty of 1820)을 체결하게 되면서 이에 서명한 토후국들은 영국군의 보호하에 군사력 없이 자치권을 부여받는 휴전 국가 (Trucial States) 체제로 전환됩니다. 그 후 영국이 휴전 국가에 주둔시켰던 영국군 철수를 선언하면서 자체적인 군사력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들을 지켜주던 우산이 사라지는 것에 불안감을 느낀 토후국 지도자들 중 아부다비 통치자 셰이크 자이드 빈 술탄 알나흐얀과 두바이 통치자 셰이크 라쉬드 빈 사이드 알막툼이 1968년 2월 하나의 연합국가를 만들기로 합의하면서 오랜 논의 끝에 1971년 12월 2일 UAE의 건국을 선포하게 됩니다.


현재 남아있는 요새 건물은 함락전 이후 다시 지어졌다가 1990년대 들어 복구를 시작해 2001년 4월 마무리가 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공간의 제약과 용수가 부족해 상대적으로 작게 복구되었다고 하네요. (뭐... 당시의 라스 알카이마 사정을 감안해도...) 함락전 당시에는 가파른 길로 효과적인 공성전을 펼쳤다고 하지만, 현재는 요새까지 계단이 놓여져 있어서 올라가기는 어렵지 않습니다..............(만 예상 외로 피곤하게 만드네요;;;)











올라가다 보면 출입제한 구역으로 막혀 있는 공간을 볼 수 있습니다. 돌산 기슭에 대형 대추야자 농장이 있군요.




주변 경치를 둘러보며 올라가다 보면 드디어 정상에 도착하게 됩니다. 요새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진흙으로 만든 첫번째 건물이 나타납니다.



요새 입구에 있던 게스트 하우스도 대추야자 농장 사이에 자리잡고 있었네요.



워낙 크지 않은 건물의 내부는 단촐합니다.





옛날의 위용은 알 수 없지만, 그야말로 아담한 크기로 요새 정상에는 두 개의 건물만 있습니다.



하지만, 언덕 꼭대기에서 볼 수 있는 360도 뷰는 멋진 경관을 자랑합니다. 뒤에는 산이 가로 막혀있고, 



앞쪽으로는 대추야자 농장을 내려다볼 수 있으니까요.







지평선 끝에는 바다가 펼쳐집니다. 돌산 기슭에 대형 대추야자 농장이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산 사이를 가로지르는 건천 와디와 바다, 그리고 맹그로브가 어우러져서 농경이 가능한 일정량의 물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옥한 토양으로 인해 기원전 3천년 경부터 이 일대에 사람들이 살아왔으며, 오만과 함께 와디 수끄 시대를 영유했다고도 하네요. 



저쪽으로 계속 가면 오만 국경에 닿게 됩니다.





둘러봤으니 이제 올라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야 합니다. 뙤약볕이 쏟아지는 한낮에 올라갔다 내려왔더니 그 피로도가 하루 종일 이어지는군요. 날씨 좋은 날 해질 무렵에 올라오면 멋진 주위 풍경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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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마을의 2,500여명이 넘는 마을주민 전원이 하룻밤 사이에 세간살림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황폐화된 마을이 있대...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도시전설급의 이야기와 함께 속칭 유령 마을, 저주받은 마을이라 불리우는 마을이 UAE의 라스 알카이마 한 켠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1968년경까지 500여채 이상의 집이 있는 제법 큰 규모를 유지해왔던 마을의 주민 전원이 하룻밤 사이에 거짓말 같이 사라져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수십년째 방치되어왔던 지역 일대는 저주받았다는 속설과 함께 이 지역 이마라티인들은 라스 알카이마 정부에서 땅을 주겠다고 해도 저주받은 곳에 살기 싫다며 받기를 거절했을 정도로 버림받은 지역이었습니다. 라스 알카이마 정부는 도심 한복판에선 제법 떨어져 있어 번잡스럽지 않고 해안을 끼고 있어 지내기엔 좋은 지역임에도 지역 이마라티인들이 이주하기를 꺼려하던 이 지역 일대를 외국인 거주자 및 관광객 유치를 위한 지역으로 대대적인 개발에 들어갑니다. 


해안을 끼고 리츠칼튼 알하므라 비치 (구 반얀트리), 월도프 아스토리아 라스 알카이마와 같은 라스 알카이마 내 숙박비 3위권 이내의 럭셔리한 호텔을 포함한 다섯개의 호텔과 지역 일대에 세워진 1000채 이상의 빌라와 2,500실의 주거용 아파트 단지, 그리고 18홀 골프장과 쇼핑몰을 갖춘 알하므라 빌리지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마을주민들이 갑자기 사라진 이후 근 50여년 가까이 방치되어 온 구시가지 근처에는 낮은 임대비의 숙소를 찾기 위해 몰려든 저임금 노동자들이 모여 살게 됩니다. 워낙 방치된 동네다보니 브래드 피트는 넷플릭스 영화 "워 머신"을 찍기도 했습니다. 영화 속 아프가니스탄의 배경으로 말이죠. 바로 라스 알카이마의 알자지라 알하므라 이야기입니다.


라스 알카이마의 유령 마을에 대한 이야기는 "유령 마을" 탐방, "유령 마을에서의 하룻밤 체험" 이런 주제로 현지 언론을 통해서도 가끔 기사화되곤 합니다.

Inside the 'ghost town' of Ras Al Khaimah (Arabian Business, 2015)

KT journalists spend night in 'haunted' RAK village (Khaleej Times, 2016)


유령 마을이라 불리고 있지만, 이 마을이 수십년간 방치된 이유로는 라스 알카이마를 통치하는 알까시미 씨족과 이 일대를 지배하며 집성촌으로 삼았던 알자아비 씨족 간의 분쟁에서 발생했던 것이 정설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알자아비 씨족은 아랍어로 원래 조수간만의 차에 따라 나타나는 작은 섬이었다가 지금은 육지화되어 "붉은 섬"이라는 의미를 지닌 알자지라 알하므라 일대를 지배하던 지역 내 유력 씨족이었습니다. 알자아비 씨족이 통치하는 섬이라는 의미로 알자지라 알하므라는 알자지라 알자아브라 불리기도 했었죠. 진주조개 잡이와 이 일대를 오가는 포르투갈과 영국의 무역선을 털어 세력을 키웠던 알자아비 씨족의 씨족장이던 라지브 빈 아흐메드 알자아비는 1819년 이들의 행위에 참다참다 대폭발한 영국군이 보복침공하여 이 일대의 군사력을 무차별적으로 초토화시켜 버린 후 이듬해인 1820년 영국과 이 일대 토후국 간에 맺은 휴전 협정에 토후국 "주라트 알카므라"의 통치자로 서명한 당사자 중 하나였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영국은 1971년까지 자신들이 손대봐야 건질 것 없없었던 이 일대 토후국의 자치권은 보장하되 이들이 어설프게 덤비지 못하도록 영국군을 주둔시키게 됩니다.) 영국군에 의해 군사력이 거세되면서 씨족의 주수입원은 진주조개잡이에 국한될 수 밖에 없었으며, 군사력 붕괴와 더불어 세력이 상대적으로 약해지면서 상황에 따라 샤르자와 라스 알카이마 소속으로 바뀌는 독립 토후국이었던 알자지라 알하므라는 1914년 샤르자와 라스 알카이마가 맺은 협정에 따라 라스 알카이마의 일부로 최종 편입되었습니다. 


알자아비 씨족은 1920년대 후반 세계적인 경제 대공황과 일본의 양식진주 수출로 인해 주수입원이었던 진주조개잡이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으면서 라스 알카이마 정부의 경제적인 지원을 받는 한편으로 두 씨족간의 분쟁은 종종 발생했습니다. 수입원이 줄어들고 있는 와중 인근 토후국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마을의 젊은이들이 일거리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하며 마을이 쇠락해가던 중인 1968년 발생한 라스 알카이마의 통치자 셰이크 사끄르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 (현 통치자 셰이크 사우드 빈 사끄르 알까시미의 아버지)와 알자아비 씨족 간에 발생한 어떤 분쟁으로 인해 알자아비 씨족원의 대부분은 내쫓기듯 알자지라 알하므라를 떠나 갈 곳 없어진 자신들을 받아준 아부다비에 정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야반도주하듯 떠났던 마을은 저주받은 마을이란 속설이 확산되면서 수십년 동안 방치된 채 황폐화되었습니다.


(흐릿하게 보이는 것이 방치된 마을의 주택들)


라스 알카이마 정부는 워낙 방치되다 보니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마을 복구는 커녕 번듯한 진입로마저 제대로 없었던 이 유령 마을을 최근에서야 "알자지라 알하므라 헤리티지 빌리지"라 명명하고 3개 정부기관이 참여하는 본격적인 공동 복원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제대로 된 가로수를 갖춘 번듯한 진입로도 만들고, 부서지고 방치되었던 건물들을 하나둘씩 살려나가면서 말이죠. 여전히 복구작업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알자지라 알하므라 헤리티지 빌리지에서 지난 2월 제7회 라스 알카이마 파인 아트 페스티벌이 열렸습니다. 지난 1월 완공된 알자지라 알하므라 헤리티지 빌리지 1단계 복원공사를 자축하기 위해 처음으로 야외에서 개최한다는 아트 페스티벌은 복원했거나 아직 복원이 되지 않은 마을 일대를 캔버스 삼아 작품들을 야외 전시회를 개최했었습니다. 공식 페스티벌 기간은 2월 28일까지 였지만, 알자지라 알하므라 헤리티지 빌리지 내에 전시된 작품들은 4월 20일까지 전시되고 있기에 페스티벌이 끝난 지 몇 주 후에 방문했음에도 복원된 마을과 함께 아직 전시 중인 작품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존칭도 반말도 없는 말 짧은 "환영"이라는 안내문구가 눈에 띕니다. 이 근처에 저를 포함해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으니 넣었을 것 같습니다만...



건물의 복원이 끝나 페스티벌의 작품이 전시된 공간은 마을의 거첨인 요새 1동과 6동의 빌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부다비도 마찬가지지만 집성촌의 거점이 되는 요새의 망루는 그 일대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주위를 둘러보며 외부 침입자들을 발견해내는 감시탑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망루 내부를 복원해놓지 않아 망루 위로는 올라갈 수 없습니다.



복원된 건물의 벽과 공간을 활용하여 작품들을 전시해놓았습니다.



아직은 건물 외관 복원에 촛점을 맞춘 탓인지 들어가 볼 수 있는 공간 내부에 특별한 전시물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요새 한쪽 귀퉁이에 내부로 올라갈 수 있는 3층 건물이 있기에 한번 올라가 보았습니다. 좁은 계단으로 미루어봤을 때 이 곳에 살던 토착민들은 체구가 크지 않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왼쪽에 보이는 높은 건물은 알하므라 빌리지 내에 들어선 아파트 로얄 브리즈입니다.



외관이 크림색을 띤 건물이 복원된 집들이고, 나머지는 아직 복원되지 않은 건물들입니다.



방치된 집들이 상당히 많아 보이죠?



500여채 이상이 있었던 마을이라고 하니, 복원작업은 이 중 극히 일부만 진행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방문했던 그날도 정부에 제출할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며 마을 일대를 측량하고 있던 측량기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 역시 복원이 끝난건 아니라고 하더군요.





뭔가 야외에 전시하기엔 이상야릇한 그림도 있고...





엉뚱하게 부르즈 알아랍과 주메일라 비치의 야경 그림이 전시되어 있기도 합니다. 알자지라 알하므라 헤리티지 빌리지 복원계획은 관광업 육성에 필받은 라스 알카이마가 열심히 벤치마킹하고 있는 두바이의 민속촌 알바스타키야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알바스타키야 역시 마을의 전성기가 지나면서 가난한 노동자들이 모여사는 슬럼화가 되자 1989년 철거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려던 두바이 정부를 찰스 왕세자가 설득하여 보존하는 방향으로 남겨두어 현재의 관광지가 된 전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두바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했다가 유적지로 남은 바스타키야의 한적한 주말 풍경 참조) 지금은 알파히디 역사지구에 편입되어 이웃한 알시프 두바이와 함께 두바이 크릭을 따라 두바이의 과거와 현재를 걸어다니면서 만날 수 있는 관광지로 발전하게 되었죠.   



파괴된채 방치된 건물의 잔해도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에다 알라딘에 영감을 받은듯한 그림도 있고...





이 그림은 로렌 유라는 한국사람의 작품이라고 소개되어 있더군요.





파괴된채 방치된 공간을 채우는 작품들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도 창문은 네 개의 여닫이 문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좀더 제대로 된 이마라티 전통가옥 형태의 집은 알시프 두바이에 있는 알시프 호텔에서 체험해 볼 수 있습니다. ([두바이] 과거로 돌아간듯한 이마라티 전통가옥 컨셉의 호텔, 알시프 호텔 참조) 이 곳은 마을의 특성상 전반적으로 미니화된 경향이 있긴 하지만요...





골목길~ 알자지라 알하므라 마을의 집을 짓는데 모래벽돌을 사용한 것은 1950년대경부터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전까지는 산호석과 비치 락으로 건물을 지었으며, 해변가에 인접하여 여름에는 고온다습하고, 겨울엔 바람이 세찬 기후의 영향을 받아 여름용 주택은 모래벽돌, 겨울용 주택은 산호석과 비치 락을 그대로 사용하여 건물을 지었다고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 건물에는 알자아비 씨족을 내쫓은 이 (라스 알카이마 통치자 셰이크 사끄르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와 집잃은 알자아비 씨족을 받아들인 이 (아부다비 통치자 셰이크 자이드 빈 술탄 알나흐얀)를 그린 그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유령 마을에서 민속촌으로 탈바꿈 중인 이 곳이 어떻게 개발될지 지켜보는 것도 나름 흥미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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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CC/GU/UAE2019.01.01 12:59



UAE에서 가장 유명한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 새해맞이 불꽃놀이가 2017년 이후 2년 만에 LED쇼와 함께 복귀한 가운데, 지난 2018년 1월 1일 첫 선을 보인 성대한 새해맞이 불꽃놀이로 기네스 세계기록을 세웠던 라스 알카이마의 인공섬 알마르잔 아일랜드가 여기에 재미를 붙였는지 2018년도에 협업했던 전문업체 Grucci와 다시 한번 손잡고 2019년 새해맞이 불꽃놀이를 통해 두 개의 기네스 세계기록을 갱신한 업그레이드된 새해맞이 불꽃놀이를 선보였습니다. ([사회] 두 개의 새로운 기네스 공인기록을 세운 UAE의 2018년 새해맞이 레이저쇼 & 불꽃놀이 참조)





약 14여분 동안 펼쳐진 불꽃놀이를 통해 알마르잔 아일랜드가 이번에 새운 두 개의 기록은 "세계에서 가장 긴 연쇄 불꽃놀이" 부문과 "세계에서 가장 긴 직선 불꽃놀이" 부문입니다.


첫번째 부문인 "세계에서 가장 긴 연쇄 불꽃놀이"는 사전에 언론을 통해서도 공개되지 않았던 부문으로 자이드 탄신 100주년이기도 한 2018년이 끝나는 것을 기념하며 2019년 새해 카운트 다운에 들어가기 전 40초간에 걸쳐 알마르잔 아일랜드와 해안가를 따라 펼쳐진 약 4,6km 구간의 52개 지점에 설치한 11,284개의 불꽃을 동시에 터뜨리며 2014년 9월 12일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비에하스 카지노 리조트가 세운 10,005개의 기록을 갱신했습니다.


그리고 2019년이 불꽃놀이가 시작되면서 도전하게 된 두번째 기록도전 부문이자 언론을 통해 예고되었던 "세계에서 가장 긴 직선 불꽃놀이"는 직선 13km 구간에서 불꽃놀이를 펼치면서 현존 기록이었던 11.38km를 가볍게갱신하게 되었습니다. 




알마르잔 아일랜드가 아부다비나 두바이 등지에서 도전하지 못하는 부문의 불꽃놀이로 기네스 기록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은 불꽃놀이를 펼치는 주무대가 도심 한복판이 아닌 주위를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바다와 해안가 일대의 리조트 개발지역이기 때문입니다. 두바이를 대표하는 부르즈 칼리파 불꽃놀이는 세계 최고층 건물이라는 상징성을 앞세워 건물을 활용한 불꽃놀이는 가능하지만, 주변 지역을 감안했을 때 수평으로 넓히는데는 한계가 있고, 아부다비의 알마르야 아일랜드나 두바이 페스티벌 시티, 샤르자 알마자즈 등 워터 프론트를 활용한 불꽃놀이에 경우 길게 뻗고 싶어도 워터 프론트 자체의 규모에 제약받을 수 밖에 없으니까요. 


반면, 라스 알카이마 알마르잔 아일랜드와 알하므라 빌리지 일대의 경우 그 사이의 앞바다를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데다, 외국인 관광객 및 거주자들을 위한 여러 호텔들과 레지던스 중심지이기에 상대적으로 열악한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모으기엔 최적의 입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일대에 나대지를 활용하여 약 27,000여대를 수용할 수 있는 임시 주차장을 운영할 수 있으니 말이죠.



UAE에서 네번째로 새해를 맞이하는 저는 두바이나 아부다비가 아닌 집에서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두바이나 아부다비에서 새해 불꽃놀이를 구경하며 주차 및 교통 대란에 시달렸던 지난 3년간의 경험에 비하면 훨신 편하고 느긋하게 집 베란다에서 라스 알카이마 불꽃놀이를 감상할 수 있었으니까요. (사실 그 시간에 자고 싶었어도 폭죽 터지는 소리와 불꽃놀이 때문에 잠을 잘래야 잘 수가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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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랍지역 전문 블로거 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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