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C/GU/사우디2017. 11. 8.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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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4일은 사우디 역사에 길이남을 역사적인 밤이 되었습니다.


11월 4일 밤 리야드 킹 파흐드 국제공항 부근에서 발생한 굉음이 들렸고, 사우디군은 이 굉음이 예멘의 알후씨 반군이 발사한 미사일을 인명피해없이 성공적으로 격추시켰다고 발표하면서 끝나는가 싶었는데... 미사일 사건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살만 국왕은 뜬금없이 국가방위부 장관 무타입 빈 압둘라 왕자와 불과 며칠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사우디-한국 비전 2030에 서명했던 아딜 파끼흐 재경계획부 장관을 경질한다는 칙령을 내리고 나서야 "사익을 위해 공익을 무시하는 연약한 영혼들이 있다"며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이끄는 부패척결 최고위원회를 발족시킨다는 칙령을 내렸으며, 이 칙령을 기다렸다는 듯 자정 무렵 11명의 왕자와 38명의 전현직 장관을 비롯한 고위공무원, 사업가들을 부패, 뇌물수수, 돈세탁 혐의로 잡아들여 리츠칼튼 리야드에 구금하기 시작했으며, 이례적으로 SNS 등을 통해 누가 체포되고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공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사우디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한 번에 일어나기도 힘든 일이 모두 진행되는데는 불과 몇 시간이면 충분했습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한 인터뷰에서 "대대적인 숙청의 밤"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법보다 위에 있는 사람은 없다고 밝혔으며, 구금한 사람들은 공개재판을 받아 법에 따라 엄정한 재판을 거쳐 유무죄 여부를 결정하여 유죄가 드러난 경우 국가재산으로 귀속시키겠다며 불과 4일만에 500여명 이상을 체포하고 1200개 이상의 계좌를 동결하고 그 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11월 4일의 대대적인 숙청작업은 반대파의 대거 숙청을 넘어서서 이미 경제개발위원회 위원장이자 국방부 장관으로 경제와 국방을 손아귀에 넣었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수사 및 체포를 포함한 광범위한 권력을 부여받은 반부패 최고 위원회를 이끌면서 내무와 사우디 군부의 3대축 중 유일하게 손아귀 밖에 있었던 국가방위부 (SANG)를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왕세자 신분으로 국가의 주요 권력을 손에 넣은 GCC 국가 역사상 찾아볼 수 없는 전대미문의 왕세자가 되는데 성공했습니다. 오만의 술탄 까부스가 국방, 외무, 재무 장관을 겸임하고 있는 전제 군주지만, 술탄 까부스는 아버지를 쿠데타로 몰아내고 술탄이 되고나서야 권력 독점이 가능했던 케이스라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아울러 사우디 왕가 내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던 왕위 계승 방식을 철저하게 짓뭉개버린건 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악명높았던 종교경찰의 권한 약화, 사우디 내 콘서트 부활, 여성 운전 및 경기장 입장 허용, 홍해 일대 관광 프로젝트 및 대규모 미래 신도시 건설과 1979년 이전 온건한 이슬람 국가로의 회귀 선언 등 일련의 온건한 개혁정책을 통해 전세계를 놀래켰던 그는 이번엔 전혀 상반된 대대적인 숙청작업으로 다시한번 전세계의 주목을 받는데 성공했으며, 극단적인 일련의 이벤트들은 사실상 2013년까지 존재감도 없었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자신이 벌여온 권력투쟁을 통해 스스로 왕위에 오르게 될 자신의 통치 스타일을 전적으로 보여주는 예고편이기도 합니다.


그가 보여준 스타일은 간단명료합니다. "나를 따르는 자 (70% 이상 젊은 국민)에겐 즐거움을, 반대하는 자 (기득권층을 위시한 반대세력)에겐 응징을!"


왕위를 향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권력투쟁기

위키피디아에도 항목이 없었을 정도로 존재감이 약했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주목을 받고 압둘라 전국왕파와의 악연이 시작된 것은 압둘라 전국왕이 사우드 왕가 내 소수파인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친권체제 강화를 노리던 통치 말기인 2013년 경부터입니다. 


서장- 압둘라 국왕의 친권강화 시도를 저지하며 존재감을 드러내다. (2013년~2015년 1월 23일)

압둘라 국왕이 술탄 전왕세제에서 살만 당시 왕세제로 이어지며 왕가 내 최다 파벌인 수다이리 세븐이 장악하고 있던 국방부에 자신의 우호세력을 갖추기 위해 지명했던 칼리드 빈 반다르 국방부 차관을 지명한지 6주만에 전격 경질시키게 만든 주인공이었거든요. ([정치] 압둘라 국왕, 칼리드 빈 반다르 국방차관을 지명 6주만에 전격 경질, 그리고 그 배경 참고) 

이 이벤트를 통해 의외의 타이밍에 주도권을 잡아 겉으로 보기에 모양새는 좋게 상대방을 숙청하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시키는 그의 투쟁 스타일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1장- 압둘라 국왕의 타계에 맞춰 무끄린 왕세제와 무타입 국가방위부 장관을 제외한 압둘라 국왕파를 제거 (2015년 1월)

그리고 그의 스타일이 빛을 발한 것은 바로 압둘라 국왕이 타계한 2015년 1월 23일 새벽입니다. 비공식적으로 들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가 주도하여 살만 왕세제파가 아들인 무타입 빈 압둘라 왕자에 앞서 압둘라 국왕의 시신을 먼저 점유하는데 성공하면서 반전을 노렸던 압둘라 국왕파의 시도를 차단하고 살만 왕세제를 국왕으로 등극시켰죠. ([정치] 압둘라 국왕 타계, 사우디는 살만 국왕, 무끄린 왕세제 체제로... 참조) 압둘라 국왕과 살만 왕세제간의 서면 약속도 남아있어 무끄린 빈 압둘아지즈 부왕세제는 왕세제로 승격시키고, 예상 외로 그의 아들인 무타입 빈 압둘라 왕자는 국가방위부 장관으로 남겨둔 채 앙숙이었던 압둘라 국왕의 심복 칼리드 알투와이지리 왕실법원장 포함하여 나머지 압둘라 국왕파는 요직에서 전부 경질시켜버렸습니다. ([정치] 살만 국왕의 신속한 체제 개편과 함께 재부상한 수다이리 7형제, 주목해야할 인물은? 참조)


2장- 무끄린 왕세제 사임, 자신을 부왕세제로... (2015년 1~5월)

살만 국왕이 취임하면서 왕세제가 된 무끄린 빈 압둘아지즈 왕자가 그 자리에 오래 있지 못할 것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살만 국왕을 위시한 수다이리 세븐이 장악한 정부 내에서 그나마 자신을 그 자리에 올려줬던 우호세력인 압둘라 국왕파라고 해봐야 무타입 빈 압둘라 국가방위부 장관 밖에 없는데다 공식적인 서열과 상관없이 살만 국왕 체제의 실세가 되어가고 있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의 영향력은 더욱 강해지고 있었으니까요. 결국 무끄린 왕세제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살만 국왕 취임 3개월만에 왕세제직을 스스로 물러나고,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는 부왕세제가 되면서 국왕에 오르기 위한 본격적인 시동을 걸게 됩니다. ([정치] 살만 사우디 국왕, 쌍무함마드 체제로 전면 개편한 후계구도의 의의 참조).    


3장- 커리어를 쌓기 위한 오랜 기다림, 그리고 왕세자로! (2015년 5월~2017년 6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는 자신이 벌인 예멘 알후씨 반군과의 전쟁으로 질퍽거리면서도 국내외적으로 광폭의 행보를 펼치며 서열 3위면서도 서열 2위인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세질보다 많은 주목을 받으며 사실상의 실세가 되어버리고야 맙니다. 미국 등을 위시한 주요 우방국들을 직접 방문하면서 정재계 인사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한편, 스포츠청과 엔터테인먼트청을 신설하면서 국민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쌓아나가기 시작하고 비전2030을 발표하는 등 정적 숙청보다는 왕위 즉위를 위한 속성 트레이닝 코스를 밟게 됩니다. 실제로는 아버지를 국왕에 올려놓은 1등 공신이자 막후 실세지만, 그래도 남들이 보기엔 여전히 혈기좋게 날뛰는 천둥벌거숭이였을테니 말이죠. 워낙 무함마드 빈 살만 부왕세제가 마치 실세인양 나대는 통에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존재감을 잃으면서 주변의 시선에서 묻혀졌던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세질은 결국 왕세질에 오른지 약 2년 만인 2017년 6월 자리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정치]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자의 파격적인 왕세자 지명과 그 배경 참조).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세질이 이끄는 내무부의 핵심기능 중 하나인 범죄 수사 및 형사 사건 전반을 다루는 수사·기소국(BIP)을 국왕 직속으로 개편하면서 내무부의 세력을 약화시킨지 불과 4일만의 일이었습니다. 공개적으로는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세질이 새롭게 왕세제가 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에게 충성서약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등 평화로운 승계작업임을 보여줬지만, 며칠 뒤 서방 언론을 통해 이 이벤트 역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의 작품이라는 것이 밝혀지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우드 왕가에서 유일하게 무장세력에 의한 암살미수 사건을 겪는 등 대테러전 전문가였던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자도, 정작 자신의 사촌동생에겐 허무하게 당하면서 산전수전 겪으며 그동안 일궈왔던 권력을 잃게 되었죠.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자가 대를 이어 유지해왔던 내무부와 자신이 이끄는 국방부에다 사우디 내 3대 군사세력 중 하나인 내무부 산하 국내안전보장국을 손에 획득하게 됩니다.


4장- 압둘라 국왕파의 종말과 잠재적 위험요소 숙청에 나선 숙청의 밤

지금까지는 앞에 있던 두 사람을 하나하나씩 제끼는데 성공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여전히 자신에 대한 반감과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왕가 내 반대세력, 혹은 잠재적 위험요소를 덜어내야 할 부담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미 경험했던 것처럼 한두명을 숙청하는 건 크게 문제가 안되지만, 피를 흘리지 않고 보기좋게 다수의 위험요소를 색출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인데다 잘못 처리할 경우 자신에게도 위험부담이 크니 말이죠. 그래서 택한 방식이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지만, 그 누구도 지금까지 제대로 손댄 적이 없었던 왕가, 혹은 기득권 내 "부패와의 전쟁"입니다.


사우디는 세계 최고의 산유국이지만, 국민은 부유하지 못합니다. 오일붐을 타고 불과 50년새 10배로 폭증한 인구와 국토는 넓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구역은 생각만큼 넓지 않은 탓에 국가는 G20에 포함될 정도로 부유하지만, 정작 국민은 자가주택 보유율이 30%를 밑돌고 자가주택을 보유하지 못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최저생활 수준 이하의 허름한 집에서 거주할 정도인데다 니따까로 대표되는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사우디제이션 정책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10%를 상회하는 실업률로 인해 심각한 부의 불균형 상태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반면 카타르는 국가 총생산은 사우디의 1/3도 안되지만, 자국민 수가 1/100도 안되기 때문에 오히려 높은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것과 비교해봐도...) 더군다나 무함마드 왕세자 말처럼 청년 인구가 70%에 달하는 만큼 1900년대 후반 오일붐을 잘 타서 일찌감치 부를 장악한 극히 소수의 왕가 혹은 기득권층만 배부른 상황이거든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가 숙청했거나 숙청 중인 주요 인사들의 추정 재산규모만 봐도....ㅎㄷㄷ

이런 상황이다보니 부패척결을 빙자한 반대파 숙청 및 재산 압류는 상대적으로 빈곤하고, 이들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던 대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냄과 동시에 유가 하락으로 세입이 줄어드는 가운데 엄청난 자산을 국고에 환원시킬 수 있고, 개혁을 이끌고 있는 자신을 왕족이거나 기득권에 상관없이 죄를 범하면 가차없이 처단할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로 인식시키면서 "부패와의 전쟁"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에 힘입어 대대적인 숙청을 합리화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셈입니다. (그 여파로 GCC 주식시장에서 60억달러가 빠져나갔을 정도로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가시화되자 부패한 개인에 대한 재산만 동결할 뿐, 법인에 대해서는 정상적인 영업을 보장할 거라며 뒷수습에 나서긴 했지만요...)


하지만, 부패와의 전쟁이라는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워 시작한 대규모의 검거작업이 공공연하게 정치적 의도가 다분히 깔린 숙청작업으로 인식되는 것은 그나마 신원이 확인된 인사들의 면면에서 확인됩니다. 재수사에 나서겠다고 밝힌 2009년 젯다 대홍수 사건과 2012년 메르스 창궐 사건과 연루된 인사의 신원은 공개되지 않은 가운데 드러난 인사들은 압둘라 국왕파거나, 혹은 잠재적인 위험요소를 가진 위험인사거든요.


무타입 빈 압둘라 왕자 (전 국가방위부 장관)- 무엇보다 압둘라 국왕파가 50년 넘게 장악했던 국가방위부 (SANG)을 마침내 수다이리 세븐으로 흡수하는데 성공하면서 압둘라 국왕파를 완전히 요직에서 제거하는데 성공! ([정치] 압둘라 사우디 국왕과 그가 위상을 강화시킨 자신의 권력 기반, 사우디 국가방위부 참조)

투르키 빈 압둘라 왕자 (전 리야드 주지사)와 칼리드 알투와이지리 (전 왕실법원장)- 2015년 1월 살만 국왕 즉위와 동시에 내쳐졌던 압둘라 국왕의 아들과 심복. 특히 칼리드 알투와이지리에 대해서는 [인물] 사우디를 움직이는 권좌 뒤의 실세, 압둘라 국왕의 최측근이자 왕실법원장 칼리드 알 투와이지리 참조.

압둘아지즈 빈 파흐드 왕자 (체포에 저항하다 사살당했다는 설과 정부의 부인이 교차되며 생사가 묘연)- 압둘라 전국왕과 나이프 빈 압둘아지즈 전왕세제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세질의 아버지)의 우호세력.

알왈리드 빈 탈랄 왕자 (킹덤 홀딩스 회장)- 사우디 최고의 부자이면서 왕권과는 거리가 멀지만 소신 발언을 꾸준히 해왔으며 바레인에 중도 성향의 뉴스채널을 개국했다가 방송내용을 문제삼은 바레인 당국에 의해 하루만에 폐국된 전례가 있음. 그의 아버지 탈랄 빈 압둘아지즈 왕자는 1962년에 입헌군주제를 주장하는 자유왕자운동을 이끌었다가 왕권 계승서열에서 완전히 밀려났음.


압둘라 전국왕에 의해 부왕세제로 지명되어 왕세제라는 가시방석 위에 내려오면서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감추다시피했던 무끄린 빈 압둘아지즈 왕자는 이 소동 속에 자신의 아들 만수르 빈 무끄린 왕자를 원인불명의 헬기사고로 잃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비극적인 사고 후 살만 국왕이 무끄린 왕자에게 직접 애도를 표하고 체포에 저항하다 살해당한 왕자도 있다는 설로 곤욕을 치루던 사우디 정부는 이틀이 지나 동승했던 탑승객의 신원을 공개하며 공무 중 당한 불의의 사고라고 밝히면서 해외 도피를 시도하다 추락했다는 항간의 설을 부인하기에 나섰죠. 



사우디의 절친이기도 한 이웃 UAE 셰이크 사이프 빈 자이드 부총리 겸 내무부 장관과 셰이크 압둘라 빈 자이드 외교국제관계부 장관을 대표로 하는 조문단을 보내 무끄린 왕자를 위로하는 것으로 보아 만수르 빈 무끄린 왕자의 죽음은 공무 수행 중 순직으로 처리하려는 모양새입니다. 특히, 사살설이 돌고 있는 압둘아지즈 빈 파흐드 왕자와 비교해봐도...요즘 같은 상황에서 해외도피를 시도하다 죽은 거라면 이런 훈훈한 장면이 보여지진 않겠죠. 

하지만, 이 또한 사우디 정부의 의도와 달리 이 역시 반대파들에 대한 무언의 압박이라는 설도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컨트롤 하에 있는 군이 만수르 빈 무끄린 왕자 일행이 타고있던 비행기를 격추시켰고, 반항하면 이렇게 묻혀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시범 쇼케이스랄까요.


대규모 숙청작업과 동시에 제정된 테러방지법

사우디 정부는 법 위에 그 누구도 있을 수 없다며 시작한 시끌법적하게 시작한 대대적인 숙청작업으로 인해 묻힌가운데 그 다음날 무시하지 못할 법을 하나 발표했습니다. 테러와 연루된 죄질에 따라 최대 사형에 처할 수도 있는 새로 강화된 테러방지법이 섬뜩한 이유는 "국왕 (및 왕세자!!!)를 공공장소에서 비방하거나 모욕하다 적발될 경우 징역 5~10년형에 처할 수 있다"는 모욕죄 조항이 추가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왕권에 반대하는 자에 대해서는 법에 따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처벌할 수 있는 법적근거를 추가로 마련한 셈입니다.

  


11월 4일 숙청의 밤을 통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경제, 사우디 군부 완전체 (사우디군+국내안전보장국+국가방위부의 삼위일체), 내무부의 핵심 권력을 완벽하게 장악하는데 성공했고, 합법적으로 잠재적 위험인사들을 처단하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비난하는 반대세력을 처벌할 수 있는 법적근거까지 확보하면서 전제군주로 가는 길을 성공적으로 닦았습니다. 아울러 테러방지법에 국왕/왕세자 모욕죄를 추가한 것은 앞으로 그가 추진해나갈 정책이 사람들의 대대적인 반발을 살 수 있는 충격과 공포의 정책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공식적인 부인 속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이스라엘 방문설 보도 등으로 설득력을 얻고 있는 설이 이스라엘과의 전향적인 관계 재정비죠. 


뜬금없는 타이밍에 주도권을 잡아 상대를 장악하는 방식이 권력투쟁에서는 큰 효과를 보고 있는 것과 달리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에게 위협감을 느끼고 있는 사우디 왕자들에게 정치적 망명지를 제공하겠다며 조롱하고 있는 알후씨 반군과의 전쟁과 카타르 고립사태에서 보듯 대외 정치에서는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과연 그는 다음엔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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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랍지역 전문 블로거 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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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CC/GU/사우디2017. 10. 25.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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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메가시티 네옴 홈페이지 메인. 링크를 누르면 홈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살만 국왕 체제의 사우디는 그 어느 때보다도 그동안 개발하지 않았던 아라비아 반도 서부의 홍해 연안, 특히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지대인 홍해 북서부 지역 개발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홍해 대개발의 시작을 알린 살만 대교 발표, 그리고 티란 섬과 사나피르 섬 복속

그 서막을 알린건 지난해 4월 살만 사우디 국왕의 이집트 순방 도중 약 40억달러를 사우디가 투자하여 아카바만을 가로질러 사우디의 북서단에 위치한 라스 알셰이크 후마이드와 이집트의 관광명소 샤름 엘셰이크를 연결하는 킹 살만 대교를 짓겠다고 발표한 것이었습니다. 사우디와 이집트를 육로로 연결하는 프로젝트는 1988년 이래 양국간에 오랜 논의를 거쳤던 묵힐대로 묵혀둔 대형 프로젝트이기도 합니다. 최대 수심 700미터에 달하는 아카바만을 가로지는데 있어 예상되는 여러가지 기술적 난제, 도로 건설 및 통행량 증대로 예견되는 환경파괴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잇는 관문이자 아프리카 대륙의 무슬림들에게 또 하나의 성지순례 환경을 제공할 수 있기에 사우디 정부가 공사자금은 10년안에 회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칠 정도로 양국에 막대한 통행료 수익을 안겨줄 수 있다는 양국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안건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통행량이 많은 새로운 도로의 개통은 치안이 불안한 변경지역의 치안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기대할 수도 있구요. 시나이 반도에서 각종 테러사건이 종종 발생한다는 소식 들으셨죠?


하지만, 양국의 이익이 보장될 것만 같은 이 프로젝트가 오랜 동안 우여곡절을 겪었던 이유는 다리를 짓는 것이 당사자 두 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탓도 있었습니다. 두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아카바만을 통해 인도양에 접근할 수 있는 이웃 국가 이스라엘과 요르단, 특히 이스라엘의 반발이 컸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2005년에는 착공 직전까지 갔다가 이스라엘이 안보상의 이유를 들어 이집트를 압박하면서 무바라크 정권이 전격적으로 프로젝트 진행을 취소시킨 바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압박할 수 있었던 이유는 1978년 전 아랍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집트와 이스라엘 양국간에 체결한 캠프 데이비드 협정 조항 중에 이스라엘이 아카바만과 티란 해협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는 조항이 삽입되어 있었고, 티란섬이 이집트의 영토였기에 티란 해협의 권리를 완벽히 갖고 있었던 이집트가 거부하고 나서는 것을 당시의 사우디로서는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각주:1] 2005년 당시의 사우디는 왕실 내 최다 세력인 수다이리 세븐의 일원인 파흐드 국왕의 서거와 왕실 내 소수파 압둘라 국왕이 즉위가 맞물린 정권 교체기였기에 포기하려는 이집트를 뜯어말려 프로젝트를 진행시킬 여력이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무바라크 정권 시절에 포기했던 프로젝트는 무르시 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한번 부활할 기미가 보였지만 민중 봉기에서 시작된 군부 쿠데타로 엘 시시에게 정권을 내주게 되면서 또다시 유야무야되는 듯 했다가 살만 국왕의 이집트 방문과 함께 전격적으로 부활하게 된 셈입니다. 이집트 정부는 킹 살만 대교 건설을 발표한지 며칠 만에 1950년 이래로 이집트의 영해에 있었던 티란 섬과 사나피르 섬을 사우디로 복속시킨다고 발표하며 사우디의 전폭적인 지원에 보은에 나서 이집트 여론을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2005년만 해도 티란 해협 통행의 자유를 빌미삼아 이집트를 압박했던 이스라엘은 이에 반대할 것이라는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반대하기는 커녕 오히려 이집트의 결정을 지지한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하면서 사우디와 이집트의 오랜 숙원 사업이었던 킹 살만 대교 건설 프로젝트 진행의 초석을 닦았습니다. (하지만... 짓는데 3년이 걸릴 것이라던 살만 대교의 구체적인 계획이 여전히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은 함정....)



사우디의 변화를 예고한 홍해 관광 프로젝트

살만 대교 건설 합의 발표로부터 1년 3개월이 지난 2017년 7월 31일 불과 몇 년전만 해도 아버지 살만 왕세제의 책사였을 뿐 인지도가 없었던 무수히 많은 사우디 왕자들 중 한 명에서 노회한 사우디 왕실 내에서 치열한 권력투쟁을 헤쳐 나가며 불과 몇 년 사이에 차기 왕위 계승자이자 사우디의 개혁을 이끌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하며 스스로의 존재감을 극대화시키고 있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비전 2030 실행을 위한 핵심 요소 중 하나인 관광산업 개발을 겸한 홍해 관광 프로젝트를 발표하게 됩니다.



홍해와 접한 사우디 서부 지역에서도 아직 개발되지 않은 50여 개의 섬이 몰려 있는 우믈라즈 (Umlaj)와 알와즈흐 (Al-Wajh) 일대를 개발하고 인근에 있는 사우디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인 마다인 살레와 그 길목에 자리잡은 현무암 화산지역 하르라트 쿠나이르 등을 연계시키는 패키지 관광 프로젝트입니다. ([알 울라] 멀고도 헤맸던 알 울라로 가는 길, 그리고 얼떨결에 발견한... 참조) 사우디 남서부 지잔 지역에도 파라산섬 등을 위시한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섬들이 있지만, 알후씨 반군과 여전히 대치 중인 지역의 특성상 관광객을 유치하기엔 한계가 있기에 비교적 안전하고 주변에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명소가 많이 있는 타북 지역을 프로젝트 지역으로 지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잔] 사우디 남서부에 위치한 사우디에서 가장 큰 파라산섬 (1) 참조)



2019년 착공, 2022년 1단계 완공, 2035년 연간 방문객 100만명 유치를 목표로 한다는 이 프로젝트가 더욱 주목을 받게된 건 보다많은 해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그간 사우디 사회 내에서 종교적인, 또는 사회 관습적인 이유로 금기시해왔던 비키니 착용과 여성 운전허용의 봉인을 풀어버리는 관광특구가 될 것임을 명시했기 때문입니다. 사우디의 넓은 땅덩어리를 공권력이 다 커버하지는 못하고 차량이 없으면 살기 불가능한 지역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보니 가정형편 상 어쩔 수 없이 주변의 양해 속에 40년 동안 단 한번도 걸리지 않고 몰래 운전한 여성의 사연과 여성운전 불허에 대놓고 저항하다 구속되는 여성들의 사연이 공존하는 사우디 내에 정부가 인정하는 여성운전 허용구역이 생긴다는 것은 그야말로 화제를 모을 수 밖에 없던 소식이었습니다. 아직까지는 음주가 허용될지는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아 그 이상의 파격을 기대해도 될 지는 알 수 없지만요...


홍해 관광 프로젝트를 통해 발표된 특구 내 여성운전 허용은 결국 두 달 뒤인 9월 26일 내년 이드 알피뜨르가 끝나는 2018년 6월 24일 경부터 사우디 전역에서 여성 운전 허용이라는 전격적인 살만 국왕의 역사적인 칙령의 예고편이 된 셈이었습니다. ([사회] 살만 국왕, 사우디 내 여성들의 운전을 허용하는 역사적인 칙령 전격 발표! 참조)    


1년 3개월 사이에 발표된 두 개의 프로젝트를 보면서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젯다에서 살만 대교가 들어설 예정지인 라스 알셰이크 후마이드까지 최단 거리가 약 1,000km, 리야드에서는 약 1,600km로 멀어 사람들의 접근이 그다지 쉽지 않은 외진 구역에 프로젝트를 여는데 변경 지역인데다 그 일대엔 구글 지도를 줌아웃해서 봐도 이름이 나올 정도의 도시가 없으니 뭔가가 빠진 듯한 허전함이 느껴진달까요... 치안을 감당할 수 있는 군사도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홍해 관광 프로젝트의 시작점인 우믈라즈에서 가까운 얀부는 사우디 서부의 대표적인 중화학도시.




홍해 북서부 개발의 화룡점정, 대규모 신도시 프로젝트 네옴 (NEOM).

이러한 허전함을 의식한 듯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10월 24일 자신이 주최한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 컨퍼런스를 통해 사우디 내의 기존 규제와 제약에 벗어난 미래형 주거·사업용 신도시 '네옴'(NEOM)을 건설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클라우스 클라인펜트 전 지멘스, 알코아 회장이 CEO를 맡아 서울 면적의 44배에 달하는 2만 6500 km2의 부지 위에 5천억달러를 투자하여 친환경 재생 에너지로 움직히는 미래형 도시를 표방한다는 국적불명의 이름 네옴 (NEOM)은 라틴어로 New를 의미하는 NEO와 아랍어로 미래를 의미하는 Mustaqbal을 조합하여 도시가 표방하고 있는 슬로건인 "새로운 미래"를 의미합니다. 아랍어 표기 نيوم은 같은 의미를 지닌 نيو مستقبل에서 그대로 따와 축약했습니다.


(CEO 계약서에 서명하고 악수를 나누고 있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클라우스 클라인펠트 네옴 프로젝트 CEO)


공교롭게도 이스라엘과 국교를 맺고 있는 두 나라, 살만 대교를 통해 이집트와 바로 국토가 맞닿아 있는 요르단이 만나는 사우디 북서부 끝에 위치하게 되는 네옴은 국교가 개선되면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아카바만을 통해 직접, 그리고 무비자 통행이 가능한 시나이 반도를 우회하여 이스라엘과 만나게 되는 접점이 되기도 합니다. 게다가 살만 대교 발표 과정에서 프로젝트 자체를 보류시키게 만든 적도 있는 이스라엘의 대처를 감안했을 때 단순한 다리 건설이 아니라 소외받았던 지역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메가시티 건설에도 대놓고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공식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음에도 사우디와 이스라엘간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사우디와 이집트, 그리고 이스라엘 3국에게는 무슬림 형제단으로 대표되는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을 공통의 적으로 두고 있는데다, 공교롭게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가 미정부와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 온 무함마드 빈 나이프 전 왕세질을 제치고 왕세자가 되는 과정에서 미국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여전히 적대적인 이스라엘과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모종의 거래설, 네옴 발표 며칠전 AFP를 통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이스라엘 극비방문설이 보도된 바 있습니다. 네옴 발표는 자신의 이스라엘 극비방문설을 한방에 덮어버리긴 했지만요.


(사우디 메가시티 네옴 위치)


아시아 대륙과 아카바만을 통해 두 개 대륙 세 나라와 연결되는 네옴은 전세계 교역량의 10%가 지나는 홍해의 관문에다 전세계 인구의 70%가 사는 국가들을 여덣 시간 내로 오갈 수 있는 중간 기착지라는 위치적인 장점 외에도 태양 에너지와 풍력 에너지로 움직이는 도시를 만들겠다고 선언할 수 있을 정도로 독보적인 자연환경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사우디를 포함한 다른 걸프 지역 대비 평균 온도가 10도 정도 낮아 살기에 적절한 온도, 홍해와 아카바만, 그리고 한겨울에는 폭설도 종종 내리는 2580미터의 최고봉 자발 알라우즈를 위시한 사우디 북서부 산악지대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초속 10.3미터의 이상적인 평균 속도를 자랑하는 바람, 그리고 제곱미터 당 20MJ의 태양 자원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것이 두바이가 제공할 수 없는 천혜의 장점입니다. ([타북] 사우디에도 눈이??? 폭설내린 사우디 북부 타북 지역의 풍경... 참조) 투자 컨퍼런스에 참석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사우디 영토의 3%만으로도 전세계 태양 에너지의 50%를 공급할 수 있다며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했죠. 


(눈내린 자발 알라우즈 일대 풍경)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 내의 기존 규제와 제약에 벗어난 미래형 주거·사업용 신도시를 표방한 네옴의 발표와 더불어 이를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수년 내에 와하비즘으로 대표되는 보수적인 극단주의 종교관에서 탈피하여 1979년 이전 다른 나라와 종교에 개방적이었던 온건한 이슬람 국가로 되돌아가겠다고 선언하여 더욱 화제를 모았습니다. 금기시되어 온 여성 운전을 허용하는 것도 이러한 계획의 일환이기도 합니다만..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보수꼴통적인 극단주의 종교관으로 무장한 사우디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언급한대로 두 가지 대형사건으로 시작과 끝을 장식한 1979년 이후 역변한 사회상입니다. 그 시작은 1978년 1월에 시작되어 세속적인 팔레비 샤 정권을 무너뜨리면서 1979년 2월에 마무리된 이란의 이슬람 혁명이었으며, 그 마무리는 1979년 11~12월 사이 2주간 사우디 건국의 일등공신이자 원리주의 민병대 세력 이크완의 후손인 주하이만 알오타이비가 주동하여 벌어졌던 메카 그랜드 모스크 사건이 그 것입니다. (이크완에 대해서는 [역사] 사우디 통일전쟁과 건국의 또다른 주인공, 베두윈들의 종교적 민병대 이크완 참조)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은 두 사건이 관련이 있는 건 온건해지는(이라고 쓰고 방탕해 보이는...이라고 읽는) 사우디 사회에 환멸을 느낀 주하이만 알오타이비가 종교를 앞세워 세속적인 정권을 무너뜨린 이란 이슬람 혁명에서 영감을 받아 시아파가 보다 중요시하게 여기는 마흐디 재림 사상을 접목시켜 자신의 처남인 무함마드 압둘라 알까흐따니가 사도 무함마드의 직계 후손이자 마흐디로 (타락해가고 있는 세상에) 심판의 날을 앞두고 재림했다고 선동하면서 2주간 그랜드 모스크를 점거했다는 점이죠. 


(지금까지의 사우디가 피처폰이었다면, 앞으로의 사우디는 스마트폰이 되어야 한다며 변화를 역설하다.)


양대 성지의 수호자를 자처하지만, 실제로는 세속적인 사우디 왕가로서는 그야말로 개망신당한 사건을 무마하는 과정에서 와하비스트들이 원하는 극단적인 원리주의 사회로 역변했던 것입니다. 원리주의 종교 세력 와하비스트들과 세속적인 정치 세력 사우드 씨족이 결혼이라는 형태로 결합해서 세워진 역사를 가진 하이브리드 체제의 사우디인만큼 두 세력간의 균형을 심각하게 깨뜨리는 극단적인 사회변화를 이미 겪었기에 사우디 정부로서는 원흉으로 간주할 수 밖에 없는 이란에 대해서만큼은 적대적인 스탠스를 취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마무리하며....

미래 신도시를 컨셉으로 잡은 네옴을 통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는 그야말로 화려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고 (너무 길어서 링크로 대체...), 변해야 산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마냥 장미빛 전개가 이뤄지기는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첫번째 불안요소는 대규모 메가시티 프로젝트 성공 경험이 없다는 점으로 그 불안요소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는 바로 압둘라 전 국왕이 내세웠던 신도시 프로젝트 라비그 인근의 킹 압둘라 경제도시 (KAEC)입니다. ([킹 압둘라 경제도시] 개요 & [킹 압둘라 경제도시] 현장 방문기 참조) 시작된지 얼마 안되어 세계 금융위기가 찾아오는 등 장애물도 있었지만, 여전히 진행 중임에도 당초 계획했던 장및빛 목표를 달성하는데는 실패했으니까요. 대규모 신도시 개발을 성공하지 못한 상황에서 찾아온 저유가 시대는 예산 삭감으로 인한 각종 프로젝트 축소와 기성 지급 지연으로 인해 빈라덴 그룹과 사우디 오거 같은 초대형 건설 그룹의 부도를 초래한 바 있습니다.


(2007년 킹 압둘라 경제도시 사무소에서 직접 본 조감도.)


두번째 불안요소는 산업 다각화를 위해 외국인 투자자를 반기면서도 역으로 니따까 강화, 외국인 고용세 부가 및 인상, 워크비자 시한 단축 및 각종 비용 인상 등 투자를 망설이게 하는 각종 제약이 나날이 강해지는 이중적인 사우디 정부의 경제정책에 있습니다. 사우디 총인구의 2/3 이상을 자국인이 차지하고 있는 인구 구조상 어쩔 수 없는 정책이긴 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민간 부문 고용 인구의 50%가 저임금 미숙련 노동자로 채우는 건설업에 의존하고 있는 산업구조는 정부의 이중적인 경제정책이 효율적으로 작용하는데는 한계가 있기에 아무리 기존의 시스템에서 벗어난 특구가 될 것임을 천명했지만, 필요한 인력을 어떻게 유치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점을 남길 수 밖에 없죠. 외국인 투자자를 유치한다며 사우디 일반 투자청 (SAGIA)을 이용하여 각종 편의제공을 약속했지만, 앞서 언급한 여러가지 상황이 맞물리면서 기대만큼의 외국인 투자유치를 이루지 못하기도 했었죠. 살만 국왕 부임 이후 해외를 순방하며 직접 홍보하고 외국 업체에게는 그동안 내주지 않았던 사업 라이센스를 발급해주기 시작했지만요.


본인 자신의 목표를 이루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의미로 Mr. Everything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왕실 내 권력투쟁에서 이룬 승리를 밑천삼아 사우디인의 70%를 차지하는 자신보다 어린 국민들을 이끌고 나라를 일신하는 주인공이 될지, 야심찬 계획이 공염불에 그치고 마는 천둥벌거숭이가 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1. http://www.ibiblio.org/sullivan/docs/CampDavidAccords.html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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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CC/GU/사우디2015. 1. 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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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노동부는 재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4월 20일부터 사우디제이션의 강화정책인 니따까 3단계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니따까 1단계가 시스템 정립, 2단계가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의 강제추방 및 최저임금 대폭 인상 등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복지 격차 해소를 통한 사우디인 고용 유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3단계는 지난 4년간의 노하우와 축적된 자료를 유기적으로 활용하여 업체들에 대한 사우디인 고용압박을 강화하고 지난해부터 예고한 불법영업 (Cover-up Business) 척결에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사우디인을 명목상 사장으로 내세우고 실제로는 외국인들이 운영하는 이 사업방식은 사우디 정부가 불법영업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이유를 불문하고 사우디인/법인에게만 대표자격을 줬던 2005년 이전 사우디법의 허점에서 탄생했습니다. 실제로 사우디에서 사업을 하고자 하는 외국인과 날로 먹으려는 사우디인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셈이죠. 사우디 정부는 외국인 체류자의 30%가 이에 관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발생한 송금규모는 2천300억리얄 이상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얼마전 젯다 총영사관에서는 아래와 같은 공지를 한인 사회에 배포한 바 있습니다.



금년 초반부터 사우디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전방위적 조치들이 더욱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사우디인의 지원하에 실제로는 외국인들이 운영하는 불법영업(Cover-up business, Tasattur) 행위에 대한 단속도 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한인 여러분들께서는 아래 사항을 참고하여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미리 대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 사우디 상무부는 “Tasattur“를 자국 비즈니스 업계에 큰 위험요인이 되고 있다며 ”反국가적 범죄“로지 규정하고 이에 종사 또는 관련된 외국인 및 사우디인 처벌 의지와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2. Tasattur 규제 방법으로는 의심이 가는 업체에 대한 불시단속, 영업허가 발급 또는 갱신시 보다 엄격한 조건 부과, 외국인의 해외송금 통제 등을 상정하고 있으며, 적발되는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및 SR 100만 리얄(미화 약 26.7만불)의 벌금 부과는 물론 신상공개, 영업점 폐쇄, 등기취소 등의 보다 강력한 조치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3. 이러한 Tasattur에 대한 강도 높은 단속은 이미 예고되어 있던 문제이기는 하나 최근 분위기 조성차원에서 현지언론을 통해 구체적인 증거자료들을 공개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그동안 사전조사와 준비가 상당 부분 진행된 것으로 보입니다.


4. 우선 단속대상에 포함될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우리 한인업체(소)들은 숫적으로는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예상되나, 적발되는 경우 방어하기가 어렵고 이제 함께 처벌대상이 된 사우디인 스폰서들의 행보를 미리 예상하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5. 만일 단속과정에서 일단 적발되어 처벌을 받게 되는 경우에는 사우디 정부의 법령에 따른 합법적인 조치이기 때문에 사후에 대응할수 있는 수단도 마땅치 않기 때문에, 각자의 특수한 사정과 여건에 맞도록 미리 대응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6. 이와 관련된 문의사항이 있으시면 한인회 또는 총영사관 박성진 영사(053-290-0783)에게 연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끝. 



주젯다총영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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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 : +966-12-668-1990
Fax: +966-12-668-4104
홈페이지 : http://sau-jeddah.mof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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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장에서 퇴사한 이후 2년 9개월간 한국에 머물면서 보냈던 뒤늦은 대학원 생활을 통해 만든 석사논문입니다.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은 논문. 그것도.... 무려 영어;;;;


한국어 블로깅에 너무 익숙해져있는데다 처음으로 쓰는 무려 영어 논문이다보니 준비하는데 많이 애먹었습니다.


이 논문은 사우디 노동시장이 어떻게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 중심으로 형성될 수 있었는지, 사우디 정부가 어떻게 사우디제이션 정책을 발전시켜왔는지, 그리고 사우디제이션 이행을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모순점과 문제들은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등을 고찰해보는 내용입니다. 



제목: Structural Discrepancies in the Labor Market and Insufficient Implementation of Saudization 

        (사우디 노동시장의 구조적 모순점과 사우디제이션의 불충분한 이행)



이 부족한 석사논문은 고용노동부에서 발주하여 공공누리를 통해 공개된 단국대학교 산학연구단의 정책연구 "통상환경 변화에 따른 GCC국가와의 고용노동분야 협력전략 연구"에 참고문헌으로 인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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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CC/GU/사우디2014. 12. 27.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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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 만에 $115에서 $60대로 반토막 난 유가로 인해 화제를 모았던 사우디 정부의 2015년도 예산이 압둘라 국왕을 대신하여 살만 왕세제가 주재한 예산 승인을 위한 특별 회의롤 통해 최종 확정된 목요일 공식 발표되었습니다.


사우디의 2015년도 예산은 8,600억리얄 (2,293억달러)로 사우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예산이 편성되었지만, 전년도 대비 증가폭은 올해 예산 8,550억리얄 (2,280억달러)보다 0.6%에 불과하여 수십년만에 최소 증가율을 기록했으며, 유가 하락으로 인한 수입 감소로 수입을 7,150억리얄 (1,906억달러)로 잡아 2011년 이후 처음으로 1,450억리얄 (387억달러)의 적자 예산입니다.


압둘라 사우디 국왕은 사우디 수입의 90%를 차지하는 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질적으로 향상되고 있는 민간 분야의 활성화, 공공 분야와 민간 분야의 조화를 통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번 예산은 세계 경제의 침체와 유가 하락이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튼튼한 공적자금 건전성을 바탕으로 저유가 시대에도 중기적으로는 견뎌낼 수 있는 자신감 속에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보다 많은 구직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경제활성화를 목표로 확대지출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이는 2014년 10월 기준 총 현금 예비금이 1조 5천리얄 (4,000억달러), 이를 포함한 전체 예비금이 2조 8천리얄 (7,467억달러)에 달하고 있어 2015년 수준의 적자예산은 몇 년간 편성해도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지난 해와 마찬가지로 교육비에 가장 많은 25%의 예산이 배정된 주요 예산 배정분야는 다음과 같습니다.


교육: 2,170억리얄 (578억달러/ 약 25.2%)- 3개대학 신설, 기존대학 업그레이드 등

보건: 1,600억리얄 (426억달러/ 약 18.6%)-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의료시설 확충 및 인력 충원 중

개발기금 및 금융 프로그램: 737억리얄 (196억달러/ 약 8.5%)

인프라 및 운송: 630억리얄 (168억달러/ 약 7.3%)- GCC 철도 구축 등 각종 철도, 지하철 프로젝트 진행 중

수자원, 농업 및 산업: 600억리얄 (160억달러/ 약 6.9%)

지방자치: 400억리얄 (106억달러/ 약 4.6%)


교육비에 가장 많은 예산이 편성되어 있는 것이 의외로 보일 수도 있지만, 제9차 5개년 경제개발 계획 (2010~2014) 기간 동안 교육비 예산이 두 배로 늘어나며 집중 편성되고 있는 상황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전년도 대비 36% 인상된 예산이 편성된 2013년부터 1년 예산의 25% 정도를 교육비에 배정하고 있죠. 매년 거의 비슷한 수준의 교육비 예산을 편성하고 있는 UAE에 비하면 사우디 교육비 예산의 증가폭은 두드러집니다.


 

사우디 아라비아

UAE

2009

1,050억리얄

970억디르함

2010

1,220억리얄

980억디르함

2011

1,370억리얄

980억디르함

2012

1,500억리얄

820억디르함

2013

2,040억리얄

990억디르함

2014

2,100억리얄

970억디르함


이는 사우디 국내 경제의 최우선 과제가 된 사우디제이션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사우디인들의 교육에 집중하여 민간 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수준의 인적자원을 길러내겠다는 이유에서죠. 정부 예산 외에도 압둘라 국왕의 장학 프로그램, 상황에 따른 특별 예산 등 교육비에 집중투자하는 추세는 더욱 강해지고 있지만.... 정부가 투자하는 만큼의 결실을 아직은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받아들일만한 여건이 아직은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10%를 상회하는 사우디의 높은 실업률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것이 대졸 여성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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