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7개월 뒤면 2005년 12월 15일 첫 포스팅을 올린 날로부터 어느덧 20년을 채우게 되는 블로거 생활을 해오면서 새삼 느끼게 되는 건 이 동네를 다루는 미디어와 장르를 불문한 국내 미디어들의 처참한 수준을 종종 확인할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야 블로그로 해서 얻는 수익이 거의 없다시피 한 재능기부 겸 덕후스러운 취미생활일 뿐이지만 (수입 생각했음 일찌감치 때려쳤;;;;;), 그들은 자신들의 활동을 통해 수입을 창출하는 프로이자, 한편으로는 큰 영향력을 가진 매체니까요.
오일머니로 대표되는 아랍 국가들은 과거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던 시절에 맞물린 오일 쇼크의 여파로 일어난 중동 건설 붐의 최대 수혜자였고, 지금도 우리와 여러가지면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종종 기회의 땅으로 여김에도 불구하고 집단 광기에 가까운 특정 종파의 뒤틀린 이슬람포비아와 맞물려 신기할 정도로 무관심하거나 희화화거리를 찾다 보니 일반적으로 이상한 선입견을 자연스레 갖게 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희화화에 가장 먼저 앞장서는 매체는 단연 예능, 드라마이고,
한때 그 희화화의 주인공으로는 맨시티 인수 후 억만장자 기믹까지 얹혀진 셰이크 만수르 현 UAE 부통령이 희화화의 주인공이었습니다. 현업에서 어쩌다 보니 10년 전에 그 분을 잠깐이지만 눈 앞에서 직접 본 일이 있기에 생각할수록 더욱 부끄러웠지만요. 자신이 이끄는 부처에서 만든 업적이라 공치사 늘어놓기 가장 좋은 행사장에서조차 한 마디를 직접 않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거든요. 진성 금수저는 역시 다른가...싶었던.
개그 프로그램에서 희한한 복장을 입혀 무슨 돈지랄하는 갑부로 희화화를 한다던가...
드라마에선 나름 머리를 써서 가상의 국가라는 설정을 했지만, 정작 그 배경으로 아부다비와 두바이 풍경을 합성시켜 놓는 드라마까지 나왔으니까요.
정작 우리나라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찍힐까 봐 제대로 된 풍자 코미디도 못하는 나라에서 말이죠. 물론, 저런 방송을 UAE에서 만들어 내보냈어도 바로 처벌당할 일입니다만...
전 세계적인 한류 열풍에다, 정작 한국 방송보다 콘텐츠 세계 전파에 더욱 진심인 넷플 등의 대 OTT 시대로 접어들며 별다른 자막 없이 한국 드라마를 시청할 수 있는 아랍권 시청자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체불명의 아랍 갑부 캐릭터를 출연시켜 좋았던 평을 스스로 박살 내길 자초한 킹더랜드 같은 드라마도 있었죠.
그럼 방송국의 교양 프로그램은 괜찮나?
걸어서 세계 속으로 같은 프로그램조차 아무 생각없이 잠깐 보려다 다양한 방식으로 잘못된 정보를 사실처럼 전달하는 총체적인 난국 그 자체니 말 다했죠. 그 프로에 출연한 에미라티 출연자들이 안쓰럽게 보일 정도로...
유튜브 채널은 어떨까?
개인 유튜버 채널이야 뭐 그러려니...하겠는데, 교수라는 전문직 직함을 건 사람들이 자기 채널, 혹은 다른 회사 채널에 나와서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잘못된 내용을 사실처럼 썰을 푼다던가, 그 나라와 도시에 대한 이해가 전혀 안 된 티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그럴듯하게 도시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콘텐츠를 보게 되더군요. 엔간해선 유튜브 영상에 댓글을 잘 달지 않는 저조차 장문의 댓글을 쓰게 만들 정도의...
소위 사실을 전달한다는 뉴스는 어떨까?
이천수가 알나스르로 이적했던 2009년 여름을 계기로 전술을 논할 정도의 축구 전문가는 아님에도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걸프지역 축구소식을 다루고 있는 입장에서 본다면, 어쩌다 가끔 다뤄지거나 무시되는 소식 속에 보여지는 기자의 사심 (私心), 혹은 데스크의 사심 (社心)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호적인 선수/팀에 대한 소식은 더욱 붙복해서 전파하고, 그렇지 않은 선수/팀에 대해선 독자들에게 더욱 적개심을 가지게끔 다양한 방식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소설을 쓰거든요. 정치나 경제 기사와 마찬가지로...
엔간해선 걸프지역 리그에 진출한 한국인 선수들에 대해 기사가 잘 안 나오는 와중에도 특정 선수에 대해선 이례적으로 많은 기사들이 시시콜콜하게 작성되는 반면... (덕분에 듣보잡 블로그임에도 자기 아들 소식을 꾸준하게 전해주는 제 블로그에 감사해했다는 선수 부모님들이 계셨다는 이야기도 들은 바 있습니다만...)
대부분은 그야말로 기망진창인 소설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때마침 자기네 홈구장이 리노베이션으로 폐장되어 옆 동네에서 경기를 치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원정팀인 FC서울에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를 취했음에도 홈텃세를 부린다고 쌩난리를 쳤던 소설들 하며...
욕먹고 있던 선수의 이적을 비하하기 위해 무려 전전 시즌의 성적을 끌고 와 난데없이 2부 리그로 이적한다는 소설을 쓰기도 하고...
직접 취재도 아니고 외신을 인용하는 주제에 시간대를 뒤틀어 소설을 쓰는 바람에 한 팀의 감독과 선수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기도 하며...
관심이 없는 동네에 대한 기사를 어쩌다 쓰게 되다 보니 전혀 기사체스럽지 않은 제 블로그 내용을 불복 수준으로 끼워 넣는다던가, 심지어는 장인과 사위를 형제로 써 남의 나라 왕정에 대한 족보 파괴는 물론 망자까지 불러내서 이세계 소설을 쓰는 등 파고들면 그 밑을 알 수 없는 한심한 내용의 소설들이란 걸 알 수 있으니 말이죠.
스포츠 기사라서 문제라고?
정치, 경제 관련 기사라고 딱히 다르지는 않습니다. 뭐 글자수 제약이 걸려있다고는 하지만, 멀쩡한 무함마드라는 이름을 두고 살만네 아들 (빈 살만)이라고 표기하는 게 우리 언론이니까요. 같은 논리대로라면 살만 국왕도 빈 압둘아지즈 국왕으로 (그를 포함해 총 6명의 빈 압둘아지즈가 사우디 국왕이다.), 그의 동생인 칼리드 국방장관도 빈 살만 국방장관으로 불러야 할 텐데 말이죠. 이게 맞아?
최근의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다루는 국내 뉴스를 보면 반이스라엘 정서가 확산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악행에 대해선 애써 눈감으면서, 이스라엘의 피해만 강조하는 이스라엘 기관지 같은 보도를 종종 보게 됩니다. 물론... 취재없이 외신을 가져오는 그들의 소스인 BBC와 CNN 같은 외신들이 이스라엘 문제만큼은 조중동스러운 논조- 지지하는 세력의 범죄행위를 눈감고, 상대의 행위를 악의적으로 부풀려 확대 보도하는-를 갖고 있으니 어쩔 수는 없겠지만요.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대통령이 통치하던 시절, (중동 붐을 통한 과거의 경험 덕분에) 되려 우리 경제에 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정책을 추진했다가 자신들의 신앙에 대한 믿음이 전혀 없어 보이는 특정 종파의 집단 광기로 무장한 매체들의 선동에 힘입어 무산된 일이 있었습니다. 수쿠크와 할랄산업단지. 잘 살릴 수 있었으면 돈줄 말랐다는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자금원을 확보했을 수도 있고, 한류 열풍의 파급효과를 직접 얻고 있는 관련 산업들이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고 체계적인 수출경로를 보다 일찍 확보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있죠. 그 포비아를 더욱 부추기는 매체들 덕분에 국교가 없는 나라에서 타 종교 시설 짓는다고 쌩쑈를 벌이는 추태 연출은 덤...
유퀴즈의 아랍어 자막 수정 해프닝
이 길었던 서설의 시작점은....
지난주 우연히 유튜브에서 본 유퀴즈 예고편이었습니다.
사우디에서 간호사로 일하시는 분이 나온다고 해서 관심을 갖고 영상을 재생하다가 ?????????????????스런 자막이 눈에 띄었거든요.
번역이 필요 없는 간단한 아랍어 인사말이 자막으로 달렸는데, 한국어는 소리 나는 대로 쓴 반면 정작 아랍어를 글자 파괴 수준으로 흩트려 놓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미국 방송에 한국인 출연자가 나와 인사를 하는데, 아래 사진처럼 자막이 달려 나온다면.... 과연 그 영상을 본 한국 시청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요?
보자마자 그 영상에도 댓글을 달았고...
좀 더 정리해서 스레드에 포스팅을 하나 남깁니다.
아랍어는 영어의 필기체처럼 글자를 이어 쓰는 방식 (글자의 형태가 위치에 따라 이어 쓰기 쉽도록 변형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초기 진입장벽이 높음)인데, 다 떼어서 갖다 놓은 건 기본인 데다 글자의 진행방향마저 어떻게 갖다 붙였나 싶을 정도로 뒤죽박죽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는 두 단어의 순서도 엉망진창. 한 단어는 아예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자를 갖다 놨고, 다른 단어는 방향은 맞았는데 가장 뒤에 있어야 할 글자가 앞에 오는 그야말로 대환장.
유퀴즈는 요즘에는 셀럽들도 많이 출연해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아랍인을 포함한 외국인들에게도 보기 좋은 토크쇼일 텐데, 저런 식의 자막이 달렸다는 게 너무 창피할 수밖에요. 더군다나 그 간호사의 출연분 예고를 "사우디의 모든 것을 알려드립니다"라며 마무리했는데, 정작 출연자의 아랍식 인사 자막을 괴랄하게 박아놨으니...
그런데... 잘해야 몇 백, 몇 천 나올까 말까 한 제 스레드에서 갑자기 이 포스팅의 조회수가 터집니다???
조회수뿐만 아니라 좋아요, 리포스트, 인용, 댓글의 게시물 활동도 역대급 포스팅이 되었죠.
이 포스팅 때문이었는지, 다른 포스팅 때문인지 그 사정까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자막의 문제점이 제작진의 귀에도 들어갔었나 봅니다.
다행히 일주일 뒤 방영된 본방에서는 그 문제의 자막이 수정되었으니 말이죠.
비록 글자의 기준선을 다소 낮게 잡아서 두 단어에 마지막에 쓰인 글자 ( م )의 비율이 조금 짧아 어색한 것이 옥의 티지만, 예고편에 나왔던 그 대환장의 글자 흩트려 놓기에 비하면 수정되어 나왔으니 천만다행이었던 셈이죠. 저든 누구든 지적하는 사람이 없었다면 본방송도 그 대환장의 자막이 그대로 나왔겠죠?
어쩌다가끔 더 이상 수정할 방법이 없는 최종 결과물만 보고 비평을 하다가 예고편을 보고 지적한 내용이 분방에서 수정되는 걸 보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씁쓸한 경험이었습니다. 좀더 신경쓰고 만들면 좋을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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