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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CC&GU/코로나 19

[종교] 코로나19 사태로 떡밥이 던져진 핫지 (성지순례) 중단의 배경과 역사

둘라 2020. 4. 6.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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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직접 접촉을 차단하기 위해 카바 주위에 차단벽을 설치했음에도 비워둔 그랜드 모스크의 스산한 풍경)


이번 코로나 사태가 확산되면서 사우디 정부는 이란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자신들의 땅에서 발병한 메르스 사태 때도 보여주지 않았던 초강경 예방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우므라 순례 중단시키고, 금요 예배에 시간 제한과 참석자의 건강 상태에 대한 제한을 두더니 결국엔 모스크를 걸어 잠그면서 공식적인 집단예배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이 지점에서 의아한 점은 교회에서 예배드리지 말라는 정부 방침에 종교탄압이라고 맞서면서 개기는 일부 교회와 달리, 종교계가 앞장서서 이를 지지해왔다는 점입니다. 몸에 이상이 있는 사람은 모스크에 예배드리러 나오지 말라는 파트와가 잇달아 나왔었고, 모스크를 걸어잠근 정부 방침에 대해 이러한 조치가 이슬람 율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옹호하기까지 했죠.

2020/03/17 - [GCC/GU/GCC/GU] - [종교] 이슬람이 탄생한 사우디까지!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모스크를 걸어잠그는 걸프지역 국가들


(이제는 더 이상 넓힐래야 넓힐 곳도 없을 것만 같은 그랜드 모스크 확장 프로젝트)


그랜드 모스크를 내려다보고 있는 시계탑에 대해서는 [메카] 현재 세계 두번째로 가장 높은 건물, 아브라즈 알 바이트 참조


급기야 사우디 성지순례부 장관은 방송 인터뷰를 통해 전세계 무슬림들에게 핫지 준비를 서두르지 말고 사우디 당국의 공식 발표가 있을 때까지 상황을 지켜보라며 우므라에 이어 올해의 핫지도 취소될 수 있다는 떡밥을 이미 던져 놓았습니다. 사우디 정부는 두 차례의 확장 프로젝트 (1단계: 1955~1973/ 2단계: 1982~2005)를 통해 그랜드 모스크의 수용능력을 77만명으로 높인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현재 그 3배인 250만명으로 높이기 위한 3단계 확장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을 정도로 핫지와 우므라의 성지순례는 석유와 더불어 사우디 정부의 고정 수입원이자 큰 비즈니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우디 정부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방지 차원에서 그 성수기 장사를 포기할 수도 있다고 성지순례부 장관의 인터뷰를 통해 은근슬쩍 던져놓은 것이죠.

핫지가 무슬림들이 반드시 실천해야 할 다섯가지 의무 중 최고 난이도의 의무인 점을 감안한다면 이를 취소한다고 하는 것이 가능할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이 다섯가지 의무를 다른 시각으로 살펴보면 난이도를 손쉬운 것에서 고난이도로 끌어올리며 이를 공유하는 무슬림들간의 유대감을 강조하는 한편으로 은근히 사막생활에 최적화된 합리적인 면을 의외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함마드가 상인 출신임을 감안한다면... 조건부 딜을 할 줄 아는 종교랄까요?


신앙고백 (샤하다)- 무슬림으로의 첫 걸음을 내딛는 것은 쉽습니다.

기도 (살라)- 메카를 향해 하루 다섯번 드리는 예배. 여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예배 전 바깥 공기에 노출되기 쉬운 신체부위는 깨끗이 닦으라는 것. 청결도 신앙의 일부라고 말한 예언자 무함마드의 어록에서 볼 수 있듯 물이 귀한 사막동네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생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물이 귀하더라도 하루 다섯 번 씻으라고 얘기하는 것과, 예배를 드리려면 몸을 씻고 시작하세요는 분명 다를 테니까요.

자선 (자카트)-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부하는 것으로 십일조보다 부담이 낮은 2.5% 정도죠. 딱히 의무랄 것도 없구요.

단식 (사움)- 라마단 달 한 달동안의 금식. 의무지만 예외없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의무가 아닌, 한 달간의 금식이 불가능한 노약자, 어린이, 환자, 여행객, 임산부 등은 일단 그 기간 중에라도 먹고, 나중에 만회할 수 있도록 여지를 만들어뒀죠. 

성지순례 (핫지)- 경제적 신체적으로 능력이 있는 무슬림이라면 일생에 딱 한번 정해진 기간에 성지순례를 행하라는 것으로 더도말고 딱 한번이라고 규정한 것은 형편이 안되는 이들에게 무리한 성지순례를 강요하지 않으려는 면이 있습니다. 지금과 달리 그야말로 생업을 포기한채 산넘고 바다건너 사막을 가로질러 가야하는 메카로의 여정이 험난 그 자체였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행해야 할 횟수를 대폭 늘렸다면 무슬림들에게도 정상적인 생활 자체가 불가능했을 테니까요.


(1954년의 메카 성지순례 풍경)


특히 오랫동안 준비해서 평생에 딱 한번 행할 성지순례를 올해로 계획하고 있을지 모르는 누군가에게는 사우디 성지순례부 장관의 발언이 청천벽력 같은 얘기겠지만, 우므라 중단이나 모스크에서의 집단예배 금지령이 내려져도 되려 종교계가 이를 적극 지지하고 나서는 것에서도 엿볼 수 있듯,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는 불가능한 얘기가 아니라 최악의 상황에서 종교계의 지지 속에 취할 수 있는 특단의 조치이기도 합니다. 종교탄압을 운운하면서 대놓고 집단예배를 드리며 반정부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일부 교회와 달리 이슬람에서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예언자 무함마드의 어록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어떤 곳에서 전염병이 창궐했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그 곳에 가지 마라. 만약 그 곳에 머무는 동안 전염병이 창궐한다면, 그 곳을 떠나지 마라." (성지순례 중단이 이슬람법이 위배되지 않는다는 근거)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은 반드시 건강한 이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아프면 예배드리러 굳이 모스크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파트와의 근거)


그야말로 현 코로나 사태에 딱 어울리는 어록인데... 성지순례도 좋지만 목숨이 위험할 걸 뻔히 알면서 할 필요도 없고, 씨족간 집단사회 속에서 전염병 확산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알려주는 의학적인 면도 분명 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이 있기에 이슬람 종교계가 성지순례를 중단하고 모스크에서의 집단예배를 금지하는 정부의 방침에 불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살펴봐도 몇 차례에 걸쳐 성지순례가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은 분쟁에 의한 것이었지만요.


시기

요인

중단 대상

내용

930~940

종파 갈등

전체

 시아파의 소규모 일곱 이맘파 분파 집단인 카라마타파가 압바시야 왕조에 반기를 들면서 단순한 종교적 상징에 불과한 순례의 의무를 폐지시키겠다며 한 해에만 3만명 이상의 성지순례객 살해 및 그랜드 모스크의 중심인 카바를 파괴하고 성스러운 물인 잠잠 우물에 무슬림의 시신을 던져 넣는 만행을 저지름.

968

전염병

전체

메카 일대에서 발생한 질병으로 순례객들의 목숨을 뺏아갔으며, 동시에 성지순례객을 싣고 다니던 낙타들이 식수 부족으로 인해 잇달아 죽음.

1000

빈곤

일부

그 해 당시 이집트의 물가가 너무 높아 이집트인들이 성지순례를 위한 비용을 마련할 수 없었음.

1029

불명

일부

동쪽 지역과 이집트에서 온 성지순례객이 없었음.

1030

불명

일부

극소수의 이라크 정지순례객만 메카에 올 수 있었음. 

1039

종파 갈등

일부

정치적인 불안과 종파간 갈등이 맞물리면서 이라크인, 이집트인, 중앙 아시아인, 아라비아 반도 북부 무슬림들이 성지순례를 할 수 없었음.

1099

분쟁

전체

5년 넘게 끌어온 1차 십자군 전쟁의 여파로 아랍지역의 무슬림 통치자들이 연대하지 못하면서 생긴 무슬림 세계에 공포와 치안부재가 맞물려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던 1099년에는 성지순례객이 메카에 갈 수 없었음

1168

분쟁

일부

투르크계 무슬림 왕조인 장기 왕조의 장군이자 살라딘의 삼촌인 아사둣딘 시르쿠가 이집트를 침공하면서 이집트인들이 성지순례를 할 수 없었음. 시르쿠는 이듬해 1월 이집트 침공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전권을 손에 넣었지만 불과 두 달 뒤에 호흡곤란으로 사망하면서 중단된 성지순례는 1년 만에 재개.

1256~1260

분쟁

전체

분쟁의 여파로 타지역의 무슬림들이 메카가 있는 히자즈 지역을 방문조차 할 수 없었음.

1798~1801

분쟁

전체

나폴레옹의 동방 원정 (이집트-시리아 원정)으로 인해 메카로 가는 길이 안전하지 못했음.


참고로 1979년 11월 20일부터 2주간에 펼쳐졌던 그랜드 모스크 점거사건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점거사건이 그 해의 성지순례 (1979년 11월초) 3주 뒤에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우디 정부가 메르스 때도 택하지 않았던 선제적인 예방조치로 우므라를 단계적으로 금지시키고 모스크를 걸어잠궜음에도 불구하고 메카와 메디나는 리야드에 이어 사우디에서 가장 확진자가 많이 발생하는 지역이 되어 지난 주말부터 무기한 24시간 통행금지령이 내려진 상황입니다. 


(통행금지령이 내린 메카의 거리 풍경)


사람들의 모임을 극단적으로 차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럴진데, 단기간에 전세계에서 몰려든 3백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이는 성지순례를 굳이 감행해 이를 통해 코로나19가 확산될 경우 그 파장은 상상하기 힘들테니 말이죠.


(이런 상황에서 전염병이 확산된다면.... 상황은 불을 보듯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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