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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살만 사우디 국왕, 쌍무함마드 체제로 전면 개편한 후계구도의 의의

둘라 2015. 5. 2.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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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서열 2위 왕세질?제?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자, 서열 3위 부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



사우디 살만 국왕은 취임 3개월만에 대대적인 개각을 통해 무끄린 왕세제를 친형 나이프 왕자의 아들이자 내무부 장관 겸 부왕세질?자?였던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자로, 자신의 아들이자 국방부장관 겸 왕실법원장이었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를 부왕세자로 전격 교체함으로써 노인정화 되면서 영속성에 의구심을 자아냈던 후계 구도를 파격적으로 재개편했습니다. ([정치] 살만 국왕의 신속한 체제 개편과 함께 재부상한 수다이리 7형제, 주목해야할 인물은? 참조) 국부 압둘 아지즈 국왕의 첫 손자 세대 후계자 및 차기 후계자. 


살만 국왕 취임 당시부터 강조해왔던 영속성은 압둘라 국왕의 정책기조를 이어가는 것이라기 보다 왕가 내 소수 파벌인 압둘라 국왕의 통치 10년간 숨 죽여왔던 수다이리 세븐 세습체제로의 영속성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조치입니다. 이는 압둘라 국왕의 장례식이 치뤄지기도 전에 부분 개각을 통해 무끄린 왕세제와 무타입 빈 압둘라 국가방위부 장관을 제외한 압둘라 국왕의 측근을 제거하면서부터 예고된 일이기도 했습니다.


압둘라 국왕과 살만 왕세제간 사우디 왕가 내 최초의 서면 합의로 부왕세제에 올랐다가 살만 국왕 부임과 동시에 왕세제에 올랐던 무끄린 왕세제는 사직서를 쓰고 모양새 좋게 물러나기는 했지만, 예멘인 모친을 둔 소수파 중의 소수파인 그로서는 자신의 우호세력이었던 압둘라 국왕의 측근들이 다 없어진 상황에서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사우디의 후계구도는 지난 2011년 10월부터 2012년 6월에 걸친 8개월간 살만 국왕의 친형이기도 했던 두 명의 왕세제 술탄 왕자와 나이프 왕자가 잇달아 사망함으로써 사우디 정치를 논하는데 있어 잠재적 불안요소이자 세대교체가 화두로 떠오른 바 있었습니다. 후계 구도가 압둘 아지즈 국왕의 아들 세대에서 손자 세대로 언제, 어떻게, 누가 첫 주자가 될 것인가가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당시 압둘라 국왕은 세대 교체 대신 역시 고령의 살만 왕자를 왕세제로 지명했었지만, 그가 국왕이 되는 것은 원치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조치를 잇달아 취했습니다. 살만 왕세제가 쥐고 있던 사우디 군부 내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자신의 측근을 차관에 임명했다던가, 뜬금없어 보이는 부왕세제 자리를 명문화시켜 역시 측근인 무끄린 왕자를 부왕세제에 앉히고 부분 개각을 통해 자신의 아들과 측근에 요직을 맡기면서 친정체제를 강화하려고 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두 가지의 변수로 인해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첫째는 고령의 압둘라 국왕에게는 친정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고, 살만 왕세제에게는 어리지만 자신의 아들이자 왕세제실 법원장이었던 무함마드 왕자가 있었습니다. 재단 설립 등 사회활동에 주력하면서 사우디 정치에서는 미미한 존재였던 무함마드 왕자는 왕세제실 법원장을 맡으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었습니다. 


사우디 군부 내 압둘라 국왕의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해 그가 지명했던 차관을 기어코 쫓아내는데 성공했고, 압둘라 국왕의 사망 즈음에 펼쳐졌던 캍리드 투와이지리 전 왕실법원장으로 대표되는 압둘라 국왕파와의 대결에서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니까요. 부왕세제가 되면서 자리를 물려주었지만, 압둘라 국왕의 장례식이 시작되기 전 칼리드 투와이지리를 왕실법원장에서 내쫓고 자신이 왕실법원장을 겸하면서 사우디 정치에서 살만 국왕 체제의 최대 수혜주로 급부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현재 세계 최연소 국방부 장관으로 부임한지 얼마 안되어 치룬 예멘 공습작전 (Descive Storm)의 성공적인 목표 달성은 경력이 일천하다는 불안감을 해소시키기에 충분한 덤.


무함마드 왕세질과 무함마드 부왕세자로 이어지는 쌍무함마드 후계체제는 향후 몇십년간 수다이리 파벌의 세습으로 이어지는 안정적인 후계구도를 구축했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첫째, 확 젊어진 후계 구도.

79세의 살만 국왕은 고령에다 알츠하이머 증세를 앓고 있는 등 건강문제도 안고 있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번 후계구도 개편을 통해 50대의 왕세질과 30대의 부왕세자를 임명하면서 향후 몇 십년간 안정적인 체제를 순식간에 구축해 버렸습니다. 압둘라 국왕 시절에도 이를 추진하고자 했지만, 소수파인 그로서는 수다이리 세븐의 삼형제 (술탄, 나이프, 살만)를 확 제끼고 아들 세대로 넘길만한 여력이 없었으니까요.


둘째, 잠재적 불안요인 제거

압둘라 국왕이 수다이리 세븐 삼형제를 무시할 수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이들이 사우디 군사력의 3대축인 국방부와 내무부 산하 치안유지군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예군인 국가방위군 (SANG)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던 압둘라 국왕으로서도 3대축의 두 축을 장악하고 있는 이들이 돌변할 경우를 예상하지 않을 수 없었을테고, 사우디 군부에 자신의 측근을 심으려고 했던 이유이기도 하니까요.


이번 후계구도 개편을 통해 자신의 가족이기도 하지만 알까에다 등 극단주의 테러조직들과 10년 이상 싸우며 내공을 키워 온 치안유지군의 수장인 내무부 장관인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자와 성공적인 예멘 공습작전을 수행한 국방부 장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를 서열 2, 3위로 끌어 올리면서 자신들을 향한 군사적 쿠데타의 가능성을 무효화시킨 것이 수다이리 파벌 세습 체제의 기반을 공고히 다지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성공적인 예멘 공습작전 수행과 군, 치안 수장들의 승진을 기념하여 사우디 군부와 치안요원들에게 한달치 급여를 보너스로 제공하면서 그들의 마음을 다잡아나간 것은 덤. 여기에 개각 발표 다음 날 발표한 칙령을 통해 왕실법원과 왕세제실법원을 왕실법원으로 통합시킴으로써 친척이지만 친족은 아닌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세질 측근에 권력 다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지니어스급 참모가 나올 가능성을 원천봉쇄한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입니다. 


살만 왕세제가 압둘라 국왕의 견제를 뚫고 국왕에 오르기까지 왕가 내 권력투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맡았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 같은 우수한 책사가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세질에게도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말이죠....


사우디 왕가의 최대 파벌이자 7명의 왕자 중 2명의 국왕 (5대 파하드, 7대 살만)을 탄생시킨 수다이리 가문으로의 세습체제를 공고히 하고 향후 몇 십년간 정치적 불안요인을 단 한번에 일소한 것이 이번 후계구도 개편의 백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살만 국왕은 안정적인 정지기반 하에서 산업 다각화와 사우디인 실업문제 해소라는 경제 개혁에 더욱 집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대대적인 개각에 이어 세계최대석유회사인 아람코를 석유 중심의 회사에서 벗어나는데 초점을 맞춘 구조개편안을 진행하기 시작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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