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C/GU/GCC/GU2017. 6. 24.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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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가 "가짜 뉴스"라고 주장하는 카타르 통치자 셰이크 타밈의 졸업 연설문을 통해 재점화되어 사우디와 UAE의 주도 하에 진행 중인 카타르 단교 사태가 3주 차에 접어든 가운데, 사우디와 UAE는 사태 종결의 전제 조건으로 자신들이 내세운 요구조건이 담긴 청구서를 2014년에 이어 또다시 중재역으로 나선 쿠웨이트를 통해 카타르에 전달하였습니다. 이들이 요구조건을 이행하라며 카타르에게 준 시간은 단 10일. 과연 어떤 조건을 제시했을까요?


공개적으로 전달된 청구서는 아니었지만 AP의 리포트를 통해 세상에 공개된 총 13개항의 청구서는 실질적인 요구사항 11개항, 제한시간 1개항, 사후 감사 1개항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UAE는 카타르가 협상에 나설 생각은 않고 이를 언론에 유출시키면서 여론전을 전개한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만...)


1. 이란과의 외교적인 관계를 제한하고 주카타르 이란 대사관 등을 폐쇄할 것. 카타르에 체류 중인 이란 정예 혁명수비대원을 추방하고 이란과의 합동군사훈련을 중지할 것. 단,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가 허용하는 선에서 이란과의 상교역은 말리지 않겠음. (사우디는 수니파와 시아파 종주국이라는 역사적인 배경에다 자신들도 내세우지 못하는 이슬람 공화국을 내건 이란의 영향력 확대에 알레르기적인 반응을 보이고, UAE는 걸프 만에 있는 아부 무사, 대툰브, 소툰브의 3개섬 국경 분쟁이 걸려 있어 이란과 적대적인 관계임)


2. (사우디, UAE, 이집트 등이) 반정부 무장집단으로 규정한 테러조직- 특히, 무슬림 형제단, IS, 알까에다, 헤즈볼라-들과의 모든 관계를 끊을 것. (세속적인 정권이 통치하고 있는 이들 나라들은 온건한 풀뿌리 조직이든, 극단주의 무장세력이든 자신들의 정권을 위협할 수 있는 이슬람을 앞세운 조직들의 세력 확대를 극도로 예민하게 경계하고 있음.)


3. 알자지라와 제휴 방송국들을 폐국시킬 것. (각종 보도와 방송을 문제삼아 지국 폐쇄와 재개를 반복하는 애증의 역사가 있음. 현재는 방송 시청 금지 상황)


4. Arabi21, Rassd, Al Araby Al Jadeed, Middle East Eye 등을 포함하여 카타르 자본이 직간접적으로 유입된 어용 온라인 뉴스 미디어를 폐쇄시킬 것. (현재 이들 사이트들은 확인되지 않은 내용으로 자국 내 여론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사우디와 UAE 등지에서 접속이 차단되어 있음.)


5. 현재 카타르에 주둔해 있는 터키군을 당장 내보내고 카타르 내에서 터키군과의 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할 것. (이번 사태가 시작되면서 터키군이 일부 파병되었음)


6. 사우디, UAE, 이집트, 바레인, 미국와 다른 나라들이 테러리스트로 규정한 개인, 단체, 혹은 조직에 대한 모든 자금지원을 중단할 것. (이번 사태가 시작될 무렵 언론에서 이들 개인, 단체, 혹은 조직 명단을 공개함=>링크)


7. 카타르에서 보호하고 있는 사우디, UAE, 이집트, 바레인이 수배령을 내린 테러조직원이나 범죄자들을 출신국으로 돌려보낼 것. 그들의 자산을 동결하고, 거주, 행적, 자금 등 그들과 관련된 일체의 정보를 제공해줄 것.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안식처 제공은 이들 국가들이 카타르가 테러를 방조한다고 내세우는 대표적인 근거.)


8. 각 주권국들의 내부문제에 대해 간섭하지 말 것. 사우디, UAE, 이집트, 바레인에서 수배령이 내려진 범죄자들에게 카타르 시민권 부여를 중단하고, 일단 시민권이 부여된 경우라도 해당 국가에서의 위반사실이 확인될 경우에는 이를 박탈할 것. (아래에 따로 설명하겠지만, 자신들을 뒤흔들 목적으로 파견했다 체포된 카타르 정보국 요원도 있을 정도.)


9. 사우디, UAE, 이집트, 바레인 내의 반정부 세력들과의 접촉을 일체 중지하고, 이들 세력 내 주요 연락 대상자들의 모든 파일을 넘겨줄 것. (요즘 테러를 모의하거나 정부 전복을 노리던 넘들이 종종 적발되서 처벌하고 있는데, 대체 어떤 넘들하고 내통하는지 우리도 그 배후세력 좀 캐보자.)


10. 최근 수년간 카타르의 외교정책으로 인해 발생한 인명, 재산, 금정적인 손실에 대한 보상금을 제공할 것. 단, 보상금 규모는 (일방적으로 통보하지 않고) 카타르와 협의해서 결정할 것임. (너희 자금으로 인해 우리가 당한 각종 피해 정산은 너희가 해!!! 이번 청구서는 협상 대상이 아니지만, 단 정산금 만큼은 협상의 여지가 있어...)


11. 지난 2014년 분쟁 당시 사우디에서 도달한 합의문에 따라 걸프 및 아랍 국가들과 군사적,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경제 문제에 있어서도 함께 해 나갈 것. (형제 국가라고 말로만 떠들지 말고 약속했으면 좀 지키라고!!! 왜 삐딱선을 타는거야???)


12. 카타르에 전달된 날 (6월 23일)로부터 10일 이내에 모든 요구조건에 동의할 것. 그렇지 않을 경우 이 요구사항은 무효화됨. 단 이 청구서에는 카타르가 이행을 거절할 경우 취해질 어떤 후속조치는 언급하지 않겠음. (타협의 여지가 없으며, 맘에 안든다고 거부하거나 불이행의 결과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뒷감당은 알아서 감수해봐.)


13. 요구사항이 관철된 날로부터 첫 해는 매달, 두번째 해부터는 분기별로 한 번씩, 그 후 10년간은 1년에 한번씩 이행여부를 감사받는데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함. (그러게 2014년에 합의한 걸 알아서 잘 지킬거라 믿고 맡겼더니 왜 안 지켜??)



청구서가 나온 배경

1995년 셰이크 하마드가 아버지를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후 주변에 덩치 큰 나라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면서도 동시에 역내 강한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미니 국가 카타르의 톡톡 튀면서도 야심찬 외교 전략은 주변 국가들로부터 탐탁치 않은 시선을 받게 만든 원인이 되었습니다. (워낙 이복 형제도 많고 하니 형제간의 쿠데타는 어느 정도 용인할 수도 있지만, 친아버지를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킨 하극상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여기에 덤으로 가세) IMF 원조를 받을 정도로 여유있는 형편이 아니기에 실제 전쟁터인 이라크, 시리아, 이스라엘 사이에 낀 요르단은 절묘한 외줄타기를 통해 자구책을 강구해 올 수 밖에 없었던 반면, 천연가스로 나라 규모에 비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는 카타르는 이를 바탕으로 보다 적극적인 정책을 추구해 왔습니다. 


고립 사태 이후 사우디, UAE, 이집트, 바레인의 여러 언론에서 카타르에 대한 비판 기사로 융단폭격을 퍼붓고 있는 것처럼 자국의 안정을 위해 자국을 위협할 수 있는 잠재적인 적대세력을 끌어 안으면서 동시에 자신보다 크고 쎈 이웃 국가들을 뒤흔들어 약화시킬 목적으로 이웃 국가들의 불안을 내부에서 조장해왔다는 것입니다. 카타르의 통치자는 유례없는 이양과정을 거쳐 셰이크 하마드의 아들인 셰이크 타밈으로 바뀌었지만, 정책 기조는 2014년 단교 사태를 겪고 합의문을 작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아버지 대의 기조를 그대로 유지해오고 있다는 판단 하에 제출된 이번 청구서는 아래와 같은 사항을 반영한 셈이죠.


1. 테러조직, 극단주의 무장세력, 반정부 조직 지원 및 수배자들의 피난처 제공

- 이들에 대한 지원을 통해 단기적으로는 자국의 안정을 위협할 수 있는 불안요소를 제거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카타르를 제외한 주변 국가들을 뒤흔드는 기반을 만들 수 있음. (어차피 자신들의 자금줄에 대한 총질은 않할테니) 

2.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국내외 미디어를 동원한 이웃 국가들의 흠집 내기

- 이들 매체들이 언론의 자유를 앞세워 이웃 국가의 각종 금기와 치부를 드러내고 과격주의를 설파하는 이슬람 성직자들에게 발언대를 제공하여 많은 인기를 얻고 있지만, 정작 자금줄인 카타르 내부의 치부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이중잣대가 문제.

- 각종 매체를 통해 이웃 국가들을 비난하고 각종 의혹을 제시하면서 정권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켜 국민들의 충성도를 약화시키고 불만세력을 만들어 냄.

3. 내정 간섭

- 이웃 국가를 뒤흔드려는 앞의 1, 2의 연장 선상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정보국 요원을 이웃 국가에 파견하여 이들 국가의 내부 분열을 시도하려고 함.

4. 2014년 분쟁의 교훈

- 이행 여부를 감시하지 않으면, 합의를 잊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음.


지난해 초 사우디의 시아파 성직자 셰이크 니므르 알니므르 사형으로 촉발하여 이란에서 발생한 주이란 사우디 대사관 및 영사관 방화사태를 기점으로 이란에 대한 방송을 집중 보도하다 지난 3주간 대상을 카타르로 전환하여 테러조직 지원과 관련한 카타르의 행적에 대한 비판 및 고발성 보도를 계속해 온 이들 언론들은 급기야 사우디와 UAE에서 SNS 미디어를 활용하여 UAE 정부를 폄훼하는 가짜 계정을 만드는 등의 반정부 혐의로 체포되어 지난 2015년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투옥 중이다가 셰이크 칼리파에 의해 사면받은 카타르 정보국 디지털부 요원인 하마드 알리 무함마드 알리 알 함마디 (다른 4명의 상사는 무기징역형에 처해짐)의 고백이라는 방송 인터뷰를 내보냈으며, 사우디 당국은 이드를 앞두고 그랜드 모스크에 자살폭탄테러를 감행하려던 일당을 사전에 체포했다는 보도를 내보내는 등 카타르에 대한 압박을 이어나갔습니다.


(사우디와 UAE를 뒤흔들 목적으로 미디어전을 획책하다 체포되어 구속되었다가 사면조치 받은 카타르 정보국 요원)


여기에 당장 이번 사태를 이용하여 카타르에 군을 파병한 터키는 오랫동안 공들여왔던 EU 가입이 물거품된 상황에서 아랍, 이슬람 국가에서 존재감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여 쉽게 물러설 기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카타르가 지원하는 어용 미디어 중 하나로 이들 국가들이 대놓고 지목한 유일한 서구 매체인 미들 이스트 아이 같은 경우도 자신들은 카타르의 자금지원을 받지 않은 매체라고 주장하며 이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대표 기자는 영국인 데이비드 허스트이지만 사실상의 대표는 알자지라 출신 카타르인이고, 사우디와 UAE 정부의 비화를 까발리는 수위에 걸맞게 카타르 정부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기에 제재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죠)



카타르의 선택은...?

카타르의 통치자 셰이크 타밈은 왕세자로 승진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에게 축전을 보내고, 자신들이 받아든 청구서를 검토해 본 후 답하겠다는 공식 반응을 내놓았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20년 넘게 공들여 온 노력과 투자를 부정하고 무위로 돌리라는 협박과도 같은 요구사항을 순순히 이행한다고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단교 사태에 열을 올리고 있는 UAE는 카타르가 진지하게 응하지 않을 경우 사태가 장기화되거나 "남남"이 되는 파국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지만, 카타르 역시 그동한 공들여 쌓아놓은 우호세력들을 이용할 수 있는 옵션이 있습니다. 그간 유용가능한 막대한 자금을 활용하여 사우디와 UAE 등이 테러조직으로 규정한 세력들 뿐 아니라, 미국, 유럽 등 사우디와 UAE 등의 우호국에도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나름 탄탄한 지원세력을 만들어 놓은데다, 거기에 카타르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 이번 사태를 통해 아랍 세계에 영향력을 확대시킬 수 있는 기회를 노리고 있는 바다 건너 강대국들인 이란과 터키를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거기에 카타르 역시 자신들을 고립시키면 극단적인 경우 UAE로 보내는 천연가스 공급을 차단할 수 있는 현실적인 무기도 손아귀에 두고 있기도 하구요. (UAE는 가스 소비량의 40%를 카타르에서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 치명적인 약점)


결코 쉽게 받아들이고 따르기 힘든 청구서를 받아든 카타르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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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카타르 | 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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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랍지역 전문 블로거 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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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A/ISIS2014. 10. 1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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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의 독보적인 능력 중 하나는 전세계에서 몰려드는 지원자들을 통한 인력 충원입니다. 최근 사우디 내 한 법원이 훈련 캠프 준비, 공격해야 할 유전 위치 확인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각종 무장조직 범죄에 가담한 죄를 물어 1명에게 사형을, 21명에게 다양한 징역형을 선고했고, 최근 일본에서도 IS에 합류하기 위해 여행을 시도하다 적발되었으며, 여전히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한국인 지원자도 있다는 뉴스가 나오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나라 출신의 사람들이 IS에 합류했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지난 2월 압둘라 사우디 국왕은 알까에다, 시리아의 누스라 전선, IS 등 "극단주의자"들의 무장조직에 합류하기 위해 시리아 등지로 가거나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다 체포된 이들에게 장기 징역형을 내리라는 칙령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들 조직에 사우디 출신의 조직원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당연한 일입니다. 


알 사우드 가문이 극단적인 원리주의 성향의 와하비즘 신봉자들과 손을 잡으면서 제1사우디 국가를 탄생시킬 수 있었고, 오늘날의 사우디를 건국한 압둘아지즈 국왕 역시 지지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이들과 결탁하면서 이들에게 정치적 야심과 힘을 실어준 원죄가 있으니까요. 비록 이들이 정치세력화를 꾀하며 자신이 생각한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려들자 궤멸시킨 이후 사우디 사회 곳곳에 암약하게 되었고, 이슬람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종교국가임에도 되려 이슬람 형제단 등 원리주의 세력에 대해서는 불법단체로 간주하는 등 알레르기적인 반응을 보이는 모순된 면을 보이고 있습니다만... 


사우디는 알까에다와 연계된 원리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한 반정부세력의 테러행위가 발생했던 지난 2003년 이후 10여년간 수천명의 국민들을 구속하고 이들 중 수백명을 징역에 처했으며, 극단적인 성향의 성직자 수천명을 해고시키는 등 이들과의 전쟁을 수행하는 중이기도 합니다. 현재 내무장관을 맡고 있는 무함마드 빈 나이프 알 사우드 왕자가 이 전쟁의 선봉에 나서고 있으며, 경미한 부상으로 그치고 말았지만 이로 인해 암살미수 사건을 경험한 산증인이기도 합니다. 빈 라덴을 위시하여 사우디에 이런 과격 무장조직들이 나서게 된 것도 사실 걸프전쟁 당시 이라크를 응징한다는 명목으로 미군을 성지 메카에 끌어들였던 것이 계기가 된 바 있습니다. 


사우디는 정치적으로 강경한 대응 외에도 종교적으로도 이들을 경원시하며 계속해서 거리를 두어오고 있습니다. 사우디의 최고 성직자인 그랜드 무프티 셰이크 압둘아지즈 알 앗셰이크가 알까에다와 IS, 그리고 그들이 내세우는 신념을 이슬람의 가장 큰 적이라고 규정한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사우디 외에 이들 조직에 합류하기 위해 오는 외국 조직원들의 출신국은 어디이며, 그 수는 얼마나 될까요? 그 단서를 최근 워싱턴 포스트가 공개한 한 보고서를 통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영국 킹스 칼리지에 있는 비영리 씽크탱크 국제급진주의연구센터 (International Center for the Study of Radicalisation and Political Violence, ICSR)와 미국 뉴욕에 있는 안보 컨설팅 그룹인 수판 그룹 (Soufan Gruop)이 공동 작성한 것으로 IS에 합류하기 위해 시리아로 모여든 80여개국 출신 약 15000여명으로 추정되는 이들의 국적별 인원수를 아래와 같이 분석했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생각 외로 많은 나라에서 시리아로 향했지만, 얼마전 언론보도에 나왔던 것처럼 한국인 출신 조직원은 없는 것으로 보이네요.



(IS 조직원들의 주요 출신국. 출처 및 저작권: Washington Post)




참조: "Revealed: The countries the ISIL militants come from" (Arabian Bus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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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 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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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랍지역 전문 블로거 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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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A/ISIS2014. 9. 15.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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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단이 시작된 무렵이던 지난 6월말 이라크-시리아 이슬람 국가 (ISIS), 혹은 좀더 광의의 개념으로 이라크-레반트 이슬람 국가 (ISIL)로 불리던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는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자신들의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를 칼리프 이브라힘으로 추대했다며 자신들의 공식 명칭을 이슬람 국가 (IS)으로 변경하고 독자적인 국가 수립을 선포했습니다. 


칼리프는 이슬람교 유일신 알라의 사도인 무함마드의 대리인을 뜻하며 무함마드의 종교적·정치적 권한을 이어받아 이슬람 공동체를 다스린 최고 통치자로 무함마드가 632년 사망한 뒤 후계자로 4명의 칼리프가 선출되고부터 터키 초대 대통령 케말 파샤가 1924년 칼리프제를 폐지할 때까지 이슬람권에는 다양한 형태의 칼리프 국가가 이어져 왔으며, 이슬람 국가는 자신들이 끊겨진 칼리프제를 부활시키겠다며, 과거 이슬람 초기 칼리프 국가처럼 지중해 연안부터 걸프지역을 아우르는 범 이슬람 국가 수립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듯 이라크 모술의 기독교인들에게 이슬람으로의 개종, 아니면 세금 납부 중 택일하게 했던 과거 이슬람 확장세력 당시 이교도들에게 사용했던 전통적인 방식에 둘 다 싫으면 죽일테니 제한시간 안에 모술을 떠나라는 과격한 선전포고를 하면서 더욱더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슬람 국가의 발전 양상은 칼리프제를 표방하고 있음에 실제로는 18세기부터 시작된 사우드 씨족의 국가수립 과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추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슬람 국가가 모술에서 자행한 요나의 무덤 겸 사원 파괴 등 성지 파괴행위는 제1사우디 국가의 2대 이맘인 압둘아지즈 빈 무함마드 빈 사우드 (1765~1803)가 이라크 나자프에 있던 알리 빈 아부 탈립의 무덤과 카르발라에 있던 이맘 후세인 빈 알리 (사도 무함마드의 손자)의 무덤을 비롯한 수많은 성인들의 묘와 유적을 파괴시켰던 행위에 비할 수 있으니까요. 역사는 반복된다고 할까요? 



사우드 씨족과 와하비즘- 극단주의 무장세력을 탄생시킨 사우디의 과거

사우디는 이슬람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와하비즘을 신봉하는 국가입니다. 이는 1744년 디리야의 왕자 무함마드 빈 사우드와 무함마드 빈 압둘 와합 사이에 혼인으로 맺어진 디리야 맹약에 따라 제1사우디 국가의 건국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주변 씨족들에게 밀리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지지세력의 확보와 외연 확장을 원하던 무함마드 빈 사우드와 종교적으로 과거의 신성함을 잃고 세속화되어 가는 사회를 정화시키고 싶지만 군사적인 무장세력 확보가 필요했던 무함마드 빈 압둘 와합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소 소원했던 사우드 씨족과 앗셰이크 씨족의 관계는 오늘날의 사우디아라비아를 창건한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이븐 사우드)가 앗셰이크 씨족의 딸인 타르파 빈트 압둘라 알 앗셰이크를 두번째 부인으로 맞이하면서 재정립됩니다. 라쉬드 씨족에게 빼앗겼던 리야드를 재탈환하는데 성공한 그가 메카, 메디나 지역을 공격하기 위한 종교적 정당성 확보와 세력 확장을 위한 지지세력으로 앗셰이크 씨족과 와하비즘을 신봉하는 울라마들의 지원이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사우디의 정치를 대표하는 사우드 씨족과 종교를 대표하는 앗셰이크 씨족의 이원체제가 재확립된 셈이죠.


하지만,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는 와하비즘을 신봉하는 이들을 종교적 정당성을 내세우기 위해 필요했을 뿐,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정치적인 세력으로 크는 것은 원치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아라비아 반도 통일과정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와하비스트 민병대 "이크완"의 필요성이 없어지는 가운데, 이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키자 궤멸시키고 남아서 자신을 따르겠다고 맹세한 이들을 모아 국왕 직속의 사우디 국가방위군 (SANG)을 만든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사우드 씨족 자체는 세속적인 가문일 뿐 정치적인 가문은 아니기에 신정체제를 앞세우고 있는 사우디지만, 원리주의 종교세력의 지나친 정치세력화를 경계하는 모순이 시작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사우디 왕가와 원리주의 세력의 갈등은 지난 1979년 원리주의 세력에 의한 그랜드 모스크 점령사건으로 극대화되기도 했습니다.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극장이 없어지는 등 사우디 사회는 좀더 보수적인 노선을 걷게 되었죠.


알까에다가 주도한 지난 2001년의 9.11 이후 사우디 내부에서도 반정부 세력과의 전쟁을 진행하고 WTO 가입을 기점으로 세계화의 흐름에 본격적으로 합류하여 온건화되어가면서 원리주의 무장세력의 영향력 확대와 원리주의에 빠진 성직자들을 배제하기 시작했습니다. 과격한 원리주의 성직자들의 서적을 금서로 지정하고, 10년간 원리주의 성직자 3500여명을 자리에서 내쫓으며, 과도한 행위로 사우디 국민들의 원망을 사게된 배타적인 사우 공권력의 상징인 종교경찰청장도 온건한 성향의 청장을 지명할 정도로 과격화되어가고 있는 원리주의 세력들이 사우디 내에서 힘을 얻지 못하도록 극도로 경계하고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보면 사우디가 이집트의 무슬림 형제단에 대해 이들을 지원하는 카타르와의 외교분쟁을 불사할 정도로 극도의 거부감을 내보이고 있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 과정에서 이스라엘-사우디-이집트간의 3국간 연계설이 나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무슬림 형제단과 하마스의 밀접한 관계는 이들의 세력화를 원치않는 이스라엘, 사우디, 이집트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접점이 있으니까요.


미국과의 전쟁을 거치면서 알까에다가 약화되어 있고, 사우디의 온건세속화 과정에서 밀려난 상황에서 사우디 정부에 불만을 품은 사우디 내 원리주의 세력들이 결탁할 만한 대응 세력으로 이슬람 국가가 떠오르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압둘라 국왕이 "지금 이슬람 국가를 방치해두면 다음 차례는 서구 국가들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이슬람 국가에 강력 대응할 것을 서구 국가에 요구하고 미국의 이슬람 국가 공습을 지지하는 아랍 국가들의 구심점 역할을 맡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우디가 이슬람 국가 발전에 기여했다는 비판을 사는 것도 결국은 사우디 건국 과정에서 잉태된 모순된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우드 씨족의 발전 과정과 이슬람 국가의 발전 과정은 너무나도 닮은 점이 많으니까요.



이슬람 국가와 사우드 씨족의 건국과정의 차이

1) 이슬람 국가와 사우드 씨족의 국가인 사우디와 분명하게 다른 점은 정치와 종교가 이원화되지 않고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의 지휘 하에 하나로 합쳐졌다는 점입니다. 사우디의 경우 정치와 종교를 상징하는 씨족이 양분되어 있기에 종교세력의 지나친 권력화를 경계할 수 있지만, (물론... 국왕의 성향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국가는 자신들이 주체이기에 그야말로 막나가도 내부에서 견제할 세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극단적인 잔혹성을 공포로 포장하여 심리전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죠. 오히려 라마단 기간 중 이슬람 국가는 외부로의 확장보다 내부 단속에 더 집중하면서 잠재적인 경쟁세력이 될 수 있는 이라크군 출신 고위 간부들을 살해하기도 했었구요.

2) 제한된 자원으로 물리적인 확장을 벌였던 사우드 씨족과 달리 현대 사회에 걸맞는 국가수준의 체계적인 지휘체계와 더불어 풍부한 자금 및 무기확보, 그리고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다양한 전술을 구사한다는 점입니다. 이슬람 국가가 공식적으로 조직체계를 공개한 적은 없지만, 교전 과정에서 사망한 고위 간부의 USB를 통해 유출된 조직체계로 미루어 봐도 이들이 단순한 무장조직이 아니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대체로 무해함] 이라크 이슬람 국가 정부(??) 구성도 참조)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무장조직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풍부한 자금원과 이의 효율적인 사용은 석유가 발견되기 전까지 자금에 한계가 있었던 사우드 씨족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모습입니다. 이라크, 시리아군으로부터 약탈한 무기와 SNS을 활용한 심리전은 수적인 핸디캡을 딛고 영향력을 키울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죠.

3) 사우드 씨족이 커나가던 시기 아라비아 반도는 직접 통치의 비효율성을 감안하여 오스만 터키 제국도 직접 통치하지 않았을 정도로 국가다운 국가 없이 지방 씨족들간의 세력 다툼을 해야만 했다면, 지금의 이슬람 국가는 사우디를 위시한 인근의 국가들과 세계의 초강대국 미국 등 다양한 국가들과 맞서야만 하고, 군사기술의 발달로 훨씬 빠른 템포로 싸워야 한다는 점이 다르죠. 물론, 워낙 국가들간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미국 주도의 연합군 결성에 어려움을 겪는 것처럼 이슬람 국가 대 세계 전체의 대결구도는 이뤄질 수 없지만요.



이슬람 국가와 알까에다와의 차이점

1) 전력을 감안하지 않고 무작정 9.11을 일으켰던 알까에다와 달리 이슬람 국가는 강약을 조절하며 세력을 키워나가고 있는 점이 분명 다릅니다. 확장 전쟁을 벌이다 시기 적절하게 국가를 선포하고 자신들이 확보한 영역 내의 사람들을 당근과 채찍으로 단속하면서 준비하고, 정서적으로는 미국이나 이스라엘과 직접 맞붙을 것 같지만 싸울 상대를 봐가며 만만한 세력부터 야금야금 먹어나가면서 세력을 키워나가는 점은 보통의 무장조직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일부에서는 이슬람 국가의 다음 타겟으로 이집트를 택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으니까요.

2) 무엇보다 이슬람 국가의 가장 무서운 점은 한국 출신도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던데서도 보이듯 여타 무장조직들과 달리 세계 각지에서 지원자들이 모인다는 점입니다. 극단주의 무장단체와의 연계성을 찾기 힘든 서구문화에 친숙한 보통 청년, 병원의 의사, 이맘까지 한 성직자 출신 등의 지원자들은 통념적으로 가난한 젊은이들에게 원리주의 세력들이 파고든다는 속설도 의미가 없음을 보여주면서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바 있습니다. 지금까지 세 명의 미국인과 영국인을 참수한 망나니가 영국인 출신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처럼 전혀 문화적인 환경이 다른 국가에서 사는 이들도 합류하는 것은 알까에다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기도 했구요. 이는 근본적인 성격은 다르지만 이슬람 국가와 외국인 지원자들 사이에 교감하는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슬람 국가가 꿈꾸는 야심찬 5개년 계획)



이슬람 국가에 맞선 복잡한 이해관계

1) 이들의 확장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아랍 국가들은 미군 주도의 연합군에 지지를 표방하며 공동 대응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슬람 국가의 군사력이 쿠웨이트의 군사력을 추월했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올 정도로 강대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직접적으로 자신들의 정권에 위협이 될 이들을 더이상 내버려둘 수는 없으니까요. 자국 내에 있는 무슬림 형제단 지도자들을 추방하는 미국과 사우디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았던 카타르가 이들에게 일주일 내로 출국하라고 통지한 것도, 사우디가 1990년 걸프전 이후 폐쇄했던 이라크 대사관을 상황에 따라 다시 세울 수 있다고 발표한 것도 이들에 맞서 공동대응하기 위해 결속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여집니다.

2) 하지만, 이를 주도하는 미국을 보는 여러 나라들의 움직임은 미국의 기대와 달리 움직이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미국이 난처한 상황에 빠진 것도 결국은 자신들이 자처한 결과니까요. 언제나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외교정책을 취하면서도 대의를 위한다는 명분만 앞세워 사안사안에 따라 서로 다른 잣대로 중동문제에 대응한 것이 한꺼번에 곪아터졌다고 할까요? 적어도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부터 이슬람 국가까지 오늘날 시끄러운 중동문제의 대부분은 미국이 개입해서 깔끔하게 정리하기는 커녕 오히려 혼란만 야기해 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담 후세인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과거 미국의 우호세력들이 오늘날의 적으로 돌변하기도 하고, 결국 허위로 판명된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서도 드러났듯 이슬람 국가를 공격하려는 미국의 숨겨진 의도에 대해 의심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사우드 씨족의 국가도 오늘날의 사우디가 없었다면 아라비아 반도에서 잠깐 반짝했던 지방 씨족들 중 하나로 역사에 남았겠지만, 사우디가 있기에 세차례나 국가를 세워야만 했던 이들의 흥망성쇠는 척박하고 크기만한 자연환경의 한계를 극복하고 나라를 세운 근성의 사우드 씨족이 이뤄낸 건국사로 기록될 수 있었습니다. ([역사] 사우디는 어떻게 건국되었을까? 사우드 씨족의 오랜 투쟁기, 사우디아라비아왕국 건국사 참조) 칼리프제를 표방하면서 사우드 씨족의 건국 모델을 재해석하여 진화하고 있는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 국가는 어떻게 끝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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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랍지역 전문 블로거 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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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

    2014.09.16 05:1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