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마을의 2,500여명이 넘는 마을주민 전원이 하룻밤 사이에 세간살림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황폐화된 마을이 있대...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도시전설급의 이야기와 함께 속칭 유령 마을, 저주받은 마을이라 불리우는 마을이 UAE의 라스 알카이마 한 켠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1968년경까지 500여채 이상의 집이 있는 제법 큰 규모를 유지해왔던 마을의 주민 전원이 하룻밤 사이에 거짓말 같이 사라져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수십년째 방치되어왔던 지역 일대는 저주받았다는 속설과 함께 이 지역 이마라티인들은 라스 알카이마 정부에서 땅을 주겠다고 해도 저주받은 곳에 살기 싫다며 받기를 거절했을 정도로 버림받은 지역이었습니다. 라스 알카이마 정부는 도심 한복판에선 제법 떨어져 있어 번잡스럽지 않고 해안을 끼고 있어 지내기엔 좋은 지역임에도 지역 이마라티인들이 이주하기를 꺼려하던 이 지역 일대를 외국인 거주자 및 관광객 유치를 위한 지역으로 대대적인 개발에 들어갑니다. 


해안을 끼고 리츠칼튼 알하므라 비치 (구 반얀트리), 월도프 아스토리아 라스 알카이마와 같은 라스 알카이마 내 숙박비 3위권 이내의 럭셔리한 호텔을 포함한 다섯개의 호텔과 지역 일대에 세워진 1000채 이상의 빌라와 2,500실의 주거용 아파트 단지, 그리고 18홀 골프장과 쇼핑몰을 갖춘 알하므라 빌리지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마을주민들이 갑자기 사라진 이후 근 50여년 가까이 방치되어 온 구시가지 근처에는 낮은 임대비의 숙소를 찾기 위해 몰려든 저임금 노동자들이 모여 살게 됩니다. 워낙 방치된 동네다보니 브래드 피트는 넷플릭스 영화 "워 머신"을 찍기도 했습니다. 영화 속 아프가니스탄의 배경으로 말이죠. 바로 라스 알카이마의 알자지라 알하므라 이야기입니다.


라스 알카이마의 유령 마을에 대한 이야기는 "유령 마을" 탐방, "유령 마을에서의 하룻밤 체험" 이런 주제로 현지 언론을 통해서도 가끔 기사화되곤 합니다.

Inside the 'ghost town' of Ras Al Khaimah (Arabian Business, 2015)

KT journalists spend night in 'haunted' RAK village (Khaleej Times, 2016)


유령 마을이라 불리고 있지만, 이 마을이 수십년간 방치된 이유로는 라스 알카이마를 통치하는 알까시미 씨족과 이 일대를 지배하며 집성촌으로 삼았던 알자아비 씨족 간의 분쟁에서 발생했던 것이 정설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알자아비 씨족은 아랍어로 원래 조수간만의 차에 따라 나타나는 작은 섬이었다가 지금은 육지화되어 "붉은 섬"이라는 의미를 지닌 알자지라 알하므라 일대를 지배하던 지역 내 유력 씨족이었습니다. 알자아비 씨족이 통치하는 섬이라는 의미로 알자지라 알하므라는 알자지라 알자아브라 불리기도 했었죠. 진주조개 잡이와 이 일대를 오가는 포르투갈과 영국의 무역선을 털어 세력을 키웠던 알자아비 씨족의 씨족장이던 라지브 빈 아흐메드 알자아비는 1819년 이들의 행위에 참다참다 대폭발한 영국군이 보복침공하여 이 일대의 군사력을 무차별적으로 초토화시켜 버린 후 이듬해인 1820년 영국과 이 일대 토후국 간에 맺은 휴전 협정에 토후국 "주라트 알카므라"의 통치자로 서명한 당사자 중 하나였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영국은 1971년까지 자신들이 손대봐야 건질 것 없없었던 이 일대 토후국의 자치권은 보장하되 이들이 어설프게 덤비지 못하도록 영국군을 주둔시키게 됩니다.) 영국군에 의해 군사력이 거세되면서 씨족의 주수입원은 진주조개잡이에 국한될 수 밖에 없었으며, 군사력 붕괴와 더불어 세력이 상대적으로 약해지면서 상황에 따라 샤르자와 라스 알카이마 소속으로 바뀌는 독립 토후국이었던 알자지라 알하므라는 1914년 샤르자와 라스 알카이마가 맺은 협정에 따라 라스 알카이마의 일부로 최종 편입되었습니다. 


알자아비 씨족은 1920년대 후반 세계적인 경제 대공황과 일본의 양식진주 수출로 인해 주수입원이었던 진주조개잡이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으면서 라스 알카이마 정부의 경제적인 지원을 받는 한편으로 두 씨족간의 분쟁은 종종 발생했습니다. 수입원이 줄어들고 있는 와중 인근 토후국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마을의 젊은이들이 일거리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하며 마을이 쇠락해가던 중인 1968년 발생한 라스 알카이마의 통치자 셰이크 사끄르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 (현 통치자 셰이크 사우드 빈 사끄르 알까시미의 아버지)와 알자아비 씨족 간에 발생한 어떤 분쟁으로 인해 알자아비 씨족원의 대부분은 내쫓기듯 알자지라 알하므라를 떠나 갈 곳 없어진 자신들을 받아준 아부다비에 정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야반도주하듯 떠났던 마을은 저주받은 마을이란 속설이 확산되면서 수십년 동안 방치된 채 황폐화되었습니다.


(흐릿하게 보이는 것이 방치된 마을의 주택들)


라스 알카이마 정부는 워낙 방치되다 보니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마을 복구는 커녕 번듯한 진입로마저 제대로 없었던 이 유령 마을을 최근에서야 "알자지라 알하므라 헤리티지 빌리지"라 명명하고 3개 정부기관이 참여하는 본격적인 공동 복원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제대로 된 가로수를 갖춘 번듯한 진입로도 만들고, 부서지고 방치되었던 건물들을 하나둘씩 살려나가면서 말이죠. 여전히 복구작업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알자지라 알하므라 헤리티지 빌리지에서 지난 2월 제7회 라스 알카이마 파인 아트 페스티벌이 열렸습니다. 지난 1월 완공된 알자지라 알하므라 헤리티지 빌리지 1단계 복원공사를 자축하기 위해 처음으로 야외에서 개최한다는 아트 페스티벌은 복원했거나 아직 복원이 되지 않은 마을 일대를 캔버스 삼아 작품들을 야외 전시회를 개최했었습니다. 공식 페스티벌 기간은 2월 28일까지 였지만, 알자지라 알하므라 헤리티지 빌리지 내에 전시된 작품들은 4월 20일까지 전시되고 있기에 페스티벌이 끝난 지 몇 주 후에 방문했음에도 복원된 마을과 함께 아직 전시 중인 작품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존칭도 반말도 없는 말 짧은 "환영"이라는 안내문구가 눈에 띕니다. 이 근처에 저를 포함해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으니 넣었을 것 같습니다만...



건물의 복원이 끝나 페스티벌의 작품이 전시된 공간은 마을의 거첨인 요새 1동과 6동의 빌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부다비도 마찬가지지만 집성촌의 거점이 되는 요새의 망루는 그 일대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주위를 둘러보며 외부 침입자들을 발견해내는 감시탑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망루 내부를 복원해놓지 않아 망루 위로는 올라갈 수 없습니다.



복원된 건물의 벽과 공간을 활용하여 작품들을 전시해놓았습니다.



아직은 건물 외관 복원에 촛점을 맞춘 탓인지 들어가 볼 수 있는 공간 내부에 특별한 전시물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요새 한쪽 귀퉁이에 내부로 올라갈 수 있는 3층 건물이 있기에 한번 올라가 보았습니다. 좁은 계단으로 미루어봤을 때 이 곳에 살던 토착민들은 체구가 크지 않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왼쪽에 보이는 높은 건물은 알하므라 빌리지 내에 들어선 아파트 로얄 브리즈입니다.



외관이 크림색을 띤 건물이 복원된 집들이고, 나머지는 아직 복원되지 않은 건물들입니다.



방치된 집들이 상당히 많아 보이죠?



500여채 이상이 있었던 마을이라고 하니, 복원작업은 이 중 극히 일부만 진행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방문했던 그날도 정부에 제출할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며 마을 일대를 측량하고 있던 측량기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 역시 복원이 끝난건 아니라고 하더군요.





뭔가 야외에 전시하기엔 이상야릇한 그림도 있고...





엉뚱하게 부르즈 알아랍과 주메일라 비치의 야경 그림이 전시되어 있기도 합니다. 알자지라 알하므라 헤리티지 빌리지 복원계획은 관광업 육성에 필받은 라스 알카이마가 열심히 벤치마킹하고 있는 두바이의 민속촌 알바스타키야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알바스타키야 역시 마을의 전성기가 지나면서 가난한 노동자들이 모여사는 슬럼화가 되자 1989년 철거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려던 두바이 정부를 찰스 왕세자가 설득하여 보존하는 방향으로 남겨두어 현재의 관광지가 된 전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두바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했다가 유적지로 남은 바스타키야의 한적한 주말 풍경 참조) 지금은 알파히디 역사지구에 편입되어 이웃한 알시프 두바이와 함께 두바이 크릭을 따라 두바이의 과거와 현재를 걸어다니면서 만날 수 있는 관광지로 발전하게 되었죠.   



파괴된채 방치된 건물의 잔해도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에다 알라딘에 영감을 받은듯한 그림도 있고...





이 그림은 로렌 유라는 한국사람의 작품이라고 소개되어 있더군요.





파괴된채 방치된 공간을 채우는 작품들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도 창문은 네 개의 여닫이 문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좀더 제대로 된 이마라티 전통가옥 형태의 집은 알시프 두바이에 있는 알시프 호텔에서 체험해 볼 수 있습니다. ([두바이] 과거로 돌아간듯한 이마라티 전통가옥 컨셉의 호텔, 알시프 호텔 참조) 이 곳은 마을의 특성상 전반적으로 미니화된 경향이 있긴 하지만요...





골목길~ 알자지라 알하므라 마을의 집을 짓는데 모래벽돌을 사용한 것은 1950년대경부터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전까지는 산호석과 비치 락으로 건물을 지었으며, 해변가에 인접하여 여름에는 고온다습하고, 겨울엔 바람이 세찬 기후의 영향을 받아 여름용 주택은 모래벽돌, 겨울용 주택은 산호석과 비치 락을 그대로 사용하여 건물을 지었다고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 건물에는 알자아비 씨족을 내쫓은 이 (라스 알카이마 통치자 셰이크 사끄르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와 집잃은 알자아비 씨족을 받아들인 이 (아부다비 통치자 셰이크 자이드 빈 술탄 알나흐얀)를 그린 그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유령 마을에서 민속촌으로 탈바꿈 중인 이 곳이 어떻게 개발될지 지켜보는 것도 나름 흥미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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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랍지역 전문 블로거 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