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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사우디 역사상 첫 여성 대사 겸 부녀 주미 대사 탄생과 그 배경

둘라 2019. 2. 25.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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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인도-중국으로 이어지는 아시아 순방 (당초에는 한국과 일본을 포함할 것으로 알려졌었지만 다음 기회에...)을 마치고 복귀한 후 살만 사우디 국왕이 처음으로 열리는 아랍-EU 정상회담에 참가하기 위해 이집트를 방문하는 동안 국왕 권한대행을 맡게 된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왕세자는 국왕 권한대행이라는 권한을 이용해 직권으로 3개의 칙령을 잇달아 발표했습니다. 첫째가 현 주미 대사이자 친동생인 칼리드 빈 살만 알사우드 왕자를 국방부 차관으로 불러들이고, 그의 후임으로 사우디 역사상 첫 여성대사인 리마 빈트 반다르 빈 술탄 알사우드 공주를 주미대사에 임명한 것입니다. 셋째는 예멘 전쟁에 참전 중인 군인들에게 보너스 지급 명령...


2017년 4월부터 주미 대사를 역임했던 칼리드 빈 살만 왕자의 복귀는 자말 카쇼끄지 살해사건으로 인해 어느 정도 예상되던 바였습니다. 자말 카쇼끄지가 살해되고 며칠 뒤 사우디는 그를 구속하거나 살해한 것과 거리가 멀다며 사우디의 개입설을 부인했지만 다음날 황급히 사우디로 돌아갔고, 그 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로부터 자말 카쇼끄지를 가능한 빨리 침묵시키라는 명을 받았던 그가 자말 카쇼끄지에게 필요한 서류를 떼려면 안전한 주이스탄불 사우디 영사관으로 갈 것을 권고했다는 녹취록과 기밀 정보들이 유출되면서 주미 대사의 역할을 더이상 수행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그를 장관급 국방부 차관으로 불러들인건 자말 카쇼끄지 살해사건과 관련된 각종 의혹으로부터 그를 보호하는 한편, 자신이 겸직 중인 국방부 장관으로서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라는 세간의 평가도 있습니다. 국방부 장관을 맡고 있음에도 군사교육이나 군경험이 없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달리, 칼리드 빈 살만 왕자는 사우디와 미국에서 체계적인 군사 및 파일럿 교육을 받았으며, 등부상으로 인해 더 이상 전투기를 몰 수는 없지만 1000여시간 이상의 비행경력과 예멘 내전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참전 용사로서 형보다는 군부를 이해하고 다잡는데 적임자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벌려놓은 판이기는 해도 정치, 경제, 군사 등 다방면에 책임을 지고 있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로서는 벌려놨다가 수습못하고 있는 예멘 내전과 더불어 군부의 교통정리에 집중할 심복이 필요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의 권력강화 과정에서 기존에 국방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살만 국왕파), 왕실 친위대 국가방위부 (무타입 빈 압둘라 왕자/압둘라 전국왕파), 내무부 산하 치안군 (무함마드 빈 나이프 전 왕세질파)의 3개 조직으로 황금분할되었던 군 조직을 자신의 직속으로 만들면서 세력기반으로 삼았지만, 자신의 세력강화 및 경제 다변화 등 산적한 문제들 속에서 직접 군부까지 재정비하는 것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으니 말이죠. ([정치] 대규모 숙청작업으로 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권력투쟁기 참조)


칼리드 빈 살만 왕자의 국방부 차관 임명으로 공석이 된 제11대 주미 대사에 임명된 이는 사우디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사가 된 리마 빈트 반다르 빈 술탄 알사우드 공주입니다.



1975년생인 그녀는 1983년부터 2005년까지 22년간 주미대사를 역임하면서 한시대를 풍미하며 사우디의 최장수 주미대사로 기록된 제6대 주미 대사 반다르 빈 술탄 왕자의 딸로 사우디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사이자 역사상 최초의 부녀 주미 대사가 된 셈입니다. 반다르 빈 술탄 왕자는 주미대사 역임 후 압둘라 국왕 시절 국가안보위원회 사무총장과 사우디 정보국장 등을 역임했으며, 살만 국왕 즉위와 함께 일선에서 은퇴한 바 있습니다. ([정치] 압둘라 사우디 국왕, 반다르 빈 술탄 사우디 정보국장 전격 교체와 그 의의 & [사회] 사우디의 국가정보원, 사우디 정보국 "무캇바라" 참조)



신임 주미 대사가 된 리마 빈트 반다르 빈 술탄 공주는 주미 대사를 역임했던 반다르 빈 술탄 왕자를 따라 10대부터 20대까지 장기간 미국에 체류하며 미국사회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사우디 여성의 사회진출이 본격화되기 이전부터 민간 부문과 공공 부문을 오가며 해온 다양한 활동으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조지 워싱턴 대학 박물관학 학사인 그녀는 전공을 살려 파리에 있는 아랍 세계 연구소와 워싱턴에 있는 아서 M 새클러 갤러에서 인턴을 경험하고 시카고에 있는 필드 자연사 박물관 등지에서 경험을 쌓은 후 아버지가 주미 대사에서 물러난 2005년 사우디로 돌아와 당시만해도 낯설었던 여성 전용 체육관과 스파를 공동으로 설립하고, 다양한 럭셔리 유통 업체의 CEO를 맡으면서 기업가로서는 물론 노동부와의 협업하에 사우디 여성의 유통업계 및 노동시장 진출을 주도했습니다. 특히 하베이 니콜스 리야드를 운영하면서 사우디 여성들의 취직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이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사내에 보육시설을 도입하고 여성들의 운전이 금지되었던 당시에는 직원들을 위한 교통편을 제공하는 등의 활동을 해왔습니다. 자신의 기업가 활동을 바탕으로 그녀는 세계은행이 2017년 발족한 여성기업가기금 이니셔티브 (We-Fi: Women Entrepreneurs Finance Initiative) 자문 위원회 위원이기도 합니다.


그와 동시에 2016년부터 사우디 스포츠청의 계획개발국 부국장을 맡으면서 사우디 내 여학교에 그동안 금기시해왔던 체육교육을 포함시켰으며, 국제올림픽위원회의 여성 스포츠 위원회 위원이자 사우디 올림픽 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으며, 사우디 내 최초의 유방암인식협회 설립에 참가하고 다양한 활동을 펼치면서 2014년 포브스지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있는 아랍여성 200인과 사우디 내 영향력 있는 아랍여성에 선정되는 등 사우디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칼리드 빈 살만 왕자를 리야드로 복귀시키고 리마 빈트 반다르 빈 술탄 공주를 사우디 역사상 최초의 여성대사로 지명한 것은 자말 카쇼끄지 살해사건과 관련하여 외교부 장관에서 외교담당 국무장관으로 일선에서 후퇴시킨 아딜 주베이르 국무장관에 이어 칼리드 빈 살만 왕자를 외교무대 최일선에서 거리를 두고, 전례없는 사우디 여성인권 강화정책이 잇달아 발표되는 와중에서도 정작 사우디 여성 인권운동가에 대한 박해가 자행되고 있다는 반 사우디 정부 성향 매체나 단체들의 비판을 무마시키기 위한 노림수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과거 미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에서 여성이 국회에 진출하는데 200년이 걸렸다면, 사우디는 (여성에 대한 인권탄압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건국한지 100년이 채 안되어 슈우라 위원회에 진출했다고 밝힌바 있고, 사우디 정부 비판 기사라면 사족을 못 쓰는 반 사우디 정부 성향의 서구매체조차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첫 여성대사 지명에 대해서는 생각외로 별 말이 없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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