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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카타르 전 통치자, 셰이크 하마드 빈 칼리파 알싸니 향년 74세로 타계

둘라 2026. 7. 13.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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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의 최고 통치기구인 아미리 디완 (아미르 집무실, 우리로치면 대통령실)은 일요일인 12일 아침 카타르의 전 통치자이자, 현 통치자인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싸니의 아버지로 지난 2013년 퇴임 후 "아버지 아미르 (부왕)"로 불렸던 셰이크 하마드 빈 칼리파 알싸니가 향년 74세로 타계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아미리 디완은 그의 타계에 따라 조기를 게양하는 4일간의 국가 애도기간을 선포하고, 애도기간 중 각 부처와 기타 정부기관 및 공공기관의 업무를 중단한다고 명했습니다.
 
1995년 6월 27일 무혈 궁전 쿠데타를 일으켜 당시 카타르의 아미르였던 아버지 셰이크 칼리파 빈 하마드 알싸니를 축출하고 카타르 통치자가 된 셰이크 하마드 빈 칼리파 알싸니는 천연가스 수출로 생긴 막대한 부를 활용해 카타르의 현대화를 이끈 통치자였습니다.
 
 

셰이크 하마드의 업적

셰이크 하마드가 카타르 아미르로 재임하던 시기, 카타르는 액화천연가스 생산과 수출에서 호황을 맞이하면서 카타르에 막대한 수입을 가져왔고 이를 통해 세계 무대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추진했습니다. 카타르는 세계 최대의 액화천연가스 수출국이자 주요 글로벌 투자국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상대적으로 적은 인구수 덕분에 국가 소득과는 상관없이 1인당 소득 기준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특히 셰이크 하마드는 작은 반도 국가라는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사우디와 UAE가 양대 세력을 구축한 GCC와 역내 정치에서 정치적인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천연가스로 확보한 부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외교적으로는 그야말로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은 전방위적인 전략을 택해 미국과 이웃 나라, 특히 사우디와 UAE가 기피하는 무슬림 형제단, 팔레스타인, 하마스, 헤즈볼라 등을 지원하면서 잠재적인 외부 위협요소를 줄이기 위해 애썼습니다. 10.7 하마스 테러 이전 네타냐후가 수년 간 하마스에게 거액의 자금을 지원해줬던 것도 카타르를 통해서였죠.
 
그리고 1996년 알자지라를 개국해 미국과 서방 언론이 숨겨왔던 이스라헬의 잔혹성 등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보도로 주목을 받은 뒤 자매 언론기관 등을 활용해 사우디와 UAE 왕실의 어두운 면을 심층보도하고, 유스프 알바라다위 등 저명한 종교학자들의 주장을 설파하는 등 다소 이질적인 노선을 걸어왔습니다.
 
잠재적인 위협 세력도 자금력을 앞세워 우호세력으로 만드는 외교전과 서구 언론이 감춰온 더러운 진실을 보도하며 쌓은 공신력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어두운 면은 감추지만) 역내 경쟁 상대인 사우디와 UAE의 어두운 면을 파고드는 여론전을 통해 역내에서 피지컬을 넘어선 존재감과 영향력을 높이려고 했던 카타르의 노력은 결국 그의 퇴임 4주년을 앞둔 2017년 6월부터 3년 반동안 사우디, UAE 등이 주도한 카타르 단교사태로 이어지게 됩니다. 단교사태를 거치면서 카타르의 사우디와 UAE 등을 향한 날선 탐사보도 성향은 줄어들긴 했죠.

 
셰이크 하마드는 또한 2010년 카타르가 2022년 월드컵 개최권을 따내는 데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인프라 건설과 지출 붐을 일으켜 불과 몇 년 사이에 오늘날 도하의 스카이라인을 만들어내는 등 카타르를 현대화하고, 아시안 게임, 월드컵 등 각종 국제대회 유치와 PSG 인수 등을 통해 스포츠계에서 영향력을 높이게 된 바탕을 마련했습니다.

 
 

파격적인 권력 이양을 통한 퇴임과 그 후...

셰이크 하마드는 카타르 통치 18주년을 이틀 앞둔 2013년 6월 25일, 퇴임 당화문을 발표하고 넷째 아들인 셰이크 타밈에게 아미르직을 위양하면서 일선에서 물러났습니다. 이는 한번 통치자에 즉위하면 종신직인 걸프 왕정국가에서 보기드문 왕위직 계승이자, 자신을 포함해 왕실 쿠데타를 통해 정권이 교체되어왔던 카타르의 악습을 끊어주는 이례적인 조치였습니다.

 
셰이크 하마드의 퇴위는 그의 좋지 못한 건강상태와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1997년 첫번째 신장 이식 수술을 받았고, 적어도 그 이후에 한 차례 더 이식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결국에는 투석 치료를 받는 등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33세라는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에 통치자가 된 그의 아들 셰이크 타밈을 건강이 좋지 못한 자신대신 뒤에서 후원해줄 수 있는 부인이 있었던 것도 결정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셰이크 하마드는 퇴임 후인 2015년 12월 모로코 아틀라스 산맥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다리가 부러져 스위스 취리히로 이송되어 응급 수술을 받은 후에는 이동을 휠체어에 의존해 왔었습니다.

 

 
셰이크 하마드의 장례식인 당일 마그립 예배 후 자신이 2011년 개관식을 주재했던 카타르의 국립 모스크인 이맘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합 모스크에서 열리며, 카타르 건국의 아버지인 자심 빈 무함마드 알싸니가 묻혀있는 카타르 왕실 및 국가 주요 인물들이 안장된 루사일 공동묘지에 안장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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