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0. 리뷰

1) 슈퍼컵에 이어 리그와 국왕컵까지 국내대회 트레블에 도전하던 알힐랄은 홈에서 열린 지난 3년 2개월간 여섯번의 맞대결에서 5승 1무로 진 적이 없고, 국왕컵에서 네 번 맞붙어 진 적이 없는 알타아운과의 국왕컵 준결승에서 이번 시즌 최다 실점인 5실점을 허용하는 굴욕 끝에 0대5로 대패하며 결승진출에 실패했습니다. 다섯골차 패배는 양팀간 맞대결 역사상 최다 점수차 패배이기도 합니다. 부상에서 오랜만에 복귀한 알리 알합시 골키퍼는 명성에 걸맞지 않는 플레이로 5실점을 허용하며 체면을 구겼고, 예상을 깨고 대승을 거둔 알타아운은 처음으로 국왕컵 결승에 진출하는 기념을 토했습니다. 알힐랄은 국왕컵 결승진출은 고사하고 알타아운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당하면서 3일 뒤인 29일 알타아운과 또다시 맞붙게 될 리그 28라운드 경기가 한결 더 부담스럽게 되었습니다. 5대0 참패의 여파로 알타아운과의 홈 2연전에서 2연패할 경우 알나스르와 경쟁 중인 리그 우승도 어려워질 상황이니까요. 알힐랄로서는 15/16시즌 리그와 국왕컵에서 맞붙었던 알아흘리와의 2연전에서 2연패 당하며 알아흘리에게 더블을 안겨줬던 악몽이 떠오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니까요.

2) 충격과 공포의 국왕컵 탈락을 맛봐야만 했던 알힐랄은 경기 다음날 조란 마미치 감독을 전격 경질하고 알파이살리의 페리클레스 샤무스카 감독을 시즌 말까지 초단기 임대영입하는 초강수를 두었습니다. 조란 마미치 감독은 알아인 감독으로 클럽 월드컵까지 마친 후 이번 시즌을 끝으로 계약이 끝나는 주전 선수들과의 재계약에 나서지 않겠다는 구단의 입장에 선수단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 가망이 없다며, 구단과의 계약을 스스로 해지하고 1월말 구단주가 바뀐 알힐랄 감독으로 자리를 옮긴 바 있습니다. 하지만, 약 3개월 간의 알힐랄 감독 생활은 UAE보다 상대적으로 터프한 리그에서 그의 지도력을 의심받기에 충분했습니다. 리그에서는 중요한 시점에 3경기를 말아먹으며 전임 호르헤 제수스 감독이 두 경기 이상 여유있게 벌려놨던 알나스르와의 승점차를 되려 까먹고 알잇티하드 때문에 간신히 매라운드 결과에 희비가 엇갈리며 역전 우승을 허용할 가능성이 여전히 있는데다, 아챔에선 조별예선 선두를 유지하며 그나마 체면을 살렸지만 자이드 챔피언스컵에서 준우승에 그친데 이어 국왕컵에서의 충격적인 참패는 가시방석 같았던 조란 마미치 감독의 입지를 완전히 없애기에 충분했습니다. 알힐랄 서포터즈들은 그간 취임 몇 달만에 사미 알자베르 전사장을 밀어내고 새로운 구단 사장에 올라 호르헤 제수스 감독을 경질하고 조란 마미치 감독을 데려왔던 무함마드 빈 파이살 왕자와 조란 마미치 감독의 동시 경질을 요구해왔었습니다.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감독에서 물러난 후 여전히 사우디에 있는 호르헤 제수스 감독이 한 언론 인터뷰에서 새로운 구단 수뇌부가 자신을 원치 않았다고 밝힌 바도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구단 이사진의 일원이기도 한 억만장자 알왈리드 빈 탈랄 왕자는 페리클레스 샤무스카 감독의 단기 임대에 드는 모든 비용 450만 리얄 (감독 400만 리얄+감독 임대비 50만 리얄)을 부담했으며, 리그 우승 달성시 추가로 100만 리얄을 지불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3) 디펜딩 챔피언 알잇티하드는 리그와 국왕컵 더블에 도전하던 알나스르와의 4강전에서 연장 120분 혈투 끝에 교체 투입되어 연장전에만 결승골 포함 멀티골을 넣은 로마리뉴의 맹활약에 힘입어 4대2 승리를 거두고 2년 연속 국왕컵 우승을 통한 아챔 직행티켓을 노리게 되었습니다. 올시즌 중반까지 강등권에서 맴돌던 알잇티하드는 리그 막판 분위기 반전에 성공하며 2주전 리야드 원정 경기로 치뤄진 리그 경기에서 한창 기세를 올리며 리그 우승에 한발 더 다가가려던 알나스르의 발목을 잡아 우승 경쟁을 혼돈 속에 빠뜨린데 이어 2주만의 리턴 매치에서 또다시 알나스르의 발목을 잡는데 성공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경기 모두 알잇티하드가 먼저 두 골을 넣고 압둘라작 함달라가 두 골을 넣어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놓은 후 알잇티하드의 결승골이 터지는 패턴으로 승패가 갈렸네요. 

4) 4강전의 결과로 리그와 국왕컵에서 우승을 겨룰 듯했던 알힐랄과 알나스르는 나란히 탈락하며 더욱 치열한 리그 우승 경쟁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1. 경기 결과

알힐랄 0:5 알타아운 (4월 26일 19:00/ 킹 사우드 유니버시티 스타디움)

알힐랄

알타아운

 

 (전반 19분) 산드로 마누엘

 

 (전반 22분) 압둘파타 아담

 

 (후반 11분) 세드릭 아미시

 

 (후반 36분) 레안드레 타왐바

 

 (후반 41분) 이브라함 알제바이디



알잇티하드 4:2 알나스르 (4월 27일 19:30/ 킹 압둘라 인터내셔널 스타디움)

알잇티하드

알나스르

 (전반 44분) 알렉산다르 프리조비치

 

 (후반 15분) 파하드 알무왈라드

 

 

 (후반 21분) 압둘라작 함달라

 

 (후반 44분) 압둘라작 함달라

 (연장 전반 6분) 로마리뉴

 

 (연장 후반 1분) 로마리뉴

 



2. 결승전

알타아운 : 알잇티하드 (5월 2일 20:30/ 킹 압둘라 인터내셔널 스타디움)

반응형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중동 | 사우디_아라비아
도움말 Daum 지도
Posted by 아랍지역 전문 블로거 둘라

댓글을 달아 주세요

반응형

0. 리뷰

1) 지난 시즌이 끝난 이후 알힐랄팬들은 멘붕에 빠진 바 있습니다. 2016년 10월 부임 이후 알힐랄의 아챔 준우승을 이끄는 등 알힐랄을 맡으며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서포터즈들의 높은 지지를 얻었지만, 아챔 조별예선 도중 타이밍 안 좋게 경질되었던 라몬 디아즈 감독이 경질 후 3개월 뒤 다른 팀도 아닌 라이벌팀 알잇티하드 감독으로 부임했기 때문입니다. 알잇티하드의 국왕컵 우승으로 인해 알잇티하드를 이끌게 된 라몬 디아즈 감독의 알잇티하드 감독 데뷔전이 공교롭게도 알힐랄로 결정된 건 그야말로 얄궃은 운명의 장난이랄까요....

2) 알나스르의 하이재킹 시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실상 공짜로 오마르 압둘라흐만 영입에 성공한 알힐랄은 영입계약이 마무리되지 못해 팬들 앞에서 가진 시즌 출정식을 통해 소개할 자리를 마련하지 못했던 오마르 압둘라흐만의 입단 환영식을 홈에서 열린 이번 시즌 첫 경기인 오만 알샤밥과의 아랍 클럽 챔피언스 컵 32강 1차전 하프타임에 열었습니다. 

3) 리그 우승팀 알힐랄과 국왕컵 우승팀 알잇티하드의 사우디 슈퍼컵은 지난 2015년 리그 홍보차 사우디를 떠나 QPR의 홈구장인 로프터스 로드에서 해외에서 첫 경기를 펼친 이후 3년만에 다시 한번 로프터스 로드를 찾았습니다. 로프터스 로드는 알힐랄에게 있어 알나스르를 꺾고 첫 슈퍼컵 우승 트로피를 안겨준 뜻깊은 경기장이기도 합니다. 알잇티하드로서는 현재의 슈퍼컵 대회가 처음 도입된 2013년 알파티흐에게 패한 이후 5년만의 정상 도전이기도 합니다.

4) 슈퍼컵 도입 이후 처음 맞붙은 알힐랄과 알잇티하드의 경기에서는 선제골을 넣고 결승골을 어시스트한 카를로스 에두아르도의 맹활약에 힘입어 카림 엘아흐마디가 한 골을 만회하는데 그친 알잇티하드를 2대1로 꺾고 국왕컵 통상 2회 우승 및 창단 이후 공식대회 통산 58회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로프터스 로드에서 열린 두 차례의 슈퍼컵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한 알힐랄은 슈퍼컵 최다 우승팀이 되었습니다. 

5) 지난해 아챔 결승 1차전에서 당한 부상으로 지난 시즌을 접었던 카를로스 에두아르도는 주장 완장을 차고 출전하여 멀티 공격포인트로 팀의 우승에 기여했으며, 알잇티하드에서 알힐랄로 이적한 바 있는 겔민 리바스는 친정팀을 상대로 결승골을 기록했습니다. 알힐랄 입단 이후 첫 공식 데뷔전을 치룬 오마르 압둘라흐만은 알힐랄에 합류한지 이제 10일 밖에 되지 않았음을 감안해도 동료들과의 멋진 호흡을 선보이면서 선발 75분을 소화하며 무난한 데뷔전을 펼쳤습니다. 

6) 알힐랄의 레전드로 숱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지만 알힐랄 감독 당시에는 우승 경험없이 준우승 두 차례로 만족해야만 했던 사미 알자베르 대표는 알힐랄 대표 취임 후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습니다. 오마르 압둘라흐만 역시 알힐랄 입단 10일만에 가진 첫 데뷔전에서 첫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습니다. 한편, 20년 동안 알힐랄에서만 활약한 최고참이자 원클럽맨 무함마드 알샤흘룹은 프로 데뷔 이후 통산 31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습니다. 네... 58회 우승 중 31회 우승이 그의 현역시절에 달정된 것입니다.

7) 슈퍼컵을 중계한 다우리 플러스 채널은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한 바 있는 이집트 축구선수 미도와 첼시의 레전드 존 테리를 객원 해설요원으로 초빙했습니다.

8) 알힐랄이 슈퍼컵 우승을 차지한 후 구단의 명예회원이기도 한 억만장자 알왈리드 빈 탈랄 왕자는 알힐랄의 우승을 자축하는 의미로 100만리얄의 포상금을 쾌척하겠다고 밝혔습니다.

 


1. 경기 결과

알힐랄 2:1 알잇티하드 (8월 18일 17:30/ 로프터스 로드)

알힐랄

알잇티하드

 (전반 35분) 카를로스 에두아르도

 

 (후반 17분) 겔민 리바스

 

 

 (후반 22분) 카림 엘아흐마디 


반응형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유럽 영국 | 런던
도움말 Daum 지도
Posted by 아랍지역 전문 블로거 둘라

댓글을 달아 주세요

반응형


0. 리뷰

1) 알사드는 아챔 조별예선을 앞두고 카타르 항공과의 파트너쉽 계약을 통해 카타르 항공의 로고가 부착된 아챔 유니폼을 공개했습니다.

바르셀로나와의 계약 만기, 카타르 외교분쟁으로 인한 사우디 알아흘리와의 계약 파기 이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던 카타르 항공은 자국팀 알사드와 계약하며 유니폼에 로고를 부착하게 되었습니다.

2) 알힐랄은 알아인전을 통해 사우디 클럽 최초의 전용 홈구장이 된 킹 사우드 유니버시티 스타디움에서 첫 공식 경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25000석 규모의 킹 사우드 유니버시티 스타디움은 2015년 5월 공식으로 문을 열었으며, 지난해 10월 킹 사우드 대학과의 협업 계약을 통해 구단 전용 홈구장이 없는 사우디 클럽들 중 최초로 알힐랄 전용 홈구장으로 사용키로 합의한 바 있습니다.

3) 페르세폴리스는 나스프 까르쉬와의 홈경기에서 고드윈 멘샤의 결승골과 알리 알리푸르의 멀티골로 3대0 완승을 거두었습니다.

4) 나란히 오랜만에 아챔에 복귀한 알와슬과 알사드의 첫 공식 경기 맞대결에서는 후반 막판 집중력을 발휘한 바그다드 부네자의 멀티 결승골에 힘입어 선제골을 지키지 못한 홈팀 알와슬에게 극적인 1대2 역전승을 거두었습니다. 2전 3기 끝에 아챔 무대 데뷔전을 치룬 차비 에르난데스는 바그다드 부네자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하며 극적인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5) 고명진 풀타임. 알라이얀과 에스테그랄의 맞대결에서는 1골 1어시스트 1자책골 끝에 퇴장까지 당하는 좀처럼 보기드문 로드리고 타바타의 원맨쇼 속에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나란히 승점 1점씩을 나눠 가졌습니다. 자책골로 선제골을 허용하고 어시스트로 동점골을 만들어냈으며, 역전골을 기록하며 극적인 승리의 주인공이 되나 싶었던 로드리고 타바타는 후반 막판 퇴장당하며 수적 열세를 자초하여 아쉬운 동점골을 허용하는 빌미를 제공하는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경기를 펼쳤습니다. 고명진은 풀타임을 소화했습니다.

6) 킹 사우드 유니버시티 스타디움 공식 개장경기로 치뤄진 알힐랄과 알아인의 경기는 치열한 접전 끝에 득점없이 승부를 가리지 못했습니다. 심판의 미숙한 경기운영은 명승부의 옥의 티. 알아인의 조란 마미치 감독은 경기 막판 심판 판정에 격렬히 항의하다 퇴장당했습니다.

7) 알힐랄의 명예 회원이자 지난해 11월 숙청의 밤에 체포되어 마지막으로 석방된 사우디의 억만장자 알왈리드 빈 탈랄 왕자가 킹 사우드 유니버시티 스타디움 개장 경기에 귀빈으로 참석해 새 경기장 개장을 축하한다며 200만 리얄을 기부한다고 발표했습니다.




1. 경기 결과

- C조 -

페르세폴리스 (이란) 3:0 나사프 까르쉬 (우즈벡) (2월 13일 17:15/ 아자디 스타디움)

페르세폴리스

나사프 까르쉬

 (전반 20분) 고드윈 멘샤

 

 (후반 21분) 알리 알리푸르

 

 (후반 26분) 알리 알리푸르

 



알와슬 (UAE) 1:2 알사드 (카타르) (2월 13일 19:00/ 자빌 스타디움)

알와슬

알사드

 (전반 26분) 파비오 리마

 

 

 (후반 34분) 바그다드 부네자

  

 (후반 45분) 바그다드 부네자



- D조 -

알라이얀 (카타르) 2:2 에스테그랄 (이란) (2월 13일 18:10/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

알라이얀

에스테그랄

 

 (전반 6분) 로드리고 타바타 (자책골)

 (전반 18분) 압둘라작 함달라

 

 (전반 28분) 로드리고 타바타

 

 (후반 36분 퇴장) 로드리고 타바타

 

 

 (후반 43분) 알리 고르바니 



알힐랄 (사우디) 0:0 알아인 (UAE) (2월 13일 20:25/ 킹 사우드 유니버시티 스타디움)

알힐랄

알아인




2. 리그 순위

C조

순위

경기

승점

득점

실점

득실차

연승/연패

1

페르세폴리스 (이란)

1

1

0

0

3

3

0

3

2

알사드 (카타르)

1

1

0

0

3

2

1

1

3

알와슬 (UAE)

1

0

0

1

0

1

2

-1

4

나사프 까르쉬 (우즈벡)

1

0

0

1

0

0

3

-3

D조

순위

경기

승점

득점

실점

득실차

연승/연패

1

알라이얀 (카타르)

1

0

1

0

1

2

2

0

1

에스테그랄 (이란)

1

0

1

0

1

2

2

0

3

알아인 (UAE)

1

0

1

0

1

0

0

0

3

알힐랄 (사우디)

1

0

1

0

1

0

0

0


반응형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중동
도움말 Daum 지도
Posted by 아랍지역 전문 블로거 둘라

댓글을 달아 주세요

GCC/GU/사우디2018. 1. 28. 19:51
반응형


지난 18일 사우디의 유력인사들이 대대적인 조사를 받고 있는 초호화 구치소로 불렸던 리츠칼튼 리야드가 호텔 전체를 전세낸 정부의 사정 활동으로 인해 그동안의 영업정지를 깨고 2월부터 예약을 다시 받기 시작한 가운데, 24일 사우디 반부패위원회는 지난해 11월 4일 숙청의 밤으로부터 시작된 대대적인 각종 부패행위에 대한 조사 및 당사자에 대한 정산이 수일 내로 종료될 것이라며 성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용의자, 참고인, 목격자 등 조사대상자 350명을 소환하여 조사를 펼쳤으며, 대부분의 대상자들이 현찰, 부동산 및 기타 자산을 납부하는 정부와의 정산에 합의한 가운데 이중 90명은 혐의를 벗고 사면되었으며, 정산에 합의하지 않고 구속 중인 95명은 검찰에 넘기는 것으로 80여일 넘게 계속된 활동을 마무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반부패위원회의 성과 발표로부터 3일뒤 정부와의 정산협상을 계속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억만장자 알왈리드 빈 탈랄 왕자와 로이터간의 독점 인터뷰가 공개되었으며, 보도가 나간지 몇시간 뒤 그도 역시 석방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주말 그와 더불어 MBC 그룹의 주인인 언론재벌 왈리드 알이브라힘과 눈에 가시같았을 칼리드 알투와이지리 전 왕실법원장 ([인물] 사우디를 움직이는 권좌 뒤의 실세, 압둘라 국왕의 최측근이자 왕실법원장 칼리드 알 투와이지리 참조) 등 남아있던 주요 거물들과도 석방, 혹은 정산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반부패위원회의 활동은 사실상 마무리되었습니다.


조금은 수척해진 모습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알왈리드 빈 탈랄 왕자는 반부패위원회가 대상자들을 심문하기 위해 고문을 가해 의료진이 리츠칼튼에 상주하고 있었다는 언론보도를 의식한듯 자신이 머물렀던 스위트룸을 소개하며 조사를 받는 동안 편히 지낼 수 있었다는 소회를 밝혔습니다.



지난 11월 4일밤 대대적인 검거작업에 들어가 조사에 들어간 후 11월 29일 압둘라 국왕의 전아들이자 한때 왕위 계승 순위권에 있었던 무타입 빈 압둘라 왕자가 10억달러 이상을 납부하고 석방된 이래 가장 큰 손인 알왈리드 빈 탈랄 왕자가 석방되는데까지 약 두 달이 걸렸습니다. 당초에는 추정 자산의 70%선에서 정산이 진행될 것이라고 했었던 것과 달리 1억달러의 자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던 무타입 빈 압둘라 왕자의 보석금이 그 10배를 상회하는 10억달러 이상이었단 소식은 아직 정산조건이 밝혀지지 않은 알왈리드 빈 탈랄 왕자의 보석금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일설에는 거의 모든 재산을 정부에 바치고 일정 수준의 수당을 받으며, 해외 출국시에는 해외도피를 방지하기 위해 사우디 정부가 지정한 인사와 동행한다는 굴욕적인 조건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데...)


걸프 국가 역사상 국왕에 취임하기도 전 불과 2년도 채 안되는 기간 동안 잠재적 불안요소였던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자와 압둘라 국왕파를 완전히 제거하고 국방 (사우디 군부 3권의 완전 장악)+경제 (경제개혁의 책임자, 아람코 이사회 의장)+내무 (사정기관 장악)를 완전히 자신의 손아귀에 넣은 전대미문의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는 자신을 수장으로 하는 반부패위원회 활동을 통해 확실한 대국민 메세지를 보내는데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치] 대규모 숙청작업으로 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권력투쟁기 참조)


첫째, 지위여하를 막론하고 법 위에 있는 사람은 없다. (자신이 법이라는게 함정;;;)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왕족, 고위관료, 언론인, 그룹총수 등 기득권 세력은 사우디에서도 설령 죄가 있다고 해도 법 위에 있어 죄를 면피할 수 있는 일종의 특권세력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잇다른 구속 소식을 속보로 전하는 이례적인 언론전과 함께 시작한 이번 숙청의 밤을 통해 이들 역시 죄를 지으면 사정기관의 칼날을 피할 수 없음을 일반 국민들에게도 법 (자신)을 지킬 것을 자신있게 주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둘째, 죄가 있는데 나가고 싶으면 그동안 축적해놓은 대다수의 재산을 토해낼 각오를 하라!

멀쩡하던 양반들이 검찰 수사만 받으면 일단 의식을 잃고 쓰러진 후 얼굴을 가린채 휠체어에 타고 출두하고, 처벌을 설령받더라도 그들에겐 새발의 피만큼이나 위협적이지 않은 우리나라 사정기관의 관례를 떠올려보면, 와병 중인척 연극할 시간도 주지않고 속전속결로 잡아들여 혐의가 있다고 판명될 경우 보유재산 중 70% 이상을 게워내야 석방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이번 반부패위원회의 활동은 석방금의 규모에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만한 대부분의 사우디 국민들에겐 사이다 같은 조치로 보여질 것입니다. 덤으로 막대한 정산금 수입으로 인해 가벼워진 국고(일지 사금고일지 모를...)를 채워넣은 건 덤.


셋째, 관례를 깨고 석방된 인사 중 필요할 경우엔 사안에 따라 활용한다.

일반적으로 숙청된 고위인사들의 경우 재산을 동결하고 해외로 내보냈다가 잠잠해지면 조용히 불러들여 좋은 곳에 모셔두고 잠수타게 만드는 것이 관례였던 이쪽 동네에서 이번 숙청의 밤에 구금된 인사들 중 일부는 적절한 순간에 대중에 노출시키며 일방적인 숙청이 아님을 보여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우선, 청지적으로 가장 큰 위험인물이었던 무타입 빈 압둘라 왕자는 석방 후 한 달여만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공개석상이 바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와 함께하는 연례 경마대회 개회식이었죠. (완전히 개털이 된 무타입 빈 압둘라 왕자 입장에서야 내심 떨떠름 하겠습니다만...)

그리고, 무죄로 석방된 것으로 알려진 이브라힘 알앗사프 전 재정부 장관의 경우엔 석방되자마자 바로 내각 회의에 참가하고 사우디 대표단을 이끌고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 참가하는 등 현역으로 복귀한 상황입니다. 일단은 "확실하게" 킹덤 홀딩스 회장으로 복귀할 것으로 예상되는 알왈리드 빈 탈랄 왕자의 거취가 관건이겠습니다만...


와하비즘에 입각한 원리주의적 보수종교세력을 약화시키고 사회를 개방무드에 올려놓은 채 소수 세력이 쥐고 있던 특권을 깨며 법치주의의 원칙을 강조하고 있는 이번 반부패위원회 활동으로 인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는 사우디 내 자신의 반대세력에게 강력한 경고를 날리며 권력을 집중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우드 왕가를 포함하여 정계, 재계, 언론계, 군부를 막론한 고위인사의 대대적인 구금과 정산 협상을 통해 이들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물론, 자신에데 반대하면 어떤 결과를 만나게 될지 보여준 쇼케이스나 다를 바 없었으니까요. 


이는 역으로 지금은 큰 그림을 잘 만들어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가 잘못된 길을 걷게될 경우 법을 앞세운 전제군주의 철권통치를 하게 될 것으로 보이는 그의 통치 스타일상 중요 권력을 장악할 그를 견제할 세력도 없어 사우디의 운명이 모 아니면 도의 상황을 자초하게 될 위험요인도 분명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경제문제에 있어서도 사우디는 극단적인 사우디제이션 추진에서도 보여지듯 시장경제를 추진하는 것 같으면서도 반시장경제적인 정책을 병행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다, 외교에 있어서도 내부의 반발이 극심할 것으로 보이는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에 산적한 난제들을 풀어나갈지는 두고 봐야겠지만요.

반응형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중동 | 사우디_아라비아
도움말 Daum 지도
Posted by 아랍지역 전문 블로거 둘라

댓글을 달아 주세요

GCC/GU/사우디2017. 11. 8. 21:28
반응형


2017년 11월 4일은 사우디 역사에 길이남을 역사적인 밤이 되었습니다.


11월 4일 밤 리야드 킹 파흐드 국제공항 부근에서 발생한 굉음이 들렸고, 사우디군은 이 굉음이 예멘의 알후씨 반군이 발사한 미사일을 인명피해없이 성공적으로 격추시켰다고 발표하면서 끝나는가 싶었는데... 미사일 사건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살만 국왕은 뜬금없이 국가방위부 장관 무타입 빈 압둘라 왕자와 불과 며칠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사우디-한국 비전 2030에 서명했던 아딜 파끼흐 재경계획부 장관을 경질한다는 칙령을 내리고 나서야 "사익을 위해 공익을 무시하는 연약한 영혼들이 있다"며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이끄는 부패척결 최고위원회를 발족시킨다는 칙령을 내렸으며, 이 칙령을 기다렸다는 듯 자정 무렵 11명의 왕자와 38명의 전현직 장관을 비롯한 고위공무원, 사업가들을 부패, 뇌물수수, 돈세탁 혐의로 잡아들여 리츠칼튼 리야드에 구금하기 시작했으며, 이례적으로 SNS 등을 통해 누가 체포되고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공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사우디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한 번에 일어나기도 힘든 일이 모두 진행되는데는 불과 몇 시간이면 충분했습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한 인터뷰에서 "대대적인 숙청의 밤"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법보다 위에 있는 사람은 없다고 밝혔으며, 구금한 사람들은 공개재판을 받아 법에 따라 엄정한 재판을 거쳐 유무죄 여부를 결정하여 유죄가 드러난 경우 국가재산으로 귀속시키겠다며 불과 4일만에 500여명 이상을 체포하고 1200개 이상의 계좌를 동결하고 그 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11월 4일의 대대적인 숙청작업은 반대파의 대거 숙청을 넘어서서 이미 경제개발위원회 위원장이자 국방부 장관으로 경제와 국방을 손아귀에 넣었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수사 및 체포를 포함한 광범위한 권력을 부여받은 반부패 최고 위원회를 이끌면서 내무와 사우디 군부의 3대축 중 유일하게 손아귀 밖에 있었던 국가방위부 (SANG)를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왕세자 신분으로 국가의 주요 권력을 손에 넣은 GCC 국가 역사상 찾아볼 수 없는 전대미문의 왕세자가 되는데 성공했습니다. 오만의 술탄 까부스가 국방, 외무, 재무 장관을 겸임하고 있는 전제 군주지만, 술탄 까부스는 아버지를 쿠데타로 몰아내고 술탄이 되고나서야 권력 독점이 가능했던 케이스라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아울러 사우디 왕가 내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던 왕위 계승 방식을 철저하게 짓뭉개버린건 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악명높았던 종교경찰의 권한 약화, 사우디 내 콘서트 부활, 여성 운전 및 경기장 입장 허용, 홍해 일대 관광 프로젝트 및 대규모 미래 신도시 건설과 1979년 이전 온건한 이슬람 국가로의 회귀 선언 등 일련의 온건한 개혁정책을 통해 전세계를 놀래켰던 그는 이번엔 전혀 상반된 대대적인 숙청작업으로 다시한번 전세계의 주목을 받는데 성공했으며, 극단적인 일련의 이벤트들은 사실상 2013년까지 존재감도 없었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자신이 벌여온 권력투쟁을 통해 스스로 왕위에 오르게 될 자신의 통치 스타일을 전적으로 보여주는 예고편이기도 합니다.


그가 보여준 스타일은 간단명료합니다. "나를 따르는 자 (70% 이상 젊은 국민)에겐 즐거움을, 반대하는 자 (기득권층을 위시한 반대세력)에겐 응징을!"


왕위를 향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권력투쟁기

위키피디아에도 항목이 없었을 정도로 존재감이 약했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주목을 받고 압둘라 전국왕파와의 악연이 시작된 것은 압둘라 전국왕이 사우드 왕가 내 소수파인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친권체제 강화를 노리던 통치 말기인 2013년 경부터입니다. 


서장- 압둘라 국왕의 친권강화 시도를 저지하며 존재감을 드러내다. (2013년~2015년 1월 23일)

압둘라 국왕이 술탄 전왕세제에서 살만 당시 왕세제로 이어지며 왕가 내 최다 파벌인 수다이리 세븐이 장악하고 있던 국방부에 자신의 우호세력을 갖추기 위해 지명했던 칼리드 빈 반다르 국방부 차관을 지명한지 6주만에 전격 경질시키게 만든 주인공이었거든요. ([정치] 압둘라 국왕, 칼리드 빈 반다르 국방차관을 지명 6주만에 전격 경질, 그리고 그 배경 참고) 

이 이벤트를 통해 의외의 타이밍에 주도권을 잡아 겉으로 보기에 모양새는 좋게 상대방을 숙청하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시키는 그의 투쟁 스타일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1장- 압둘라 국왕의 타계에 맞춰 무끄린 왕세제와 무타입 국가방위부 장관을 제외한 압둘라 국왕파를 제거 (2015년 1월)

그리고 그의 스타일이 빛을 발한 것은 바로 압둘라 국왕이 타계한 2015년 1월 23일 새벽입니다. 비공식적으로 들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가 주도하여 살만 왕세제파가 아들인 무타입 빈 압둘라 왕자에 앞서 압둘라 국왕의 시신을 먼저 점유하는데 성공하면서 반전을 노렸던 압둘라 국왕파의 시도를 차단하고 살만 왕세제를 국왕으로 등극시켰죠. ([정치] 압둘라 국왕 타계, 사우디는 살만 국왕, 무끄린 왕세제 체제로... 참조) 압둘라 국왕과 살만 왕세제간의 서면 약속도 남아있어 무끄린 빈 압둘아지즈 부왕세제는 왕세제로 승격시키고, 예상 외로 그의 아들인 무타입 빈 압둘라 왕자는 국가방위부 장관으로 남겨둔 채 앙숙이었던 압둘라 국왕의 심복 칼리드 알투와이지리 왕실법원장 포함하여 나머지 압둘라 국왕파는 요직에서 전부 경질시켜버렸습니다. ([정치] 살만 국왕의 신속한 체제 개편과 함께 재부상한 수다이리 7형제, 주목해야할 인물은? 참조)


2장- 무끄린 왕세제 사임, 자신을 부왕세제로... (2015년 1~5월)

살만 국왕이 취임하면서 왕세제가 된 무끄린 빈 압둘아지즈 왕자가 그 자리에 오래 있지 못할 것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살만 국왕을 위시한 수다이리 세븐이 장악한 정부 내에서 그나마 자신을 그 자리에 올려줬던 우호세력인 압둘라 국왕파라고 해봐야 무타입 빈 압둘라 국가방위부 장관 밖에 없는데다 공식적인 서열과 상관없이 살만 국왕 체제의 실세가 되어가고 있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의 영향력은 더욱 강해지고 있었으니까요. 결국 무끄린 왕세제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살만 국왕 취임 3개월만에 왕세제직을 스스로 물러나고,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는 부왕세제가 되면서 국왕에 오르기 위한 본격적인 시동을 걸게 됩니다. ([정치] 살만 사우디 국왕, 쌍무함마드 체제로 전면 개편한 후계구도의 의의 참조).    


3장- 커리어를 쌓기 위한 오랜 기다림, 그리고 왕세자로! (2015년 5월~2017년 6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는 자신이 벌인 예멘 알후씨 반군과의 전쟁으로 질퍽거리면서도 국내외적으로 광폭의 행보를 펼치며 서열 3위면서도 서열 2위인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세질보다 많은 주목을 받으며 사실상의 실세가 되어버리고야 맙니다. 미국 등을 위시한 주요 우방국들을 직접 방문하면서 정재계 인사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한편, 스포츠청과 엔터테인먼트청을 신설하면서 국민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쌓아나가기 시작하고 비전2030을 발표하는 등 정적 숙청보다는 왕위 즉위를 위한 속성 트레이닝 코스를 밟게 됩니다. 실제로는 아버지를 국왕에 올려놓은 1등 공신이자 막후 실세지만, 그래도 남들이 보기엔 여전히 혈기좋게 날뛰는 천둥벌거숭이였을테니 말이죠. 워낙 무함마드 빈 살만 부왕세제가 마치 실세인양 나대는 통에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존재감을 잃으면서 주변의 시선에서 묻혀졌던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세질은 결국 왕세질에 오른지 약 2년 만인 2017년 6월 자리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정치]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자의 파격적인 왕세자 지명과 그 배경 참조).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세질이 이끄는 내무부의 핵심기능 중 하나인 범죄 수사 및 형사 사건 전반을 다루는 수사·기소국(BIP)을 국왕 직속으로 개편하면서 내무부의 세력을 약화시킨지 불과 4일만의 일이었습니다. 공개적으로는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세질이 새롭게 왕세제가 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에게 충성서약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등 평화로운 승계작업임을 보여줬지만, 며칠 뒤 서방 언론을 통해 이 이벤트 역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의 작품이라는 것이 밝혀지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우드 왕가에서 유일하게 무장세력에 의한 암살미수 사건을 겪는 등 대테러전 전문가였던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자도, 정작 자신의 사촌동생에겐 허무하게 당하면서 산전수전 겪으며 그동안 일궈왔던 권력을 잃게 되었죠.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자가 대를 이어 유지해왔던 내무부와 자신이 이끄는 국방부에다 사우디 내 3대 군사세력 중 하나인 내무부 산하 국내안전보장국을 손에 획득하게 됩니다.


4장- 압둘라 국왕파의 종말과 잠재적 위험요소 숙청에 나선 숙청의 밤

지금까지는 앞에 있던 두 사람을 하나하나씩 제끼는데 성공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여전히 자신에 대한 반감과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왕가 내 반대세력, 혹은 잠재적 위험요소를 덜어내야 할 부담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미 경험했던 것처럼 한두명을 숙청하는 건 크게 문제가 안되지만, 피를 흘리지 않고 보기좋게 다수의 위험요소를 색출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인데다 잘못 처리할 경우 자신에게도 위험부담이 크니 말이죠. 그래서 택한 방식이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지만, 그 누구도 지금까지 제대로 손댄 적이 없었던 왕가, 혹은 기득권 내 "부패와의 전쟁"입니다.


사우디는 세계 최고의 산유국이지만, 국민은 부유하지 못합니다. 오일붐을 타고 불과 50년새 10배로 폭증한 인구와 국토는 넓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구역은 생각만큼 넓지 않은 탓에 국가는 G20에 포함될 정도로 부유하지만, 정작 국민은 자가주택 보유율이 30%를 밑돌고 자가주택을 보유하지 못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최저생활 수준 이하의 허름한 집에서 거주할 정도인데다 니따까로 대표되는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사우디제이션 정책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10%를 상회하는 실업률로 인해 심각한 부의 불균형 상태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반면 카타르는 국가 총생산은 사우디의 1/3도 안되지만, 자국민 수가 1/100도 안되기 때문에 오히려 높은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것과 비교해봐도...) 더군다나 무함마드 왕세자 말처럼 청년 인구가 70%에 달하는 만큼 1900년대 후반 오일붐을 잘 타서 일찌감치 부를 장악한 극히 소수의 왕가 혹은 기득권층만 배부른 상황이거든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가 숙청했거나 숙청 중인 주요 인사들의 추정 재산규모만 봐도....ㅎㄷㄷ

이런 상황이다보니 부패척결을 빙자한 반대파 숙청 및 재산 압류는 상대적으로 빈곤하고, 이들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던 대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냄과 동시에 유가 하락으로 세입이 줄어드는 가운데 엄청난 자산을 국고에 환원시킬 수 있고, 개혁을 이끌고 있는 자신을 왕족이거나 기득권에 상관없이 죄를 범하면 가차없이 처단할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로 인식시키면서 "부패와의 전쟁"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에 힘입어 대대적인 숙청을 합리화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셈입니다. (그 여파로 GCC 주식시장에서 60억달러가 빠져나갔을 정도로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가시화되자 부패한 개인에 대한 재산만 동결할 뿐, 법인에 대해서는 정상적인 영업을 보장할 거라며 뒷수습에 나서긴 했지만요...)


하지만, 부패와의 전쟁이라는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워 시작한 대규모의 검거작업이 공공연하게 정치적 의도가 다분히 깔린 숙청작업으로 인식되는 것은 그나마 신원이 확인된 인사들의 면면에서 확인됩니다. 재수사에 나서겠다고 밝힌 2009년 젯다 대홍수 사건과 2012년 메르스 창궐 사건과 연루된 인사의 신원은 공개되지 않은 가운데 드러난 인사들은 압둘라 국왕파거나, 혹은 잠재적인 위험요소를 가진 위험인사거든요.


무타입 빈 압둘라 왕자 (전 국가방위부 장관)- 무엇보다 압둘라 국왕파가 50년 넘게 장악했던 국가방위부 (SANG)을 마침내 수다이리 세븐으로 흡수하는데 성공하면서 압둘라 국왕파를 완전히 요직에서 제거하는데 성공! ([정치] 압둘라 사우디 국왕과 그가 위상을 강화시킨 자신의 권력 기반, 사우디 국가방위부 참조)

투르키 빈 압둘라 왕자 (전 리야드 주지사)와 칼리드 알투와이지리 (전 왕실법원장)- 2015년 1월 살만 국왕 즉위와 동시에 내쳐졌던 압둘라 국왕의 아들과 심복. 특히 칼리드 알투와이지리에 대해서는 [인물] 사우디를 움직이는 권좌 뒤의 실세, 압둘라 국왕의 최측근이자 왕실법원장 칼리드 알 투와이지리 참조.

압둘아지즈 빈 파흐드 왕자 (체포에 저항하다 사살당했다는 설과 정부의 부인이 교차되며 생사가 묘연)- 압둘라 전국왕과 나이프 빈 압둘아지즈 전왕세제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세질의 아버지)의 우호세력.

알왈리드 빈 탈랄 왕자 (킹덤 홀딩스 회장)- 사우디 최고의 부자이면서 왕권과는 거리가 멀지만 소신 발언을 꾸준히 해왔으며 바레인에 중도 성향의 뉴스채널을 개국했다가 방송내용을 문제삼은 바레인 당국에 의해 하루만에 폐국된 전례가 있음. 그의 아버지 탈랄 빈 압둘아지즈 왕자는 1962년에 입헌군주제를 주장하는 자유왕자운동을 이끌었다가 왕권 계승서열에서 완전히 밀려났음.


압둘라 전국왕에 의해 부왕세제로 지명되어 왕세제라는 가시방석 위에 내려오면서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감추다시피했던 무끄린 빈 압둘아지즈 왕자는 이 소동 속에 자신의 아들 만수르 빈 무끄린 왕자를 원인불명의 헬기사고로 잃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비극적인 사고 후 살만 국왕이 무끄린 왕자에게 직접 애도를 표하고 체포에 저항하다 살해당한 왕자도 있다는 설로 곤욕을 치루던 사우디 정부는 이틀이 지나 동승했던 탑승객의 신원을 공개하며 공무 중 당한 불의의 사고라고 밝히면서 해외 도피를 시도하다 추락했다는 항간의 설을 부인하기에 나섰죠. 



사우디의 절친이기도 한 이웃 UAE 셰이크 사이프 빈 자이드 부총리 겸 내무부 장관과 셰이크 압둘라 빈 자이드 외교국제관계부 장관을 대표로 하는 조문단을 보내 무끄린 왕자를 위로하는 것으로 보아 만수르 빈 무끄린 왕자의 죽음은 공무 수행 중 순직으로 처리하려는 모양새입니다. 특히, 사살설이 돌고 있는 압둘아지즈 빈 파흐드 왕자와 비교해봐도...요즘 같은 상황에서 해외도피를 시도하다 죽은 거라면 이런 훈훈한 장면이 보여지진 않겠죠. 

하지만, 이 또한 사우디 정부의 의도와 달리 이 역시 반대파들에 대한 무언의 압박이라는 설도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컨트롤 하에 있는 군이 만수르 빈 무끄린 왕자 일행이 타고있던 비행기를 격추시켰고, 반항하면 이렇게 묻혀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시범 쇼케이스랄까요.


대규모 숙청작업과 동시에 제정된 테러방지법

사우디 정부는 법 위에 그 누구도 있을 수 없다며 시작한 시끌법적하게 시작한 대대적인 숙청작업으로 인해 묻힌가운데 그 다음날 무시하지 못할 법을 하나 발표했습니다. 테러와 연루된 죄질에 따라 최대 사형에 처할 수도 있는 새로 강화된 테러방지법이 섬뜩한 이유는 "국왕 (및 왕세자!!!)를 공공장소에서 비방하거나 모욕하다 적발될 경우 징역 5~10년형에 처할 수 있다"는 모욕죄 조항이 추가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왕권에 반대하는 자에 대해서는 법에 따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처벌할 수 있는 법적근거를 추가로 마련한 셈입니다.

  


11월 4일 숙청의 밤을 통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경제, 사우디 군부 완전체 (사우디군+국내안전보장국+국가방위부의 삼위일체), 내무부의 핵심 권력을 완벽하게 장악하는데 성공했고, 합법적으로 잠재적 위험인사들을 처단하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비난하는 반대세력을 처벌할 수 있는 법적근거까지 확보하면서 전제군주로 가는 길을 성공적으로 닦았습니다. 아울러 테러방지법에 국왕/왕세자 모욕죄를 추가한 것은 앞으로 그가 추진해나갈 정책이 사람들의 대대적인 반발을 살 수 있는 충격과 공포의 정책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공식적인 부인 속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이스라엘 방문설 보도 등으로 설득력을 얻고 있는 설이 이스라엘과의 전향적인 관계 재정비죠. 


뜬금없는 타이밍에 주도권을 잡아 상대를 장악하는 방식이 권력투쟁에서는 큰 효과를 보고 있는 것과 달리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에게 위협감을 느끼고 있는 사우디 왕자들에게 정치적 망명지를 제공하겠다며 조롱하고 있는 알후씨 반군과의 전쟁과 카타르 고립사태에서 보듯 대외 정치에서는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과연 그는 다음엔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게 될까요?

반응형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중동 | 사우디_아라비아
도움말 Daum 지도
Posted by 아랍지역 전문 블로거 둘라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