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C/GU/사우디2019.02.16 14:12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발렌타인 데이와 관련하여 어쩌다 나오는 사우디 뉴스는 발렌타인 데이를 축하하다 체포되어 처벌받은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요근래 가장 화제가 되었던 사건은 2014년 2월 14일 리조트를 빌려 당국이 판매를 금지시킨 빨간 장미와 양초 등 발렌타인 데이 용품을 구매해서 가족이 아닌 여성들과 함께 술마시고 춤추면서 발렌타인 데이 파티를 벌였다가 체포된 11명의 사우디인들에 대한 사건이었습니다. 남녀 합석, 음주가무, 발렌타인 데이 용품 구매 등의 혐의를 인정한 사우디 남성 5명에 대해 사우디 법원이 내린 판결은 워낙 어마무시했기에 외신을 통해서도 크게 보도된 바 있습니다. 


피고인 1&2: 징역 10년, 태형 2,000대 (알나푸라 마켓 앞에서의 공개태형 100대씩 20회), 형을 마친 후 출국금지 5년

피고인 3&4: 징역 7년, 태형 1,500대 (알나푸라 마켓 앞에서의 공개태형 100대씩 15회), 형을 마친 후 출국금지 5년

피고인 5: 징역 5년, 태형 1,000대 (알나푸라 마켓 앞에서의 공개 태형 100대씩 10회), 형을 마친 후 출국금지 5년


이와 같은 판결이 주목받게 된 이유는 2008년 2월 12일 발렌타인 데이를 이틀 앞두고 사우디 권선징악청이 내놓은 공식 파트와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우디 권선징악청은 "무슬림으로써 비무슬림적인 축일, 특히 미혼 남녀 간의 부적절한 관계를 부추기는 발렌타인 데이 같은 날들을 축하해서는 안된다"라는 파트와와 함께 발렌타인 데이하면 연상되는 빨간 장미와 포장지, 선물상자와 테디베어, 양초 등의 관련 용품 판매를 일절 금지하고 대대적인 단속을 시행함과 동시에 예민한 시기의 아이들이 있는 학교 내에서도 이를 다루지 말 것을 명하는 조치를 내리면서 2008년 이후 사우디 내 공공장소에서의 발렌타인 데이 기념은 단속 대상으로 금지되어 왔습니다. 이로 인해 사우디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이란, 인도, 파키스탄 등과 함께 발렌타인 데이를 기념하지 않는 대표적인 나라 중의 하나가 되었죠.



공공장소에서의 발렌타인 데이 기념 금지는 지난해까지 금지되었던 여성들의 운전허용, 영화관 등과 관련된 이슈에 대한 원리주의적인 소수의 종교세력들과 서구문화의 영향 등을 받아 상대적으로 온건해진 다수 사우디인들 사이의 인식차이를 엿볼 수 있는 사우디 사회 내 인식차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습니다. 


사우디 왕가 자체는 그 시작부터 세속적임에도 와하비즘으로 무장한 원리주의자들과 결탁하여 함께 나라를 세운 특유의 통치체제로 인해 사우디의 역사는 국가통치를 위한 이념이 필요했을 뿐, 원리주의자들의 정치세력화를 원치 않는 사우드 가문과 원리주의자들간에 펼쳐지는 애증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종교세력의 위세를 낮추는데 성공하며 50~60년대 종교적으로 관대하고 온건한 사회를 유지해왔던 사우디는 1979년에 발생한 이란 이슬람 혁명과 그랜드모스크 점거 사태 등 일련의 사건 이후 목소리가 강해진 종교세력의 위세에 눌리면서 이들이 원하는대로 엄격하게 보수화된 사회체제로 역행하여 국민들의 생활을 지난 30년 이상 통제해왔었습니다. 이슬람 종주국임을 내세우면서도 성지를 지키지만 종교적인 대표성은 없는 사우드 왕가로서는 종교 지도자를 앞세워 세속적인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이슬람 공화국을 세운 이란의 성공적인 혁명사건으로 인한 충격과 공포에 이어 불과 몇 달만에 그에 영감을 받아 시아파적인 사상인 메흐디의 재림을 설파하며 메카에서 발생했던 그랜드 모스크 점거사건으로 망신을 톡톡히 당했었기에, 그나마 왕실을 뒤짚을 생각은 없는 원리주의 세력들에게 꼬랑지를 내릴 수 밖에 없었을 테니까요.  


(사우디 사회 암흑기의 시작, 메카 그랜드 모스크 점거 사건 당시 현장 풍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들어 해외 여행이나 체류를 통한 직접적인 방법이나 위성방송, 인터넷 등을 통한 간접적인 방법으로 바깥 세상을 접해 본 국민들이 늘어나면서 사회변화의 목소리도 높아진 것 역시 사실이었습니다. 특히, 위성방송과 인터넷의 발달은 국가에 의한 일방적인 정보통제를 무력화시켰으며 노년층의 수가 상대적으로 줄어든데다 이러한 매체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이 사회의 2/3에 육박하는 특유의 인구구성비 또한 종교 당국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사회가 흘러가며 갈등이 생기게 된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정부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사회 구석구석에서는 발렌타인 데이 용품을 판매하거나 기념하는 사례들이 목격되기 시작하면서 사우디 사회 내에 이에 대한 갑론을박이 펼쳐짐에 따라 당시 위세등등했던 사우디 종교경찰은 결국 2008년 2월의 파트와로 논란의 종지부를 찍고 대대적인 시즌 한정 집중단속에 들어가면서 이를 공식적으로 불허해 왔습니다. ([사회] 주말까지 바꾸겠다고??? 사우디 사회는 지금 격론 중!!! 참조) 이로 인해 종교경찰과 인연을 맺고 싶지 않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개적인 장소에서의 발렌타인 데이 축하를 꺼려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매장들도 단속에 적발되지 않도록 암암리에 용품을 판매한다던가, 외국인 거주자들의 경우 컴파운드처럼 외부와 단절된 비공개장소에서 이를 조용하게 기념할 수는 있었지만요.

 

(2006년 발렌타인 데이 당시 사우디 영자지 아랍뉴스 만평)


하지만, 발렌타인 데이를 기념하는 각종 행위나 관련 용품 판매를 일절 불허한 사우디 권선징악청의 2008년 파트와는 10년만인 2018년 2월 13일 발렌타인 데이를 하루 앞두고 전격적으로 번복되었습니다. 사우디 권선징악청이 발렌타인 데이 기념하거나 축하하는 행위를 인정한다는 개정된 파트와를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트위터로 먼저 발표된 파트와에 대해 전 메카 지역 종교경찰 장이자 이슬람 신학자이기도 한 셰이크 아흐메드 까심 알감디는 TV를 통해 이를 지지한다고 발표하면서 발렌타인 데이가 내셔널 데이나 어머니의 날과 유사한 사회적인 축일이며, 앞서 언급한 사회적인 축일은 인류애에 기반을 한 것이지, 이를 허가하기 위해 종교적으로 입증된 증거를 필요로 하는 종교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예언자 무함마드 역시 비무슬림들로부터 온 세계적인 이슈들을 배척하지 않고 이를 함께 다룬 바 있으며, 비무슬림들의 특별한 종교적인 축일에 그들과 평화적인 인사를 나누는 것 또한 이슬람이 금하고 있는 금지된 행위가 아니라 충분히 허용될 수 있다면서 파트와를 공인한 바 있습니다. 


셰이크 아흐메드 까심 알감디는 성인이 된 이후 헌신적으로 근무해 온 종교경찰들 중 한 명이었지만 그의 경력을 인정받아 메카 지역 종교경찰 청장을 맡고 있던 지난 2010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남녀 간의 합석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이를 금지할 뚜렷한 명분도 없다"는 자신의 소신을 피력했다가 수십년동안 근무해왔던 권선징악청에서 해고된 바 있으며, 2014년에는 한 방송 인터뷰에 니깝으로 얼굴을 가리지 않은 자신의 부인과 함께 출연하여 여성들이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릴 필요가 없으며, 여성의 운전을 지지한다고 역설해 그의 주장에 반대하는 이들로부터 살해위협에 종교방송 채널 출연금지 요청을 받고 소송까지 얘기가 나왔을 정도로 당시 기세가 등등했던 원리주의자들에겐 눈엣가시 같은 성직자였습니다. 물론, 권선징악청에서 헌신해왔던 전직이자 사우디 사회 내에 논란을 점화시켰던 그의 소신 역시 어디까지나 무함마드의 당대 행적과 종교적인 해석에 기반을 둔 것이었기에 그 권위를 인정받고 사회 분위기가 바뀐 지금은 외신의 단골 인터뷰어가 되는 등 주목받는 인물이 되긴 했지만요.


(2014년 얼굴을 가리지 않은 부인을 동석시켜 논란을 야기했던 셰이크 아흐메드 알감디의 방송 인터뷰)


이에 발맞춰 이집트, 튀니지 등지에서도 발렌타인 데이 축하와 관련된 파트와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이집트의 다르 알이르파 알미스리야의 아흐메드 맘두 파트와 국장은 "서로의 사랑을 보여주는 날 하루를 지정하는 것은 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밝혔으며, 오스만 바티크 튀니지 그랜드 무프티는 발렌타인 데이가 기독교인들만의 독점적인 관습이라는 주장을 거부하고 "사람들 사이를 더욱 가깝게 만들어주는 그 어떠한 것도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행위이며, 무슬림 또한 이슬람의 가치를 위반하지 않고도 발렌타인 데이를 축하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2018년 파트와 발표와 다음날인 발렌타인 데이에는 심지어 그간 발렌타인 데이 용품을 판매하는 사람들을 단속해왔던 종교경찰들이 직접 사람들에게 빨간 장미를 앞장서서 나눠주는 모습이 목격되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이면서도 워낙 뜬금없는 전격 발표였기에 단속을 우려하던 업체들이 충분하게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면 (2018 발렌타인데이@사우디아라비아 참조), 사우디의 2019년 발렌타인 데이는 정부의 공식 용인 발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업계가 종교경찰의 단속에 대한 부담감없이 일찌감치 발렌타인 데이 마케팅에 뛰어들고 사람들도 이를 기념할 수 있는 원년이 되었습니다.  



발렌타인 데이에 대한 사우디 종교경찰의 전향적인 자세는 2010년대들어 느리지만 온건화되어가는 사우디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1940년대 설립되어 2010년대 중반까지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통제해왔던 무뚜와라 불리우는 약 5,000여명의 사우디 종교경찰은 온건해지는 전반적인 사우디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앞세운 무차별적인 그들의 단속 행위와 무리한 샤리아 해석으로 인한 월권행위로 인해 사우디인들에게 조차 공분을 사게할 정도로 악명 높았습니다. 그들이 벌인 최악의 사건은 2002년 3월 11일 메카의 여학교에서 발새한 화재사건이었습니다. 화재사건 당시 탈출을 시도하려던 여학생들을 도와주기는 커녕, 긴급한 대피로 인해 신체를 가릴 수 없는 그들의 복장을 문제삼아 화재가 난 건물 밖으로의 탈출시도를 되려 제지했던 종교경찰들로 인해 15명이 죽고 50명이 다친 대형 참사를 만든 주범들이었으니까요. 그 외에도, 그들의 무리한 추격과 체포시도로 인해 이들을 피하려던 사우디 국민이 다치거나 죽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외국인 남편과 사우디인 부인의 다문화 가정을 불륜으로 오해한 종교경찰이 쇼핑몰 주차장까지 부부를 쫓아가 영국인 남편을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졌을 정도로 국제사회는 물론 그들의 행위에 대한 사우디 사회 내의 공분은 나날이 커져만 갔습니다. ([사회] 사우디 권선징악청, 영국인-사우디인 부부 폭행사건으로 파문을 일으킨 현장요원 징계 및 부부에게 공식 사과! 참조)


(사우디 종교경찰 순찰차량)


2010년대 들어 압둘라 국왕 당시의 사우디 정부가 보다 온건한 성향의 성직자를 권선징악청장에 앉히고, 종교 경찰의 주임무를 일반인 상대 대신 과격 원리주의자들을 상대로 할 것을 명한 바 있음에도 ([사회] 사우디 종교경찰이 과격 원리주의자들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유! 참조)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기 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타성에 젖어있던 일선 종교경찰들은 이에 반발하여 청장의 개혁시도에 강하게 저항하는 등 홍역을 겪어왔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저항과 무소불위의 권력은 살만 국왕의 즉위와 더불어 사실상 실세가 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비전 2030 하에 온건한 이슬람을 앞세우기 시작하면서 더욱 약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우디 정부가 2016년 4월 지난 수십년동안 종교경찰이 전가의 보도로 사용해왔던 용의자를 추격, 체포, 심문할 수 있는 권한을 전격 박탈하고, 종교경찰에게는 사람들을 대할 때는 항상 "정중하고 인도적인 자세"로 대하고, 만약 범죄 상황을 목격했을 경우 예전처럼 과격하게 대응하지 말고 관련 기관에 신고만 할 수 있도록 권한을 통제한다고 공식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일반 사우디 여론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종교경찰의 권한박탈 발표는 그동안 단속에 익숙해있던 많은 종교경찰들이 이에 반발하여 근무를 단체 거부했었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의 그들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실제로 정부의 발표 이후 2달이 지난 후에나 현장으로 돌아왔다고 하죠. 


(사우디 경찰 순찰차량)


권선징악청과 종교경찰의 위세 약화는 이들이 탄압적인 기관이 아닌 교육적인 기관이 되기를 바라는 살만 국왕과 무함마드 왕세자의 의중이 담긴 것이었습니다. (이는 역으로 말하면, 숙청의 밤에서도 드러났듯이 분립되어 있던 권한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가 왕세자가 되는 과정에서 집중시켜 현재는 왕권의 직접적인 통제 하에 있는 사정 당국만으로 충분하다는 의미입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사람들을 통제해왔던 종교경찰의 절대적인 권한을 박탈한데 이어, 사회를 온건화시키려는 사우디 정부의 또다른 부담거리였던 강경한 성향의 성직자들이 가지고 있던 정치적인 역할을 더욱 축소시켜 버린 것 역시 종교세력의 위세를 낮추어 왕권을 강화하는 과정의 일환입니다. 이는 2000년대들어 9/11과 사우디 내 잇단 폭탄테러 사건 이후 사우디 정부가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 정부로부터 급여를 받는 이맘들의 활동을 모니터링하여 과격한 성향이 드러날 경우 해고시키고, 파트와를 내릴 수 있는 권한을 제한하는 등 종교세력의 입지를 좁혀오던 방침의 연장선상이기도 합니다. ([사회] 사우디, 2003년 이후 이슬람 과격주의 성직자 3,500명 해고해! 참조) 자신의 소신을 발언했다가 종교경찰에서 해고당했던 셰이크 아흐메드 알감디는 사우디 정부의 대대적인 개혁으로 위세가 약화된 현재의 종교경찰이 "매우 유용하고 유화적"으로 변모했다고 지난해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습니다.


(남녀가 따로 앉아야 한다는 방침에 반발한 이탈리안 축구협회의 비판을 사우디에서 전격 수용하여 열리게 된 이탈리아 슈퍼컵 관중석 풍경)


그리고 그 결과가 여성들의 경기장 직관 허용 (2017년), 수십년만의 영화관 공식 개관, 여성운전 허용 (2018년), 발렌타인 데이 축하통제 해제 (2018, 2019) 등 불과 몇 년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각종 금지조치들이 최근 1~2년 사이에 잇달아 해제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블로그를 통해 여성 운전 허용 및 영화관 부활과 관련한 포스팅만 몇 년에 걸쳐 달았을 정도로 ([사회] 살만 국왕, 사우디 내 여성들의 운전을 허용하는 역사적인 칙령 전격 발표! & [문화] 그동안 폐지했왔던 사우디의 영화관 부활 공식 발표로 본 사우디 영화 약사! 참조) 이에 반발하는 종교계와의 오랜 논의시간이 필요한 이슈들이지만, 이러한 조치들을 환영하는 일반 국민들의 여론을 앞세워 예전 같았으면 팔짝 뛰고 딴지를 걸었을 종교계 내 강경파들의 목소리를 대폭 낮춰버렸으니까요. (반 사우디 성향의 매체들을 통해 이러한 인사들을 구금하고 고문까지 가하며 대대적인 탄압을 펼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만...)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종교경찰을 앞세워 발렌타인 데이 기념행위를 단속했던 사우디의 언론들이 이제는 되려 종교경찰의 금지조치 해제와 더불어 외교갈등 중인 카타르를 비난하기 위해 "발렌타인 데이를 없애버려야 한다"고 주장한 카타르 매체의 한 기사를 비중있게 보도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하달까요.


사우디 종교경찰이 발렌타인 데이 기념 금지조치를 풀면서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분위기가 도입되기를 기대하는 목소리들이 있지만, 이는 사우디의 국가적인 종교관 자체가 변하지 않는 한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발렌타인 데이를 아랍어로는 종교적인 색채가 없는 "사랑의 날 (عيد الحب)"로 부르기에 사우디 종교경찰들도 발렌타인 데이가 종교적인 해석을 요구하지 않는 사회통념상의 기념일이라며 묵인해줄 수 있는 반면, 예수의 생일인 크리스마스를 같은 기준을 적용하여 해금시켜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우디가 이슬람의 창시자인 무함마드의 탄신일조차 유일신 사상에 위배되는 일종의 우상숭배로 간주하여 이를 휴일로 지정하는 것을 죄악시하고 있고, 타 종교의 활동을 공식적으로 불허하는 나라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무함마드 탄신일도 우상숭배라며 안 챙기는 마당에 예수를 무함마드 직전의 예언자로 여기고 있는 이슬람에서 그의 탄신일을 챙길리가 만무하고, 타종교의 활동을 금하고 있는 상황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공개적으로 내는 것도 어폐가 있으니까요. 


대외적인 선교활동을 하지 않는 선에서 타종교의 종교활동을 인정해주고 있는 UAE의 경우 무함마드 탄신일은 드라이 나잇이 적용되는 공휴일로 지정하는 한편, 기독교에서 기념하는 크리스마스 축하무드를 적극 장려하고 있습니다. (돈이 되니까요...^^) 실제로 사우디 세관은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크리스마스 트리 수입금지령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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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랍지역 전문 블로거 둘라
GCC/GU/사우디2019.01.16 23:03



1월 15일 살만 국왕이 주재한 가운데 열린 사우디 각료회의에서 지난해 4월 24일 양국 외교부 간의 합의에 따라 외교부 청사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리야드 알무바라키 주한사우디아라비아왕국 대사가 정식 서명했던 "대한민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왕국 간의 양국 국민에 대한 입국사증 발급 간소화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수정없이 원안 그대로 승인했다고 투르키 빈 압둘라 알샤바나 사우디 미디어부 장관이 공식 발표했습니다.


이 양해각서는 유효한 여권을 소지한 양국 국민과 기업인들이 관광 및 상용 등의 목적으로 상대국을 방문할 때마다 최대 90일간 체류할 수 있는 5년 유효기간의 복수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게한 것으로 사우디 방문기회가 잦은 한국인들에게 더욱 좋아진 점은 단순히 비자기간이 늘어나는 것 뿐만 아니라 90일 단수비자 $533, 1년 복수비자 $1,333의 어마무시한 비자비용을 자랑하는 사우디 비자 발급비를 단돈 $90로 대폭 절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비자 기준으로 5년 동안 1년 복수비자를 받으려면 매년 대사관을 찾아가야 하고 비자비만 총 $6,665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비자비용의 6.75%만 내고 한 번에 발급받을 수 있게 된 셈이니 사우디 출장이 잦은 분들에겐 그야말로 대박인 셈이죠. ([비자] 사우디 복수비자 발급비용이 1년 180만원대에서 5년 9만원대로 대폭 낮아져! 참조)


사우디 각료회의의 최종 승인에 따라 양해각서가 취소될 일은 없어졌으며, 앞으로 왕령 발표와 사우디 외교부의 서면통보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본격적인 혜택을 보게 될 예정입니다. 기회가 되면 저도 언제 한번 발급받아 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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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랍지역 전문 블로거 둘라
GCC/GU/사우디2018.10.13 19:49



세계 언론계에서도 유명한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쇼끄지가 터키인 약혼녀에게 자신의 휴대폰을 맡기고 만약 네시간 뒤에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측에 연락해 달라는 말을 남긴채 결혼 준비를 위해 신청했던 서류를 떼러 이스탄불에 있는 사우디 영사관에 들어갔다가 사라진지 10일이 넘었습니다. 터키와 반 사우디 언론들은 사우디가 시체 해부전문가를 포함한 15명을 전세 비행기편으로 이스탄불에 입국시켜 영사관 내에서 그를 살해한 후 시신을 분해하여 리야드로 돌아갔다며 사우디 정부에 의한 암살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사우디측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자말 카쇼끄지는 자신의 민원을 해결하고 영사관을 떠났으며 오히려 그의 실종과 관련되어 등장하는 가족들도 모른다는 약혼녀, 목격자, 신고자 등이 터키 및 카타르측과 연루된 인사들이고 그의 살해범으로 주장하고 있는 15명은 단순한 방문객일 뿐으로 그들의 주장은 사우디 정부를 음해하기 위한 음모론이라고 맞서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우디 정부의 암살설을 주장하는 터키 및 카타르 중심의 반 사우디 성향의 언론들도 군불만 지필뿐 명확한 물증을 제시하고 있진 못하지만, 여러가지 정황상 사우디 정부의 반박 역시 상황을 반전시킬 만한 근거가 되지 못하는 궁색한 변명으로 여겨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자신들이 비판적인 언론인 살해범이라는 프레임을 깨고자 한다면 자말 카쇼끄지가 무사히 영사관 밖을 빠져 나갔다는 CCTV 영상, 혹은 그가 살아있는 모습을 공개해야겠지만, 현 상황에서 사우디는 가장 기본적인 그의 생존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제시할 수도 없을테니 말이죠. 그의 실종 미스테리가 길어지면서 자말 카쇼끄지 쇼크는 오히려 사우디에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해 사우디가 홍해 관광 프로젝트를 발표했었을 당시 가장 먼저 투자하겠다고 나선 버진 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CEO가 투자철회를 선언했고, 역시나 지난해 첫 컨퍼런스에서 야심찬 초대형 미래 신도시 네옴 발표로 주목을 받아 올해엔 무슨 발표가 이어질지 화제를 모았던 제2회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에 참가하기로 한 언론, 업체들이 잇달아 불참을 선언하여 개최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으로 이어졌으니까요.


실종된 자말 카쇼끄지는 어떤 사람이며, 그의 사우디는 어떻게 변해왔던 것일까요?



자말 카쇼끄지의 가문과 이력

자말 카쇼끄지는 부유한 사우디 가문 출신입니다. 아랍어 이름으로는 낯선 카쇼끄지라는 이름은 그의 가문이 터키 카이세리 지방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카쇼끄지는 터키어로 "스푼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Kaşıkçı"에서 나왔다고 하네요.) 외과의사였던 그의 할아버지인 무함마드 카쇼끄지가 사우디 여성과 결혼하고, 오늘날의 사우디를 세운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의 개인 주치의가 되면서 카쇼끄지 집안은 사우디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친척 중엔 유명한 사람이 두 사람 있는데, 한 명은 삼촌으로 이란 콘트라 스캔들에 깊숙히 관여한 1980년대 당시 40억 달러의 재산을 소유했던 것으로 알려진 억만장자이자 유명한 무기 거래상이었던 아드난 카쇼끄지이고, 또 한 명은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연인이었으며 파리에서 발생한 의문의 교통사고로 함께 사망했던 사촌 도디 파예드입니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 이해하기 위해 이력을 한번 살펴보죠.

- 1958년 10월 13일 사우디 메디나에서 출생

- 1970년대 고등학교까지 사우디에서 공부하면서 무슬림 형제단에 가입한 것으로 알려짐.

- 1982년 미국 인디애나 주립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 1983~1984년 티하마 서점 지역 총괄 매니저

- 1985~1987년 사우디 가젯트 (영자 신문)와 자매지 오카즈 (아랍어 신문) 통신원

- 1987~1990년 앗샤르끄 알아우사뜨, 알마잘리아, 알무슬리문 등 여러 매체의 기자

- 1991~1999년 알메디나 주필 겸 편집장 대행

아프가니스탄, 알제리, 쿠웨이트, 수단, 중동 지역 특파원 역임

사우디 정보국 ([사회] 사우디의 국가정보원, 사우디 정보국 "무캇바라" 참조)을 위해서 일했으며, 이란 아프가니스탄 당시 미국과도 일한 것으로 추정. 이 과정에서 자말 카쇼끄지는 오사마 빈 라덴과 친분을 맺고 수차례 인터뷰를 땀과 동시에 무장세력으로 성장한 그와 사우디 왕가 사이에서 평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중재역할을 맡으면서 그에게 폭력행위를 중단할 것을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9/11 사태 이후 두 사람의 친분은 끊어짐. 사우디 왕가와 오사마 빈 라덴의 한때 친밀했던 거래관계를 잘 알고 있었던 유일한 비사우드 왕가 출신 사우디인이 되었음.

- 1999~2003년 아랍뉴스 부편집장

- 2003년 알와딴 편집장. 와하비즘의 아버지 이븐 타이미야를 비평하는 칼럼을 실어 사우디 정보부에 의해 52일만에 해임. 이 해임건을 계기로 서구 매체에 자유진보 성향의 사우디 언론인으로 이름을 알리게 됨.

- 2003~2007년 영국으로 자발적인 망명

투르키 빈 파이살 알사우드 당시 주미 사우디 대사 보좌역 및 홍보 담당자로 근무 

- 2007년~2010년 사우디 내 가장 진보적인 매체가 된 알와딴 편집장으로 복귀. 사우디의 엄격한 이슬람 통치규정을 비판하는 기사들을 잇달아 실어 해임.

- 2010~2016년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

알왈리드 빈 탈랄 왕자가 중도적인 매체를 지향하며 바레인을 본부로 하여 설립했던 알아랍 뉴스 채널 ([미디어] 알왈리드 왕자의 알아랍 뉴스 채널, 올 연말 공식 개국한다! 참조)의 국장으로 지명되었지만, 알아랍 뉴스 채널은 반정부 인사와 인터뷰를 문제삼은 바레인 당국에 의해 개국한지 24시간도 안되어 강제 폐국됨.

MBC, BBC, 알자지라, 두바이TV의 사우디 정치 해설자로 출연

알아라비야에 정기적으로 오피니언 게재 (2012~2016년)

- 2016년 트럼프 미대통령을 비판한다는 이유로 사우디 당국에 의해 방송 출연 및 트윗 금지령이 내려진 것으로 알려짐.

- 2017년 미국으로 자발적인 망명을 떠나 9월부터 워싱턴 포스트에 카타르 고립사태, 예멘 내전, 캐나다와의 외교분쟁, 언론탄압 등을 주제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이끄는 사우디 정부를 비판하는 칼럼을 잇달아 기고 (링크)

- 2018년 10월 2일 주이스탄불 사우디 영사관에 들어간 이후 행방불명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이 몇 가지 눈에 띕니다. 

1) 사우디 왕가와 오사마 빈 라덴과의 은밀한 거래관계를 아는 유일한 비 왕실인사, 그리고 자발적인 망명을 택했을 때도 주미 사우디 대사를 위해 일했을 정도로 사우드 왕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친정부 성향 인사였지만, 두번째로 고국을 떠난 2017년 이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사우디 정부를 공개 비판하는 저격수로 변신.

2) 두 차례에 걸친 알와딴 편집장직 해임, 자신이 국장으로 개국했던 알아랍 뉴스 채널의 강제 폐국 사건에서 볼 수 있듯 공식석상에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명하지 않는 사우디인들과 달리 자신이 불이익을 당할지언정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공개적으로 밝힌 언론인


그의 일관된 행적을 볼 때 2016년 이후 친정부적인 시각에서 반정부적인 시각으로 급변한 사우디 정부에 대한 그의 태도는 그가 변했다기 보다는, 그가 인싸이더로, 때로는 정부의 정책을 견제하는 발언을 하면서 수십년간 봉사해왔던 자신의 나라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급부상과 함께 급변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의 관점에서 지금의 사우디 정부는 그간 비난받아왔던 각종 관습을 철폐하는 잇따른 개혁정책으로 세계적인 화제를 끌어모으고 있지만, 그 이면에 숨겨있던 암연 역시 더욱 짙어지고 있을 뿐이니까요. 사우디 정부를 향한 그의 시각은 왜 바뀌게 되었을까요?


그의 이력에서 볼때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우디 정부는 이슬람 세력이 어느정도 기반을 가진채 건설적인 비판과 견제가 존재하는 곳입니다. 사우디 내에 그나마 있었던 종교적, 정치적 견제세력은 상대적으로 지지세력이 많지 않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급격한 권력강화 과정에서 유명무실하게 되었지만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체제에서 붕괴된 사우디 국가 시스템의 세력 균형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제 이전 사우디의 국가 시스템은 사회적으로는 사우드 씨족과 종교세력 간의 갈등과 균형, 정치적으로는 사우디 군부 내 세력 균형에 의해 움직여 왔습니다.


1. 사우드 씨족과 이슬람 세력과의 갈등과 균형

이슬람 종주국임을 자처하는 사우디는 가장 원리주의적이라는 와하비즘을 통치 이념으로 내세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양대 성지 수호자"라는 별칭에서 볼 수 있듯이 최고 통치자인 국왕 및 사우드 씨족이 종교인이 아닌 정치인입니다. 그럼에도 와하비즘이 사우디의 통치이념이 된 것은 애시당초 18세기의 혼란기에 아라비아 반도 통일에 관심이 많았던 무함마드 빈 사우드와 초심을 잃은 종교세력에 불만이 있던 와하비스트인 무함마드 빈 압둘 와합이 혼인으로 결탁하여 제1사우디 국가를 세웠던 것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우디의 역사는 사우드 씨족과 와하비스트 간 애증과 경쟁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역사] 사우디는 어떻게 건국되었을까? 사우드 씨족의 오랜 투쟁기, 사우디아라비아왕국 건국사 참조) 사우드 가문보다 와하비스트들의 세력이 보다 강했던 제1사우디 국가의 경우 그 배타적인 종교적 테러행위가 빌미가 되어 멸망을 자초했던 것처럼, 사우드 가문은 종교 세력이 지나치게 강해질 경우 자신들의 통치 정당성이 위협받게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사우디 왕국을 세운 압둘아지즈 국왕이 통일전쟁의 일등 공신임을 앞세워 영향력을 높여가던 민병조직 이크완을 궤멸시키고 잔존 세력들을 친위조직인 국가방위군으로 흡수했던 것처럼 사우드 왕가의 통치자들은 종교 지도자나 종교에 기반을 둔 사회운동을 통해 종교 세력이 지나치게 정치 세력화되는 것을 근본적으로 견제해 왔었습니다. 이슬람 공화국임을 내세우고 있는 시아파 종주국 이란의 최고 종교 지도자가 대통령보다 더욱 높은 자리에 있는 것과 달리 사우디 내 최고 성직자인 그랜드 무프티는 자리 자체가 1953년 처음 도입되어 무함마드 빈 압둘 와합의 후손인 알 앗셰이크 가문 출신 중에서 국왕이 임명하고, 한동안 (1969~1993년)은 그 자리마저 비워놨을 정도로 말이죠.


1) 불과 몇 년전까지 강력했지만 지금은 쇠약해진 종교 지도자들의 영향력 약화

1932년 오늘날의 사우디아라비아 왕국 건국 이후 종교적으로는 보다 관용적이며 온건했던 사우디 사회는 1979년 말 국부 압둘아지즈 국왕이 궤멸시켰던 이크완의 후손들이 시아파에서 제창하는 메흐디 재림을 앞세워 그랜드 모스크 점거 사건을 일으키면서 급변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빌미로 그동안 사우드 씨족에 밀려 움추려 있던 종교세력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강경 보수화의 길을 걷게 됩니다. 사우드 씨족은 이슬람 종주국임을 자임하기에는 종교적인 뿌리가 없는 자신들의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양대 성지 수호자"를 자임하면서도 정작 허술하게 그랜드 모스크 점거를 허용하면서 체면을 구길대로 구겼기에 이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종교 지도자들의 영향력이 강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 나야했을 국왕 이하 주요 왕자들의 처벌을 면하는 조건으로 종교 지도자들과 딜을 할 수 밖에 없었을테니까요. 


1980년대 이후 와하비즘에 입각하여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종교경찰로 대변되는 종교세력에 눌려있던 사우디 정부는 2003년 5월을 계기로 성직자들에 대한 통제에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헐리우드 영화 킹덤의 모티브가 되었던 5월 12일 리야드 컴파운드 연쇄 폭탄테러가 그 시발점이었습니다. ([영화] The Kingdom, 왕국에서 피의 악순환을 이야기하다... 참조) 그랜드 모스크 점거 사건 당시 국가방위군 총사령관으로 사건 종결 후에도 경질은 면했지만 망신을 톡톡히 당한 바 있던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당시 왕세제 겸 실질적인 사우디 통치자가 폭탄테러 사건 이후 사우디 내에서 과격한 원리주의자들을 궤멸시킬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하게 됩니다. 그랜드 모스크 점거 사건 당시에는 자신이 이들과의 전쟁에 나설 입장이 아니었지만, 2003년에는 다수파인 수다이리 세븐 이복형제들을 제끼고 다음 국왕 자리를 예약해 둔 왕세제였으니 말이죠. 이 선언의 일환으로 사우디 정부는 젊은이들에게 그릇된 가치관을 심어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명분을 앞세워 친정부 성향의 성직자 기관을 세우고 과격주의 성직자들을 해고하기 시작하면서 사우디 내 성직자들의 정치적인 영향력을 위축시켜 왔습니다. ([사회] 사우디, 2003년 이후 이슬람 과격주의 성직자 3,500명 해고해! 참조) 베이비붐 세대로 급증한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젊은층들이 어른 세대들과 달리 종교적으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성향을 띄게 된 것도 이들의 영향력을 위축시키려는 사우드 왕가에게는 그야말로 호재였던 셈이죠. 이는 압둘라 국왕이 국왕 취임 후 권력기반을 닦은 2010년 이후 사우디 정부는 안하무인으로 활동했던 종교 경찰의 영향력을 축소시켜 나가고 ([사회] 사우디 종교경찰이 과격 원리주의자들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유! 참조) 그랜드 무프티를 위시한 고위 종교 지도자들의 반발과 개혁주의자들의 반발 속에서도 나름 충분한 논의과정을 거쳐 느리지만 온건한 개혁정책을 펼쳐올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현재의 사우디에선 기존의 종교 지도자들이라면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 개혁정책들이 잇달아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정책에 수십년 동안 큰 목소리를 내던 종교 지도자들은 그전과는 달리 별다른 반발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2) 일련의 이슬람 종교, 사회운동에 대한 강경한 탄압

그랜드 모스크 점거 사건의 촉매제가 된 이란의 이슬람 혁명은 걸프지역, 특히 사우디와 UAE 통치자들에게는 강렬한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첫째, 이슬람으로 결집한 민중세력들의 혁명으로 세속정권을 몰락시키고 이슬람 공화국을 세웠다는 점, 그리고 둘째, 이란 이슬람 혁명의 영향을 받은 그랜드 모스크 점거 사건이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쉽게 일어날 수 있었던 건 자신들에게도 이란의 팔레비 왕조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그것이었습니다. 특히 통치 정당성 면에 있어 이슬람 종주국을 자처하면서도 최고 지도자가 성직자가 아닌 세속주의 통치자라는 아킬레스 건을 갖고 있는 사우디에서는 더욱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사우드 왕가 자체가 원리주의자를 신봉하는 와하비스트들과의 결탁으로 힘을 키웠으니 말이죠. 


이란 이슬람 혁명에서 비롯된 이슬람 종교, 사회운동을 통한 정권교체에 대한 두려움은 아랍의 봄과 맞물려 사우디 정부가 무슬림 형제단을 극도로 위험한 단체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의 사우디 역시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가 예고되었지만, 정부의 통제정책 등으로 무산된 바 있으며 ([사회] 조용했던 사우디 "분노의 날", 군인들에게 불려들어갔던 사연 참조), 압둘라 국왕은 이에 감사한다며 대대적인 국민 회유책을 발표하기까지 했었죠 ( [사회] 압둘라 국왕, 약 150조원의 사회복지자금 운영계획 발표! 참조). 하지만, 아랍의 봄을 타고 무바라크 정권 몰락 이후 국민투표를 통해 무슬림 형제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선거에서 승리한 무르시 정권의 탄생은 그 위기감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막대한 외교적, 경제적 손실에도 불구하고 알후씨 반군을 없애겠다며 예멘 내전에 뛰어들고 헤즈볼라의 위상이 강화된 레바논 내정 개입, 자신들이 테러조직으로 규정한 무슬림 형제단 지원 등을 이유로 카타르 고립 사태를 이끌고 있는 것 ([분쟁] 카타르가 단교 사태 종식의 전제조건으로 사우디, UAE로부터 받은 청구서 내역 참조)은 사우디 내에서 혹시나 발생할지 모를 이슬람 사회운동의 영향력 확대를 잠재우기 위한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무슬림 형제단의 정치적 영향력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로 UAE 내에 국민투표와 같은 선거제도를 전면적으로 도입할 수 없다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멘토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흐얀 아부다비 왕세제의 통치관과 반정부 시민운동을 명분으로 내세운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의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세 나라가 무슬림 형제단 척결을 앞세워 더욱 각별해지는 계기가 된 바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주요 외교정책들은 자말 카쇼끄지가 워싱턴 포스트 논평을 통해 비판해 온 주요 이슈들이기도 합니다. 한때 무슬림 형제단에 가입했던 것으로 알려진 자말 카쇼끄지는 아랍의 봄 이후 본격적인 정치 세력화를 꾀했다가 위축된 무슬림 형제단에 대한 동정심을 자신의 칼럼을 통해 공개적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무슬림 형제단에 대한 우호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그의 입장에서 보자면 여러가지 유무형적 손실에도 불구하고 무슬림 형제단 지원을 빌미로 카타르 단교 사태를 주도하고, 이란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예멘 알후씨 반군과의 전쟁과 사우디 정부의 영향력 강화를 위해 헤즈볼라의 정치적 영향력이 강해진 레바논 내정에도 개입하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움직임을 더욱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밖에요.



2.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권력강화로 붕괴된 사우드 씨족 내 견제 구도

사우디 사회의 성격을 결정짓는 사우드 씨족과 이슬람 성직자들 간의 세력 균형 외에 또 하나의 축은 사우드 씨족 내의 세력 균형입니다. 사우드 씨족 내에서 왕위를 승계받기 위해 거쳐야 할 핵심 정부 조직은 독자적인 군사조직 국내안전보장국을 갖고 있는 내무부 (위에서 소개해드린 분노의 날에 사진찍으러 다니다 불려들어간 곳이 국내안전보장국이 아닐까 싶네요), 혹은 군부입니다. 살만 국왕 부임 전의 사우디는 3명의 왕자가 권력을 나누어 서로를 견제하는 구조였습니다.


국방부- 고 술탄 빈 압둘아지즈 왕세제 및 만 빈 압둘아지즈 현 국왕 계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수다이리 세븐)

국가방위부- 고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전 국왕 계열/ 무타입 빈 압둘라 왕자 (전 국가방위부 장관) (소수파)

내무부 (국내안전보장국)- 고 나이프 빈 압둘아지즈 왕세제 계열/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자 (전 왕세질) (수다이리 세븐)


사우드 군부의 삼각 구도는 종교 세력과의 세력 균형은 물론 사우드 왕가 내에서도 어느 한 쪽이 일방적인 정국운영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절묘한 균형추였습니다. 상대적으로 소수파벌인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왕자가 국왕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사우디 국가방위부를 장악하고 그 자리를 지켜낸 덕분이었죠. ([정치] 압둘라 사우디 국왕과 그가 위상을 강화시킨 자신의 권력 기반, 사우디 국가방위부 참조) 압둘라 국왕이 온건한 개혁정책을 추진해왔던 것도 종교 세력은 물론이거니와 국방부와 내무부를 장악한 수다이리 세븐의 두 왕자들의 견제를 받아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압둘라 국왕이 견제 구도를 개편해보고자 자신의 측근을 국방부 차관으로 임명시켰다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 주도로 결국 내쫓긴 바도 있었죠. 이 사건은 당시 위키피디아에도 소개가 되어있지 않았을 정도로 듣보잡 왕자 중 한 명이었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가 제 블로그 포스팅에서 처음 등장하게 된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정치] 압둘라 국왕, 칼리드 빈 반다르 국방차관을 지명 6주만에 전격 경질, 그리고 그 배경 참조)


압둘라 국왕파와의 왕위 계승전을 승리로 이끌며 살만 국왕의 취임과 더불어 사우디의 경제와 국방을 손아귀에 넣은 무함마드 빈 살만 부왕세자는 아버지 살만 국왕의 칙령을 통해 2017년 6월 내무부 내 국왕 직속의 독자적인 사정기관 설립을 발표한지 불과 4일만에 내무부 장관을 겸임했던 차기 왕위 계승자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세질을 실각시키고 자신이 왕세자로 오른 뒤, 11월에는 숙청의 밤을 통해 눈엣가시였던 국가방위부 장관 무타입 빈 압둘라 왕자마저 비리혐의로 전격 체포하면서 사우디 역사상 최초로 어느 국왕도 이루지 못했던 3대 군부 조직을 장악한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왕자, 기업인 등 유명 인사들의 잇단 체포로 인한 혼란에 묻혀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 과정에서 반대 여론을 누르기 위한 목적이 담겨있는 국왕 및 왕세자 모욕죄 처벌안을 추가한 테러방지법을 발표한 것은 반대세력을 탄압하는데 힘을 실어준 신의 한 수였습니다. ([정치] 대규모 숙청작업으로 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권력투쟁기 참조)



조국을 떠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저격수가 된 자말 카쇼끄지의 비극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에 의해 내무부를 이끌었던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세질이 실각한 사건은 자말 카쇼끄지로 하여금 사우디를 떠나 미국으로 향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군부를 장악하고 있던 젊은 왕세자의 손에 사정기관을 포함한 내무부 일체가 넘어갔고, 그의 주변 인물들이 하나둘씩 체포되고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에게는 너무나도 뻔히 보였을테니까요. 만약 그가 사우디를 떠나 미국으로 가지 않았었다면, 우리는 지난해 11월 숙청의 밤에 체포된 유명인사들 중 한 명으로 자말 카쇼끄지를 기억하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자신을 견제할 가능성이 높은 잠재적 위험요소가 될 수 있는 모든 세력을 불과 몇 년만에 잠재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내부적으로는 정부 주도의 성직자 조직과 내무부의 사정기관을 앞세워 자신에게 반발하는 세력들을 지속적으로 체포하면서 대외적으로는 이를 감추려는 듯 사우디 국민은 물론 사우디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외국 언론들의 관심을 모으는 화려한 개혁정책들을 잇달아 발표했습니다. 그간 금기시해왔던 여성운전 허용, 경기장 출입 허용조치 등에서 볼 수 있듯 평소의 사우디였다면 몇 년에 걸쳐 사회적인 논의를 거친 후에나 겨우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정책들이 비전 2030, 네옴 발표 과정에서 볼 수 있듯 측근 인사들을 제외하고는 사우디 내부에서 아무런 중간 토의과정도 없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에 의해 극적으로 발표되는 방식으로 말이죠.  


대외적으로는 크게 주목받지 않은 상황에서 사우디 내부의 자체적인 견제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사정기관을 앞세워 정작 잡아들여야 할 극단주의자들은 잡지 않으면서 애먼 비판세력을 잠재운 채 견제세력 없이 추진되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에 의한 일방적인 개혁정책 추진과 자신이 지지하는 무슬림 형제단(+알후씨 반군+헤즈볼라 등등....)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큰 성과를 거두지도 못하면서 무리수를 두는 외교정책에 대한 반발은 수십년 동안 친정부 언론인이자 정보원 활동을 했던 그를 불과 몇 년만에 대표적인 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언론인으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자기 뜻대로 정권을 장악하게 된 사우디와 달리 반 무슬림 형제단 및 이슬람 세력을 모토로 예멘, 레바논, 카타르를 상대로 벌이고 있는 외교 및 국방 정책에서는 뜻한 바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이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영향력이 직접적으로 통하지 않는 미국으로 넘어가 워싱턴 포스트를 통해 자신의 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자말 카쇼끄지가 눈엣가시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의 행방불명 며칠 전 블룸버그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는 자말 카쇼끄지처럼 애국심을 바탕으로 한 건설적인 비판은 환영한다고 밝히기까지 했지만, 그가 사우디에 있었다면 무슨 명목을 만들어서라도 잡아넣고 싶었을테니까요...


이스탄불에서 사라지기 3일전 영국에서 열린 한 컨퍼런스에 참석해서 BBC와 가진 비공식 대화가 자말 카쇼끄지가 행방불명 되기 전 세상에 남긴 마지막 인터뷰가 되고야 말았습니다. 당초 비방용 대화였지만 그가 행방불명된 후 BBC에 의해 녹취록이 전격 공개된 이 인터뷰 (Jamal Khashoggi: 'People who get arrested are not even dissidents' 참조)에서 자말 카쇼끄지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이끄는 사우디 정부가 심지어 정부를 비판하지 않는 사람들마저 잡아들이고 있다며 모든 권력을 한 손에 쥐고도 여론탄압을 계속하고 있는 그를 비판하면서 자신은 현재의 조국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고 소회를 밝힌 바 있습니다. 그리고 3일 뒤 자말 카쇼끄지는 이스탄불에 있는 사우디 영사관으로 들어간 뒤 행방불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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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 사우디_아라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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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랍지역 전문 블로거 둘라
GCC/GU/사우디2018.10.01 00:02


사우디는 12월 15일로 확정된 사우디아 앗디리야 E 프릭스 개최와 맞물려 해외 레이싱 팬들을 유치하기 위한 새로운 전자 관광비자 시스템 샤렉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경주용 전기차들만이 출전할 수 있는 포뮬라 E가 열리는 20번째 도시이자 중동지역 최초, 그리고 18/19시즌 개막전을 사우디에서 개최하게 된 것은 사우디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제창한 비전 2030을 앞세워 포뮬라 E측과 10년간의 파트너쉽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입니다. 해외 유수의 스포츠 이벤트 유치에 관심이 많은 사우디 스포츠청은 지난 2월 WWE와 10년간의 지역 독점 계약을 맺고 50인이 출전하는 그레이티스트 로얄 럼블을 개최한 바 있기에 ([문화] 역대 최다 50인 참전하는 그레이티스트 로얄 럼블을 앞두고 본 WWE와 중동 참조), 포뮬라 E 유치는 이러한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F1을 유치하기엔 맹우방인 이미 지역 내에 자리잡은 UAE, 바레인을 제외해야 하기에 선뜻 나서기는 힘들겠죠.


그 첫 대회가 리야드 외곽의 앗디리야에서 열리는 것은 나름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선정되기도 한 앗디리야는 현재 사우디를 통치하고 있는 사우드 가문의 고향이자, 시작점인 디리야 토후국의 본거지이기 때문입니다. ([역사] 사우디는 어떻게 건국되었을까? 사우드 씨족의 오랜 투쟁기, 사우디아라비아왕국 건국사 참조)


자국민용 이벤트에 가까웠던 지난 4월 그레이티스트 로얄 럼블과 달리 사우디 스포츠청은 포뮬라 E 개최와 함께 사우디 내에서 열리는 국제적인 스포츠 이벤트를 관람하기 방문하고자 하는 전세계 스포츠 팬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전자 관광비자 시스템 운영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사우디가 방문 비자 받기 어렵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행객들을 위한 관광비자 자체가 거의 없다시피 했;;;;) 비싼 나라임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조치이기도 합니다. 이는 해외 관광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것을 선언한 정부의 방침과도 어울리는 것이죠.


관광 비자와 스포츠 이벤트 콤보를 제공하는 샤렉은 관람하고 싶은 스포츠 이벤트가 있을 때 사이트를 방문하여 티켓을 끊고, 온라인으로 방문비자를 신청하는 공식 포탈입니다. 



샤렉을 통해 신청할 수 있는 방문비자는 14일 짜리 방문 비자로 신청가격은 640리얄 (약 170달러)입니다. 샤렉을 통해 이벤트 티켓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비자 신청서를 작성하게 되는데 (이번 이벤트의 경우 티켓 가격은 등급에 따라 395리얄부터 10,000리얄까지), 개인 정보를 작성하고 증명사진과 여권 사본을 첨부해서 신청해 승인 받으면 대금을 결제한 후 이메일로 비자를 발급해주는 방식이라고 하네요. 이메일로 받은 방문비자를 출력해서 사우디 입국 시에 지참하면 14일간 사우디 전역을 방문할 수 있지만, 비무슬림에 한해서는 메카와 메디나의 양대 성지 방문은 제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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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랍지역 전문 블로거 둘라
GCC/GU/사우디2018.04.30 00:22

(VOX 시네마 리야드 파크 몰)



지난 4월 18일 밤 사우디 리야드의 AMC 시네마 KAFD점에서 국내외 귀빈 및 매체들을 대상으로 한 블랙팬서 VIP 상영회를 가지면서 35년만에 사우디에 영화관이 돌아왔음을 선언했습니다. ([문화] 35년만에 돌아온 사우디의 첫 영화관 AMC 시네마 KAFD점의 이모저모 참조) 그리고 10여일 사이에 티켓 가격 논란과 신규 사업자 추가 등 단기간에 여러 이슈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요???



1. 현시점에서 독점인건 알지만... AMC시네마의 입장료는 너무 비싸!!!!

(noon.com 예매 페이지)


첫번째 라이센스 취득업체이자 일단 1개관으로 시작한 AMC시네마의 입장료가 주변 국가들에 비해 너무 비싸게 책정되었다며 영화팬들 사이에 논란이 가열되고 있습니다. AMC시네마는 공식 홈페이지를 아직 개설하지 않은채 온라인 쇼핑몰 눈닷컴과 제휴 하에 티켓을 예매하고 있는데, 일반관 관람비가 1인당 75리얄 (약 22,500원)로 책정된 것이 논란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AMC 시네마에 이어 두번째로 운영허가를 받은 UAE VOX시네마 티켓 가격과 비교해도 너무 비싼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 UAE 내 VOX 시네마 주요 상영관 요금표 (5% VAT포함) -

 

일반관

맥스

아이맥스

4DX

2D

3D

2D

3D

스탠다드 

36.75디르함

49.50디르함

36.75디르함 

49.50디르함 

52.50디르함

136.50디르함 

VIP 

47.35디르함 

60.00디르함

52.50디르함 

65.25디르함 

78.50디르함

발코니 

없음 

 

63.00디르함 

75.75디르함

105.00디르함


UAE 디르함과 사우디 리얄의 환율이 거의 비슷하고, 사우디 영화티켓에는 VAT 외에 엔터테인먼트세가 추가되어 있어 가격 구조가 같을 수는 없겠지만, UAE에서 아이맥스관 VIP석 가격과 사우디 일반관 가격이 거의 비슷하다면 아무래도 비교가 될 수 밖에 없을테니까요.



2. 두번째 영화사업자 VOX 시네마가 아이맥스관과 함께 리야드 파크 몰 내 사우디 최초의 멀티플렉스 개관 발표!

AMC 시네마에서 블랙팬서를 처음 상영했던 날 두번째로 영화관 운영허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UAE의 VOX 시네마는 2십억 리얄을 투자하여 사우디 내에만 600 상영관을 개관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밝혔습니다. VOX 시네마가 UAE 외에 카타르, 오만, 레바논, 쿠웨이트, 이집트, 바레인에서 운영하는 총 영화관 수가 300개관으로 알려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까지 연 상영관의 두 배나 되는 상영관을 사우디 내에만 열겠다는 것이니 사우디 영화산업의 규모를 가늠해 볼 수 있겠죠.


(VOX시네마 리야드 파크 몰)


그리고 VOX 시네마는 사우디 시장에 진입하는 첫 영화관으로 VOX시네마 리야드 파크 몰을 개점하기 위해 막바지 작업이 한창입니다. 레이저 아이맥스는 아닌 것 같지만 아이맥스관을 필두로 어린이 상영관 등 총 4개관이 동시에 문을 열게 될 VOX 시네마 리야드 파크 몰은 사우디 최초의 상업영화 아이맥스 상영관, 멀티 플렉스, 그리고 영국의 하크니스 클라러스 스크린 시스템이 도입된 상영관 등 다양한 기록을 보유하게 됩니다. 사우디 영화팬들로서는 티켓가격 인하를 기대해 볼 수 있는 부분. VOX 시네마가 본사가 있는 UAE 내에서도 아이맥스 상영관은 몰 오브 에미레이트에 아이맥스 레이저 상영관 하나 밖에 운영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사우디 시장 첫 진입부터 아이맥스 상영관을 투입하는 건 분명 사우디 시장 진출에 대한 그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사우디 내 첫 상영관인 AMC 시네마 KAFD의 경우 1개관으로 영업을 시작하고 목표한 4개관 운영은 여름 이후에나 가능해질 것이기에 VOX 시네마 리야드 파크 몰이 사우디 내 최초의 멀티 플렉스가 되는 셈입니다.



3. 아이맥스에 이어 다음은 4DX다! CJ 4D플렉스, 사우디 시장 진입 선언!

 

VOX 시네마의 아이맥스관 개관 발표에 뒤이어 세계 최초로 4DX 상영관을 개발한 한국의 CJ 4D플렉스는 레바논, 요르단, 시리아, UAE 등지에서 영화관을 운영하고 있는 시네마시티와 손잡고 리야드의 알까스르 몰을 시작으로 리야드와 사우디 주요 도시에 연말까지 4DX 3개관 개관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하며 사우디 시장 진입을 공식 선언했습니다. 


CJ 4D플렉스는 2012년경부터 VOX시네마와 전략적 파트너쉽을 앞세워 UAE, 카타르, 오만 등 7개국에서 4DX 상영관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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