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므라 순례가 금지됨에 따라 휑해 보이는 그랜드 모스크 전경)
사우디 내무부는 3월 4일 오후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예방차원에서 자국민 및 자국 내 거주하는 무슬림 외국인 거주자들의 우므라 순례와 무함마드 모스크 방문을 전격 중단한다고 발표하면서 지난 2009년 신종 플루, 2015년 메르스가 강타했을 때도 병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잠재적 위험성과 실제로 사망자가 발생했음에도 발동하지 않았던 성지순례 전면 중단이라는 초강경 카드를 뽑아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예방조치를 강조하고, 비자발급에만 제한을 두었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조치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사우디 정부의 태도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연간 1천만명 이상의 무슬림들이 우므라와 핫지를 수행하기 위해 메카와 메디나를 찾으면서 사우디 정부와 경제에 크게 기여하는 고정적인 수입원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말이죠.
단계적으로 진행된 사우디 정부의 성지순례 중단 방침은 기존 전염병과 달리 한국의 신천지, 이란의 시아파 성지순례에서 보여주듯 종교활동으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의 새로운 트렌드와 그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 다음으로 치사율이 높고 부통령과 대통령 자문역 등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최고위층 인사까지 대폭 확진자가 된 이란의 경우 시아파의 성지인 콤이 그 발원지가 되고 있습니다. 성지순례가 성스러운 장소에서 정신과 건강의 치유가 아닌, 전염병 확산의 숙주가 되었으니까요.
사우디가 이란 사태를 통해 이례적으로 선제적인 예방조치에 들어가게 된 것은 2월말 바레인과 쿠웨이트를 시작으로 걸프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확진자의 거의 대부분이 이란을 방문했다가 감염된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이란과의 관계가 대체로 험악한 국가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란발 코로나 확산의 사정권에 들어가 바레인과 쿠웨이트를 시작으로 확진자가 늘어나게 된 이유는 그 나라에 있는 시아파들 때문입니다. 수니파 국가로 간주되는 바레인 인구의 85%, 쿠웨이트 인구의 3~40%가 시아파인 것으로 알려져 있죠. 정치적으로는 직항편도 없을 정도로 교류가 많지 않다고 해도 성지순례를 다녀오는 시아파 국민들이 있기에 바레인과 쿠웨이트가 걸프지역의 새로운 발원지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시아파 성지순례에서 파급된 확진자의 폭증세가 이란과 시아파들에게 한정되어 영향을 끼친다면, 시아파도 순례하는 메카와 메디나 성지순례가 또 하나의 발원지가 될 경우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는 불을 보듯 뻔하기에 사우디 정부는 단계적인 예방조치에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사우디 외무부는 바레인 (바레인의 첫 확진자 중 한 명은 사우디인)과 쿠웨이트에서 확진자가 보고되기 시작하자 27일 그 첫 조치로 외국인 성지순례객들의 신규 우므라 입국 금지 및 한국을 비롯한 코로나 바이러스 주요 발생국가 국민에 대한 입국 금지조치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같은 날 저녁 보다 안전한 성지순례 환경을 제공한다며 그랜드 모스크 내 바닥 청소 및 살균 작업을 하루 4회 실시하기 시작합니다. 하루 4회 청소가 대단하지 느껴지지 않게 느껴지겠지만, 넓은 면적에다 모스크 곳곳에 깔려있는 13,500장의 예배용 깔개를 접고 청소 및 살균 작업을 마친 후 폈다를 4번을 실시하는 것이니만큼 큰 일이기도 합니다.
나날이 갈수록 바레인과 쿠웨이트의 확진자가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자 다음날인 28일에는 GCC 국민들의 우므라 순례 입국을 금지하고, 코로나 주요 발생국가 국민에 대한 신규 방문비자를 중단했습니다.
28일 오만, 29일 카타르에서도 확진자가 보고되는 상황 속에서도 나름의 선제적인 조치덕분에 확진자가 없었던 사우디 조차 결국 3월 2일 사우디 내에서의 첫 확진자가 보고됩니다. 이 확진자 역시 바레인을 경유해 이란을 다녀온 사우디인. 자국민 확진자가 없이 외국인 확진자만 27명 보고된 UAE와 달리, 사우디를 비롯한 쿠웨이트, 바레인, 오만, 카타르에서 보고된 확진자의 거의 대부분은 이란을 다녀온 자국민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물론 UAE에도 이란인 확진자가 있습니다만...(여긴 지난 주말 보고된 이탈리아 확진자의 파급효과가 더 컸;;;;)
사우디로서는 이례적으로 행해진 선제적인 예방조치에도 불구하고 자국 내에서 3월 2일에 이어 4일 두번째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역시 바레인을 경유해 이란을 다녀온 사우디인)가 나오자, 결국 외국인 우므라 입국 금지조치 이후 일주일 만에 자국민과 자국 내 외국인 거주자들의 성지순례마저 금지조치를 내리며 사실상 성지순례를 중단시키는 초강경 대책을 내놓게 되었습니다. 1979년 그랜드 모스크 점거사건 이후 초유의 성지순례 중단사태. 이때는 모스크가 테러범들에게 점령당해서 못했지만, 이번에는.... 정부가 스스로 걸어잠궜죠.
보다많은 성지순례객을 수용하기 위해 계속되는 그랜드 모스크 확장과 고퀄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모스크 일대의 대대적인 개발을 통해 각종 비용을 인상시켜 돈독이 올라 성지순례로 장사해먹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을 정도로 성지순례를 통해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올리고 있는 사우디 정부지만, 이번 코로나 만큼은 종교활동을 통한 전염병 확산이라는 트렌드를 분석해 자신들에게 돌아올 수입원을 끊으면서까지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의 기폭제가 되지는 않겠다는 강한 의사를 보여준 셈입니다. 올해 핫지 기간은 7월 말로 예정된 가운데 이번 중단 조치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지켜봐야겠지만요...
사우디의 초강경 선제조치와 더불어 UAE 샤리아 위원회는 3일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혹은 감염이 의심되는 무슬림들은 모스크에 많은 신자들이 몰리는 금요 예배나 이드 예배 등에 참가하지 말고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서 자가 격리하라는 파트와를 내릴 정도로 자신들의 종교활동이 새로운 기폭제가 되지는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원인이 뻔한데도 애써 무시하며 굳이 단체로 모이는 종교활동을 하다 새로운 확진자를 만들어내는 모 종교와 다르게 말이죠.
그리고 성지순례가 전격 중단된 다음날 그랜드 모스크의 휑한 풍경.
사우디 당국은 우므라 금지령을 내린 다음날 그랜드 모스크 운영과 관련하여 추가된 사항을 발표했습니다.
- 성지 순례 중 일곱 바퀴를 돌아야 하는 카바 주변과 카바를 돈 후 거쳐가야만 하는 작은 언덕인 사파와 마르와 구간은 우므라 금지령이 해제될 때까지 폐쇄
- 예배는 그랜드 모스크 건물 내에서만 가능
- 모스크 내 식음료 반입 금지
- 성스러운 물이라 일컬어지는 잠잠이 담겨있는 컨테이너 접근 차단 예정
- 24시간 개방되던 모스크도 밤 이샤 예배 한시간 후부터 다음날 새벽 파즈르 예배 한시간 전까지 청소작업을 위해 문을 닫음.
하지만, 며칠 뒤인 3월 7일 살만 국왕의 지침에 따라 카바 주변은 일단 개방하기로 했습니다. 카바에는 접근하지 못하도록 장벽을 친 채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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