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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걸프컵 통산 네번째 우승에 네번째 도전하는 사우디와 걸프컵 우승 경험이 없는 유이의 팀, 바레인과 예멘 중 바레인이 24회 걸프컵 결승전에서 맞붙게 되었습니다. 준우승만 네 번 차지한 바레인은 첫 우승을 위한 다섯번째 도전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외교분쟁 중인 카타르에서 열리는 대회에는 참가하지 않겠다고 보이콧했다가 대진표까지 다 짜 놓은 개막 2주여를 남겨두고 급참가 의사를 밝히면서 출전하게 두 팀의 맞대결이기도 합니다. 이들의 급작스런 보이콧 번복으로 인해 대회 티켓을 팔던 주최측은 티켓 판매를 보류하고 재판매에 들어갔으며, 기 구매자는 추가 요금없이 교체해주기도 했습니다. 2017년 6월 외교분쟁 발발 이후 클럽이 아닌 국대 차원의 카타르 입성은 처음있는 일이어서 경직된 관계 개선의 신호탄이 아닐까..라는 기대감을 안겨주고 있죠.

2019/11/13 - [야!쌀람!풋볼/걸프컵&기타] - [2019 걸프컵] 그야말로 우여곡절 끝에 반쪽 대회에서 정상적인 대회 개최가 확정돼!

2) 사우디와 바레인의 걸프컵 맞대결에서는 18번 맞붙어서 바레인을 상대로 10승 4무 4패 31득점 18실점을 기록중인 사우디가 압도적인 우위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3) 당초 걸프컵 결승전은 칼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경기 하루 전날 경기장은 보다 작은 규모의 압둘라 빈 칼리파 스타디움으로 바뀌었습니다. 개최국인 카타르가 사우디에 져서 결승진출에 실패한데다 개최국 카타르와 적대적인 두 국가의 맞대결이어서 관중동원이 어려워서 그런가 싶기도 했지만, 걸프컵이 끝난 후 이어지는 클럽 월드컵 일정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당초 클럽 월드컵을 통해 개장경기를 펼치려고 했던 카타르의 세번째 월드컵 스타디움인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이 일정에 맞추기 위해 경기장 자체는 완공했지만, 경기를 유치하기 위한 라이센스 취득이 지연되면서 개장 일정이 내년으로 밀려버리면서 대체 구장으로 칼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이 급투입되었기 때문입니다.

4) 결승전에는 개최국 카타르 통치자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싸니가 참석해 끝까지 직관한 후 시상자로 나섰습니다.


5)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탈락 직전 극적으로 4강에 진출해 4강전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결승에 진출한 바레인은 상대전적에서 열세인 사우디를 상대로 무함마드 알루마이히의 결승골을 끝까지 잘 지켜 맹공을 퍼부은 사우디를 상대로 1대0 승리를 거두고 걸프컵에서 2004년 이후 15년만에 사우디를 꺾은 바레인은 걸프컵에 참가한 이래 다섯번째 우승 도전만에 첫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통산 네번째 우승에 네번째 도전한 사우디는 전반에 살림 알도사리가 얻어낸 페널티킥을 키커로 나선 주장 살만 알파라즈가 크로스바를 강타한 실축으로 놓쳤던 것이 결국 패인이 되었으며, 통산 네번째 우승은 다음 기회로 미뤄야만 했습니다.

6) 대회 최우수 선수는 사우디의 압둘라 오타이프, 최우수 골키퍼는 사우디의 파와즈 알까르니가 선정되었으며, 득점왕은 이변없이 조별 예선에서 탈락한 UAE의 알리 마브쿳이 차지했습니다. 페어플레이상은 개최국 카타르에게 돌아갔습니다.

7) 카타르는 걸프컵을 무사히 마친데 이어 3일 뒤부터는 알사드와 이엥겐 스포르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클럽 월드컵에 돌입하게 됩니다. 



1. 결승전 결과

바레인 1:0 사우디 (12월 8일 19:00/ 칼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

바레인

사우디

 (후반 24분) 무함마드 알로마이히

 



2. 대회 결과

1위 바레인 (첫 우승)

2위 사우디

공동 3위: 이라크, 카타르

최우수 선수: 압둘라 오타이프 (사우디)

득점왕: 알리 마브쿳 (UAE, 5골)

최고 골키퍼: 파와즈 알까르니 (사우디)

페어플레이상: 카타르



3. 다음 대회 개최지- 이라크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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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챔 결승 진출팀을 결정할 서아시아 지역 결승전에서 사우디 리그와 카타르 리그를 대표하는 알힐랄과 알사드가 만났습니다. 알힐랄은 그 어느 팀보다 아챔 우승을 노리고 있으면서도 현 체제에서의 아챔에서는 우승 경험없이 결승에 두 번 진출하여 두 번 다 준우승에 만족했던 반면, 알사드는 2011년 결승에 처음 출전하여 우승을 차지한 바 있습니다.

2) 양팀간 맞대결에서는 7승 3무 2패로 알힐랄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가장 최근의 맞대결인 2015년 아챔 조별예선에선 1승 1패로 우위를 가리지 못했습니다. 알사드는 토너먼트 경기를 앞두고는 리그 일정을 조정하면서 아챔에 집중해 온 반면, 알힐랄은 예전과는 다르게 리그와 아챔을 병행하는 타이트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홈경기를 치루는 알사드는 지난 주말의 리그 경기를 미루고 훈련에 집중했고, 알힐랄은 지난 목요일 리그 경기를 치룬 후 카타르 원정에 나섰습니다.

3) 감독 데뷔 이후 리그 4연승을 이끈 차비 에르난데스 감독은 카타르 리그가 선정한 8월과 9월의 감독에 선정되었습니다.

4) 남태희, 정우영, 장현수 풀타임. 알힐랄은 카타르 원정에서 바펫팀비 고미스가 선제 자책골과 만회골을 넣으면서 경기를 원점으로 돌린 후 심판 판정에 대한 거친 항의로 불과 1분만에 경고누적으로 알사드 수비수 압둘카림 핫산의 퇴장으로 허술해진 알사드 수비벽을 제대로 털면서 1대4 대역전승에 원정 다득점 승리라는 값진 수확을 올리며 결승진출의 유리한 고지에 올랐습니다. 4강에서 맞붙은 남태희, 정우영, 장현수는 풀타임을 소화하며 활약했으나,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5) 바펫팀비 고미스는 아챔 역사상 최초로 한 경기에서 자책골과 만회골을 기록한 선수가 된 후, 문전 쇄도로 상대 수비를 압박하며 추가골이 된 살렘 알하즈리의 자책골을 유도하면서 자신의 실수를 완전히 만회하고 팀의 다득점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선제골 상황에서 바펫팀비 고미스의 자책골에 어느 정도 기여했던 세바스티안 지오빈코는 바펫팀비 고미스의 만회골과 알리 알블라이히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면서 자신의 실수를 만회했으며, 그와 교체되어 투입된 레전드이자 고인돌 무함마드 알샬훕은 교체투입 10분만에 승부에 쐐기를 박는 네번째 골을 넣으면서 클래스를 과시했습니다.

6) 알사드는 여전히 아챔 무대에서 위력을 과시하지 못하고 있는 바그다드 부네자와 아크람 아피프의 쌍포가 침묵을 지킨 가운데 경기 주도권을 빼앗기던 시점에서 심판 판정에 대한 거친 항의로 퇴장을 자초한 압둘카림 핫산의 마인드 컨트롤 실패가 이번 시즌 아챔 홈경기에서의 첫 패배와 더불어 차비 에르난데스 감독 데뷔 이후 최다골차 패배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리그나 국대에서와 달리 아챔에서만큼은 닌자모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바그다드 부네자마저 경고 누적으로 2차전에서 결장하게 되면서 차비 감독의 머릿 속은 더욱 복잡하게 되었습니다.

7) 카타르 통치자인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싸니가 경기장을 찾아 두 팀의 경기를 직관했는데..... 이런 참패를 보고 싶지는 않았겠죠;;;;

8) 여전히 끝을 모르는 외교분쟁이 이어지고 있는 당사자 대표 클럽 간의 경기였지만, 핫산 알하이도스가 태클로 쓰러진 후 다리에 쥐가 나자 알힐랄 선수들이 쥐를 풀어주려고 애쓰고, 무함마드 알샬훕이 태클로 쓰러진 후 다리에 통증을 호소하자 알사드 선수들이 다가가 일으켜 세우는 등 양팀 선수들은 멋진 스포츠맨쉽을 보여주었습니다.

9) 오늘 경기의 주인공이 된 바펫팀미 고미스는 9골을 기록하며 알와흐다 소속으로 9골을 기록했던 레오나르도 수자와 득점 공동 선두에 올라 득점왕을 노려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10) 알힐랄은 토너먼트 진출 후 승리한 세 경기 (알아흘리와의 16강 1차전, 알잇티하드와의 8강 2차전, 알사드와의 4강 1차전) 에서 선제골을 실점한 후 역전승 (각각 2대4, 3대1, 1대4)을 거두는 저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1. 1차전 결과

알사드 1:4 알힐랄 (10월 1일 18:30/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

알사드

알힐랄

 (전반 16분) 바펫팀비 고미스 (자책골)

 

 

 (전반 34분) 바펫팀비 고미스

 (전반 35분 퇴장) 압둘카림 핫산

 

 

 (전반 45분) 알리 알블라이히

 

 (후반 15분) 살렘 알하즈리 (자책골)

  (후반 22분) 무함마드 알샬훕



2. 2차전 일정

알힐랄 4:1 알사드 (10월 22일 19:15/ 킹 사우드 유니버시티 스타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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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CC/GU/GCC/GU2019. 6. 28. 23:46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에 참가하는 길에 1박 2일 일정으로 한국을 처음 찾았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순방을 즈음하여 제 블로그 방문객수가 평상시보다 몇 배나 늘어났는데, 유입 검색어를 보니 "빈 살만 왕세자 부인", "무함마드 빈 살만 부인", "사우디 왕세자 부인" 등의 검색어가 유독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그의 부인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다룬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내용도 없으면서 클릭질 유도를 위해 제목으로 낚는 일부 포스팅들과 함께 검색된 탓이었겠죠. 그래서... 한 번 찾아봤습니다. 


현재 무함마드 빈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왕세자는 지난 2008년 사라 빈트 마슈후르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공주와 결혼하여 슬하에 2남 2녀를 두고 있습니다. 

살만 빈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아버지의 이름을 따왔고...)

마슈후르 빈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장인 어른의 이름을 따왔습니다...)

파흐다 빈트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누라 빈트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두 사람의 이름에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가 공통적으로 들어간 것에서 볼 수 있듯 두 사람은 사촌지간입니다. 그의 장인 어른인 마슈후르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왕자 (1942년생)는 1935년생인 아버지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의 이복동생인 셈이죠. 차기 왕위 계승자를 결정하는 충성 위원회 (Allegiance Council) 회원이기도 한 마슈후르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왕자는 전임 압둘라 국왕이 재임 중이던 2009년 8월 The Washington Institute for Near East Policy에 의해 노쇠한 압둘라 국왕 사후의 잠재적인 왕위 계승자로 여겨진 바도 있습니다 (원문 참조) 10년이 지난 지금은 사돈이자 이복형이 왕이 되고, 당시엔 듣보잡 왕자 중 하나에 불과했던 그의 사위가 실세가 되었으니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하나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 결혼식 사진. 가장 왼쪽이 장인 마슈후르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왕자다.)


하지만,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가 사라 빈트 마슈후르 공주와 결혼하여 슬하에 2남 2녀를 두고 있다는 사실만 텍스트로 알려져있을 뿐, 정작 그 주인공인 사라 공주는 공식석상에 한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고, 흔한 사진 한 장 없어서 일각에선 그가 결혼한게 맞긴 맞냐? 이런 걸로 화제가 되었습니다만... 좀처럼 알려지지 않았던 그녀의 모습은 아랍쪽에선 결혼 11년 만인 올해 1월 말 트위터를 통해 처음으로 알려진 바 있습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부인, 사라 빈트 마슈후르 공주)


워낙 유명한 실세의 부인인 그녀의 모습을 왜 보기 힘들까요? 결혼 11년동안 딱 한 번 사진이 공개된 것으로 보아 그녀는 걸프왕정이나 아랍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내조형 부인이기 때문입니다. 


걸프지역 왕정국가를 통치하는 왕실의 부인들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나마 이름만 알려질 뿐, 특히 결혼한 뒤에는 얼굴사진 등이 일반에 공개되지는 않습니다. 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안쪽에 여성 가족이 거주하는 공간을 두고, 문에서 가까운 공깐에서 외부손님을 맞이하는 전통적인 가옥구조나, 유목민의 후예인 그들의 생활패턴 특성상 밖으로 나다니는 사회활동은 남자가 하는 전통에 따라 통치자, 혹은 차기 통치자 등 권력의 핵심 인물과 결혼한 거의 대부분의 부인들은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전형적인 내조형 부인으로 지내게 됩니다. 


그나마 이름과 함께 얼굴이 알려지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첫째는 가장 많은 아들을 낳아 여러 부인들 중에서도 남편의 총애를 받아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입니다. 특히, 나라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여러 씨족장들과 정략결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아버지 세대의 부인이 이에 해당합니다. 걸프지역의 3대 국가인 사우디, UAE, 카타르 왕실에는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여걸이 한 명씩 있습니다.



1.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친할머니, 훗사 빈트 아흐메드 알수다이리 (1900~1969)

오늘날의 사우디를 건국한 압둘아지즈 알사우드의 여덟번째 부인인 그녀는 압둘아지즈와 1913년에 결혼했다가 이혼한 후 압둘아지즈 국왕의 이복형제와 결혼했다가 그녀를 잊지 못한 압둘아지즈에 의해 이혼한 후 1920년에 또다시 그와 결혼하여 1953년 사망할 때까지 혼인 관계를 유지했을 정도로 총애하는 부인이었습니다. 결혼과 재혼을 반복한 영화같은 사연보다 그녀가 유명한 이유는 두번째 결혼 후 압둘아지즈 국왕의 부인들 중 가장 많은 일곱명의 아들(과 다섯명의 딸)을 낳으면서 최다 파벌이 된 수다이리 세븐의 모친이기 때문입니다. 네... 현 살만 사우디 국왕의 어머니이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할머니이죠. 수다이리 세븐 중에는 첫째 아들 파흐드와 여섯째 아들 살만이 사우디 국왕에 올랐으며, 둘째 아들 술탄과 넷째 아들 나이프는 전임 압둘라 국왕 시절 왕세제까지 올라갔다가 생각보다 장수한 그보다 먼저 세상을 뜨면서 왕세제로 만족해야만 했고, 셋째 아들 압둘라흐만과 다섯째 아들 투르키, 막내 아흐메드는 왕위 계승경쟁에서 밀려난 바 있습니다.



2. UAE의 국모이자 셰이크 만수르의 어머니, 셰이카 파티마 빈트 무바라크 알깨뜨비 (1943~  )

전통춤을 추는 모습에 반했다고 알려진 UAE의 국부 셰이크 자이드와 알아인에서 결혼한 세번째 부인이자 7명의 부인 중 그가 죽었을 때까지 혼인관계를 유일하게 유지했을 정도로 총애를 받았던 그녀는 현재 아부다비 왕세제인 장남 셰이크 무함마드를 비롯하여 우리에게 너무나도 유명한 다섯째 아들 셰이크 만수르 등 여섯 명의 아들을 낳아 가장 많은 아들을 안겨준데다 자신의 아들들을 정부의 요직으로 이끌었습니다.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흐얀- 현 아부다비 왕세제이자 병약한 셰이크 칼리파 대신 실질적인 아부다비 및 UAE 통치자

셰이크 함단 빈 자이드 알나흐얀- 현 알다프라 지역 통치자 대리인

셰이크 핫자 빈 자이드 알나흐얀- 현 국가안보자문위원회 의장 겸 아부다비 최고 위원회 부의장 겸 에미레이트 주민등록청장 등...

셰이크 타흐눈 빈 자이드 알나흐얀- 현 금융계 종사

셰이크 만수르 빈 자이드 알나흐얀- 현 UAE 부총리 겸 대통령부 장관 겸 우리에겐 돈 많은 맨시티 구단주로 더 유명한....

셰이크 압둘라 빈 자이드 알나흐얀- 현 외교국제협력부 장관

이와 더불어 자신의 영향력을 활용해 UAE여성들의 여권신장을 적극적으로 이끌면서 UAE의 국모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여권신장에 기여한 바를 높이 산 유니세프를 비롯한 다섯개 유엔 조직으로부터 1997년 수상했으며, 아랍여성으로는 최초로 유네스코 마리퀴리 메달을 받은 바 있습니다.      

알아인에서 셰이크 자이드와 살았던 궁전은 알아인에서 가장 큰 박물관인 알아인궁 박물관으로 ([여행기] 알아인 3일차 (5) UAE의 국부 셰이크 자이드가 힘을 키웠던 시작점, 알아인궁 박물관 참조) 일반에 공개되고 있으며, 지난해 3월 문재인 대통령의 UAE 국빈방문시 영부인 김정숙 여사는 문 대통령과 셰이크 무함마드 왕세제와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그녀가 40년 넘게 이끌고 있는 여성연합 (GWU)를 찾아 그녀를 접견한 바 있습니다. ([특집] 문재인 대통령의 UAE 국빈방문에서 들르게 될 곳은? 참조)

 


3. 카타르 하마다인 시대의 실세, 셰이카 모자 빈트 나세르 알미스네드 (1959~현재)

카타르와 외교분쟁을 벌이고 있는 사우디와 UAE 등은 현재의 카타르 정권을 하마다인 통치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두 명의 하마드라는 뜻을 가진 하마다인은 카타르의 전 통치자인 셰이크 하마드 빈 칼리파 알싸니와 현 통치자이자 그의 아들인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싸니 부자를 일컫는 것으로 이전 카타르의 통치자들과 달리 가스로 축적된 부를 활용해 미니국가의 한계를 뛰어넘어 역내 입지를 강화하려는 야심 속에 GCC의 양대 국가인 사우디와 UAE에 도전하는 카타르의 독특한 외교정책을 실행에 옮긴 셰이크 하마드와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고 있는 셰이크 타밈 부자를 비웃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이 하마드 부자의 배후에는 셰이크 하마드의 두번째 부인이자 그의 퇴임 이후에도 카타르의 반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셰이카 모자 빈트 나세르 알미스네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걸프왕정의 안주인으로서는 보기드문 화려한 패션감각을 자랑하는 셰이카 모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카타르를 통치하고 있는 알싸니 가문과 대립하던 알무한나다 씨족연합을 이끈 나세르 빈 압둘라 알미스네드의 딸입니다. 카타르의 전 통치자였던 에미르 아흐메드 빈 알리 알싸니 통치기에 정치범으로 수감되었다 풀려난 그는 1964년 씨족 전원을 이끌고 쿠웨이트로 셀프 망명을 떠났다가 13년 뒤인 1977년 친족들만 이끌고 카타르로 돌아왔으며, 같은 해 당시 왕세자였던 셰이크 하마드 빈 칼리파 알싸니의 두번째 부인으로 결혼하게 됩니다. 셰이크 하마드가 세 명의 부인으로부터 얻은 11명의 아들 중 절반에 가까운 다섯명의 아들을 낳은 그녀는 적극적인 활동으로 자신의 입지를 다져나갔습니다. 가족의 응원에 힘입어 아버지가 해외로 휴가를 떠난 사이에 정권을 장악했던 남편 셰이크 하마드의 무혈 쿠데타와 걸프 왕정에서 보기드문 생전 왕위 이양을 통해 통치권을 아들 셰이크 타밈에게 넘겨버린 파격적인 그의 퇴임 배경 이면에는 그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남편 셰이크 하마드가 카타르의 통치자가 되었던 1995년 카타르 파운데이션을 공동으로 설립하고 이를 이끌어 오면서 교육을 중심으로 정치, 사회 전반에 걸쳐 카타르 정부 운영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최고위급 인사로 셰이크 하마드 재임시절에는 영부인으로서 대외활동에도 함께 참여하기도 했던 카타르 여인천하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셰이카 모자의 경우 걸프왕정에 들어간 부인들의 이름이 알려지는 첫번째 이유인 가장 많은 아들을 낳은 부인 외에도 두번째 경우인 적극적인 대외활동을 통해 얼굴과 이름을 알리는 경우 모두에 해당하는 특이한 사례입니다.



덧, 영향력 있는 안주인과 대외활동을 전담하는 부인의 역할을 양분화한 두바이의 경우

참고로 셰이크 무함마드 빈 라쉬드 알막툼이 통치하고 있는 두바이의 경우엔 왕실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자빌궁의 안주인과 대외활동으로 유명한 부인이 따로 있습니다. 자빌궁의 안주인은 첫번째 부인이자 일곱명의 딸을 포함해 셰이크 무함마드의 아홉 아들 중 다섯 아들을 낳았으며, 최근 합동 결혼식을 올린 왕세자 셰이크 함단 형제의 어머니인 셰이카 힌드 빈트 막툼 빈 주므아 알막툼 (1962~현재)으로 전형적인 내조형 부인을 자임하며 공식 석상에는 좀처럼 드러내질 않습니다.


셰이크 무함마드 집안을 이끌고 있는 셰이카 힌드 빈트 막툼 주므아 알막툼과 달리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의 이복동생이자 셰이크 무함마드의 작은 부인인 프린세스 하야 빈트 후세인 (1974~현재)은 승마 요르단 국가대표 출신의 운동선수 경력을 살려 스포츠와 자선활동 분야에 앞장서며 공개 석상에 잘 나타나지 않는 안주인 셰이카 힌드 대신 대외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이름을 알리고 있습니다.



프린세스 하야는 아들도 많이 낳고 대외활동을 열심히 하는 셰이카 모자와 달리 적극적인 대외활동으로 유명세를 타는 예에 속합니다. 그녀는 셰이크 무함마드와의 사이에서 1남 1녀를 얻었을 뿐이니까요. 2012년 셰이크 무함마드가 그녀가 낳은 아들에게 UAE의 국부 이름을 따서 자이드로 정한 것으로 봐서는 남다른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만... 최근 그녀가 어린 자녀들과 함께 자빌궁 시월드에서 벗어나 해외로 도피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난해 별일 없었던 것으로 무마되었던 라티파 공주 야반도주건에 이어 셰이크 무함마드로서는 원치 않을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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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CC/GU/GCC/GU2017. 6. 6. 01:38

(출처: 뉴욕 타임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사이트로 연결됩니다.)



아마도 1981년 GCC 창설 이래 가장 시끄러웠던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6월 5일 새벽부터 바레인이 테러조직 지원, 반정부 미디어전을 활용한 내정 간섭과 불안 조성 등을 이유로 카타르와의 모든 관계 단절을 선포한데 이어 사우디와 UAE가 이에 동참하고 이에 이집트, 리비아 임시정부, 예멘, 몰디브가 가세하면서 파장은 일파만파로 확산되었습니다. 예멘 알후씨 반군과 대치하고 있는 연합군에서도 카타르군을 제외시켜 버린 것은 덤.



3년 전인 2014년 3월에 카타르 주재 자국 대사 소환으로 시작해서 쿠웨이트의 중재로 일단 봉합되는 것만 같았던 GCC의 양대축인 사우디/UAE와 카타르의 외교 관계 단절 사태 ([GCC] 주카타르 대사소환으로 촉발된 사우디, 바레인, UAE, 카타르 간 갈등 일단락, 그리고 과제! 참조)는 카타르 통치자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싸니가 군복무를 마친 현역병들의 전역식에서 행한 연설의 내용이 카타르 국영통신을 통해 보도되면서 다시 불거지기 시작했으며 ([GCC] 셰이크 타밈의 연설로 3년 만에 재점화된 사우디&UAE-카타르 갈등! 참조), 공교롭게도 지난 주말 아부다비 왕세제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흐얀이 살만 빈 압둘 아지즈 사우디 국왕을 만나기 위해 사우디를 방문한 이후 3국간 갈등이 전폭적으로 재점화되었습니다.


지난 2주 동안 카타르는 이란과 하마스, 헤즈볼라를 칭송했다는 셰이크 타밈의 연설 소식이 해킹에 의해 날조된 "가짜 뉴스"라며 FBI에 수사를 의뢰하여 해커 추적에 나섰고, 이 와중에 유스프 알오타이바 주미 UAE대사의 메일이 해킹을 통해 유출되면서 혼란이 가중된 바 있습니다. 셰이크 타밈은 사태 수습을 위해 3년 전 중재역을 맡았던 쿠웨이트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했었지만, 제대로 진행되지는 못했었죠.


3년 전의 외교 관계 단절 사태 때와 달리 사우디와 UAE는 카타르를 고립시키기 위한 전면전을 감수하기라도 작정한 듯 외교 관계를 포함한 카타르와의 모든 관계 단절을 전격적으로 선포한 것이 큰 차이점입니다.

- 48시간 내 자국 주재 카타르 외교관 송환

- 24시간 내 카타르와의 육해공 국경 봉쇄 및 자국 영공/영해를 통한 카타르로의 출입 봉쇄

- 14일 내 자국 주재 카타르인 및 카타르 거주자 강제 출국 및 체류 불허 (단, 성지 순례객은 이번 불허 조치에서 열외)

- 자국민의 카타르 체류 및 경유, 여행 불허

- 카타르 국적기 및 국적선의 자국 출입항 불허

- 자국 국적기 및 국적선의 카타르 출입항 불허

- 뉴스를 포함한 카타르 방송 미디어 차단


이에 따라 사우디와 UAE 국적 항공사들은 6일 자정을 전후로 카타르행 운항을 무기한 정지한다고 밝혔으며, 카타르 항공 역시 사우디 취향편을 취소시킨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아울러 카타르 항공과 스폰서쉽 계약을 얼마전 갱신한 사우디 알아흘리 구단도 스폰서쉽 계약을 파기한다고 발표했으며, 알자지라 뉴스 등 카타르 뉴스 미디어의 중계를 차단해왔던 UAE는 그나마 중계를 허용해왔던 비인 스포츠와 알카스 스포츠 등 스포츠 채널 중계도 기습 중단시켰고, 사우디는 알자지라 리야드 지국을 폐쇄조치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패닉 바이에 빠진 사람들의 사재기로 텅텅 빈 매장 진열대)


카타르의 유일한 육로 국경인 사우디와 주변을 감싸고 있는 사우디, 바레인, UAE의 영공 및 영해 진입 봉쇄로 사실상 고립 상태에 놓이게 되자 카타르 내에선 패닉 바이가 발생하는 대혼란 사태에 빠져들기에 이르렀습니다. 카타르에서 소비되는 30~40%의 식자재들이 사우디와의 육로를 거쳐 수입되기에 정상적인 조달이 어려워질 경우를 대비하기 위한 심리가 소비자들의 불안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봉쇄조치로 사우디와 UAE의 의존도가 높은 카타르로 반입되는 물량의 82%를 잃을 것으로 전망한다는 보도도 있군요. (Qatar loses 82 percent of its Gulf imports due to sanctions 참조)


결국 3국 간 갈등이 증폭되고 전개가 일사천리로 급진전되자 터키가 중재역을 자임하기에 나섰습니다. 사우디와 UAE가 카타르의 친 이란 정책을 한 원인으로 제기하고 있는 이상 이란을 은인으로 여기고 있는 GCC 내의 유일한 국가인 오만은 거리를 두고 사태를 지켜볼 수 밖에 없고, 3년전 갈등을 봉합시켰던 쿠웨이트는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터키가 중재역을 자임하겠다고 나선 이후 지난 2주 동안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했던 쿠웨이트의 통치자 셰이크 사바흐 알아흐마드 알사바흐가 예정되었던 요르단 국왕의 방문일정을 연기시키고 본격적으로 중재에 나서기 위해 화요일 사우디 방문을 전격 결정지었습니다. 명분이야 어쨌든 터키가 중재역으로 개입한다는 것은 GCC 내 내부 갈등에 대한 자정력을 스스로 잃었다는 것과 다름없기에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셰이크 타밈 (왼쪽)과 그의 아버지 셰이크 하마드 (오른쪽)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 최근 분쟁과 더불어 SNS 계정의 프사 등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카타르 정부가 테러리즘을 지원하며 자국 정권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하여 내정 간섭을 꾀한다는 이웃국가들의 오랜 불만은 천연 가스 수출을 통해 얻는 막대한 수익을 활용하여 정권 유지의 잠재적 불안요소인 각종 무장세력 지원과 다양한 미디어 매체를 지원하여 이웃 강대국들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로 위상을 낮춰 자신들의 존재감을 살리는 카타르만의 독자적인 외교정책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모든 면에서 초미니 국가라는 현실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역내에서 영향력을 높이려는 카타르의 정책은 전임 통치자이자 셰이크 타밈의 아버지인 셰이크 하마드 빈 칼리파 알싸니 통치기에 실세였던 셰이크 하마드 빈 자심 알싸니 전 총리 겸 외무장관이 기초를 닦은 것입니다. ([정치] 타밈 새 국왕의 취임 담화문과 개각, 새 내각의 관전 포인트와 중요 인물들 참조) 건국의 아버지인 압둘 아지즈와 셰이크 자이드를 국부로 섬기고 있는 사우디와 UAE로서는 아버지를 쿠데타로 몰아내고 정권을 차지한 셰이크 하마드를 탐탁치 않게 본 것도 있습니다만....이 정책 기조가 바뀌기를 바랬던 사우디와 UAE로서는 셰이크 타밈 역시 이를 수정하지 않고 고수하고 있다는 판단에서 전격적인 고립 작전에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카타르 입장에서는 이웃 국가들이 반정부 조직, 테러 조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다 자신들의 잠재적인 불안요소가 될 수 있는 알까에다, IS, 무슬림 형제단, 헤즈볼라, 하마스 등에 대한 지원이 자국의 안보를 위한 하나의 비책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웃 국가들에 비해 빈약할 수 밖에 없는 군사력으로서는 이들이 자국 내에 영향을 끼칠 경우 막는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카타르에 비하면 압도적인 군사력을 갖추고 있는 이집트도 무장 세력과의 전쟁으로 고전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대비책 마련이 절실할 수 밖에요. 파이낸셜 타임즈는 카타르가 오랫동안 테러조직을 지원하고 있다는 의혹 속에서도 이라크에서 매사냥에 나섰다가 무장조직에게 납치되었던 왕족 포함 카타르인 26명을 16개월만에 석방하는 댓가로 알까에다 연계조직과 이란 등에 지불한 합의금이 10억달러에 달한다고 보도할 정도였죠. (The $1bn hostage deal that enraged Qatar’s Gulf rivals 참조)


(출처: 가디언. 이미지를 링크하면 원래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피아를 가리지 않는 지원과 더불어 알자지라와 이슬람 관련 채널, 그리고 미들 이스트 아이 같은 서방 매체 등 다양한 매체 지원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이웃 정부의 치부를 드러내는 보도를 계속해 왔던 점도 내정 간섭의 의도가 있다며 불쾌하게 여기는 주변 국가들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3년전 분쟁 당시에는 사우디와 UAE는 콕 찝어서 자국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설교를 해왔던 이집트 출신 이슬람 성직자 유스프 알까라다위의 연설을 문제로 삼은 바 있으며 ([인물] 전례없는 GCC 내부 분쟁의 단초가 된 인물, 유스프 알 까라다위와의 인터뷰 참조), UAE는 당사자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2014년 포털 창설 당시부터 카타르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데이비드 허스트를 편집장으로 하는 미들 이스트 아이의 접속을 차단한 바 있습니다. (Al Jazeera executive helped to launch controversial UK website 참조) 미들 이스트 아이는 UAE 정권, 특히 현재의 실질적인 통치자인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흐얀과 관련된 비판, 혹은 치부를 다루는 기사를 내보내며 UAE 정부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사우디나 UAE 정부 입장에서는 자국의 치부를 고발하는 각종 매체들이 정작 자금줄인 카타르 정권에 대한 치부에 대해서는 보도하지 않는 스탠스를 놓고 이중 잣대를 두고 있다고 여길 수 밖에 없을테니까요. 물론, 사우디와 UAE 매체 역시 셰이크 타밈 연설 보도 사건 이후 가열차게 카타르 정권을 비판하는 보도를 잇달아 내놓기도 했지만요.


사우디와 UAE가 주축이 된 연쇄 단교 조치가 근거없는 부당한 조치이고, 가짜 뉴스를 이용해 자신들을 약화시키고 내정 간섭을 꾀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는 카타르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계획한 것처럼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는 단교 조치의 파장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2014년 3월보다 더욱 급변하고 있는 2017년 6월의 GCC 분쟁 사태는 과연 어떤 결말을 맺게 될까요? GCC 몰락? 카타르의 항복? 어거지로 봉합?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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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랍지역 전문 블로거 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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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CC/GU/GCC/GU2017. 5. 24. 23:13



지난 2014년 3월 사우디, 바레인, UAE가 카타르의 튀는 행보를 빌미삼아 주카타르 자국 대사를 소환하면서 GCC의 분열을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았던 네 나라의 갈등은 쿠웨이트가 중재에 나서면서 다행히 한달여만에 일단락된 적이 있었습니다.


[GCC] 사우디, 바레인, UAE, 주카타르 대사 전격 소환의 배경과 전망

[GCC] 주카타르 대사소환으로 촉발된 사우디, 바레인, UAE, 카타르 간 갈등 일단락, 그리고 과제! 


그렇게 잠잠해지는 것만 같았던 사우디/UAE-카타르 간 갈등은 트럼프 미대통령의 사우디 방문 중 개최되었던 GCC-미국 정상회담 (백악관이 내놓은 공식 보도자료를 보시려면 클릭!)이 끝난 후 뜬금없이 재점화되었습니다. 이번 갈등은 카타르 통치자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싸니가 군복무를 마친 현역병들의 전역식에서 행한 연설에서 이란, 하마스, 헤즈볼라를 지지하는 그의 발언을 문제삼아 이들을 적대시하고 있는 사우디와 UAE가 발끈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이 두 국가가 문제를 삼은 그의 발은 주요 내용은....


1. 새 미정부와의 "긴장 관계"를 반복해서 말하며, 러시아와의 관계로 홍역을 겪고 있는 트럼프 미대통령은 그 자리에 오래 머물지 못할 것.

2. (오만을 제외한 GCC 국가들이) 이란에 대한 적개심을 숨길 수 있는 지혜가 없고, 이슬라믹 파워와 지역 안정의 구심점이라며 이란을 지지하는 듯한 발언.

3. 이스라엘과의 관계가 좋다고 말하면서도 미국, 영국 등으로부터 테러조직으로 지정되었으며 민간인들에 대한 미사일 발사로 아랍 국가들로부터도 비난을 받고 있는 하마스를 "팔레스타인의 공식 대표"로 호칭하는 등 카타르를 테러지원국으로 불리는 것엔 부정하면서도 하마스를 지지하는 발언

5. 사우디까지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UAE, 바레인, 이집트가 카타르에 대한 부정적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며 비난.

6. 트럼프 미대통령의 사우디 방문 중 체결한 1100억달러 규모의 "과장된" 무기 거래 계약으로 인해 인근 국가들 역시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방비에 많은 돈을 쏟아부을 수 밖에 없다고 비난하고, 걸프지역에서 가장 큰 미군기지가 있는 알우바이드 공군 기지는 (이름을 밝히지는 않은) 이웃 국가들로부터 카타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 (일부 전문가들은 그 이웃 국가를 이웃 GCC 국가로 짐작하고 있음...)



셰이크 타밈의 연설이 이웃 사우디와 UAE의 공분 속에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카타르 국영통신 (QNA)의 SNS 계정을 통해 이웃 GCC 5개국이 카타르 주재 자국 대사의 소환령을 내렸다는 소식은 이 논란에 더욱 불을 지피기에 이르렀습니다. 



논란이 점점 확산되자 카타르는 카타르와 이웃 GCC 국가들의 관계를 뒤흔드려는 신원미상의 해커로부터 QNA 사이트가 해킹을 당했고, 그들에 의해 가짜 뉴스가 나왔으며, 논란이 된 연설 역시 왜곡된 것으로 원래 내용엔 논란이 된 내용이 없었다고 주장하기에 나섰으며 (링크!), 논란을 야기한 해킹 사태의 경위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사우디와 UAE는 카타르 당국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 해명조차도 분명한 거짓이라며 알자지라 (아랍), 카타르 국영통신, 알와딴, 알라야, 알아랍, 앗샤르끄, 알자지라 미디어 그룹, 알자지라 도큐멘터리, 알자지라 (영어) 등 일부 카타르 뉴스 사이트의 접속을 차단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카타르가 접속을 차단한 도하 뉴스의 경우는 접속이 가능한 상황 (링크!)



직접적인 비난의 대상이 된 UAE는 더욱 적극적으로 발끈하고 나서 뉴스 사이트 접속 차단에 이어 저녁에는 IPTV 등으로 시청이 가능했던 알자지라 뉴스 채널조차 차단해 버리면서 상황은 더욱 혼란 속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단, 알자지라 다큐멘터리 채널과 비인 스포츠 채널은 시청 가능)





이번 논란은 수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없는 정권의 안정과 생존을 꾀하기 위해 피아를 가리지 않고 무장세력이나 반GCC 매체 등 다양한 세력에 지원을 아끼지 않아왔던 미니 국가 카타르의 독자적인 행보에 대해 GCC의 양대축인 사우디와 UAE가 참고 있었던 앙금이 있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셈이 되었습니다. 


이슬람의 종주국을 자처하지만 와하비즘을 신봉하는 원리주의 세력과 연합하여 세웠다는 태생적 한계로 인해 종교적이라기 보다는 세속적으로 양대 성지 수호자임을 자임하고 있는 사우디 정부와 태생부터 세속적인 씨족 국가였던 UAE 정부는 자국 내에서 이슬람 원리주의 집단의 정치세력화에 대해서만큼은 알레르기적인 반응을 보여왔습니다. 사우디 국부 압둘 아지즈는 건국 공신이었던 원리주의 민병대 이크완이 자신들의 공적을 믿고 기고만장해지자 정치세력화를 우려한 나머지 이들을 궤멸시키고 국왕 친위조직인 국가방위군으로 편입시킨바 있으며 ([역사] 사우디 통일전쟁과 건국의 또다른 주인공, 베두윈들의 종교적 민병대 이크완 참조), UAE의 실질적인 통치자인 아부다비 왕세제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흐얀은 이슬람 원리주의 지지세력이 정치세력화되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기기에 민주주의 도입에 부정적이고, 실제로 이를 추진하려던 자신의 동생을 유배시켰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니 이들 세력을 지원하는 카타르가 미덥지 않게 볼 수 밖에요.


여기에 테러 지원국가와는 협상의 여지조차 없다며 선을 긋고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사우디와 호르무즈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아부 무사, 대툰브, 소툰브 3개섬의 반환을 국제 사회에 호소하며 국경분쟁을 벌이고 있는 UAE에게 있어 이란을 지지하는 듯한 셰이크 타밈의 발언은 더욱 불쾌하게 여겨질 수 밖에요. GCC 6개국이 외교적으로는 단일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유가 이란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우디와 UAE는 상기의 이유로 이란을 적대시하고 있지만, 현 술탄 까부스 정권에게는 건국 당시 이웃 국가들 중 유일한 지지세력이었던 이란에 대해 우호적일 수 밖에 없고, 카타르는 이 사이에서 독자적인 스탠스를 두고 있는데다, 국부 압둘아지즈와 셰이크 자이드를 칭송하는 사우디와 UAE에게 있어서 카타르 (전 통치자 셰이크 하마드)와 오만 (현 통치자 술탄 까부스)은 특히 자신들의 아버지를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는 점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은연 중에 갖고 있기도 합니다.  


3년 만에 재점화 된 세 나라의 갈등이 가짜 뉴스로 인한 해프닝으로 끝날지, 아니면 다시 한번 심각한 상황으로 전개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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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랍지역 전문 블로거 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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