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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CC&GU/사우디

[정치] 살만 국왕의 신속한 체제 개편과 함께 재부상한 수다이리 7형제, 주목해야할 인물은?

둘라 2015. 1. 24.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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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둘라 국왕의 타계로 왕위에 오른 살만 사우디 국왕은 취임 후 첫 대국민 TV연설을 통해 전임 압둘라 국왕의 업적을 기리고 사우디가 세워진 이래 옳은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 왔다면서 "안정"과 "통합"이라는 기치 하에 점진적 개혁을 추진해 온 압둘라 국왕의 정책을 계승해 나갈 것임을 약속하며 큰 정책변화는 없을 것임을 암시했습니다. 뭐, 확 뜯어고칠만큼 여유있는 상황이 아니긴 합니다만...


하지만, 정책수행의 연장선상에서 기존의 장관들은 큰 변화없이 그대로 임기를 보장할 것이라고 밝힌 와중에도 왕권 승계와 연계된 요직에 자기 사람을 앉히는데 성공하면서 왕실 내 최대 파벌인 수다이리 7형제를 약화시키고 소수파지만 우호세력을 모아 친권 강화를 도모했던 압둘라 국왕의 뜻은 자신의 장례식이 치뤄지기 전에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무함마드 빈 나이프 부왕제 겸 내무장관)


부왕세제 자리를 명문화할 당시 압둘라 국왕과 서면합의한대로 무끄린 부왕세제를 일단 취임 즉시 서열 2위인 왕세제로 앉히기는 했지만, 그로부터 몇시간 뒤 이례적으로 빨리 공표한 서열 3위인 부왕세자 자리에 압둘라 국왕의 아들인 국가방위부 장관 무타입 빈 압둘라 왕자가 아닌 살만 국왕의 친형 고 나이프 왕세제의 아들이기도 한 1959년생의 내무장관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자를 임명하면서 후계구도를 명확하게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살만 국왕 역시 고령이면서도 알츠하이머와 치매를 앓고 있는 등 건강이 좋지 않은데다, 불명확한 후계구도에 대한 주위의 우려를 일단 불식시키기 위한 조치로 보입니다. 그 덕에 무함마드 왕자는 압둘아지즈 국왕의 첫 손자세대 왕자이자 수다이리 7형제 아들세대로는 처음으로 왕권 승계를 가시권 안에 두게 되었지만요.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자는 압둘라 국왕이 자신의 권력기반이었던 국가방위군을 국가방위부로 승격시키면서 자신의 아들인 무타입 빈 압둘라 왕자를 장관급으로 격상시키기 7개월 전인 지난 2012년 11월 내무차관에서 내무장관으로 승진하면서 압둘 아지즈 손자 세대 왕자들 중 첫 요직에 오르며 차세대 왕위 계승에 선두주자로 나선 바 있습니다. ([정치] 무타입 왕자의 장관 승격으로 본 유력 차기 승계후보들... 참조) 그는 내무부 산하 국내치안보장국을 이끌고 2003년 이후 사우디 내 테러와의 전쟁에 선봉장으로 나서면서 카리스마를 발휘한 바 있으며, 이 와중에 사우드 왕실에서 처음으로 반군 세력에게 보복테러를 당한 바 있는 테러와의 전쟁에 있어 사우디 왕실 내의 상징적인 존재이기도 합니다. ([정치] 새 내무장관에 무함마드 왕자 임명, 차세대 왕위 계승 선두주자로 나서! 참조)


뜻밖의 부왕세자 확정도 있지만, 이번 인선에서 무엇보다 주목해야 될 인물은 살만 국왕의 아들이자 왕세제실법원장 겸 국방장관 개인 보좌역을 맡고 있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입니다. 이번 개편을 통해 국방장관과 왕실법원장에 취임하면서 자신의 영향력과 입지를 급부상시킨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고 할까요? 


(무함마드 빈 살만 국방장관 겸 왕실법원장)


아버지 살만 왕세제의 충실한 보좌역이었던 29세의 무함마드 왕자는 아버지의 국왕 부임과 함께 국방장관이 되면서 고령화 된 사우디 장관들 중 최연소 장관이 되었습니다. 그간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그는 국방장관 개인보좌역이었던 당시 압둘라 국왕이 수다이리 7형제가 장악하고 있는 사우디 군부에 자신의 우호세력을 심기 위해 국방차관으로 임명했던 칼리드 빈 반다르 왕자를 6주만에 전격 경질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주목을 받은 바 있습니다. ([정치] 압둘라 국왕, 칼리드 빈 반다르 국방차관을 지명 6주만에 전격 경질, 그리고 그 배경 참조) 



아울러 살만 국왕은 압둘라 국왕의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밝히면서도 왕세제 당시 왕세제실법원장이었던 무함마드 왕자를 국방장관에 이어 왕실법원장으로 승진시키면서 고 압둘라 국왕의 충실한 집사이자 개혁정책 추진의 막후 인물로 보수적인 종교세력들에게 눈엣가시로 여겨져 왔던 칼리드 알투와이지리 왕실법원장을 몰아내며 압둘라 국왕의 그림자를 지워내는데도 성공했습니다. ([인물] 사우디를 움직이는 권좌 뒤의 실세, 압둘라 국왕의 최측근이자 왕실법원장 칼리드 알 투와이지리 참조)


이로서 살만 국왕으로 대표되는 왕실 내 최대 파벌인 수다이리 7형제는 압둘라 국왕의 장례식이 치뤄지기도 전에 압둘라 국왕의 기세에 밀려 그동안 약화되었던 권력을 신속하고 자연스럽게 강화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고 압둘라 국왕의 장례식

(이맘 투르크 빈 압둘라 모스크에서의 장례식)


상대적으로 왕실 내에서 소수파인 자신의 친권 강화을 위해 애썼으나 그 뜻을 이루기 전에 타계한 압둘라 국왕은 타계 후 열 몇시간 만에 이맘 투르크 빈 압둘라 모스크에서 장례식을 치룬 후 알오드 공동묘지 내 표식없는 무덤에 묻히며 세상과 작별을 고했습니다. ([문화] 무슬림의 죽음, 새롭고 영원한 삶에 이르는 교량 참조)



(알오드 공동묘지에 묻힌 압둘라 국왕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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