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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거셈 술레이마니 암살사건을 보도한 사우디와 UAE 언론의 미묘한 차이를 보면서...

둘라 2020. 1. 8.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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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3일 미군에 의해 자행된 이란 혁명수비대 산하 최정예부대 예루살렘군의 사령관이자 이란의 서열 2위인 거셈 술레이마니 암살 사건으로 인해 새해 벽두부터 세계정세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유족인 그의 딸에게 "이란의 모든 국민이 복수할 것"이라고 얘기한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는 6일 참석한 추모식에서 이례적으로 눈물을 보이더니 국가안보위원회를 찾아가 "비례적, 직접적인 공격으로 보복하라"는 구체적인 수위를 지시하기에 나섰고, 여러 장소를 순회하며 그의 고향까지 길게 이어진 운구행렬은 경제위기로 비롯된 반정부 여론을 순식간에 반미 여론으로 치환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격한 감정은 그의 고향에서 결국 30명 이상 사망하고 200명 가까이 부상당해 일시 중단될 정도였으니 말이죠. 이슬람 초기 시아파의 출현으로 이어진 카르발라의 참극을 방치했다는 원죄의식에 의해 후세인 순교일에 맞춰 아슈라 참회의식을 매년 치르는 이란인들 중 일부는 그의 죽음에서 후세인의 순교를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사태의 추이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르기에 여기에서는 호르무즈 해협을 놓고 이란과 대립 중인 대표적인 두 나라, 사우디와 UAE 영어 신문의 1월 4일자 1면 헤드라인을 통해 이번 사태를 보는 미묘한 시선의 차이를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우선, 이란과 가장 적대적인 국가라고 볼 수 있는 사우디 영어신문의 1면.


사우디 영어신문은 아주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통해 그의 악행이 끝났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끌던 예루살렘군은 이란 밖에서 중동 각지의 사아파 민병대와 무장조직, 친이란 정치세력을 지원하며 이란 영토 밖에서 이란의 역내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각종 대리전의 배후세력이란 점에 포커스를 맞췄습니다. 오늘날 이란에 대한 사우디의  노골적인 적대감은 이란이 1979년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을 통해 신정일치제 국가가 된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세속주의 정치세력인 사우드 씨족과 극단주의 세력인 와하비스트들이 결탁하여 건국된 사우디의 역사는 종교세력의 지나친 정치세력화를 원치않는 사우드 씨족과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려는 종교세력간 대립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사우디 건국과정에서 큰 활약을 펼쳤던 이크완을 해체해 왕실 친위대로 흡수시키는 등 보수적인 종교색을 지우기에 바빴던 사우디로서는 민심을 등에 업고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이란의 이슬람 혁명이 탐탁치 않았을 상황에서 불과 몇달 뒤 이크완의 잔존세력이 이란의 성공에 영감을 받아 메흐디 재림을 앞세워 성지 그랜드 모스크를 2주간 점거한 사건은 그야말로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이란의 혁명이 여차하면 자신들에게 닥칠 수도 있다는 경고였으니까요. 이 사건의 여파로 국내적으로는 사회를 문화의 암흑기라 불리는 강경보수화시켜 버렸고, 대외적으로는 이란의 역내 영향력 강화 및 무슬림 형제단 활동 등에 대해 테러조직이라는 색채를 입히며 노골적인 거부반응을 보여왔습니다. 그런 상황이니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원치는 않지만, 이란의 대외작전을 이끄는 그의 죽음이 내심 반가울 수 밖에요. 미국은 직접 이해 당사자가 될 수 있는 사우디에게도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고 하죠. 

2019/09/24 - [GCC/GU/사우디] - [사회] 사우디 현대사의 볼드모트, 그리고 종교경찰의 흥망으로 본 사우디 사회의 격변사!!

더이상 그의 악행이 없을 것임을 강조한 사우디 언론과 달리, 사태 악화를 원치 않는다는 의미를 담은 "지혜의 목소리"라는 헤드라인에서 불 수 있듯 UAE 언론은 보다 건조한 반응을 보입니다. 물론, UAE 입장에선 부르즈 칼리파 개장 10주년이 더 큰 뉴스이기도 했습니다만...



호르무즈 해협 분쟁의 한 축이기도 한 그의 죽음에 사우디와 달리 건조한 보도가 나온 것은 왜일까요?


이란에 대해서는 적어도 적대적인 한 목소리를 내는 사우디와 달리 UAE는 사우디에 동참하는 한편으로는, 내부적으로는 이란에 대한 다른 목소리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UAE는 사우디와 달리 경제적으로 이란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까요. 아이러니하게도 UAE가 이란의 최대 교역국이라는 점.  


2017년 이란의 5대 수출입국

 

수출

수입

국가명

전체 수출규모 중

국가명

전체 수입규모 중

 1위

중국

27.5%

UAE

29.8%

 2위

인도

15.1%

중국

12.7%

 3위

대한민국

11.4%

터키

4.4% 

 4위

터키

11.1%

대한민국

4% 

 5위

이탈리아

5.7%

독일

4%

출처: 

1.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294379/iran-main-export-partners/ (수출)

2.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294389/iran-main-import-partners/ (수입)



아부 무사 영토 분쟁 등 외교적으로 사우디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아부다비와 달리 두바이는 오래전부터 페르시아 상인들이 거주하는 등 경제적으로는 이란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오늘날 두바이의 옛모습을 볼 수 있는 관광지로 남아있는 알파히디 역사지구 내 바스타키야가 석유 발견 이전 페르시아 상인들의 거주지란 점이  이를 상징하죠 ([두바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했다가 유적지로 남은 바스타키야의 한적한 주말 풍경 참조)



두바이와 이란을 잇는 교역의 중심은 바로 두바이 크릭에서 볼 수 있는 전통배 도우 (dhow)입니다. 스무시간 가까이 호르무즈 해협을 넘어 이란 남부의 항구도시에 물자를 공급해주던 도우 무역규모는 겉보기보다 생각 외로 커서 2017년 12월 25억달러에 이르렀던 월별 교역규모가 미국의 경제제재가 재개되면서 2018년 1월 줄어든 교역량이 15억달러였다니 말이죠.[각주:1] 두바이는 도우 무역과 은행을 통해 대외교역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던 이란에 물건과 외환을 공급해왔습니다. UAE의 교역규모가 상대적으로 크게 느껴지는건 정상적인 수입이 어려운 이란과 같은 국가에 물건을 대주는 중계무역의 허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 등으로 인한 변수가 생기면 교역규모가 요동치는 단점도 있습니다만...) 


두바이 크릭 한켠을 가득메운 도우와 크릭을 마주보고 자리한 이란 국영 멜리 은행 건물이 두바이와 이란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풍경입니다.



이란 국영 멜리 은행은 UAE가 건국되기도 전인 1969년 두바이에 지점을 개설하고 50년 넘게 운영해오고 있거든요.


역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이란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온 두바이로서는 아부다비를 따라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이란과의 대립과 분쟁이 길어지는 것이 내심 달갑지는 않습니다. 두바이 통치자 셰이크 무함마드의 이란 관련 인터뷰를 보면 관계 정상화의 바램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이란이 UAE의 태도에 아쉬움을 보이는 것도 이런 관계가 반영된 것이죠. 



위의 도표에서 이상한 점을 못 느끼셨나요? 네. 바로 우리나라 이야기입니다.


이란하면 과거 대장금의 선풍적인 인기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겠지만, 우리나라 역시 이란과 비정치적인 면에서 나름 깊은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우리나라는 많은 분들에게 알려져있지 않지만 중국에 비해 교역규모에서는 큰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5대 수출입국가 모두에 들어가는 유이한 나라 중 하나니까요. 1990년대 중반 이후 한때 이란의 국민차였던 프라이드 등 기아자동차 계열의 차량 생산 라이센스를 받아 이란에서 직접 생산하여 판매해왔고, 미국의 양해를 얻어 이란과의 교역은 계속되어 왔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란으로 직접 수출하지 않고 두바이를 경유해서 우회수출하는 제품도 많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실제 대이란 수출규모는 우리나라의 공식 수출실적으로 잡힌 것보다 더 많이 공금해오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정치적으론 딱히 각별하지 않더라도 그 외의 분야에선 몇 십년 동안 교류가 계속되어 왔던 입장이기에 최근 우리나라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이란이 섭섭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도 일견 이해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란에 양해를 구한 뒤 미국엔 동참하지 않겠지만 호르무즈 해협에 자위대를 보내겠다고 발표했던 일본이 거셈 술레이마니 암살 이후 사태 급변에 당황하고 있다고 하죠?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호르무즈 해협 분쟁 개입은 이란과의 교류가 크지 않았던 일본보다도 더 신중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1. https://www.thenational.ae/uae/government/dubai-s-historic-dhow-trade-to-iran-feels-pressure-from-us-sanctions-1.885424#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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