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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사우디의 국가 정체성을 재정의한 새 공휴일, 2월 22일 파운딩 데이

둘라 2022. 2. 22.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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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휴일이라곤 라마단이 끝난 것을 기념하는 이드 피뜨르와 성지순례가 끝난 것을 기념하는 이드 알피뜨르 밖에 없던 사우디에 새 공휴일이 추가된 것은 선대 압둘라 국왕 시절인 지난 2005년의 일이었습니다. 바로 현재의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이 건국된 1932년 9월 23일을 기념하는 내셔널 데이로 히즈라력에 따르는 종교적 명절인 양대 이드와 달리 사우디에서는 비종교적이면서 양력으로 따지는 첫 공휴일이었죠.

 

내셔널 데이의 공휴일화 배경

이는 1979년 그랜드 모스크 점거사건 이후로 테러가 없었던 사우디 내에서 9.11을 일으켰던 알까에다와 추종세력들이 2003년부터 사우디 내에서 연쇄적인 테러활동을 벌이면서 당시 실제 통치자였던 압둘라 왕세제와 사우디 정부는 배타적인 종교세력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국가 정체성 확립을 통한 애국심 고취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이를 현실화할 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리주의 종교세력이 종교를 앞세워 젊은이들을 유입하면서 세력을 키우는 테러집단이 되어 자신들을 위협하는 상황을 방관만 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압둘라 왕세제가 국왕 취임 후 내린 칙령으로 내셔널 데이 공휴일을 제정하게 된 것입니다. 사우디를 비롯해 2010년대 들어 UAE, 카타르 등 걸프 국가 내에 의무 복무제가 도입되고 국가 브랜드를 확립하는 정부 정책들이 계속 나오는 것은 종교적 가치관, 혹은 지역별, 토후국별 빈부차이 등으로 인해 쪼개질 수 있는 약점을 보완하고 중앙 정부의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압둘라 국왕이 내셔널 데이를 공휴일로 선포한 이후 대대적인 축하행사는 벌이진 않았지만, 이 날에 맞춰 2009년에는 킹 압둘라 과학기술대를 개교했고, 2014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국기 게양대를 젯다에 설치하는 이벤트를 통해 그 의의를 부여해 왔었습니다. 비록 이 기록은 지난해 연말 새로운 행정수도를 건설한 이집트에 의해 깨졌습니다만... 

 

 

내셔널 데이의 축제화, 그리고 국가 정체성 강화의 배경

압둘라 국왕 시대에는 큰 이벤트를 펼치지 않았던 사우디의 내셔널 데이 휴일은 2015년 1월 살만 국왕이 부임하면서 전국적인 규모의 연례 축제 이벤트로 자리잡게 됩니다. 압둘라 국왕파를 서거한지 하루도 안되어 바로 내치기 시작하면서 국내에선 기존의 승계라인과와 관련 있는 사우드 왕가, 재계 및 종교계 원로 세력 등 기득권층을 잇달아 숙청하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예멘을 침공해 알후씨 반군세력과의 전쟁과 터키에서의 카쇼끄지 암살사건에 연관되는 등 불과 몇 년 사이에 듣보잡 왕자에서 차기 국왕이자 실세로 자리잡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벌인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야기된 국내외의 반발과 분열을 억제하고, 대다수 일반 대중들의 지지를 등에 업기 위해서라도 국가 정체성과 애국심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겠습니다. 특히, 사우디 왕국 역사상 최초로 왕가 내부에서 권력을 분할해 왔던 정규군의 국방부 (살만 국왕/무함마드 왕세자 계열), 왕실 친위조직의 국가방위부 (선대 압둘라 국왕 계열), 치안유지군의 내무부 (고 나이프 왕세제/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세질 계열)를 잇달아 완전히 장악한데다 독립기관을 표방한 반부패조사위원회 설립으로 사정기관까지 만들면서 공권력을 완전히 손에 넣은 상황이었기에 내부 교통정리는 예상을 깨고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했지만, 이런 지원세력이 없는 해외에서 벌인 예멘 침공이나 카쇼끄지 사건에서는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논란만 키우게 되면서 이를 무마하기 위한 내부결속력 강화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두 사건 이후 사우디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크게 나대지 않는 대신 다양한 기가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사우디 내치에 집중하는 것도 당연할 수 밖에 없는 일이겠습니다만..

 

정치적으로 위협이 될 수 있는 정적들을 숙청해 나가는 동시에 1980년대 이후 35년 넘게 강경 원리주의자들이 이끌었던 종교세력들을 손보기 시작했습니다. 1979년 그랜드 모스크 점거 사건 이후 정치의 전면에 나선 이들은 무따와라 불리는 종교경찰을 앞세워 35년 넘게 사우디를 종교적인 금욕주의가 지배하는 나라로 만들어 왔었습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이 종교세력들을 억누르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자신을 포함한 사우드 왕가를 위협해 사회를 되돌려 놓을 수 있기에 반드시 무력화시켜야만 했고, 그 결과 사우디 내에선 절대 권력을 행사해왔던 무따와를 무력화시켜 그들의 아성을 꺾는데 성공하면서 최근 몇 년간 급변하는 사우디 사회를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발렌타인 데이와 크리스마스를 즐기다 걸리면 태형 등의 처벌을 받던 사우디 내에서 2019년에는 발렌타인 데이, 2021년에는 마침내 크리스마스의 축제 무드를 공개적으로 즐길 수 있게 되었죠! 

 

 

내셔널 데이? 파운딩 데이?

이런 분위기 속에 지난 1월말, 살만 국왕은 내셔널 데이에 이어 양력으로 세는 두번째이자 새로운 공휴일을 선포했습니다. 바로 2월 22일 파운딩 데이입니다. 현재의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은 제1 사우디 국가로도 불리는 디리야 토후국 (1744~1818), 제2 사우디 국가로도 불리는 네즈드 토후국 (1824~1891)에 이어 사우드 씨족이 세운 세번째 국가인데, 내셔널 데이가 현 사우디 왕국의 건국 기념일인 반면 파운딩 데이는 사우디 씨족이 세운 국가의 기반을 다진 디리야 토후국의 건국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파운딩 데이의 로고를 보면 디리야 토후국의 건국 기념일이 일반적으로 제1사우디 국가가 건국된 해로 알려진 1744년이 아니라 1727년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 사우디는 건국년도를 무려 17년이나 앞당겨서 이 날을 기념하게 되었을까요?

사우디 파운딩 데이 로고

 

 

파운딩 데이를 선포하며 재정의한 사우디의 건국사와 정체성

이제껏 사우디의 역사는 자신의 세력을 확장시키고 싶었지만 실제로는 디리야 일대만을 통치하고 있었던 사우드 씨족의 이맘 무함마드 빈 사우드 알무끄린 (1687~1765)과 무력을 앞세워 종교적으로 타락해가는 사회를 되돌리고픈 원리주의자 이맘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합 (1703~1792)이 서로 의기투합하여 1744년 혼인을 통한 동맹을 맺으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중앙 정부로써 거리적 한계로 인해 중앙 정부의 손길이 닿기 힘든 지방을 통치하는 지방 호족을 아우르는 국가의 통치는 사우드 씨족이 맡고, 종교적인 측면에서는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합이 이끄는 알앗셰이크 씨족 출신의 와하비스트들이 양분하는 통치 시스템.  

 

권력욕에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정치세력과 군사력을 가진 종교세력의 결합은 공통의 문제가 해결된 후엔 결국 내부 헤게모니 쟁탈전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그 나라가 한 종교의 발상지에 있고, 원리주의 종교세력이  무장 세력까지 갖추고 있다면 더더욱 말이죠. 

 

이맘 무함마드 빈 사우드가 이맘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합에게 내걸었다고 알려진 두 개의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자신들에게 전쟁에서 벌어들인 수입의 일부를 세금으로 내라는 것이었고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합은 처음에는 이에 반대했다는 사실에서 보여지듯 이 두 세력의 결합은 처음부터 불안요소를 가지고 있었고, 이는 사우디의 역사가 결국 사우드 씨족이 세운 국가의 흥망성쇠와 더불어 3세기 동안 세대를 이어 지속되어 온 양대 세력의 헤게모니 쟁탈전으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누가 승리하냐에 따라 세속적인 사우드 씨족이 세력을 장악하면 사회는 온건해지고, 반대로 종교적인 와하비스트들이 장악하면 그야말로 타문화에 배타적인 상황이 반복되는 무한루프...

사우디 국립 박물관에서 본 디리야 일대 풍경 사진

 

이런 상황에서 살만 국왕이 디리야 토후국의 건국 기념일로 삼은 파운딩 데이를 1744년이 아닌 1727년으로 정한 이유는 그 날이 바로 이맘 무함마드 빈사우드 알무끄린이 디리야 일대를 평정해 작은 토후국을 세운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기존에 알려진 역사를 수정하여 사우디의 역사와 정체성이 사우드 씨족과 와하비스트 간에 맺어진 동맹으로 시작된 국가가 아닌, 순수하게 사우드 씨족이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수세기에 걸쳐 일궈낸 국가에 있음 (종교는 거들뿐!!!)을 재정의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우디는 이란과 함께 각각 수니파와 시아파를 대표하는 이슬람의 양대 종주국이지만 종교가 정치 위에 있는 신정국가 이란과 달리 성지에 자리잡고 있을 뿐 실제로는 정치가 종교 위에 있기를 원하는 어디까지나 세속국가입니다. 사우디가 종교를 앞세운 이란의 영향력 확대를 원치 않는 이유이기도 하죠. 

 

이는 불과 몇 년 사이에 급변하는 사우디 사회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전면에 나선 사우드 왕가가 수세기 동안 애증의 관계였던 종교세력의 정치적 발언권을 확실하게 억눌렀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살만 국왕 취임 이전에는 뭔가를 바꾸는 과정에서 종교세력을 설득하기 위해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발렌타인 데이나 크리스마스에서 볼 수 있듯 전혀 그렇지 않죠.

(현존하는 초상화 따위가 없으니) 역사 문헌에 묘사된 정보를 바탕으로 그렸다는 디리야 토후국의 건국자 이맘 무함마드 빈 사우드 알무끄린의 모습. 일반적인 초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보이는 이유는 기분탓.....이 아닙니다. 실제로 일본의 토에이 애니메이션과 협업하는 사우디 로컬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망가 프로덕션에서 그렸으니까요. 조만간 그를 다룬 애니메이션도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이 날에 맞춰 패션 위원회가 공표한 지역별 파운딩 데이 드레스 코드는 사우디가 사우드 씨족이 지배하는 중앙 정부와 지방 호족들이 하나임을 강조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전통 의상에도 여성들의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니깝이 없는 것을 보면, 종교세력들이 통치해왔던 지난 시기가 얼마나 깝깝했는지 한 눈에 보여주기도 합니다. 니깝은 고사하고 제가 살았었던 십수년 전만 해도 젯다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 여성들의 화려한 색상의 의상은 주목받기 딱 좋았었다고 하는데 말이죠. 중앙의 사우드 왕가와 지방은 강조하지만, 종교적으로는 전혀 의미가 없는 파운딩 데이의 탄생. 

 

 

 

역사적으로 신정 국가가 아닌 세속 국가임을 다시한번 강조한 사우디는 디리야 토후국이 건국된지 295년 만에 처음으로 제정한 파운딩 데이를 맞아 3일간의 축제 무드에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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