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C&GU

[기상] 수하일 (카노푸스)의 출현, 아라비아 반도에선 뜨거운 한여름이 끝나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탄!

둘라 2024. 8. 27. 04:53
728x90
반응형

 

아라비아 반도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별 중 하나인 수하일이 지난 8월 24일 아라비아 반도 일부 지역의 새벽 하늘에서 관측되면서 수하일이 아라비아 반도 중심부에 떠오르는 시즌이 되었다고 공표했습니다.

 
아라비아 반도에서 1년 중 52일 정도만 관측되는 수하일이 아라비아 반도 상공에서 등장하게 되면 태양의 각도가 눈에 띄게 감소하여 낮이 짧아지고 밤이 더 추워지며 태양이 점차 남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해 뜨거웠던 한여름이 점차 끝나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탄이기에 수하일의 관측은 아라비아 반도에 거주하는 토착민들에겐 역사적으로 연중 중요한 이벤트 중 하나입니다.

아랍 속담에 "수하일이 떠오르면 밤이 시원해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하죠. 별이 목격되자마자 기온이 즉시 떨어지지는 않지만, 야간 기온은 점차 낮아지기 시작하여 날씨 변화의 첫 징후를 알리는 신호탄이니까요.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항성 수하일 (Suhail)은 바로 용골자리에서 가장 밝은 항성인 카노푸스(Canopus), 또는 용골자리 알파(α Car / α Carinae)의 아랍어 이름으로 IAU가 표준화한 항성명칭목록에는 카노푸스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동아시아에서는 남극노인성, 또는 노인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죠. 참고로 카노푸스란 이름은 이집트신 세라피스의 신전이 있던 고대 이집트의 해변 마을 이름 (현재는 아부 끼르 Abu Qir라고 불림)에서 유래했으며, 고대 이집트의 뒤를 이은 헬레니즘 시대에는 무역도시로, 로마제국 시대에는 환락의 도시로 유명했다고 하네요.

용굘자리 (Carina)와 항성 카노푸스 (출처: ESO, IAU and Sky & Telescope

 
지구에서 310광년 떨어진 수하일의 겉보기등급은 -0.74로, 지구의 하늘에서 보이는 별들 중엔 태양을 제외하면 시리우스에 이어 두 번째로 밝은 항성입니다. 시리우스가 8광년 떨어진 반면 310광년이나 떨어진 수하일이 밝게 보이는 건 실제로 수하일이 태양보다 15,000배 밝은 항성이라서 그렇다고 하내요.

국제우주정거장의 제6차 장기체류(Expedition 6) 중 찍은 카노푸스 사진.

 

참고로 아랍어로 수하일 (سهيل)이라 부르는 별은 카노푸스 외에 3개가 더 있으며, 국제천문연맹 IAU은 수하일이라 불리는 4개의 별에 대한 혼선을 피하기 위해 별도의 고유명칭을 부여하여 IAU 항성명칭목록에 등재했습니다.

  • 용골자리 알파 Alpha Carinae (IAU 공식 명칭: Canopus)- 위에서 소개한 이번 포스팅의 주인공, IAU 공식 명칭과 상관없이 아랍에서는 수하일 (سهيل)이라 부르며, 아라비아 반도 사람들에겐 환절기의 시작을 의미하는 중요한 별입니다.
  • 돛자리 람다 Lambda Velorum (IAU 공식 명칭: Suhail)- 남반구 별자리 돛자리에서 세번째 밝은 항성 (겉보기 등급 +2.21)으로 지구에서 약 545광년 떨어진 곳에 있으며 아랍에서는 수하일 알와즌 (سهيل الوزن)이라 불렸고 대양을 항해하는 사람들이 수하일로 축약해 부르기 시작하면서 지난 2016년 8월 21일 IAU 산하 항성명칭 실무그룹 (IAU Working Group on Star Names)이 수하일을 공식 고유명칭으로 부여해 IAU 항성명칭목록에 등재했습니다. 
  • 돛자리 감마 Gamma Velorum- 남반구 별자리 돛자리에서 가장 밝은 최소 여섯 개의 별로 이루어진 다중성계 (겉보기 등급 +1.75)로 지구에서 약 840광년 떨어진 곳에 있으며 아랍에서는 수하일 알무흘리프 (سهيل المحلف)이라 불렸고, 아폴로 1호 승무원이었던 거스 그리섬이 동료 로저 차피를 놀려주려는 의도에서 그의 이름 Roger의 철자를 거꾸로 읽은 레고르 (Regor)라 붙이기도 했다는데, IAU 항성명칭목록에 등재된 공식 명칭은 아니라고 하네요. 또한 이 별은 어두운 흡수선상에 밝은 방출선을 보여주기 때문에, '남반구 하늘의 스펙트럼 보석'으로도 불리기도 합니다.
  • 고물자리 제타 Zeta Puppis (IAU 공식 명칭: Naos): 남반구 별자리 고물자리에 속한 항성 (겉보기 등급 +2.21)으로 지구에서 약 1092광년 떨어진 곳에 있으며 아랍에서는 수하일 하다르 (سهيل حضار)라 불렸고, 지난 2016년 IAU 산하 항성명칭 실무그룹에 의해 수하일과 함께 배 (ship)라는 의미를 지닌 그리스어에서 따온 나오스라는 이름을 새로 부여받아 IAU 항성명칭목록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수하일이라 붙은 네 개의 별이 있는 용골자리, 돛자리, 고물자리는 아르고 자리에서 파생된 별자리여서 서로 이웃하고 있습니다. 용골자리 위에 돛자리, 그 옆에 고물자리가 있는 셈이죠.

 

아르고 자리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이야기 중 하나인 아르고호 원정에서 따온 프톨레마이오스의 48개 별자리 중 하나로 오랜 역사를 갖고 불리어져 왔으나 현재 가장 큰 공인 별자리인 바다뱀자리보다 28%나 더 크다보니 은하수가 관통하는데다, 볼 수 있는 밝은 별 또한 최소 160개나 된 탓에 후대에 분류 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18세기 중반부터 남반구 14개 별자리의 이름을 지은 니콜라스 드 라카유라는 천문학자가 배의 형태에 따라 분류하기 시작했고, 결국 1922년 현대 88개 별자리를 설정한 국제천문연맹 총회에서 프톨레마이오스의 48개 별자리 중 유일하게 공인받지 못하고 돛자리, 용골자리, 고물자리, 나침반자리로 공인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만약 아르고자리가 네 개의 별자리로 쪼개지지 않았다면 네 개의 수하일 모두 아르고...로 불리웠겠죠.

아르고자리 (Argo Navis)



용골자리
(Carina)
돛자리
(Vela)
고물자리
(Puppis)

 


우리에겐 아무래도 큰개자리 알파인 항성 시리우스에 비해 카노푸스는 생소한데, 카노푸스는 시리우스 보다도 천구 남극에 가까운 자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남회귀선 밑에 있는 나라들에서는 시리우스와 카노푸스를 동시에 잘 볼 수 있지만, 북위 37도 18분보다 위에서는 카노푸스가 지평선 아래에 가려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북위 33~38도에 걸쳐있는 대한민국에선 별의 고도상 그마나 서울 등에서도 겨울철 남쪽 하늘에서 관측이 가능한 시리우스와 달리 카노푸스는 남해안 쪽, 특히 제주도에서나 잘 보인다는군요.

남반구 별자리까지 포함한 카노푸스의 위치. Crux는 남십자자리, Vela는 돛자리, LMC는 대마젤란 은하이다. SCP는 South Celestial Pole, 즉 천구의 남극이다.

 
별의 고도상 아라비아 반도에서도 특정 시기에만 나타나는 수하일의 출현은 기상 조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한여름에서 벗어난다는 환절기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매년 8월 24일 경에 하늘에서 관측되는 수하일의 등장과 함께 아라비아 반도내 에서는 여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네 가지의 뚜렷한 계절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 알 사프리 (Al Safri): 수하일이 목격된 날부터 약 40일 동안 뜨거웠던 여름 날씨에서 가을의 서늘한 날씨로 바뀐다.
  • 알 와스미 (Al Wasmi) 10월 중순. 날씨가 안정화되면서 본격적인 가을이 시작된다.,
  • 알 카나 (Al Kanna): 수하일이 목격된 후 100일 정도 지난 다음부터 겨울이 시작된다.
  • 알 무라바이야 (Al Murabba'iyah) 1년 중 가장 추운 날이자 비나 눈이 본격적으로 내린다. 지역의 1년 강우량에 큰 영향을 끼치는 시기이기도 하다.

 
지금도 이드와 라마단, 성지 순례일의 시작을 신월 관측으로 확정하는 것처럼 역사적으로 해와 달의 움직임으로 시간을 판단해왔던 아라비아 반도 사람들은 이와 같은 별 관측에 의존하여 일상 생활을 탐색하고 계절 변화, 강우량, 농업과 어업에 가장 적합한 시기를 예측해 왔으며, 자연스레 천문학 발전에도 기여해 왔기에 수하일 4형제처럼 별 이름에 아랍어 이름이 많은 이유기도 합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