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C/GU/UAE2019. 11. 13. 18:02


UAE 내무부와 주UAE 한국 대사관은 11월 12일 사이프 압둘라 알샤파르 내무부 차관과 대한민국 경찰청의 대리인 자격으로 서명식에 참석한 권용우 대사가 UAE 내무부에서 양국간 운전면허 상호 교환에 관한 양해각서에 서명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번 양해각서 서명에 따라 양국의 국민들은 합법적으로 자국에서 발급받은 운전면허증을 상대국가에 체류하는 동안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한국인들에게 있어 UAE 방문시 국제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아야만 하고, 거주비자로 입국하여 체류 시에 대사관 공증, 영문 번역 공증을 받은 후 별도의 시험없이 UAE 운전면허증으로 교환해야 하는 절차 상에 달라진 점은 없습니다만... 특히, 무시험 UAE 운전면허증 교환 관례가 양국간 합의없이 UAE 정부의 일방적인 편의제공에 불과했기에 언제든지 상황이 달라질 수 있었지만, 이번 양해각서 서명을 통해 운전면허증 교환의 법적 안정성을 확보한 것에 의의를 둔다고 대사관측은 밝혔습니다.


외교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2019년 3월 22일 기준 총 135개국의 한국운전면허 인정국가를 "경찰청장 고시에 의한 상호인정국가 (110개국)"와 "양자간 협정 또는 약정체결국가 (25개국)"로 분류하는데, 이번 양해각서 체결로 UAE는 경찰청장 고시에 의한 상호인정국가에서 양자간 협정 또는 약정체결국가에 속하게 됩니다. 중동지역에서 양자간 협정 또는 약정체결국가로는 그들간에는 서로 원수지간인 이스라엘과 이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야 그렇다치고... 우리나라와 이란의 관계가 교역규모 (우리나라가 이란의 5대 수출입 국가에 들어가죠) 외에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가까운 관계임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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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CC/GU/UAE2019. 11. 5. 22:29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부루마블이나 모두의 마블류 게임의 원형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동산 거래 보드게임 모노폴리의 발매사 하스브로는 두바이 관광진흥공사와 함께 11월 4일 부르즈 알아랍에서 오피셜 두바이 버전의 모노폴리 보드게임인 모노폴리 두바이를 5일부터 판매한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미 전세계 여러 도시를 테마로 한 모노폴리 게임이 출시된 가운데, 두바이는 100여개가 넘는 도시 버전 모노폴리 게임 중 중동지역 최초의 모노폴리 게임을 출시한 도시라고 하네요.



보다많은 투자자 및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현실화 버전의 심시티를 플레이하듯 다양한 컨셉으로 도시를 개발하고 있는 두바이에게 있어서 부동산 거래 게임인 모노폴리는 그야말로 두바이스러운 게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몰 오브 에미레이츠를 중심으로 한 마지드 알푸타임 계열의 쇼핑몰에서는 부정기적으로 쇼핑몰 내에 초대형 모노폴리 보드를 깔아놓고 모노폴리 게임을 펼치는 이벤트를 펼쳐오고 있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2014년 9월, 2015년 5월, 2017년 5월, 2018년 5월에 판을 깐 바 있습니다.



물론... 쇼핑몰답게 일정금액 이상 상품을 구매한 쇼핑객에게 참가권을 제공하여 최종 우승자 상금 10만 디르함 (약 3천만원)을 비롯한 다양한 경품을 걸어 방문객들의 참여를 유도해오곤 했습니다. 



모노폴리 두바이가 출시되었으니 출시 기념으로 조만간 두바이 버전 모노폴리 게임 이벤트를 펼치겠네요!


일반적으로 도로와 지역이 등장하는 다른 도시 버전의 모노폴리와 달리 모노폴리 두바이는 두바이의 랜드마크와 개발지역, 심지어는 학교까지 등장하는 차이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두바이 로고에서 보여지듯 두바이 관광진흥공사와 협업 하에 만들어져서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게임상에 등장하는 지명은...

갈색: 셰이크 자이드 로드, 알피히디 (역사지구)

옅은 푸른색: 엑스클루시브 요트, 라 메르 , 시티워크

핑크색: 아틀란티스 어드벤처, 두바이 미라클 가든, 두바이 프레임

오렌지색: 알시프, 페스티벌 시티, 몰 오브 에미레이츠

붉은색: 두바이 오페라, 노드 앙글리아 인터내셔널 스쿨 두바이, 글로벌 빌리지

노란색: 매디나 주메이라, 두바이 마리나, 주메이라 비치 호텔

녹색: 주메이라 에미레이츠 타워, 아틀란티스 더 팜, 부르즈 칼리파

푸른색: 블루워터스, 부르즈 알아랍

교통수단: 두바이 메트로, 두바이 버스, 두바이 택시

으로 현재의 두바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지역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보드게임에 등장하는 지역 중 안 가본 곳이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네요) 게임상에서 가장 비싼 곳인 부르즈 알아랍에서 게임 출시를 발표한 것도 나름 의도했겠네요. 두바이의 도시개발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에 몇 년뒤 개정판이 나온다면 그땐 지금 건설 중인 또다른 신흥개발지역이 포함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두바이 크릭 하버 같은?



모노폴리는 1933년 찰스 대로우라는 사람이 개발하여 그와 계약을 맺은 파커 브라더스 (현 하스브로)가 1935년부터 판매를 시작하여 전세계적으로 많은 인기를 얻어 다양한 버전의 모노폴리 게임이 출시되었으며, 그 중에는 전세계 114개 도시 버전의 모노폴리 게임이 있습니다. 국내에는 모노폴리 게임의 핵심 전략적 요소인 경매와 협상 등을 생략해 운빨에 의한 땅따먹기 게임이 된 아류작 부루마블로 인기를 끌었으며, 개인적으로도 어렸을 때 즐겼던 기억이 나네요.


5일부터 판매에 들어간 모노폴리 두바이는 오프라인 서점 및 아마존 등을 통해 구입할 수 있으며, 가격은 199디르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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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CC/GU/UAE2019. 10. 21. 23:33


두바이가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2020년 10월 20일 두바이 엑스포 개막을 1년 앞둔 2019년 10월 20일 20시 20분 다운타운 두바이 내 부르즈 파크와 UAE 내 곳곳에서 엑스포 개막 카운트 다운 이벤트인 "앞으로 1년 (1 Year To Go)"을 개최했습니다. 



저녁 5시부터 밤 10시까지 부르즈 파크 특설무대에서 펼쳐진 카운트 다운 행사에는 다양한 이벤트 뿐만 아니라 카운트 다운을 전후로 초청가수들의 무료 공연이 펼쳐졌습니다. 카운트 다운 직전에는 지난해 12월 15일 바티칸에서 열린 연례 크리스마스 콘서트에 최초로 공연한 아랍인 가수로 기록된 UAE를 대표하는 가수 후세인 알자스미의 미니 콘서트가 열렸고...



부르즈 파크 특설무대와 부르즈 칼리파에서 동시에 펼쳐진 카운트 다운 후에는...




카운트 다운 이벤트의 헤드라이너로 나선 세계적인 가수 머라이어 캐리의 미니 콘서트가 열리면서 절정에 달했습니다. 머라이어 캐리는 A No No를 시작으로 Dream Lover, We belong together, Hero, Obsessed, Lova Takes Time, I'll be there, Always Be My Baby, My All, Let It Happen 등 그녀의 히트곡을 열창했습니다. 



카운트 다운 행사장에서는 지난달 말 공개한 두바이 엑스포의 공식 마스코트 라쉬드와 라티파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장이기도 했습니다. 



UAE를 상징하는 지혜의 가프 (Ghaf) 나무 살라마의 보살핌 속에 우주로의 진출에 관심이 많은 9세 소년 라쉬드와 과학과 기술에 깊은 관심을 갖고 "불가능"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 8세 소녀 라티파가 두바이 엑스포의 3대 테마관인 이동관 (Mobility Pavilion)을 지키는 푸른색의 알리프, 기회관 (Opportunity Pavilion)을 지키는 황금색의 옵티, 지속가능관 (Sustainability Pavilion)을 지키는 녹색의 테라 등 3개의 로봇 가디언과 함께 미래를 향한 여정에 나선다는 세계관 속에 설정된 마스코트입니다.



이중 남녀 주인공인 라쉬드와 라티파는 두바이 통치자 셰이크 무함마드의 어록에서 볼 수 있는 "하늘은 끝이 아니라 단지 시작일 뿐이다" "불가능은 없다" 등의 통치관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두바이 엑스포 로고 역시 두바이 통치자 셰이크 무함마드가 헬리콥터를 타고 사막일대를 순시하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고고학 유적지에서 찾아낸 반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죠. ([두바이] 2020년 두바이 엑스포의 새로운 공식 로고와 그 속에 담긴 의미, 그리고 주요 전시장 디자인 참조) 엑스포 로고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면, 마스코트가 된 어린 소년소녀는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매개체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참고로 두 주인공의 이름은 두바이 통치자 셰이크 무함마드의 부모 이름 (아버지 라쉬드 빈 사이드 알막툼, 어머니 라티파 빈트 함단 알나흐얀)에서 따왔을 것으로 보입니다. 셰이크 무함마드는 아버지 라쉬드의 이름은 2015년에 사망한 전 왕세자였던 장남에게만 주었으며, 어머니 라티파의 이름은 딸들 중 가장 많은 세 명의 딸에게 주었을 정도로 깊은 효심을 보여왔습니다. (그 다음은 두 명의 딸에게 붙여준 마르얌)   


(라쉬드)(라티파)

그리고 이들의 여정을 돕기 위한 지혜를 상징하는 매개체로 물이 귀한 사막에서 오랜 세월동안 견뎌온 강한 생명력과 시대를 거치며 지나간 많은 여행객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해주면서 쌓아온 지혜와 연륜을 어린 세대에게 전달해주는 역할을 UAE의 국목이기도 한 가프 나무에게 부여한 것과


각각의 테마에 맞게 그들을 지켜줄 가디언으로 로봇 가디언을 설정한 것은 "마음과 정신을 연결하여 미래를 창조한다"는 두바이 엑스포의 모토와도 맞아떨어지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두바이 엑스포 조직위원회는 엑스포 부지에 수십년 동안 자리잡고 있었던 가프 나무를 대대적인 부지 개발 속에서도 보존하기로 결정한 바 있죠.



옵티, 테라 등 외국어에서 따온 다른 로봇 가디언의 이름과 달리 이들을 이끌 리더의 이름을 아랍어의 첫 글자인 알리프 (ا)에서 따온 것은 아랍어에서 멀어지고 있는 어린 세대들에게 모국어인 아랍어가 더 가까이 다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지 않나 싶네요. 어린 세대들에게는 아무래도 아랍어보다 영어가 편한 것 또한 무시하지 못할 현실이니까요. 

(알리프)

(옵티)(테라)


중동-아프리카 지역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엑스포이자, 엑스포 역사상 최초로 2년에 걸쳐 열리는 엑스포이기도 한 2020 두바이 엑스포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세계 192개국이 참가하는 가운데 2020년 10월 20일부터 2021년 4월 10일까지 173일간에 걸쳐 펼쳐집니다. ([두바이] 2020년 두바이 엑스포 최종 참가국수 및 입장권 가격 발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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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CC/GU/UAE2019. 9. 2. 21:07


아부다비 교통부 (DOT)는 10월 15일부터 시행될 도로 통행료 징수를 앞두고, 9월 2일 오후부터 비 아부다비 등록차량 소유주들의 차량 등록을 위한 사이트 운영에 들어갔습니다. 당초 8월 30일부터 운영에 들어갈 것이라고 발표한 것에 비하면 며칠 늦어지긴 했지만요. ([교통] 아부다비, 10월 15일부터 두바이 살릭보다 진일보한 톨게이트 시스템을 도입해 통행료 징수키로! 참조)


(이미지를 링크하시면 공식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별도로 태그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기본적인 정보를 제출하여 태그를 유리창에 붙이자마자 거의 실시간으로 사용할 수 있는 두바이의 톨게이트 시스템 살릭 ([교통] 두바이 운전의 필수품이자 진일보한 하이패스, 살릭 (Salik)의 모든 것 참조)과 달리 아부다비의 톨 시스템은 차량번호판을 인식하여 과금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살릭처럼 추가로 태그를 구매하여 차 유리창에 덕지덕지 부착할 필요는 없지만, 자신의 차가 아부다비 차량 번호판이 아니라면 통행료 과금용 계정 생성을 위해 아부다비 교통부에 차량을 따로 등록해야만 합니. (아부다비 등록차량의 경우 차량번호 등록과정에서 이미 개인 정보가 입력되어 있기 때문에 별도의 계정 생성과정을 생략하고 문자 메시지 등을 통해 암호 설정만 할 수 있게 한다고 하네요.) 

  


자신의 에미레이츠 ID 및 차량 정보, 이메일, 핸드폰 번호와 함께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계정을 생성한 후 인증 및 추가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당초 예정보다 며칠 늦게 등록 사이트가 열렸음에도 사이트 개설 첫날 계정 생성에 성공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에미레이츠 ID 정보가 유효하지 않다는 에러 메시지로 인해 등록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저도 이 오류 때문에 수십번의 실패 끝에 겨우 성공했;;;;;)



만약, 이 오류가 해결되어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되면 등록시 입력한 핸드폰 번호로 본인 확인을 위한 4자리의 OTP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OTP를 성공적으로 입력하면 성공적으로 계정이 생성되었음을 확인해주는 페이지가 나타나게 되며, 해당 에미레이츠 ID 번호에 등록되어 있는 모든 차량 정보 (제조업체/차종/몇년형모델/차량등록지/차량번호)가 나란히 뜨게 되며 상태를 ON 해주는 것으로 본격적인 차량 등록에 들어가게 됩니다. 



차량 등록비는 1대당 100디르함으로 여러 대의 차량을 소유하고 있을 경우 에누리 없이 100디르함씩 추가로 납부해야 합니다.



신용카드로 100디르함을 결제하는 것으로 계정생성 및 등록절차는 마무리 됩니다.



두바이 살릭 태그과 마찬가지로 실제 등록비는 50디르함이며, 자신의 차량이 정상적으로 등록되었을 경우 50디르함은 본인 계좌에 충전되어 톨게이트 통과시마다 4디르함 (1일 한도 16디르함)씩 차감됩니다.



로그인 후 회원 메뉴는 잔고 및 범칙금, 차량 현황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대쉬보드", 등록된 차량을 관리할 수 있는 "차량관리", 이메일과 핸드폰 번호, 비밀번호를 업데이트할 수 있는 "회원정보"의 세가지 섹션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직은 계정 정보를 홈페이지에서만 확인할 수 있지만, 추후 스마트 살릭과 같은 전용 앱이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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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CC/GU/UAE2019. 8. 25. 23:24


샤르자, 아즈만, 움 알꽈인, 라스 알카이마, 푸자이라가 있는 UAE의 북부 지역과 오만 국경지역 일대를 자세히 보면 흥미롭다 못해 골때리는 지역들을 스치듯이 지나가게 됩니다.

1) UAE에서 육로로 비자런을 해야 하는데 오만 본토와는 동떨어진 아라비아 반도 북쪽 끝에 위치한 오만 땅 캇삽쪽 국경을 간다던가... ([비자] 길어지는 비자수속 과정에서 한번은 거쳐야 되는 UAE-오만 비자런 참조)

2) 심지어 캇삽에서 오만만을 따라 해안도로로만 내려오게 될 경우 넓지도 않은 지역이 세 곳으로 나뉘어진 딥바 알바야 (오만), 딥바 알히즌 (샤르자), 딥바 알푸자이라 (푸자이라)를 거쳐 푸자이라, 코르팟칸 (샤르자) ([사르자] 오만 만과 푸자이라에 둘러싸인 항구 도시 코르팟칸의 관광지, 코르팟칸 비치 참조), 푸자이라, 칼바 (샤르자), 푸자이라를 거쳐야만 오만으로 연결이 된다던가...

3) 코르팟칸에서 푸자이라로 내려가는 길에 길을 잘못 빠지면 잘 알려지지는 않은 UAE 내 또 하나의 오만 영토인 마드하로 연결되고, 그 길을 따라 쭈욱 가다보면 샤르자 땅인 나흐와를 지나 또다시 마드하를 거쳐 라스 알카이마와 푸자이라의 경계 지역으로 들어서게 된다던가...

4) 라스 알카이마와 오만의 국경 지역일 줄 알았던 곳 한 켠에 뜬금없이 두바이 땅 핫타가 있다던가...

UAE 북부와 오만 북부 지역은 경계가 엄청 모호해 굳이 오만으로 넘어가지 않는 한 여러 나라를 지나치면서도 국경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아 관심있게 보지 않으면 모를 경우가 많습니다. 뭐... 동네 분위기 자체가 다르긴 합니다만... 





그런데 말입니다...

왜 이 동네 국경은 경게도 모호하게 그야말로 난잡하게 뒤섞여 있을까요? 


이 모든 복잡한 국경의 시작은 아라비아 반도 내 식민제국이자 UAE 일대를 통치했던 오만해양제국 (1692년~1856년)의 흥망성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 모든 것의 시작, 오만해양제국의 흥망

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시발점이 된 사우드 씨족의 첫 국가 디리야 토후국이 아라비아 반도 복판에 건국을 선포했던 1744년 ([역사] 사우디는 어떻게 건국되었을까? 사우드 씨족의 오랜 투쟁기, 사우디아라비아왕국 건국사 참조)으로부터 50여년 전인 1692년 아라비아 반도 남동쪽 끝에서는 야루바 왕조의 네번째 이맘 (통치자) 사이프 빈 술탄이 관개수로를 도입해 내륙지역에 물을 공급하면서 발달시킨 농업으로 일군 경제를 바탕으로 힘을 키워 그동안 오만 일대를 점령해왔던 포르투갈군을 내쫓은 후 알바티나 지역의 마을 루스타끄를 도읍지로 하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이 나라가 북쪽으로는 호르무즈 해협을 너머 오늘날 이란과 파키스탄의 일부 지역, 아라비아 반도에서는 동쪽 해얀 일대와 예멘 일부, 그리고 남쪽으로는 아프리카 대륙으로로 확장하여 아프리카 대륙의 동해안을 타고 오늘날의 모잠비크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던 식민 제국 오만해양제국으로 발달하게 됩니다. 아라비아 반도 중심부에서 디리야 토후국이 선포되었던 1744년, 페르시아군의 2차 침공 중 최후의 격전지였던 소하르 주 포위 공격을 9개월 동안 버틴 끝에 결국 물러나게 만든 소하르 주의 주지사 아흐메드 빈 사이드 알부사이드가 그 기세를 이어 오만해양제국의 시작이었던 야루바 왕조를 몰락시키고 현재의 오만 통치자 술탄 까부스로 이어지는 알사이드 왕조를 건국하게 됩니다. 



오만해양제국은 1856년 통치자 사이드 빈 술탄이 사망한 후 가족간의 분열로 그의 세째 아들 쑤와이니 빈 사이드가 이끄는 무스카트 오만 술탄국 (1856~1970)과 여섯째 아들 마지드 빈 사이드가 술탄임을 참칭하며 분가한 잔지바르 술탄국 (1856~1964)으로 양분됩니다. 무스카트 오만 술탄국은 1970년 현 통치자인 술탄 까부스 빈 사이드가 영국과 이란의 지원을 받아 일으킨 쿠데타로 아버지 술탄 사이드를 폐위시킨 후 패망시키고 오늘날의 오만 술탄국을 세웠으며, 잔지바르 술탄국은 그보다 앞선 1964년 패망하여 오늘날의 탄자니아가 되었습니다.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관련 논문 오만해양제국의 융성과 추락 - 한국중동학회) 참조   


아라비아 반도 내 오만해양제국의 영역이 ㄱ자 형태를 띄게 되고, 사우드 왕가쪽과 큰 갈등이 없었던 것은 바로 사우디, 오만, UAE, 예멘 사이에 있는 세계 최대의 사막 루브으 알칼리, 즉 엠티 쿼터 때문입니다. ([룹알할리] 언차티드3의 배경이 된 세계 최대의 사막 루브으 알 칼리와 잃어버린 도시 (1) 참조)



사우드 왕조가 몇 차례 흥망성쇠를 거치며 아라비아 반도 중심부의 통일 전쟁을 치루느라 신경쓸 여력도 없었겠지만, 반도의 4분의 1을 차지한 어마무시한 사막의 존재는 사우디와 오만이 국경을 맞닿고 있으면서도 육로로는 연결될 수 없었던, 가까우면서도 먼 이웃인 것도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도로가 막혀 사우디와 오만을 육로로 오가려면 UAE로 우회하여 총 1,700여킬로미터의 거리를 17시간에 걸쳐 가는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나마 최근들어 개통된 사우디-오만 고속도로를 뚫기 위해 1억3천만 평방미터 이상의 모래를 퍼내야먄 했다니 얼마나 엄청난 일이었는지를 새삼 실감할 수 있겠죠.




2. 오만해양제국의 위기와 알까시미 씨족의 세력화 (1747~1820)- 오만 월경지의 탄생

오만해양제국의 전반기를 이끌었던 야루바 왕조가 기세좋게 세력을 확장해 나갈 때 아라비아 반도 내 북부 변두리 지역의 로컬 유목 씨족들은 오만에 있는 이맘에게 충성을 바쳐왔었습니다. 하지만, 오만해양제국이 1738~1744년 두 차례에 걸친 페르시아의 침공을 받고 소하르 주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을 점령당하자, 움추리고 있던 지방 씨족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의 라스 알카이마 시내 일대에 자리를 잡아 토후국을 세우고 해적질과 습격으로 세력을 키워나간 알까시미 해양연합의 씨족장 라쉬드 빈 마타르 알까시미가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알까시미 해양연합은 페르시아로부터 해방된 후 오만에 새로 들어선 알사이드 왕조와 전쟁을 벌여 승리를 거두고 주둔해 있던 오만 요새와 마을들을 몰아내고 지역의 새로운 세력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알까시미 씨족은 오만을 몰아내고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면서도 자신들의 영향력 하에 있는 일부 지역은 도저히 공략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무산담주의 주도인 카삽과 위요지 마드하가 대표적인 곳으로 오늘날까지 오만의 월경지로 남게 되었습니다. 왜 공략하지 못했냐구요?


포르투갈인들이 세우고 오만인들이 물려받은 카삽 요새는 견고하기도 했을 뿐더러 험준한 바위산에 둘러쌓여 있어 해전에 능했던 알까시미 씨족의 유목전사들이 공략하기엔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였기 때문입니다. 



UAE 속 또 하나의 오만 월경지로 남게 된 마드하 역시 살기에는 좋지 않는 척박한 산악환경이었기에 오만 땅으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만의 월경지 마드하의 일부 지역인 나흐와는 아이러니하게도 샤르자의 월경지로 남아 "UAE 영토 내 오만의 위요지 (마드하) 내에 있는 샤르자의 월경지 (나흐와)"라는 월경지와 위요지가 뒤섞인 오묘한 동네가 되었습니다. 



캇삽, 마드하와 함께 험준한 산악지형의 도움을 받아 알까시미 씨족의 침공을 막아내고 오만의 일부로 남을 수 있었던 푸자이라는 당초 오만에 충성을 맹세했지만, 19세기들어 태세를 전환하여 알까시미 씨족을 따르기로 하면서 오만의 입지가 다소 좁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캇삽, 딥바, 마드하는 현 오만의 월경지로 남을 수 있게 되었죠.



3. 영국의 침공 및 라스 알카이마 함락으로 야기된 알까시미 왕조의 분열 (1820~1869)

서 언급한 캇삽과 마드하를 제외한 북부 지역을 점령하며 영역을 확장해갔던 라스 알카이마의 알까시미 왕조는 오만의 영향력에 있던 일부 북부 지역을 완전히 병합하려던 야심을 접어야만 했습니다. 너무 대놓고 해적질을 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을 오가는 영국 동인도 회사의 교역을 깽판쳐놨던 것이 화근이 되어 이들을 상대로 영국군이 보복침공을 감행하기로 결심함에 따라 알까시미 씨족은 오만 월경지 병합보다 더 막강한 대영제국의 해군을 상대하기에 급급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1809년 영국군의 라스 알카이마 1차 침공)


영국군은 1809년과 1819년 두 차례에 걸쳐 라스 알카이마를 침공한 끝에 알까시미 씨족의 군사력을 완전히 궤멸시킨 후 딴 생각을 품지 못하도록 알까시미 씨족 외에도 일대 토후국 지도자들까지 패키지로 모아 1820년 일반해상조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라스 알카이마] 다야 포트, 1819년 영국군 보복침공 당시 최후까지 저항했던 토후국들의 마지막 보루 참조)


1820년 평화협정 이후 해적질을 위한 군사력을 영국군에 의해 거세당한 알까시미 씨족들은 본거지를 라스 알카이마에서 샤르자로 옮긴 후 내부 파벌간의 분열에 들어가 결국 1868년 라스 알카이마가 샤르자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후 자국 영토 안에 있던 오만의 월경지들을 빼앗아 올 기회를 영원히 놓치게 되었습니다.  



4. 라스 알카이마와 샤르자로 나뉘면서 더욱 복잡해진 월경지 (1869~현재): 라스 알카이마? 샤르자? 아니면 자력갱생?

1803년 셰이크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가 취임한 이후 사우디와의 분쟁 등이 겹치면서 통치권이 조금씩 나뉘기 시작하던 샤르자와 라스 알카이마는 1868년 셰이크 살림 빈 술탄 알까시미가 취임하면서 갈라지게 됩니다. 그의 즉위 1년 후인 1869년 조카 셰이크 후마이드 빈 압둘라 알까시미가 샤르자를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움 알꽈인의 지원을 받아 자지라 알하므라와 라스 알카이마에서 전투를 벌렸고, 이에 영국군이 해상조약 위반을 문제삼아 샤르자군을 철군시키면서 라스 알카이마 일대를 장악한 셰이크 후마이드는 독립 토후국 라스 알카이마를 선언하게 됩니다. 샤르자 통치자 셰이크 살림은 자신이 직접 라스 알카이마를 다시 복속시키려고 했지만 실패로 끝나면서 포기하게 되죠.


라스 알카이마는 독립을 선언했던 셰이크 후마이드가 사망한 후 권력의 공백이 생기면서 또다시 샤르자의 통치를 받게 되었지만, 1921년 세이크 술탄 빈 살림 알까시미가 1919년에 이은 두 차례의 청원 끝에 영국으로부터 라스 알카이마를 독립 토후국으로, 자신을 그 통치자로 인정받게 되면서 샤르자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알까시미 왕조 (1727~현재)

 1. 셰이크 라흐마 빈 마타르 알까시미 (1727~1760)

 2. 셰이크 라쉬드 빈 마타르 알까시미 (1760~1777)

 3. 셰이크 사끄르 빈 라쉬드 알까시미 (1777~1803)

라스 알카이마


샤르자

 1. 셰이크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 (1803~1808)- 1기

 1. 셰이크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 (1803~1840)- 1기

 2. 셰이크 핫산 빈 알리 (1808~1814)

 2. 셰이크 사끄르 빈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 (1840)

 3. 셰이크 핫산 빈 라흐마 (1814~1820)

 3. 셰이크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 (1840~1866)- 2기

 4. 셰이크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 (1820~1866)- 2기

 

 5. 셰이크 이브라힘 빈 술탄 알까시미 (1866~1867)

 4. 셰이크 칼리드 빈 술탄 알까시미 (1866~1868)

 6. 셰이크 칼리드 빈 술탄 알까시미 (1867~1868)

 5. 셰이크 살림 빈 술탄 알까시미 (1868~1883)

 7. 셰이크 살림 빈 술탄 알까시미 (1868~1869)

 6. 셰이크 사끄르 빈 칼리드 알까시미 (1883~1914)

 8. 셰이크 후마이드 빈 압둘라 알까시미 (1869~1900)

 7. 셰이크 칼리드 빈 아흐마드 알까시미 (1914~1924)

 

 8. 셰이크 술탄 (2세) 빈 사끄르 알까시미 (1924~1951)

 9. 셰이크 술탄 빈 살림 알까시미 (1921~1948)

 9. 셰이크 무함마드 빈 사끄르 알까시미 (1951)

 10. 셰이크 사끄르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 (1948~2010)

 10. 셰이크 사끄르 빈 술탄 알까시미 (1951~1965)- 1기

 11. 셰이크 사우드 빈 사끄르 알까시미 (2010~현재)

 11. 셰이크 칼리드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 (1965~1972)

 

 12. 셰이크 사끄르 빈 술탄 알까시미 (1972)- 2기

 

 13. 셰이크 술탄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 (1972~1987)- 1기

 

 14. 셰이크 압둘아지즈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 (1987)

 

 15. 셰이크 술탄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 (1987~현재)- 2기

 ** 이름이 볼드체로 적혀있는 통치자는 임기 전체, 혹은 일부 기간 동안 두 토후국을 동시에 통치.


북부 지역을 호령하던 알까시미 왕조가 샤르자와 라스 알카이마로 양분되면서 곳곳에 흩어져 있던 군소 씨족과 마을들은 어느 토후국을 선택해 자신들을 의탁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라스 알카이마는 샤르자와 푸자이라, 그리고 아즈만에 의해 허리가 잘라진 채 남북으로 갈라지게 되었고...



샤르자는 오만만에 있는 코르팟칸과 칼바를 자신의 월경지로 확정짓게 되었습니다.



당초 오만에서 샤르자에 붙기로 배를 한 번 갈아탔던 알샤르끼 씨족의 푸자이라는 또다시 태세를 전환하여 셰이크 하마드 빈 압둘라 알샤르끼가 1879년 샤르자를 상대로 폭동을 일으키면서 기나긴 독립의 길에 나서게 됩니다. 셰이크 하마드는 오랜 투쟁 끝에 1901년 영국을 제외한 모든 당사자들로부터 독립을 인정받게 되며, 토후국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했던 영국은 결국 1852년이 되어서야 푸자이라를 독립된 토후국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5. 알까시미 씨족 분열로 이합집산하는 어수선한 사이 농경지대와 본거지를 확보한 아즈만

UAE의 북부지역이 씨족과 마을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사이 UAE 토후국 중 가장 작은 토후국인 아즈만은 샤르자, 라스 알카이마와 푸자이라에 둘러쌓인 농경지대인 마나마, 그리고 아즈만을 통치하는 알누아이미 씨족의 본거지인 마스푸트를 월경지로 확정하게 됩니다. 특히 마나마의 경우 1920년대 후반 세계 대공황과 일본이 본격 수출에 들어간 양식 진주의 확산으로 인해 진주 산업이 타격을 입게 되자, 곡창지대로서의 잠재성을 인지한 통치자 셰이크 라쉬드 빈 후마이드 알누아이미 3세가 적극 투자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6. 오만과 아즈만간의 분쟁 사이에서 얼떨결에 월경지를 얻게 된 두바이

그리고 두바이는 하쉬르 빈 막툼이 통치하던 1870~80년대 이웃 지역인 마스푸트에 정착하고 있던 알누아이미 씨족으로부터의 위협을 지켜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오만의 술탄 투르키 빈 사이드로부터 하자라인이라 불리던 작은 산악 마을을 양도받게 됩니다. 그 작은 마을이 아즈만, 라스 알카이마, 오만에 둘러싸인 두바이의 유일한 월경지 핫타입니다.   




7. 결정적인 이유는 그 누구도 쉽게 오가기 힘들었던 산악지역이기 때문!

UAE 북부 지역의 국경이 그야말로 난잡한 이유는 거주가능한 일부 지역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기는 해도 UAE 내 대부분의 지역과 달리 하자르 산맥에서 비롯된 산악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유목생활이 중심이 이들에게 있어서 산악지역은 오가는 것은 물론, 그 지역에 살던 원주민이 저항할 경우 쉽게 영역을 확장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산악 지역 및 산악 지역에 인접한 농경 지역이라는 지리적 특성은 중심지인 도심과 달리 다양한 자연환경을 어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두바이와 아즈만은 자신들의 월경지인 핫타와 마나마/마스푸트에 대한 대대적인 걔발계획을 최근 몇 년 사이에 발표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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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랍지역 전문 블로거 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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