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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이스라엘과 미국이 의도치않게 만든 강경파 이란 최고 지도자의 등장? 모즈타바 하메네이

둘라 2026. 3. 4.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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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일 이스라엘은 테레한과 꼼에 있는 이란의 전문가 의회 (Majils-e Khobregan/ Assembly of Experts) 본부 건물을 공습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란의 전문가 의회는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를 선출, 감독, 그리고 필요시 해임할 권한을 가진 88명의 고위 성직자들로 구성된 국가 최고 의결 기구로 지난 2월 28일 이란의 2대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이스라엘과 미국의 폭격으로 사망한 이후 가장 주목받는 정부 기관이 되었습니다. 알리 하메네이의 사망으로 인한 권력 공백을 최소화하고 그의 뒤를 이을 새로운 최고 지도자를 선출해서 체제를 조기에 안정화 시키는 책임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이란 국정을 관리하는 건 최고 지도자 대행으로 아야톨라 알리레자 아라피가 의장으로, 그리고 대통령 마수드 페제시키안, 사법부 수장 골람 호세인 모세니 에제이의 3인으로 이뤄진 임시 지도부 위원회가 맡고 있습니다.

 

전문가 의회 본부가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고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수의 소식통들은 전문가 의회가 사망한 알리 하메네이의 차남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이란의 3대 최고 지도자로 내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누구?

 

모즈타바 호세이니 하메네이는 1969년생으로 지난 28일 사망한 알리 하메네이의 차남이자, 이란 정치, 종교 엘리트 내부에서 비공식적으로 영향력이 가장 큰 인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성직자로서의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이슬람 신학을 공부했으며, 초기에는 아버지 알리 하메네이와 아야톨라 마흐무드 하세미 사루디로부터 사사를 받았고, 1999년에는 성직자가 되기 위해 이란의 성지이자 대표적인 성직자 교육 중심지 꼼으로 가 모하마드 타키 에스바 야즈디, 아야톨라 로트폴라 사피 골파이가니 등으로부터 신학을 공부한 뒤 꼼 신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는 공식적인 직위를 갖고 있지는 않았음에도 초대 최고자도자인 루홀라 호메이니의 아들 아흐마드 호메이니가 했던 것처럼 아버지 알리 하메네에의 최고 지도자 사무실 (베이트) 내부에서 활동하며 권력 접근을 관리하는 게이트 키퍼이자 권력 중개자 역할을 맡아 이란의 권력 구조 내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가 가징 강력한 영향력은 바로 이란 체제를 수호하고 있는 이슬람 혁명 수비대 (IRGC)와의 끈끈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란-이라크전이 막바지에 접어들던 1987년부터 종전된 88년까지 2년간 이슬람 혁명 수비대 산하 최정예 전투 부대인 제27 모함마드 라수룰라 사단 (27th Mohammad Rasulullah Division) 산하 하빕 대대 (Habib Battalion) 소속으로 참전해 다수의 전투에 투입되었으며, 그당시 함께 싸웠던 전우들이 현재의 이란 정보기관, 이슬람 혁명 수비대, 보안 조직의 핵심 인물로 자리잡으면서 그의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는 기반이 되는 엘리트 군부 기반의 강력한 네트워크를 구축했기 때문입니다.

 

 

강경파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지원과 논란의 2009년 대선

그가 이란 정치판에서 주목받은 건 2005년부터 2013년까지 이란 대통령을 역임했던 강경파 대통령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를 지지하면서부터 였습니다.

 

네... "이스라엘을 지도상에서 없애야 한다"는 강경 발언으로 악명이 높았던 그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틀린 말은 아니었....)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많은 언론인들은 그가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가 연임에 도전했던 2009년 총선을 승리를 이끄는데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특히 이란 정권이나 미디어를 통해 이름이 공개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혁명 수비대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만든 준군사 조직 바시지 (Basij)를 직접 지휘하여 반정부 시위에 대한 강경 진압을 이끈 핵심 인물로 추정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 대선 당시 개혁파 후보로 출마했던 메흐디 카루비는 공개 서한에서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불법적인 개입을 수행한 네트워크"를 활용해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에게 유리하도록 선거를 조작하려는 음모에 가담했다고 비난했었으 정도라고 하죠.

 

훗날 그의 지원을 받아 이란 대통령 재임에 성공한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는 그가 국가 재정을 횡령했다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만....

 

한편, 퇴임 후 의회와 헌법수호위원회 간의 갈등을 중재하고 최고 지도자의 자문을 맡고 있는 체제 이익 판별 위원회 (Expediency Discernment Council) 회원이기도 한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는 지난 주말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습으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며칠 뒤 살아남았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한 바 있습니다.

 

 

미국의 제재 대상임에도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한 막대한 자산 축적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Bank Ayandeh와 같근 은행에 상당한 금융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블룸버그가 약 1년 동안 조사를 진행하여 여러 관련 인사들의 평가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이란 외부에 자산을 보유하고 이동하기 위해 사용된 해외 금융 네트워크와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이 네트워크가 보유한 것으로 보도된 자산에는 런던과 두바이에 있는 고가 부동산, 그리고 유럽의 해운, 은행 거래 관계, 호텔 자산과 연결된 지분 등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죠.

 

보도에 따르면 이러한 자산은 대부분 모즈타바 하메네이 본인의 이름으로 직접 보유된 것이 아니라, 여러 중개인과 다층적인 기업 구조를 통해 여러 국가의 법인을 거치는 방식으로 관리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자금 흐름과 관련된 조사와 감시가 강화되면서 일부 자산은 이미 매각되거나 구조가 변경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또한 그의 네트워크와 관련된 자금의 상당 부분이 이란의 석유 수입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며, 2019년에 그에 대한 국제적인 제재가 부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국가의 금융기관을 통해 자금이 이동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한 있습니다.

 

그는 지난 2019년, 어떠한 공식 직위에도 선출되거나 임명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최고지도자를 대신해 권력을 행사했다는 점 때문에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올랐습니다. 그 외에도 그는 꾸드스군 (Quds Force) 사령관과 긴밀히 협력한 혐의도 받았습니다. 꾸드스군은 탈레반, 헤즈볼라, 하마스, 팔레스타인 이슬람 지하드, 이라크의 인민동원군(Popular Mobilization Forces) 등 여러 조직에 대해 치명적 군사 지원, 정보 제공, 자금 지원, 훈련 등 비밀 작전을 수행한 조직으로 지목되어 있다. 이와 함께 그는 2009년 대선에서 악명을 날렸던 준군사 조직 바시지 (Basij)와도 밀접한 관계를 꾸준히 유지해가며, 아버지의 지역적 영향력 확대 정책과 국내 억압 정책을 추진하는 데 기여했다는 혐의로 제재 대상에 포함된 이유였습니다.

바시지 깃발

 

그리고 2026년 1월 14일,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이란 지도부가 2025년부터 시작된 이란 내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는 동안 전 세계 금융기관으로 “수백만 달러에서 수천만 달러” 규모의 자금을 송금해 왔다고 주장했으며, 이스라엘 방송 채널 14 (Channel 14)는 약 15억 달러 규모의 암호화폐가 두바이의 한 계좌로 송금되었고, 이 과정에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관여해 이 중 약 3억 2,800만 달러는 모즈타바 하메네이 본인이 보낸 것으로 보도한 바 있습니다.

 

 

강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최고 지도자가 되기엔 어려웠던 결격 사유

그는 아버지를 보좌하며 얻게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과 강력한 이슬람 혁명 수비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 군부의 지지, 축적된 경제적 능력 등으로 고령의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의 잠재적 후계자로 여겨졌지만, 한편으론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다음 최고 지도자가 되는 길을 막는 결정적인 결격 사유가 있습니다.

 

그가 이슬람 신학을 공부하고 신학교에서 강의한 이력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신성 국가 이란의 최고 지도자가 될 만큼의 신학적 지위가 있는가?

 

아울러, 그 누구보다 그의 후계자 지명에 반대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아버지 알리 하메네이였습니다.  세속적으로 권력이 아들이나 형제 등 혈연에게 세습되는 수니파를 거부한 시아파의 교리상 알리 하메네이가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지명할 경우 이란의 정치, 종교 지도부 내부에서 갈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죠. 초대 최고 지도자인 루홀라 하메네이가 자신을 오랫동안 보좌해 온 아들 아흐마드 대신 자신을 후계자로 지도했던 것처럼, 모즈타바에게 아흐마드의 역할 정도만 부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에게 최고 지도자가 될 갓벽한 서사를 만들어 준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습

그런 결격 사유와 논란을 감수하고서라도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이란의 3대 최고 지도자로 지명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이스라엘과 미국 덕분입니다.

 

가족은 해외에서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기면서 자신은 일을 벌려놓고 유럽으로 튀었다가 며칠 뒤에 돌아오는 네타냐후와 달리, 알리 하메네이는 피신할 기회를 마다하고 자신의 거처에서 전사하는 길을 택해 순교를 택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거처에서 자신의 부인, 자녀와 며느리, 14개월 손녀까지 함께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습에 폭사하면서 시아파들의 원죄의식을 자극하는 카르발라 참극의 주인공 후세인 이븐 알리에 버금가는 역대급 순교자가 되었으니까요.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후계자로 지명할 생각이 없었다는 알리 하메네이가 자연사했다면 그에게 기회가 없었겠지만, 전쟁 중 최고 지도자의 급사로 인한 긴급 상황단기간에 정치적 공백을 메워 진행 중인 전쟁을 지속해서 수행해야만 하는 이슬람 혁명 수비대 등 군조직을 다잡기 위해서라도 이들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삼고 있는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차기 최고 지도자로 지명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 것입니다. 어차피 작년과 올해 두 번에 걸쳐 협상 테이블에 앉아봤자 갑작스런 공습으로 뒷통수만 치는 미국을 상대해야만 하는 이란의 입장에서는 대화가 필요한 온건파보다 맞서써워야 할 강경파 지도자가 필요한 상황일테구요.

 

아울러 알리 하메네이가 생전에 그의 후계자 지명을 반대해왔기 때문에, 논란이 될 수 있는 혈연 상속에 있어서도 한결 부담을 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선대 지도자가 그를 직접 후계자로 지명하진 않았음에도, 전문가 의회가 선택했다는 명분이 있으니까요.

 

아버지의 순교에 더해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습으로 그는 한순간에 부모님은 물론, 자신의 한 명 뿐인 부인과 아들을 함께 잃고 그 와중에 살아남은 비운의 주인공이 되어버렸죠. 그야말로 자신의 가족을 학살한 이스라엘과 미국에 대한 개인적인 복수심까지 얹어진 강경파 지도자가 탄생하는 길, 위협에 맞서다 당당하게 전사한 지도자의 순교와 자신의 눈 앞에서 폭사한 가족을 위한 복수의 갓벽한 서사, 을 직접 열어버린 셈이 되었습니다. 알리 하메네이가 결코 원하지 않았다고 전해지는...

 

초강경파 인사로 분류되는 그가 최고 지도자로 자리매김하게 되면 지난 2009년 총선 개입에서 볼 수 있듯 이란 국민은 물론이거니와 이란을 상대해야 하는 모든 나라들이 피곤해질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이스라엘과 미군의 공습으로 인한 아버지의 순교와 여자 초등학생 학살사건으로 인해 상당수 국민들의 반정부 정서가 반미 정서로 돌변한 역전된 흐름을 이어받아 강력한 내치를 펼칠 것으로 보이는데다가, 강경파 이슬람 혁명 수비대의 폭주를 억제해 왔던 알리 하메네이의 죽음으로 인해 그들을 통제할 제어기마저 사라져 버렸으니까요.

 

특히 "핵무기를 개발하지 말라"는 알리 하메네이의 파트와를 지킨 결과가 이스라헬과 미국의 2025년과 2026년으로 이어지는 두 차례의 공습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이란 역시 대화보다는 전쟁을, 핵무기를 개발해야만 하는 명분을 얻게 된 셈입니다. 바로 이스라헬과 미국에 의해서 말이죠. 

 

 

이란의 핵무기 개발 명분을 제공한 미국

네타냐후가 1992년부터 지금까지도 30년 넘게 "이란이 곧 핵무장을 할거래요!"라는 뇌내망상을 잊혀질만하면 한번씩 시전하며 미국 대통령을 낚아 이란과 전쟁을 벌이려고 환장한 반면, 아이러니하게도 알리 하메네이는 네타냐후가 악마의 혓바닥을 놀리던 1990년대 중반부터 핵 무기 개발에 반대하는 파트와를 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90년대 중반, 2003년, 2005년 등 수차례에 걸쳐 여러가지 버전이 존재하는 것으로 전해진 그의 파트와는 2010년 공식 홈페이지 파트와 섹션에 "대량 살상무기 반대 (Prohibition of Weapons of Mass Destruction)"라는 제목으로 온라인에 공개된 된 바 있습니다.

“우리는 핵무기뿐만 아니라 화학무기와 생물무기와 같은 다른 형태의 대량살상무기도 인류에게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믿는다. 화학무기의 피해를 직접 겪은 이란 국민은 이러한 무기의 생산과 비축이 가져오는 위험을 그 어떤 나라보다도 깊이 느끼고 있으며, 이러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모든 역량을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는 이러한 무기의 사용을 이슬람 율법상 금지된 것(하람)으로 간주하며, 인류를 이 거대한 재앙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의무라고 믿는다.”

 

그의 파트와에 따라 이란은 자체적인 기술인 핵무기를 개발 및 제조 능력을 갖고 있었음에도 실제로는 핵무기를 보유하지는 않았고, 이로 인해 지난 주말까지 이어진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작년보다 진일보해 "핵무기 개발과 관련된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는 파격적인 딜을 던졌음에도 돌아온건 여자 초등학생 집단학살 및 알리 하메네이와 가족 학살이었으니까요.

 

앞선 글에서 언급했던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 중 최악의 시나리오인 현 이란 정권의 생존이 현실화된다면, 이 시나리오의 집필자는 단언컨대 이스라엘과 미국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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